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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음성의 무극시장(금왕시장)은 ‘안에서 잃은 것을 밖에서’ 찾은 전통시장이다.
전통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농촌인구 감소로 쇠퇴일로를 걷는 다른 전통시장과 달리 산업단지 외국인 노동자에 힘입어 활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내국인의 감소를 외국인으로 대체한 셈이다.
이에 앞서, 무극시장은 전통적으로 ‘음성시장’, ‘한천(음성 소이)시장과 함께 음성군의 3대 시장으로 손꼽히던 곳이다.
음성시장이 군청과 경찰서, 우체국 등 각종 행정기관이 밀집해 지역 거점 시장으로 성장해 왔다면 무극시장은 금왕읍을 중심으로 대소면과 삼성면을 아우르는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극시장은 이러한 위상으로 가장 번성한 시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번성한다고 했지만 70~80년대 농촌인구가 도시지역으로 빠져나가면서 시장도 작아졌다.
옛날만큼의 활력과 시장으로서의 절실함도 사라졌다.
하지만 1987년 12월 중부고속도로가 개통되고, 200년대 들어 서울과 경기도 지역의 공장이 이전하면서 위상에 변화가 왔다.
외지로 나갔던 도시 근로자들이 되돌아오고,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가려던 인구를 붙잡았다.
그렇다고 무극시장이 이들의 중심지 역할은 하지 못했다.
인근 대소와 삼성면 지역이 이전해 오는 공장과 노동자들의 밀물에 따라 상권을 흡수하고, 새로운 시장으로 성장하면서 무극시장은 상권을 나눠야 했다.
하지만 무극시장도 금왕읍에 조성되는 새로운 산업단지로 활기를 찾기도 했다.
공장이 입지하면서 자연스레 상권이 살아나고 활로를 모색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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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국인이 줄어들면서 그 자리를 외국 노동자들이 차지하며 현재는 이들 외국인들이 시장 상권의 매출을 좌우하는 주 고객이 됐다.
시장 상인들에 의하면 정확한 외국인 거주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약 4000~5000명 가까이가 이곳 금왕읍 일대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으면 공장은 물론이고, 농촌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처럼 변화가 심한 무극시장에서 대를 이어가며 성업중인 가게도 생겨나고 있다.
‘동일식당’은 ‘100년 가게’를 앞두고 있다.
주인인 이광진 사장(47)은 3대째 내려오는 가게를 맡고 있다.
할아버지께서 처음에는 진천에서 장사를 하시다 무극으로 오셔서 쌀가게를 하셨고, 나중에 정육점을 물려주셨다.
아버지도 평생을 무극에서 정육점으로 가업을 이으셨고, 형은 도축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자연스레 질 좋은 고기를 선점할 수 있게 됐고, 가게를 찾는 이들에게는 입소문을 통해 ‘동일식당’이란 이름이 우수 가게로 각인됐다.
고기도 팔고 식당도 겸하고 있다.
2년이 모자란 100년 가게의 비결은 뭘까.
이 사장은 “어르신들의 후광이 있어 가게가 빛이 났지만 꾸준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고객에게 사랑을 받을 수 없다”며 “성실하고 정직하게 운영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밑천”이라고 들려줬다.
그러나 요즘 그에게도 새로운 도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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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장을 점령한 외국인들의 입맛을 따라잡는 것이다.
그는 “무극시장 구매력의 50%가까이를 점령한 외국인들이 우리보다 고기 맛에 더 민감한 것 같다”며 “우리가 좋아하는 부위와 달리 각 나라 출신마다 좋아하는 부위 또한 달라 이들의 취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삼겹살을 좋아한다면 외국인들은 근육이 많은 다릿살이나 등심 등 다른 부위를 선호하는 것이다.
말과 얼굴이 다른 외국인들을 알아보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점점 더 좁아지는 세계에서 이들은 앞으로 우리의 중요한 친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외국인 노동자들은 특정 국가 한 나라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중국, 베트남, 태국,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와 중앙아시아권 국가를 가리지 않는다.
전통시장이 산업화와 외국 노동자 이주 영향으로 다국적 시장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들 외국인들을 위해 추석 때가 되면 이벤트도 열린다. 베트남이나 중국,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노동자들을 위해 고유음식 홍보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영향으로 무극시장은 생기를 얻고 있다.
이러한 외국인들의 유입 속에서 이웃들과 25년 동안 애환을 같이 한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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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레 머리연출’ 미장원을 운영하는 김덕자 씨(59)는 이곳의 토박이다. 30대에 이 일을 시작해 25년이 넘었다.
이 가게도 여전히 외국인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다.
외국인 여성노동자가 이 가게 매출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에서 온 여성들이 특히 ‘미’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외국 남성들은 주로 짧은 머리형의 ‘컷트’를 선호한다.
나이 드신 우리 할머니들은 파마를 즐겨하신다. 시간이 더 많으면 염색까지 하신다. 시골이라고 싸구려 머리만 하고 다니지 않는다.
이렇게 고객들을 많이 모은 비결은 ‘친구나 가족’같은 분위기 때문이란다.
그는 “음성에서 태어나 이곳에서만 살았다”며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가족”이란다.
“저희 집을 찾아 주시는 단골 고객들은 적게는 3년 많게는 20년 이상”이라며 “장날 먼 곳에서 머리 손질을 하러 오시는 분들과 가게에서 같이 밥도 먹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하다보니 나도 가족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이렇게 손님과 가족이 되다보니 위장병도 없다.
대부분의 미장원이 손님들 때문에 점심을 거르다보니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지만 가게에서 손님들과 식사를 하며 일을 하기 때문에 여전히 건강하단다.
그의 얼굴과 표정에서도 건강함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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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역시 먹는 것을 빼고 말할 수 없다.
‘또와분식’은 무극시장의 대표적 먹거리 명소다.
또와분식 대표 민순희 씨(57)는 이곳에서 만두로 명성을 얻고 있다.
먹거리는 무엇보다도 고객과의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또와분식은 직접 농사지은 것을 사용한다.
인근 농장에서 직접 키운 것들로 식자재 대부분을 해결한다.
35년째다. 인근 군부대에서 휴가 나오는 장병들은 한 번쯤은 꼭 들른다고 한다.
직접 만든 손만두 때문이다. 20분 이상 걸리는 혁신도시 인근에서도 주문을 하고 직접 사간다.
시장 상인들은 만두뿐만 아니라 다른 메뉴도 주인의 손맛이 뛰어나다며 이곳을 추천한다.
민 씨는 이 가게를 운영하며 남매를 키웠다. 손자도 봤다.
김상오 무극시장상인회장에 따르면 이곳에는 1층에 67개, 2층에 100여 개의 상가가 영업 중이다.
음식점이 60%를 차지하고 있고, 식당과 주민들에게 식재료를 공급하는 야채나 과일가게가 20% 정도, 미장원이나 병원·약국, 금융기관 등이 그 뒤를 잇는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 문화관광시장으로의 변모도 추진하고 있다.
중기청 문화관광시장으로 선정돼 3년째 지원을 받고 있다. 각종 매대를 설치하고, 시장 아케이드에 TV 3대도 마련했다.
읍사무소의 인터넷 영상물을 보거나 뉴스도 시청할 수 있다.
김 회장은 “시장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며 “우선 고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