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강암 바위 슬랩과 계곡의 즐비한 기암이 일품[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괴산군 편
  • ▲ 선유계곡의 겨울 풍경.ⓒ진경수 山 애호가
    ▲ 선유계곡의 겨울 풍경.ⓒ진경수 山 애호가
    충북 괴산군 청천면 관평리에 위치한 고도가 낮아 평범해 보이는 갈모봉과 그 산이 일궈 놓은 선유구곡(仙遊九曲)을 유람한다. 갈모봉(해발 582m)은 산 모양이 갈모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남군자산(827m)에서 옥녀봉(599m)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솟아 있다.

    선유동계곡주차장에서 입구 쪽으로 조금만 되돌아가서 오른쪽으로 관평1교를 건너 들목재마을 안쪽으로 쭉 걸어 들어간다. 마을을 가로질러 야영지의 오두막을 지나 산길을 산책하듯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리본이 보이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 ▲ 갈모봉 정상에 도착하기 전에 만난 코브라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갈모봉 정상에 도착하기 전에 만난 코브라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능선을 따라 오르면서 간간이 잔설이 있어 등산의 삭막함을 달래준다. 곧이어 능선에 일곱 개의 커다란 바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칠형제 바위 틈새를 빠져나간다. 등산로 양쪽으로 즐비하게 환영 대열을 갖춘 기암들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주고 속세에 갇혀있던 상상의 날개 짓을 맘껏 펼치게 한다.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여러 곳의 너럭바위와 고인돌을 거치며 오른다. 숨소리가 거칠어 질 무렵 발길을 멈추게 하는 코브라 바위를 만난다. 곧이어 안부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약 3~4분 정도 오르면 소나무와 참나무 사이로 짙푸른 하늘이 드러나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곳이 바로 갈모봉 정상이다.
  • ▲ 갈모봉 정상.ⓒ진경수 山 애호가
    ▲ 갈모봉 정상.ⓒ진경수 山 애호가
    갈모봉 정상의 너른 바위에 앉아 멀리 풍광을 조망하고, 거친 숨소리가 잔잔하게 잦아들면서 속세의 번거로운 일상을 잊고 머릿속을 고요하게 한다. 흔한 말로 ‘멍 때리기’로 얼마큼 시간이 흘러서야 정상에서 안부삼거리로 돌아온 후 눈앞에 다가선 봉우리를 오른다.  

    봉우리를 넘어 하산 길은 암릉 구간으로 곳곳에서 군자산, 백악산 등 괴산의 명산들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곧이어 찐빵 바위를 왼쪽에 비스듬히 업고 있는 바위 슬랩이 멋지게 펼쳐지고, 멀리 S자 커브의 157번 지방도가 조망된다. 찐빵 바위 밑으로 매달린 밧줄을 잡고 안전하게 하산한다.
  • ▲ 찐빵 바위를 업고 있는 가파른 바위 슬랩.ⓒ진경수 山 애호가
    ▲ 찐빵 바위를 업고 있는 가파른 바위 슬랩.ⓒ진경수 山 애호가
    하산하면서 만나는 바윗돌과 소나무들이 연출하는 자연의 신비스러움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어떤 것은 작은 정원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잘 가꿔진 분재 같기도 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눈요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갈모봉은 외형적으로 비교적 낮고 평범해 보이지만 그 속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가득 담고 있어 눈과 생각이 즐겁고 행복한 산행을 마련해 준다. 갈모봉은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에 대해 평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 ▲ 백옥처럼 고운 엉덩이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백옥처럼 고운 엉덩이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이어서 만나는 두 번째 바위 슬랩을 따라 하산한다. 화강암의 하얀 속살과 그 바위의 갈라진 틈새에 끼워들어 자라고 있는 소나무가 백옥처럼 고운 엉덩이 바위를 연출한다. 그 엉덩이 바위를 지나간다. 바위 슬랩을 지나 쪼개진 바위에 이르러 지나온 두 번째 바위 스랩을 이루고 있는 암봉을 감상한다.

