한반도의 중심에 우뚝 솟은 민족의 聖山[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단양군 편
  • ▲ 소백산 연화봉의 만개한 철쭉 뒤로 보이는 강우레이더관측소.ⓒ진경수 山 애호가
    ▲ 소백산 연화봉의 만개한 철쭉 뒤로 보이는 강우레이더관측소.ⓒ진경수 山 애호가
    소백산(小白山)은 1987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해발 1439.5m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국망봉(1420.8m), 연화봉(1383m), 도솔봉(1314.2m) 등이 백두대간 마루금 상에 솟아있다.

    소백산은 한반도 중심에 우뚝 솟은 백두대간의 장대함과 신비로움을 간직한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충북 단양군 가곡면·경북 영주시 순흥면·봉화군 물야면이 경계를 이루며 온화함이 엿보이는 산이다.

    이번 산행은 ‘죽령휴게소~제2연화봉~연화봉~제1연화봉’ 원점회귀 코스이다. 연화봉(蓮華峯)이란 이름은 대개 산의 형세가 연꽃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백산 연화봉의 경우는 비로봉(毘盧峯)이 불교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비로자나불이 계시는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에서 유래된 것으로 짐작된다.
  • ▲ 연분홍의 소백산 자생 철쭉이 피어있는 오르막길.ⓒ진경수 山 애호가
    ▲ 연분홍의 소백산 자생 철쭉이 피어있는 오르막길.ⓒ진경수 山 애호가
    죽령휴게소에 도착하여 준비운동을 하고 소백산국립공원 죽령탐방로 게이트를 통과한다. 소백산국립공원 죽령탐방지원센터에서 국립공원사진을 전시하고 있어 둘러본다. 1994년 제1연화봉과 2009년 제1연화봉의 변화된 모습을 대비한 사진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연화봉의 복원을 위해 그 동안 수고한 국립공원 관계자분들과 협조한 수많은 탐방객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지금도 소백산국립공원 연화봉~제2연화봉 구간은 소백산 자생 철쭉 복원사업 추진 지역이란다.

    탐방로 입구부터 소백산천문대까지는 콘크리트 포장길이 이어진다. 탐방객들의 편리를 위해서 갓길에 야자매트를 깔아 놓았다. 간간이 선보이는 철쭉과 각가지 풀꽃들이 지루함을 달래준다. 계속되는 오름의 피로를 풀기 위한 이야기쉼터, 잣나무쉼터, 정자쉼터도 있다.

    얼마나 올라왔을까 궁금할 쯤엔 이정표가 답을 주고, 중간 중간에 설치된 태양계에 관한 지식, 태양계관찰로가 조성되어 있다. 천왕성 바람고개 전망대를 지나면서, 마치 새색시 붉은 입술을 닮은 붉은병꽃나무, ‘기후변화 조사대상목’ 표찰이 붙은 나무들도 만난다.
  • ▲ 제2연화봉 대피소 갈림길에서 전망대로 가는 탐방로.ⓒ진경수 山 애호가
    ▲ 제2연화봉 대피소 갈림길에서 전망대로 가는 탐방로.ⓒ진경수 山 애호가
    고도가 높아질수록 몸은 조금씩 지쳐가고 있을 때, 슬그머니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기보다 차갑게 느껴진다. 몸과 마음은 자극을 받아 활력이 샘솟는다. 이제 막 새싹을 틔우기 시작한 나무들이 연초록빛 세상으로 물들인다.

    강우레이더관측소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제2연화봉을 만난다는 부푼 기대감만큼이나 허벅지에도 에너지가 전달되어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드디어 제2연화봉 대피소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곳이 죽령휴게소 주차장 기점 4.3㎞ 지점이고, 우측으로 가면 제2연화봉 대피소와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로 이어진다. 연화봉은 좌측으로 2.7㎞를 더 가야한다.

    갈림길 바로 인접해서 ‘백두대간 제2연화봉’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평탄하면서 너른 비포장 길을 걸으면서 짙푸른 하늘을 지붕 삼아 피어난 연분홍 철쭉이 마치 남색저고리와 연분홍 치마를 입은 어여쁜 새색시 같다.

    탐방로 좌우로 주목과 연분홍 철쭉의 환영을 받으며 걷다보면 제2연화봉 전망대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연화봉과 비로봉을 조망하고,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 옆을 휘돌아 콘크리트 포장길을 내려간다.
  • ▲ 제2연화봉에서 연화봉으로 가는 탐방로에 활짝 핀 연분홍 철쭉.ⓒ진경수 山 애호가
    ▲ 제2연화봉에서 연화봉으로 가는 탐방로에 활짝 핀 연분홍 철쭉.ⓒ진경수 山 애호가
    커다란 소백산 자생 철쭉이 쏟아내는 청순한 자태의 연분홍에 탐방객 어느 누구도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발걸음을 멈추고 인사를 나눈 후, 저 멀리 첨성대 모양이 보이는 연화봉에게 기다리라 전한다.

