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진면목 볼 수 있는 관음사탐방로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제주특별자치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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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漢拏山, 해발 1950m)은 제주도의 중심부에 우뚝 솟은 남한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산꼭대기에는 화구호인 백록담이 있다. 이 산은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2002년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한라산 백록담에 오를 수 있는 탐방로는 관음사탐방로와 성판악탐방로 두 개의 코스가 있다. 관음사탐방로는 계곡이 깊고 산세가 웅장하며, 해발 고도 차이도 커 한라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성판악탐방로는 대체적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큰 무리는 없으나 한라산 탐방로 중에서 가장 길다.이번 산행은 관음사탐방로를 이용하여 한라산 백록담에 오른 후 원점회귀 하는 코스이다. 한라산 입산시간인 05시 30분에 맞춰 산행을 하기 위해 동트기 전에 관음사주차장(해발 620m)에 도착한다. 등산로 입구에서 신분확인 절차를 마치고 짙은 어둠이 깔린 산길을 헤드라이트에 의지해 산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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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 주변의 경치를 볼 수 없고, 발아래를 밝히는 불빛만 보고 걷다보니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빨라진다. 출발하여 30분 정도 오르니 데크 쉼터가 있는 ‘구린굴’(해발 700m)을 지나지만, 어둠에 묻혀 있어 볼 수는 없다.단지 불빛을 이용해 안내판에서 정보를 얻는다. 이 굴의 총연장 길이는 442m, 진입로의 너비는 대략 3m 정도이다. 이 천연동굴을 석빙고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문헌에 남아 있다고 한다.휴식과 수분을 섭취하고 다시 어둠을 뚫고 산행을 계속하다가 안내판을 만나 살펴보니 ‘숯가마터’이다. 이곳은 관음사탐방로 입구에서 2.5㎞(해발 78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194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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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린굴에서 30분 정도 더 오르니, 여명이 밝아오면서 탐라계곡 쉼터에 도착한다. 헤드라이트, 겉옷 등을 챙겨서 다시 배낭을 꾸리고 계단을 하행한 후 목교를 건넌다. 탐라계곡은 물이 말라 있고, 계곡 좌우로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다.계곡 건너에 기다리고 있는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이어지는 산길은 지금까지 구간보다 훨씬 더 가팔라진다. 탐라계곡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잠시 쉬어간다. 화장실 앞에 나무토막 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울창한 숲속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고, 탐방로 옆으로는 키만큼 자란 조릿대가 길을 안내한다. 나무토막을 만든 계단이 한량없이 이어지고, 끝없이 이어지는 단조로움을 해갈시켜 주듯 곳곳에 ‘한라산 탐방로 안내판’이 남은 목표를 세우고 용기를 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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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릿대 숲은 점점 깊어지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경사도 커지면서 심장이 요동치고 거친 숨으로 입이 마르기 시작한다. 동트면서 물들어가는 단풍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은 그칠 줄 모른다.석문을 이루는 거대한 바위 사이를 통과해 훌쩍 큰 조릿대 숲을 가르며 오른다. 울창한 숲을 뚫고 나온 아침햇살이 조릿대 잎을 투명하게 하고 단풍을 화려하게 장식하니 이보다 장엄하고 찬란한 순간이 어디 있으랴.해발 1090m 지점을 지나는 ‘개미등’을 오른다. 하늘 높이 치솟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 시작된다. 빽빽하게 들어찬 소나무가 햇살을 막아 다시 어둠속을 걷게 한다. 