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조각공원‧용난골‧해와송 등 10.2㎞ 4시간 소요…일몰 ‘일품’2007년 원유유출 ‘죽음의 바다’ 살려낸 120만 자원봉사자 ‘보은의 길’차윤천 회장, 맨손으로 억척스럽게 길 개척…곡괭이로 한땀한땀 일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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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이원면의 ‘절경 천삼백리’ ‘솔향기길’은 솔향기를 맡으며 트레킹을 할 수 있도록 해안가를 중심으로 조성된 자드락길이다.이 길은 울창한 해송의 숲에서 뿜어내는 솔 내음이 아주 짙고 길 위에는 솔잎이 수북이 쌓여 있어 촉감이 좋다. 무엇보다 해안선을 따라 기암괴석과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고 특히 거친 파도소리의 장단에 발을 맞춰 걷기에도 좋다.솔향기길은 제주 올레길보다 풍광이 뛰어나고 여름에도 햇빛이 들지 않아 가족과 함께 걸을 수 있어 더욱 좋다. 이 길은 서해안이지만 서산의 왜목마을처럼 아침에 일출을 볼 수 있고 해가 지는 일몰은 정말 장관이다.솔향기길은 한 사람의 열정이 만들어낸 창조물이다. 차윤천 회장(69)의 고향사랑이 아니었다면, 전국에서 연간 10만 명(연 인원 100만 명)이 솔향기 길을 찾아 ‘힐링’을 만끽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솔향기길은 꼭 가보고 싶은 길로 꼽힌다.차 회장은 일찍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무역업을 하다 13년 전에 낙향한 뒤 맨손으로 솔향기 길을 개척했다. 길 개척의 무모함은 고향사람들 조차 “제 정신이 아니다”고 했을 만큼 그는 열정적으로 길을 내고 가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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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향기 길은 2007년 12월 7일 서해에서 ‘허베이 스피릿호’와 중공업 바지선이 충돌하면서 원유유출사고가 단초가 됐다. 당시 전국에서 120여 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태안으로 달려왔다. 태안은 자원봉사자들이 원유로 뒤덮인 바위와 자갈·모래를 하나하나 정성으로 닦아내 ‘죽음의 바다’를 되살려낸 기적의 환경극복 현장이다.솔향기길은 이때 자원봉사자들이 해안가로 가기 위해 풀숲을 헤치고 가파른 절벽 아래로 밧줄을 연결해 오르내렸던 곳이다. 그 오솔길을 연결한 것이 솔향기길이고 120여 만 명의 자원봉사자를 위한 ‘보은의 길’이다.차 회장도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하자 자원봉사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자원봉사자들은 전국에서 많이 왔지만 길이 없어 해안가로 내려갈 수 없었다. 그러자 차 회장은 가파른 바위를 망치로 쪼아 계단을 만들고 밧줄을 이용해 바다로 갈 수 있도록 길을 냈다.그는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낸 뒤 해안가를 둘러보니 태안 앞바다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솔향기 길은 자원봉사자들의 보답의 길을 내기 위해 3년 간 수 많은 곡괭이질로 탄생시켰다.차 회장이 길을 내는 데는 지주들의 반대가 컸다. 이들은 “왜 산을 건드리느냐”고 완강히 거부했다. 차 회장은 수백 명의 지주들을 설득해 길을 내기까지 상당한 시일과 노력이 뒤따랐다. 그는 ‘길을 내면 투자가치가 올라간다’며 무던히도 지주들을 설득한 끝에 허락을 받아낸 일화는 눈물겹다.지주들을 설득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길을 내기 시작했다. 그는 나무에 올라 전지를 하고 위험한 곳에는 사재를 털어 밧줄을 구입해 설치하는 등 열정적으로 길을 내고 가꿔 마침내 명품의 솔향기 길을 탄생시켰다. 이 길은 그의 열정적인 노력과 땀방울이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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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향기 길은 길 폭이 널찍하지는 않지만 뒷동산의 오솔길을 걷는 것처럼 느껴진다. 길을 걷다 바다를 바라보면 동해안처럼 해안 절벽이 가파르고 기암괴석이 많다. 해안선을 따라 해송이 유난히 많아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걷는 내내 짙은 솔향기의 향이 온 몸을 감싸안는다.먼저 ‘만대항’에서 꾸지나무골부터 둘러봤다. 만대항에서 삼형제 바위쪽 해안선을 따라 아름답게 조성된 데크길을 걸었다. 꾸지나무골의 데크길은 그 아래의 파도를 좀 더 가까이 하며 아름다운 해안선을 걸을 수 있어서 좋다.