    내리막길이 끝나면서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노란 민들레꽃밭에 세워진 행성의 왕, 목성에 대한 정보를 읽어보고 그 옆에 마련된 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지금 걷는 탐방로 옆으로 듬성듬성 얼굴을 내미는 연분홍 철쭉이 머지않아 온 세상을 핑크빛으로 물들이고 환한 미소로 다가올 날을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 소백산 자생 철쭉을 소중하게 아끼고 보살펴야 하겠다.

    죽령주차장 기점 6.4㎞을 지나면서 푸른 파도가 밀려와 바위에 부딪쳐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듯이 연분홍 물보라가 시작된다. 이제 연화봉까지는 0.6㎞ 남았다. 소백산 천문대의 첨성대를 지나면서 비포장 탐방로가 이어진다.
  • ▲ 춤추듯 이어지는 연화봉의 연분홍 물결.ⓒ진경수 山 애호가
    ▲ 춤추듯 이어지는 연화봉의 연분홍 물결.ⓒ진경수 山 애호가
    소백산 천문대를 지나 완만한 탐방로를 조금만 오르면 공중화장실과 소백산국립공원 안내도를 만난다. 이곳에서 연화봉 고스락까지 연분홍 물결이 춤추듯 이어진다.

    일찍 만개한 철쭉은 화사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아직 때가 아니라며 시기를 기다리는 철쭉의 꽃망울은 금방이라도 팍하고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연분홍 꽃밭 사이의 탐방로를 따라 움직이는 울긋불긋한 탐방객들도 연분홍 철쭉과 어우러져서 장관을 이룬다. 아름다움에 매료돼 자제력을 잃은 일부 탐방객들이 탐방로를 벗어나 철쭉 군락지로 들어가서 사진촬영을 한다.

    그들에게 출입하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괘념치 않는 행동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데크 전망대를 독차지하고 식사를 하는 산악회원들도 마찬가지다. 최소한 다른 탐방객들이 주변 풍광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을 남게 두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한다.
  • ▲ 호사스런 잔치 자리에 왕림한 기분을 내게 하는 연화봉 철쭉.ⓒ진경수 山 애호가
    ▲ 호사스런 잔치 자리에 왕림한 기분을 내게 하는 연화봉 철쭉.ⓒ진경수 山 애호가
    퇴계 이황은 소백산 철쭉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묘사했다. “울긋불긋한 것이 꼭 비단 장막 속을 거니는 것 같고 호사스러운 잔치 자리에 왕림한 기분”이라고 말이다. 필자 역시 그의 표현에 천백번 공감한다.

    구름이 드리운 연화봉을 바라보고 있다가 잠시 후 구름이 걷힌 연화봉을 접할 때는 마치 누군가 장막을 일부러 조정하는 것 같다. 하늘에 짙은 구름이 걷히고 하얀 구름이 다가오면 신선이 되어 구름을 타고 노는 듯하다.

    연화봉에서 제1연화봉으로 가기 위해 비로봉 방향의 이정표를 따라 돌길을 내려간다. 이제부터 산속 숲길을 걷게 돼 본격적인 산행이라 하겠다.

    고산지대의 숲길은 마치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나무들은 모진 환경에서도 굳건하게 버티며 생존전략으로 제각기 최적화된 모습을 취하고 있다. 그런 기이한 모양의 나무들이 이루는 푸른 물결 사이사이에도 연분홍 사랑은 피어난다.
  • ▲ 연화봉에서 제1연화봉으로 가는 숲길.ⓒ진경수 山 애호가
    ▲ 연화봉에서 제1연화봉으로 가는 숲길.ⓒ진경수 山 애호가
    연화봉에서 출발하여 숲길을 약 1.3㎞ 이동하면, 철쭉 군락지를 만난다. 마치 연분홍 실크를 펼쳐 놓은 듯 아름답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철쭉 군락지 옆의 조망바위에 올라서 오던 탐방로를 돌아보면 철쭉과 함께 연화봉, 천문대, 제2연화봉이 조망되고, 앞을 바라보면 바로 앞의 구릉 뒤로 연분홍으로 물들기 시작한 제1연화봉이 조망된다.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 구릉을 넘는데, 숲속에는 괴석이 있어 그 옆에서 잠시 쉬어 갈 수 있다. 초록 터널의 숲을 통과하자마자 활짝 웃는 연분홍의 열렬한 환영에 몸들 바를 모르겠다.

