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철수 호서역사문화연구원 부원장.ⓒ연구원 사무실
    ▲ 강철수 호서역사문화연구원 부원장.ⓒ연구원 사무실
    배우 조진웅이 스크린 위에서 소환한 홍범도 장군은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졌다. 봉오동과 청산리의 영웅, 독립전쟁의 상징. 영화 속 홍범도는 장엄했고 관객은 감동했다. 

    그러나 극장을 나서는 순간, 역사 연구자의 마음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허탈감이 남는다. 왜 우리는 늘 영화를 통해서야 역사를 다시 떠올리는가.

    홍범도는 비극의 시대가 만든 인물이다. 독립군을 이끌고 만주를 누볐지만, 해방된 조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마쳤다. 영웅답지 않은 쓸쓸한 결말이다. 

    오늘의 감동이 의미를 가지려면 책임이 따라야 한다. 기억이 감정 소비로 끝난다면, 영화가 끝나는 순간 함께 사라질 뿐이다.

    최근 그의 이름은 또 다른 논쟁의 중심에 섰다. 충분한 사료 검증보다 평가와 낙인이 앞선다. 누구는 영웅이라 부르고, 누구는 문제적 인물이라 말한다. 

    역사가 정치의 언어로 소비되는 순간, 학자는 허탈해진다. 영웅을 불러내 정쟁의 도구로 삼는 것이 과연 역사인가.

    영화는 출발점일 뿐이다. 이제 질문이 필요하다. 홍범도는 어떻게 독립군을 조직했는가. 봉오동과 청산리의 승리는 어떤 전략과 조건 속에서 가능했는가. 그는 왜 연해주를 떠나야 했고, 망명의 말년은 어떤 현실이었는가. 이 질문 없는 감동은 오래가지 않는다.

    영화 한 편으로 역사를 안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착각에 빠진다. 영화는 역사를 불러오지만 대신할 수는 없다. 

    대중은 감동하고 떠나지만, 연구와 기록은 여전히 남는다. 학생들은 시험이 끝나면 잊고, 그래서 역사학자는 허탈하다. “왜 우리는 아직도 이 장군을 다시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반복된다.

    홍범도는 독립운동사의 중심이자 미완의 이야기다. 영웅은 기념비가 아니라 질문이다. 그의 삶에는 전투의 영광과 함께 망명의 고독, 내부 갈등과 시대의 모순이 담겨 있다. 

    논쟁이 아닌 연구와 토론으로 이어질 때, 역사는 살아난다.

    조진웅은 홍범도를 다시 우리 앞에 세웠다. 이제 다음 몫은 우리의 책임이다. 눈물로 끝내지 말고, 책과 사료, 교실과 토론으로 이어가야 한다. 

    홍범도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조국을 위해 싸웠으나 조국에 묻히지 못한 사람, 우리가 계속 써 내려가야 할 역사다. 영화로만 기억하면 추억이지만, 삶 속에서 이어갈 때 그것이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