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다 버리고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산행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충북 단양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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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군 단성면에 위치한 도락산(해발 964m)은 월악산국립공원 가장자리에 몸을 걸치고 있는 손꼽히는 명산이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깨달음을 얻는 데는 나름대로 길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또한 즐거움이 뒤따라야 한다’는 뜻에서 산 이름을 ‘도락(道樂)’이라 지었다고 전해진다.선암(仙岩)계곡을 끼고 치솟은 도락산 능선은 검봉, 채운봉, 신성봉, 형봉, 제봉 등의 암릉이 성벽처럼 둘러있다. 산등성과 기슭의 발길 닿는 어느 곳이나 암릉과 소나무의 절묘한 조화가 한 폭의 화폭처럼 펼쳐진다. 이 수려한 풍광은 1000m을 넘는 고봉(高峰)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으니 산세가 그만큼 기세등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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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암주차장을 출발해 포장된 오르막길을 따라 상선암마을로 오른다. 마을 정자에서 우측으로 상점 두 곳을 지나면 채운봉 또는 제봉을 거쳐 도락산으로 가는 갈림길을 만난다. 이곳에서 채운봉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영하 7도의 날씨로 언 몸이 아직 열이 붙지 않는다. 시밋골 구름다리를 건너자마자 계단을 오르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계단이 끝나면 바윗길이 이어지고, 다시 계단이 이어지길 반복한다. 언 몸이 녹으면서 숨 가쁘게 가파른 길을 얼마간 오르고 난 후 온 길을 돌아보면 훌륭한 풍광이 펼쳐진다. 등산로를 따라 비스듬히 자리한 ‘작은 선바위’를 지나고, 계단과 철제 난간이 설치된 바윗길을 종아리 근육이 터지도록 오르면 숲 위로 우뚝 솟아 있는 ‘큰 선바위’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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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에는 즐비하게 늘어선 기암괴석, 그 바위들에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연출한다. 이러한 풍광은 아침 햇살을 온 가슴으로 받고 오르니 비경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바윗길과 계단이 연속되는 이 산은 여간해선 그 모습을 보여줄 것 같지 않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숨도 더 가빠지고 좌측으로 제봉과 형봉 능선이 나뭇가지 사이로 서서히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암릉 구간을 따라 붉은 근육을 불끈 드러내는 금강송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붉게 눈에 들어온다. 풍광을 감상하느라 천천히 올랐어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고생시킨 만큼 숨겨진 풍경을 하나 둘 풀어 놓는 이 산이 신비롭다. 제봉과 형봉 능선, 앞으로 가야할 검봉과 채운봉 능선이 따스한 햇살을 안아 두터운 질감의 느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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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면서 몸을 고되게 움직이니 아무런 생각이 없다. 산은 산이어서 좋고, 나무는 나무이어서 좋으며, 바위는 바위이어서 좋다. 지금 눈에 보이는 자연 그대로를 가감없이 만끽한다. 아픔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지만, 아픔의 덩어리를 간직하고 있으면 불행하다. 그러나 고된 산행으로 생각을 다 비우고 무심하니 마음이 단순한 행복을 쫒는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이고, 그것으로 인한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암릉 구간에서 자주 만나는 선바위들을 지나고, 한참 동안 바윗길과 계단을 허벅지가 터질 정도로 힘주어 검봉에 오른다. 그곳에는 푸른 생명력을 뽐내는 소나무를 배경으로 앙상하게 말라버린 고사목이 마치 수행자처럼 고독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치 생사(生死)는 연속이며, 죽어도 죽지 않고 장구하려면 도를 깨우치라고 일깨워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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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봉에서 돌덩이가 앉은 모양새대로 생긴 등산로를 걷는다. 기암괴석 사이를 요리조리 힘겹게 내려간다. 