아침햇살과 노랗게 물들어가는 단풍, 소나무의 음영이 만들어내는 황금빛이 그야말로 절정에 이른 삶의 행복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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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개미등’은 해발 1030∼1500m 구간을 일컫는다. 이제 해발 1200m 지점을 지나면서 ‘한라산 탐방로 안내판’을 만나니 개미등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이곳에서 바싹 마른입에 수분을 촉촉하게 적시고 요동치는 심장을 가지런히 한다.고도가 높아지면 서서히 소나무 숲이 성글어지지만 황금빛으로 찬란한 숲은 지쳐가는 몸에 환희의 에너지로 충만하게 한다. 더구나 사랑하는 가족과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를 남한의 최고봉에 도전하는 뜻 깊은 발길이라 더욱 그렇다.이번 산행이 세 번째 도전인데, 이번만큼은 백록담을 보았으면 좋겠다. 지금까지의 날씨를 보아 아마도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 이러한 기대와 희망을 갖고 서로를 격려하며 차근차근 동행한다. ‘관음사 5-22지점’을 지나면서 다시 소나무 숲이 꽉 들어찬다.햇살이 가려진 비탈길로 접어들어 걷다보니 수줍은 듯 나무숲 위로 뾰족하게 머리를 내민 ‘삼각봉’이 힘내라고 밝게 웃음지어 보인다. 다시 능선으로 오르자 삼각봉대피소 건물 뒤로 ‘삼각봉’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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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을 받은 삼각봉(해발 1697.2m)이 한층 입체적으로 다가오고, 그 뒤로 왕관릉과 백록담을 이루는 분화구벽을 조망한다. 저 분화구벽 너머에 있는 백록담을 만났다는 생각만으로도 소진된 에너지가 충전되고도 남는다.화장실 위에 마련된 전망대에 올라 제주시와 그 뒤로 이어지는 아련한 수평선, 그 위로 가늘게 띠를 이룬 뭉게구름을 조망한다. 올라온 방향으로는 소나무 숲의 부드러운 능선 뒤로 단풍이 물든 능선이 층을 이루고, 그 뒤로 겹겹이 올망졸망한 오름이 너울을 이룬다.대피소에서 ‘삼각봉’ 방향으로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단풍숲길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간다. 용진각계곡에 이를 무렵 음용 불가한 샘물을 지나 용진각 현수교를 건넌다. 이 다리를 지나면서 계곡의 단풍과 어우러진 웅장한 품새의 왕관릉을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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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각 현수교를 건너 오르막길을 오르면 해발 1500m지점에 이른다. 이곳에는 용진각대피소가 있던 자리이다. 이곳에서 화려한 옷으로 아름답게 치장하고 왕관을 쓴 자태의 완관릉의 모습을 온새미로 감상한다.용진각대피소는 1974년 건립이후 30여 년 동안 한라산을 찾는 탐방객들의 아늑한 쉼터의 보금자리였다. 그러나 지난 2007년 태풍 ‘나리’로 백록담 북벽에서부터 암반과 함께 급류가 쏟아져 내려 흔적 없이 사라지게 됐다.옛 용진각 대피소에서 완만한 계단을 오르는데 우측으로 왕관릉과 함께 단풍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곧이어 곧추선 계단을 지그재그로 오른다. 계단 끝에는 헬기장이 있고, 다시 뭉게구름이 떠있는 푸른 하늘로 이어지는 완만한 계단을 끊임없이 오른다.사방으로 훤하게 터진 조망에 잠시 머물러 신비한 자연 속으로 동화된다. 해발 1700m을 지나면서 푸른 주목 사이로 서서히 하얀 고사목과 단풍, 낙엽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서로 뒤섞여 푸른 하늘과 짙푸른 바다가 함께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연출한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광이 자칫 실명하게 하지 않을까 의심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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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면서 자주만나는 외국인 관광객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한라산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산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소중하고 귀중하여 길이 간직해야 할 최고의 명산, 한라산을 잘 보호해야겠다.고된 산행으로 몸이 기진맥진, 체력도 고갈직전에 이르렀지만 하산하는 산객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희망적인 한마디에 다시 힘내서 막바지 계단을 오른다. 힘이 버거울 때면 오르던 계단을 잠시 멈추고 멀리 풍광을 감상한다. 눈길 닿는 곳마다 절경이 아닌 곳이 없다.화산폭발로 빚어진 기기묘묘한 바위군락과 백록담을 이루는 능선을 조망하며 한라산 고스락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라 차린다.