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토끼의 해’에 일류봉(日留峰) 같은 마음[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영동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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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검은 토끼의 해’인 계묘년(癸卯年) 1월 1일에 새해 첫 해돋이를 보기 위해 충북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에 위치한 ‘달도 머물다 간다’는 월류봉(月留峰)을 찾는다.아침 7시 10분쯤 월류봉 공영주차장에 도착하여 새해 첫 해돋이를 기다린다. 사람들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하나 둘 모여들어 삼삼오오 떼를 지어 웅성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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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출시간이 지나면서 하늘에 잔뜩 드리워진 회색 구름과 미세먼지를 뚫고 나오는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한다. 해는 떠올랐건만 그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계묘년 새 해는 마음속에서 붉은 빛을 발산하고 있다.이제 동서(東西)로 뻗은 능선에 6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은 월류봉을 오른다. 이 봉우리는 16세기 이전부터 여러 문헌에 소개된 충북 영동의 한천팔경(寒泉八景) 중에서 사군봉(使君峯)을 제외하고, 7경이 위치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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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류봉 광장에서 월류봉둘레길을 따라 걷다보면 영동 송시열 유허비를 지난다. 다져진 눈길로부터 많은 방문객들이 진즉에 다녀갔음을 알 수 있다. 월류봉 광장 기점 약 300m을 걸으면 우측으로 눈과 얼음, 냇물이 멋지게 어우러진 초강천의 징검다리를 건넌다.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좌측으로 사군봉을 조망할 수 있다.초강천을 건너면 가파른 경사의 계단과 가파른 길을 오른다. 힘든 만큼 병풍같이 깎아지른 산양벽(山羊壁)을 마주한다. 월류봉 광장 기점 710m 지점에 이르러 에넥스 공장의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합류되어 월류봉 1봉으로 오른다. 지그재그 데크 계단을 오르면 월류봉 1봉(해발 365m)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한반도 지형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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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미세먼지로 한반도 지형의 풍광이 산뜻하지 못하다. 겨울의 찬바람이 얼굴을 세차게 때린다. 앞으로 가야할 봉우리들이 내린 가파른 산자락과 구비치는 초강천은 마치 설산(雪山)이 그려진 한 폭의 동양화처럼 환상적이다.초강천이 휘돌아가는 월류정(月留亭)과 그곳을 바라볼 수 있는 한천정사(寒泉精舍)가 발아래로 보인다. 월류봉 1봉에서 하행한 후 데크 계단을 통해 작은 봉우리를 올랐다가 다시 데크 계단으로 하행한 후 월류봉 2봉(해발 382m)에 오른다. 1봉에서 2봉까지는 약 200m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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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류봉 2봉에서 3봉으로 가는 약 230m 구간은 가파른 석산과 암릉 구간으로 곳곳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월류봉 3봉(해발 393m)과 4봉(해발 402m)의 약 300m 구간도 마찬가지다.월류봉의 고도는 다른 산에 비해 높지 않지만 깎아 세운 듯 똑바로 서있는 모습이 마치 꼿꼿한 선비의 자태를 닮았다. 월류봉은 누구도 얕볼 수 없는 뛰어난 풍광과 산행에서 자연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훌륭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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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류봉 4봉에서 5봉까지는 약 320m 구간은 키가 나지막하고 껍질이 두꺼우면서 거무스름한 소나무들 자주 만난다. 암봉의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기 위해 생겨난 것 같다. 그 모습을 보자니 평생 자식을 위해 고생하시다가 떠나신 어머님의 손이 그리워지면서 울컥해진다.돌길을 산책하듯이 편하게 걷기도 하고, 로프를 잡고 경사진 산길을 오르면서 사방으로 펼쳐진 풍광에 눈이 호강한다. 절벽이 마치 공중에 솟아 있는 듯하고, 그 아래로 휘감아 돌면서 흐르는 초강천이 구태여 화선지와 먹이 필요 없는 산수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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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류봉 5봉(해발 404m)에 도착하니 날씨가 맑아지고, 정상석은 마치 월계관을 쓰고 승자의 기분을 누리고 있는 듯하다. 이곳에서 하산갈림길까지 약 350m는 석산으로 완만한 눈길을 걷는다. 좌우로 탁 트인 전망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하산갈림길에서 월류봉 5봉 하산쉼터까지 약 450m을 하산한다. 이 구간은 돌계단과 가파른 석산으로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조심해야 한다. 하산 도중에 우측으로 월류봉 능선을 감상할 수 있다. 하산쉼터에 가까워지면 통나무 계단을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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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쉼터에 도착하여 월류봉을 병풍 삼고 얼어붙은 초강천을 벗 삼아 따뜻한 보이차를 마시며 산수의 그윽한 풍경을 만끽한다. 하산쉼터에서 계단을 통해 초강천으로 내려선 후, 징검다리를 건너 월류봉광장까지 약 870m을 걷는다.삶 자체가 징검다리인 것 같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할 때 발 디딜 돌을 하나씩 놓으며 가야했고, 이미 놓아진 징검다리를 건널 땐 물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그런데 잠시 방심한 탓에 물에 빠져 허우적댄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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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천을 건너 무명의 정자를 지나 월류봉 주차장으로 눈길을 걷는다. 초강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서 우측으로 월류봉의 명품 그림을 감상한다.푸른 천으로 장엄하게 연회장을 꾸민 듯 파란 하늘과 하얀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백설의 길, 그리고 세찬 추위에도 푸름을 잃지 않고 늠름하게 서있는 소나무가 연출하는 이 길은 명품이 따로 없다.월류정과 용연대를 지날 때 아침에 보지 못한 해가 중천에 떠 있고 강력한 빛을 발산하여 차마 바라볼 수가 없다. 어차피 인연 따라 생겨나고 인연 따라 사라지는 것이 자연이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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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서쪽으로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능선 모양 따라 서쪽으로 흐르듯 달이 머물다 사라진다는 모습에 유래된 월류봉, 지금 달이 아니라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능선을 따라 흘러가니 낮에도 밤의 정취를 그대로 재현하는 일류봉(日留峰)이 되었다. 이처럼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2023년 ‘검은 토끼의 해’ 모든 분들이 소원성취 하시고, 건강하시며 삶의 행복이 충만하기를 기원하면서 오늘 산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