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품은 월리사와 벌랏마을에서 오를 수 있는 山[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청주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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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토끼해의 입춘이 지나면서 날씨가 확연하게 온화해지고 있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이른 봄의 새싹을 틔우고 있다. 하늘은 맑지만 회색으로 짙게 드리운 미세먼지가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듯 모든 풍경을 금방이라도 삼켜버릴 것 같은 날이다.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문덕리에 위치한 샘봉산(해발 462m)을 찾는다. 이 산은 ‘가고 싶은 山 충북 50선’에 선정되어 이에 도전하는 산객들의 발길이 종종 이어지는 곳이다. 산맥으로는 한남금북정맥의 한 봉우리인 보은 구룡산(549m)에서 갈라진 구룡지맥의 끝부분에 솟은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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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봉산을 오르는 길은 달이 품은 절로 알려진 천년고찰 월리사(月裡寺) 입구의 등산로이다. 다른 길은 청주의 오지마을이라 일컫는 벌랏한지마을의 등산로가 있다. 어느 등산코스를 선택하든 3시간 남짓 걸린다. 필자는 벌랏한지마을의 등산로를 이용해 샘봉산을 오르기로 한다.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염티소전로 691에 위치한 한지체험장의 널찍한 앞마당에 주차한다. 한지체험장 건물 뒤 배경으로 샘봉산 산등성이가 보인다. 벌랏한지마을은 임진왜란 때 피난 와서 살게 된 400~5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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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랏’은 마을 전체가 골짜기로 되어 있어 밭이 많은 것에 놀랍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마을은 오래전부터 한지를 생산하였고, 잡곡, 과실이 풍부해 삼천 냥의 부자마을로 널리 알려서 멀리 외지에서 시집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대청호가 생기면서 많은 주민들이 외지로 떠나 호젓한 마을이 되었다.벌랏한지마을은 2009년 농촌진흥청에서 지정한 ‘살고 싶고 가보고 싶은 농촌마을 100’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고향의 품을 그리워하는 많은 탐방객들이 농촌 삶의 멋과 맛, 인정을 느끼기 위해 농촌전통체험마을인 이 마을을 찾는다고 한다.또 이 마을은 염티소전로의 끝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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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 인접한 샘봉산 자락의 등산로 입구까지 가기 위해 한지체험마을에서 출발하여 구불구불한 염티소전로를 따라 오른다. 고갯마루에 이르러 벌랏마을 입구에 세워진 정자, 표지석, 벌랏한지마을 안내판을 만난다. 마을 입구를 지나면서 도로 우측에 있는 등산로 입구로 들어선다.처음부터 능선을 오르는 길이 쉽지 않았다.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 있는가 하면, 토질이 약해 흙이 흘러내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사람이 다닌 흔적보다 멧돼지들이 다닌 흔적이 훨씬 많다. 고도를 높이면서 멀리 대청호가 뿌연 미세먼지에 가려 가물가물하다. 우리는 언제쯤 미세먼지로부터 해방된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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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입구부터 오르막 능선을 올라 첫 번째 봉우리에 도착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앞으로 넘어야 할 두 번째 봉우리와 그 뒤로 샘봉산이 보인다. 첫 번째 봉우리에서 두 번째 봉우리로 가는 산길은 경사가 가파르다.두 번째 봉우리를 지나면서 참나무 군락을 파고들어 굳건하게 삶의 터전을 잡은 소나무 군락을 통과하면서 완만한 능선 길을 걷는다. 샘봉산에 이르기 전에 세 번째 작은 봉우리를 만나 잠시 쉬어간다. 멀리 산등성이가 답답하게 조망된다. 누구를 탓하고 원망할 수도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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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완만한 산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능선이 앞에 펼쳐지니 샘봉산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능선을 힘차게 박차고 오르면 샘봉산 정상에 도착한다. 옛날에 산 정상에 샘이 있어서 샘봉산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괄이 난을 일으킨 후 피신했던 산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정상에는 정상목과 나무에 붙들어 매어진 정상 표지판, 그리고 그것들 앞으로 옛 샘터가 보인다. 샘터에는 물이 없고 낙엽에 묻혀있어 얼핏 보면 샘터처럼 보이지 않는다. 산 정상은 잡목으로 둘러싸여 있어 조망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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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하는 길은 정상목이 세워진 방향인 월리사로 하산하는 코스, 왔던 길을 되돌아가다가 능선을 타고 벌랏마을로 하산하는 코스,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계속 직진하다가 벌랏마을로 하산하는 코스 등 세 가지가 있다.그 중에서 세 번째 코스로 하산한다. 정상에서 조금만 하행하면 우측으로 대청호가 내려다보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려 회남대교를 감추고, 푸른빛의 대청호를 잿빛으로 만드는 바람에 제대로 그들의 모습을 구별할 수 없다. 하행을 계속하면서 우측으로 벌랏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고, 벌랏마을을 휘둘러 감싸 안은 산등성이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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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봉산에서 능선을 따라 봉우리 하나를 넘은 후에 뒤돌아보니 산행의 흔적이 부드러운 윤곽으로 다가온다. 이제 계곡을 따라 우측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지반이 약하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서 내려간다.계곡에는 낙엽들과 함께 밤송이들이 많이 떨어져 있다. 낙엽에 숨은 계곡의 돌들은 걸려들기를 바라는 덫과 같아 조심스럽게 밟아야 한다. 계곡을 따라 거의 하산할 쯤에 마치 전승기념탑처럼 덩굴로 이뤄진 초목문(草木門)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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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길은 곧바로 밭길로 연결되고 다시 마을입구로 이어진다. 마을을 가로 질러 가는 길목에는 돌담을 비롯하여 화독, 벽에 걸린 소쿠리와 지게 등 농기구들의 정겨운 풍경이 눈을 즐겁게 한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우물터를 지나 산행 출발지인 한지체험마을에 도착한다.극성스런 미세먼지가 온 세상을 잿빛으로 뒤덮은 공간의 모습을 보면서 인과(因果)의 관계로부터 삶의 지혜를 얻어야 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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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결과는 좋은 원인이 있음이요, 나쁜 결과는 나쁜 원인이 있음이다. 또 좋은 원인은 좋은 결과를 낳고, 나쁜 원인은 나쁜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말이다.우리는 이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진리를 잊고 산다. 그래서 망동(妄動)이 그칠 줄 모르고 오두방정을 떠니, 이토록 온 세상이 오염되고 혼란스러운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