    이후 거대한 바위를 끼고돌아 내려오고, 너른 바위를 신선처럼 거닐면서 발밑의 산야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괴산의 명산들을 바라본다. 마치 하늘과 땅이 하나로 통하는 길목에 서있는 듯하다. 모녀바위와 같은 기암과 3층으로 겹겹이 쌓인 시루떡 바위를 지나 선유동계곡과 만난다. 이곳에서 왼쪽으로는 제비소, 오른쪽으로는 선유구곡(仙遊九曲)과 연결된다. 
  • ▲ 두 번째 바위 슬랩을 이루는 암봉.ⓒ진경수 山 애호가
    ▲ 두 번째 바위 슬랩을 이루는 암봉.ⓒ진경수 山 애호가
    괴산군 청천면에서 동북쪽으로 약 1㎞에 걸쳐 펼쳐진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선유동계곡은 아기자기한 계곡미와 기암괴석의 절경을 품고 있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이 7송정(현 송면리 송정마을)에 있는 함평 이씨댁을 찾아갔다가 산과 물, 바위, 노송 등이 잘 어우러진 절묘한 경치에 반하여, 아홉 달을 돌아다니며 9곡의 이름을 지어 새겼다고 한다. 

    제비소에서 주차장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선유구곡 제9곡부터 제1곡까지 만난다. 먼저 제9곡 은선암(隱仙岩)은 옛날 신선이 숨어 살았다는 바위라 하며, 퉁소를 불며 달을 희롱하던 신선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 ▲ 신선이 숨어 살았다는 제9곡 은선암.ⓒ진경수 山 애호가
    ▲ 신선이 숨어 살았다는 제9곡 은선암.ⓒ진경수 山 애호가
    제8곡 구암(龜岩)은 바위 생김새가 마치 큰 거북이가 머리를 들어 숨을 쉬는 듯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겉은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고 등과 배가 꿈틀거리는 듯하다. 구암 맞은편에 있는 제7곡 기국암(碁局岩)은 바위가 바둑판 모양으로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던 곳이라 한다.

    제6곡 난가대(爛柯擡)는 조선 명종 때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가다가 기국암에서 바둑 두는 신선들을 구경하느라 도끼자루가 썩는 줄 몰랐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제5곡 와룡폭(臥龍瀑)은 용이 물을 내뿜는 듯이 쏟아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 거북이 모양을 닮은 제8곡 구암.ⓒ진경수 山 애호가
    ▲ 거북이 모양을 닮은 제8곡 구암.ⓒ진경수 山 애호가
    제4곡 연단로(鍊丹爐)는 바위 위의 한가운데가 절구처럼 패어 있는데, 신선들이 이곳에서 ‘금단(金丹)’을 만들어 먹고 장수하였다고 전한다. 금단은 신선이 되기 위해 먹는 선약(仙藥)을 일컫는다. 제3곡 학소암(鶴巢岩)은 층암절벽으로 푸른 학이 둥지를 틀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제2곡 경천벽(擎天壁)은 바위 층이 첩첩을 이루어 하늘을 떠받치는 형상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제1곡 선유동문(仙遊洞門)은 높은 바위에 새새마다 여러 구멍이 방을 이루고 있다. 선유동문은 속세에서 신선의 경지로 들어서는 문을 의미한다. 
  • ▲ 신선들이 금단을 만들어 먹었다는 제4곡 연단로.ⓒ진경수 山 애호가
    ▲ 신선들이 금단을 만들어 먹었다는 제4곡 연단로.ⓒ진경수 山 애호가
    선유구곡 제9곡 은선암을 시작으로 물길을 따라 제1곡 선유동문으로 내려오면서 자연의 신비가 만들어낸 선유동계곡의 절경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신선(神仙)도 쉬어가지 않을 수 없는 계곡 속에 머무는 인간이 어찌 스스로 그러한 신비에 동화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갈모봉과 선유구곡의 기암이 산과 물과 함께 어우러져 품고 있는 천지의 신비로움을 온새미로 온몸에 담는다. 나라고 하는 것을 자제하며 살아가는 삶의 현실과 나라고 하는 것에 집착하며 죽음에 다가가는 시간이 홀연히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저 나의 본성(本性)에 충실하며 살고픈 아름다운 시간여행 이었다.
  • ▲ 선유구곡 제1곡 선유동문(仙遊洞門).ⓒ진경수 山 애호가
    ▲ 선유구곡 제1곡 선유동문(仙遊洞門).ⓒ진경수 山 애호가
    그저 산이 있어 부지런히 오르고, 계곡이 있어 몸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예로부터 자연의 섭리가 빚어낸 산수계곡을 마음수양의 터전으로 삼았던 것처럼, 앞으로 자연의 이치를 깨우치고 정신적 풍요로움을 채우는 마음챙김 산행이 되길 바라면서 오늘의 산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