만대항에서 바다건너 저 멀리 서산 대산산업단지가 아주 가깝게 보였다. 주민들은 대산과 태안을 잇는 연륙교가 놓아지기를 학수고대 하고 있다. 그러면 15~20여분 이내에 서산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계속 해안선을 따라 솔향기길을 걸은 뒤 되돌아 나와 만대항을 거쳐 가마봉전망대를 향했다.가마봉은 썰물 때 배를 타고 파도가 넘실대는 갯바위를 바라보면 바위 모양이 가마와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새색시가 가마를 타고 가마봉에서 결혼을 하면 잘 살게 된다는 설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널찍한 가마봉에는 정자가 있고 차윤천 회장의 실물크기의 전신상 모형이 의자에 앉혀진 채 가마봉을 밤낮으로 불침번을 서고 있다.가마봉은 솔향기 길에서 전망이 가장 좋고 만조 시 배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가마봉에서 태안의 최북단에 위치한 마지막 섬인 ‘여섬’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여인이 바닷물 속에 드러누워 얼굴만 내놓은 여인의 옆모습이다. 가마봉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큰 섬인 선갑도가 보이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인천대교의 조망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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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펜션단지를 거쳐 ‘용난골’로 들어섰다. 먼저 자연이 만든 조각공원과 ‘해와송(海臥松)’이 시야에 들어왔다. 해와송 우측으로 가면 용난골이 나오는데 이 곳에서 용이 나와 승천한 곳이라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이 동굴 속으로 18m쯤 걸어가면 양쪽에 두 개의 굴로 나눠진다. 이무기 두 마리가 용이 되기 위해 한 굴씩 자리를 잡고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도를 닦았지만 우측의 용이 먼저 하늘로 승천했다. 좌측의 이무기가 승천을 하기 위해 몸 부림을 치다 피투성이가 된 채 승천의 길이 막혀 버리는 바람에 돌로 변해 망부석이 돼 ‘용굴’을 지키고 있다.용난굴은 바닷물이 차면 들어갈 수 없다. 차 회장은 “바닷물이 빠졌을 때 동굴 속의 돌과 모래를 파기 시작했더니 동굴은 깊이는 30m가 됐고 높이 4.8m, 폭은 5m가 됐다”면서 “솔향기 길은 가파른 곳은 완만하게 해 가족단위로 와서 이곳에서 힐링할 수 있도록 하고 야생화의 군락지를 조성해 자연학습장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히는 것을 보면 그의 마스터 플랜은 아직도 미완성이다.또한 용난골 인근에는 자연이 만든 돌조각으로 부처바위와 곰바위, 뱀똬리바위, 손바닥바위, 개‧기린‧원숭이 바위, 거북바위가 있고 좀처럼 볼 수 없는 ‘해와송(海臥松)’이 자리하고 있다. 약 100년 된 해와송(둘레 2.2m, 길이 3m)은 파도가 넘실댈 때는 바닷물에 잠긴다. 솔향기 개척자 차 회장은 고사 직전의 해와송을 살려내기 위해 2017년부터 8년 간 연목을 만들고 바윗돌로 감싸주는 등 정성을 다해 가꿔 살려냈다.태안절경천삼백리 중 솔향기 길은 꾸지나무골 입구에서 출발해 와랑창(2.5㎞)~용난골(1.5㎞)~중막골해변(0.3㎞)~여섬해변(1.0㎞)~가마봉전망대(0.9㎞)~당봉전망대(1.8㎞)를 거쳐 종점인 만대항(2.2㎞)까지 10.2㎞로 4시간이 족히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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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향기 길은 1코스부터 5코스까지 펼쳐진다. △1코스 만대항~당봉전망대~여섬~꾸지나무골 해수욕장(10.2㎞) △2코스 꾸지나무골~가로림만~볏가리마을~희망벽화(9.9㎞) △3코스 볏가리마을~당산‧임도~밤섬나루터~새섬리조트(9.5㎞) △4코스는 새섬리조트~오안‧임도~청산포구~갈두천(12.9㎞) △5코스는 갈두천(갯벌체험관)~선돌바위~용주사~생태공원~백화산(냉천골, 8.98㎞)으로 나눠져 있다.솔향기길을 병풍처럼 뒤에 두르고 만대항을 끼고 있는 만대마을은 29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어업에 종사하고 있고 아직도 3명의 주민은 염전에서 전통방식으로 천일염을 만들고 있다.솔향기길을 가기 위해선 서해고속도로를 이용하거나 서산에서 태안을 가야하는데 편도 2차선으로 구불구불한 도로를 한참 달려야 도착할 수 있어 당일 코스로는 다소 무리다. 먹을거리는 바닷가인 만큼 바닷고기를 주재료로 하는 ‘회’와 매운탕 등이 주종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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