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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홍의 시사칼럼] 더 이상 “열중쉬어, 차렷”이 안 통하는 시대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

입력 2022-08-25 14:44 | 수정 2022-10-02 09:06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 1. 요즘 청년들은 술자리 모임에서 군대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필자의 앞뒤 세대 남자들은 술자리에서 군대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군대 이야기는 약간의 뻥 튀김도 해서 술자리 인기 테마였다. 군대 갔다 온 남자들에게 군대 이야기는 애증이 겹쳐서 잊히지 않는 추억이기도 하다.

군대 갔다 온 남자들에게 가장 큰 악몽은 논산훈련소에 재입대하는 꿈이다. 실제로 모 유명 연예인이 두 번 입대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 연예인의 재입대 소식을 들으면서 군대 갔다 온 대한민국의 모든 청년은 악몽이 자신에게 오지 않았음에 안도했을 거다. 

군 내무반 생활이 너무 고달파서 제대 후에는 군대 정문을 향해선 소변도 안 본다는 얘기는 고달픔의 강도가 상당했기 때문일 거다. 특히나 내무반 고참들의 졸병 얼차려 기억은 70대 나이의 필자에게도 여전히 생생하다.

군대 고참이 졸병을 얼차려 시킬 때 나오는 첫 마디가 “열중쉬어, 차렷”이다. 그러다가 속도가 점점 빨라져 “열차, 열차, 열차...”를 구령하면 손발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동작으로 혼이 빠지도록 열중쉬어, 차렷을 반복했다. 

열차 동작만 시킨다면 다행이지만 “열중쉬어, 차렷” 구호는 졸병을 구타할 때 고참이 쓰는 명령이다, 고참이 졸병의 가슴팍을 쥐어박거나 정강이를 발로 차면 자세가 흔들리거나 뒤로 나자빠진다. 그럴 때 나오는 고참의 명령이 “원위치, 열중쉬어, 차렷”이다. 얻어터지면서도 고참의 “원위치, 열중쉬어, 차렷” 명령에 다시 원위치해야 하는 졸병에겐 인내심을 키우는 면도 있긴 했지만,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모두 인권 유린이고 심각한 폭력이 틀림없다.

#2. “열중쉬어, 차렷”에 길들인 남자들은 제대 복귀 후에 사회에서든 학교에서든 군대에서 배웠던 방식으로 후배들을 다룬다. 예전 우리 사회에는 그런 관행이 아무렇지 않게 용인되기도 했었다. 이제는 우리 사회 대부분에서 그런 관행이 없어졌지만, 아직 그런 “열중쉬어, 차렷” 악습 찌꺼기가 남아있는 곳이 있다. 

국회의원들이 늘 즐겨 쓰는 말이 ‘선출된 권력’이다.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기까지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쓸개 간 내어놓는 노력 끝에 선출되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권위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은 ‘선출 권력 호소인’이다. 그러나 선출 권력이라 해서 모든 권력에 우선 할 수는 없다. 

이들은 자신들이 국민을 대신하기 때문에, 임명된 권력이 자신들에게 따따부따하는 건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정작 국민은 그들이 늘 국민을 대신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므로 한시적으로 국정을 위탁한 것으로만 본다.

그런데도 선출 권력은 권력을 쥐는 순간 절대 강자가 된 것으로 착각하고 또 실제로 그런 힘이 작용하고 있다. 요즘 뉴스의 한 언저리를 차지하여 회자되고 있는 국민의힘 전 대표의 사례만 보아도 그렇다. 만약 이준석 전 대표가 현역 국회의원 자리에 있었다면 공정한 민주적 경선 절차로 선출된 당 대표 자리에서 저렇게 쉽게 밀려나지는 않았을 거다. 

이준석 대표의 언행이 윗선과 국민의 심기를 건드리고 꼰대 세대의 정서와 엇박자를 한 면은 있었다. 그렇더라도 풍문으로 드러난 비위로 저렇게 내몰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게다. 현역 국회의원이 아닌 0선의 청년 정치인이 그렇게 정치 뒤안길로 밀려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국회의원의 위력이 새삼 달리 보이는 거다.         

#3. 장관 청문회나 국회의 대정부 질문, 상임위원회 등에서 국회의원은 절대 우위이다. 그들은 모두 국민 대변자임을 자부한다. 그래서 ‘국민 대변자 호소인’들이다. 불려 나온 정부 관료들은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 자리에서 의원이 묻는 말에 대꾸한다거나 마음에 안 드는 답변이라도 하면 예외 없이 소위 “열중쉬어, 차렷”처럼 군기 잡는 의원의 공격이 들어간다. 마음에 안 들면 “의원이 질의하는데 자세 똑바로 하라”고 한다. 그러다 논리에서 밀리면 “어디 감히 국민을 대변하는 의원한테 대드나?” 같은 말이 튀어나온다. 아랫사람과 다투다가 논리에서 밀릴 때 “너 나이 몇 살이야”라고 다그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서 보여준 국회 대응 답변이 눈길을 끌었다. 한 법무부 장관은 국회의원의 그런 군기 잡기에 전혀 개의치 않고 법리와 논리로 대응해서 질의응답우위를 지키는 모습으로 청문회 분위기부터 바꿔버렸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눈살 찌푸리게 했던 국회 청문회와 질문 장면이 역전되면서 정치 혐오증에 빠졌던 국민이 환호하는 게다. 

일부 여론은 장관이 국회의원에게 또박또박 대꾸하는 게 국민에게 대꾸하는 거와 같아서 무례하다고 한다. 그러나 여론의 주류는 속 시원하고 국회, 특히 민주당 강성 초선의원과 소위 그동안 말 펀치가 세기로 이름난 의원들의 콧대를 꺾었다고 환호하고 있다.

민주당에서 내놓는 한 법무부 장관에 대한 대응 대책은 그야말로 개그 수준이다. 법무부 장관에게 창피당한 앙갚음을 법안 발의로 군기 잡겠다는 게다. 툭하면 법으로 어쩌겠다는 국회의원들의 입법 만능주의의 발로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요즘 국회를 보면 정도(正道) 정치는 사라지고 뭘 모르는 저질 국회의원들이 망나니 칼춤 추듯 한다. 170여 명의 거대 야당이 한동훈 장관 한 명에게도 대적 못하고, “열중쉬어, 차렷” 같은 군기 잡기로 대응하니 한심한 일이다. 

이제는 국회에서도 더 이상 “열중쉬어, 차렷”이 안 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공부 안 하고, 의정 준비 안 하고, 군기 잡기만으로 정부 관료를 다루던 시대에 종말이 온 거다. 그런 변화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일조한 거다. 그 결과가 장관 취임 백일 축하 꽃바구니가 법무부 청사 입구를 뒤덮은 거다. 그러나 그건 결코 정치에 바람직한 광경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제는 국회에서도 더 이상 “열중쉬어, 차렷”이 안 통하는 시대가 된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세상이 그렇게 바뀌면서 민주주의는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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