    눈앞에 펼쳐진 제1연화봉의 연분홍 물결이 장관이다. 데크 계단의 설치가 자연이 회복하는데 크게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이 봉우리가 소백산 자생 철쭉으로 가득 차는 날을 기대해 본다.
  • ▲ 연화봉-제1연화봉 사이의 철쭉 군락지.ⓒ진경수 山 애호가
    ▲ 연화봉-제1연화봉 사이의 철쭉 군락지.ⓒ진경수 山 애호가
    탐방객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북적거린다. 계단을 오르면서 뒤를 돌아 내려다보면 지나온 연화봉 산등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소백산이 민족의 성산이라는 것이 결코 과언이 아님을 실감하고, 수많은 동식물이 서식할 수 있는 너른 공간을 지니고, 세상만사를 다 품을 만큼 부드럽고 넉넉함이 과히 연화장세계가 아닐 수 없다.

    계단 양 옆으로는 만개한 철쭉과 꽃망울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탐방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탐방객들은 사진 촬영을 위해 서로 양보해 주는 미덕을 발휘하니 이것이 산이 주는 숨은 포옹이 아닌가 싶다.

    계단을 다 오르니 이정표에 ‘제1연화봉(해발 1362m)’ 표식이 붙어 있다. 이곳은 연화봉에서 1.8㎞ 지점이고, 이곳에서 비로봉까지는 2.5㎞, 국망봉까지는 5.6㎞이다.
  • ▲ 소백산 자생 철쭉 복원사업으로 회복되고 있는 제1연화봉의 철쭉.ⓒ진경수 山 애호가
    ▲ 소백산 자생 철쭉 복원사업으로 회복되고 있는 제1연화봉의 철쭉.ⓒ진경수 山 애호가
    제1연화봉에서 헐떡이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냉 보이차를 마시며 덥혀진 몸을 식힌다. 비로봉까지 다녀오고 싶지만 여기서 다시 죽령휴게소로 돌아가기로 한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면서 소백산의 정기를 받아본다. 위로는 푸른 하늘에 높이 떠 있는 흰 구름과 아래로는 연분홍 비단을 펼쳐 놓은 공간 사이에 저 멀리 있는 비로봉을 떠서 얹혀놓는다.

    멀리서 보기보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아야 소백산 자생 철쭉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 민족이 특성과 닮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대동단결보다 반목과 질시로 서로 경계하며 멀리서 바라본다.

    소백산 철쭉처럼 이제 우리 민족이 서로 먼저 다가가서 보살펴주는 포용적 세상이 되길 비로자나불과 소백산 산신령께 기도한다.
  • ▲ 제1연화봉에서 계단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연화봉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 제1연화봉에서 계단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연화봉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계단을 내려와 싱그럽고 아름다운 숲길을 거닐며 수많은 풀꽃들과 만남의 기쁨과 헤어짐의 아쉬움을 나눈다.

    그러나 ‘회자정리(會者定離)요, 거자필반(去者必返)’이란 말이 있듯이 결코 인간은 자연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그리 기뻐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을 듯하다.

    연화봉 부근 갈림길에서 비로봉에서 오는 탐방객을 연화봉으로 안내하고, 죽령휴게소에서 연화봉까지의 노선을 태양계의 크기로 표현한 태양계 해설판을 체험한다.

    연화봉에서 제1연화봉-비로봉-국망봉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을 조망하고 당장 가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음을 기약한다.
  • ▲ 제2연화봉 대피소에서 바라본 소백산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 제2연화봉 대피소에서 바라본 소백산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연화봉에서 하행하면서 소백산 천문대를 거쳐 제2연화봉 전망대에 도착한다. 소백산의 여러 봉우리의 마루금이 역력하다.

    ‘백두대간 제2연화봉’ 표지석을 지나 갈림길에서 제2연화봉 대피소를 다녀오기로 한다. 콘크리트 포장길을 오르면서 활짝 핀 철쭉을 만난다.

    제2연화봉 대피소에서 국망봉에 이르기까지 산등성을 조망하고 다시 탐방로로 내려와 죽령휴게소로 하산한다.

    소백산의 철쭉을 가까이서 만나는 약 19㎞의 연화봉 산행을 마치면서, 탐방객들에게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것이 소중한 소백산 자생 철쭉을 세세생생(世世生生) 만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