이어서 계단을 내려서면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금방이라도 밀면 바로 떨어질 것 같은 앙증맞은 바위를 지난다. 검봉에서 내려선 후 허리를 곧추 세운 채운봉을 가파르게 설치된 계단을 밟으며 오른다.철제 계단을 오르고 난간이 좌우 양쪽으로 설치된 칼날 같은 암릉 구간을 걷는다. 좌측으로 제봉과 형봉이 손이 닿을 듯 가깝게 다가온다. 돌계단과 나무계단을 연이어 오른 후 바위에 난간이 설치된 가파른 바윗길을 힘겹게 오르면 채운봉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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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운봉에서 가파른 돌길을 조심스럽게 하행하면서 좌측으로 화강암반으로 이뤄진 형봉을 바라보니 그 산세가 금강산을 옮겨놓은 듯하다. 우측으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미끈하게 흘러내린 신선봉의 암반이 화려한 치마를 두른 듯 수려하다.채운봉에서 돌길을 내려온 후, 기암들 사이로 설치된 철제 계단을 오른다. 다시 가파른 바윗길을 허벅지가 터질 정도로 힘차게 오른다. 좌우측으로 소나무와 바위, 하늘과 산, 그들이 나를 품고 있고, 나 또한 그들과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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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락산 삼거리에 도착하여 북향의 빙판 비탈길을 조심스럽게 지나서 철제 계단을 오른다. 곧이어 암릉 구간을 지나면 신선이 거닐던 널찍한 암반인 신선봉에 이른다. 채운봉에서 도락산 삼거리를 지나 신선봉까지 오는 길이 꽤나 사납다.이 마당바위는 확 트인 조망을 자랑하는 도락산 최고의 전망대이다. 이곳에서 백두대간을 이루는 산들과 켜켜이 춤추는 산등성이들을 조망할 수 있다. 노송들로 둘러싸인 이 암반 위에는 듬성듬성 파인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는데 추위로 모두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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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봉에서 암릉 구간을 따라 도락산으로 조금 이동하면 내궁기 방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난다. 구름다리를 지나 나무 계단을 오르고 굴참나무가 울창한 가파른 능선길을 오르면 도락산 정상에 도착한다. 주변이 굴참나무로 둘러싸여 조망은 거의 없다.도락산 정상에서 구름다리를 건너 신선봉을 거쳐 도락산 삼거리까지 하산한다. 이곳까지 하산하면서 좌우로 펼쳐지는 풍광이 과히 절경이 아닐 수 없다. 삼거리에서 제봉 방향으로 바윗길을 철제 난간에 의지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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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 안부에서 얼마 오르지 않아 고인돌이 있는 형봉 정상에 이른다. 이 코스도 철제 난간과 바윗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하행을 한다. 또 등산로 옆으로 기암괴석들이 즐비하고 특히 선돌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산속의 수많은 바윗돌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함께 어울리지만, 서로 다투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이는 그들 자신이 본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어떤 외세에도 불구하고 제자리를 굳건하게 지킬 수 있기 때문일 게다. 그것이 바로 ‘도(道)’가 아닐까?제봉에 도착하여 평평한 바위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제부터는 험한 바윗길과 계단을 번갈아가며 하행한다. 산행이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불쑥불쑥 출현하는 기암괴석들이 눈을 즐겁게 하니 세상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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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행하는 좌측으로는 검봉과 채운봉 능선, 우측으로는 바위산인 무명산의 능선을 조망한다. 멋진 금강송과 바위의 조화에서 깨달음의 진귀함을 느끼고, 고사목과 바위의 조화에서 ‘생사일여(生死一如)’를 느낀다.고사목이 바위틈새에서 용으로 변하여 하늘로 승천하듯이 우리의 삶도 아무리 고단하고 힘들지라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도리를 다한다면 그 기운이 하늘에까지 뻗쳐 반드시 승천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진짜 금이 절대 녹슬지 않는 것처럼, 진리를 깨우친 사람에게 세상 그 어떤 것도 결코 영향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조금이나마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마음이 행복으로 충만하니 비록 몸은 피곤할지라도 깃털처럼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상선암주차장에 도착해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