드디어 전망 데크에 이르러 올라온 능선을 조망하니 푸른 주목과 하얀 고사목, 붉은 점을 이룬 단풍이 푸른 하늘의 뭉게구름과 검푸른 바다가 조화를 이룬다. 어색함이 하나도 없는 자연스럽고 수려한 풍광에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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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데크에서 비스듬히 능선을 돌아가며 푸른 주목과 하얀 고사목 사이의 계단을 오른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해서는 안 되므로 데크 계단만 따라서 산행한다. 한라산 백록담이 가까워지면서 까마귀를 만난다. 이제야 탐라계곡 화장실 앞의 까마귀 조형물이 있는 이유를 알겠다.백록담 부근의 데크 계단을 오른다. 완만하게 뻗어 내린 산자락이 바다에 부딪쳐 하얀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게 한다. 계단 한쪽으로는 먼저 도착한 산객들이 일렬로 앉아 만난 점심을 즐긴다. 까마귀 떼는 이 산객들이 흘린 음식을 기다리고 있지만 야속하게도 그럴 수가 없으니 안타깝다.드디어 한라산 고스락에 도착한다. 용암에 새겨진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백록담(白鹿潭)’, 고사목에 새겨진 ‘한라산 백록담’의 정상석과 정상목이 있다. 한라산 정상은 성판악과 관음사탐방로에서 올라온 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촬영을 하려는 등산객의 줄이 용줄기처럼 길게 늘어져 있어 언제 차례가 올지 모르겠다. 그래서 비교적 짧은 정상목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백록담을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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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분화구는 총 둘레 약 1.7㎞, 동서길이 600m, 남북길이 400m인 타원형으로 약 2만년 전 분출된 용암으로 생긴 분화구에 물이 고여 형성되었다. 높이 약 140m의 분화구 벽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다.백록담이라는 명칭은 흰 사슴을 탄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물을 마셨다는 전설에 기원한다. 그러나 지금은 물이 담긴 흔적만 있을 뿐 말라 있다. 가능하다면 분화구벽을 따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단지 필자만 갖는 생각이 아닐 듯하다.세 번째 도전 끝에 마주한 백록담을 한량없이 감상하는데, 서서히 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참으로 천만다행이다. 우리 가족도 데크 계단 사이의 용암을 밟아볼 수 있는 구간에 자리 잡고 맑고 신선한 공기와 하늘의 기운을 듬뿍 담은 점심과 휴식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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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고스락에 더 머물고 싶지만 하산 시간을 고려하여 발걸음을 돌린다. 산행 초입 옻칠 같은 어둠속을 오르는 까닭에 제대로 풍광을 감상하지 못하였기에 당초 성판악코스로 하산하려던 계획을 변경해 올랐던 관음사코스로 다시 하산한다.올라올 때 쇳덩어리처럼 무겁게 느껴졌던 발걸음이 훨씬 가뿐해 졌지만, 계속되는 계단을 내려가는 탓에 무릎에 통증을 느껴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쉬엄쉬엄 수려한 풍광을 눈과 마음에 담으며 하행한다.푸릇푸릇한 조릿대 밭 위로 솟은 하얀 고사목과 푸른 주목이 마치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일어나는 물결과 같다. 유명한 화가가 그린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듯하다. 그러한 풍경 사이로 계단을 내려가자니 마치 뗏목을 타고 바다를 가르는 듯하다. 하늘 저 멀리서는 회색 구름이 점점 더 몰려들어 하산을 재촉한다.헬기장에 도착하여 분화구벽과 왕관릉을 조망하고 가파른 경사의 계단을 내려간다. 가을 풍경화 속으로 점점 깊숙이 들어가는 듯하다.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얼마나 많이 셔터를 눌렀는지 카메라 배터리가 다 닳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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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용진각대피소에서 카메라의 예비용 배터리로 교체하고 왕관릉을 촬영하고, 유유자적하게 차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갖는다. 해발 1950m의 한라산 정상을 다녀오는 가슴 벅찬 환희와 살아서 백록담과 마주했다는 기쁨이 오색 가을 풍경 속에서 한가한 여유로움을 더한다.대피소에서 용진각 계곡으로 하행하면서 만산홍엽의 현수교와 계곡 단풍을 즐긴다. 삼각봉대피소에 도착하여 삼각봉과 그 뒤로 일렁이는 웅장한 한라산 분화구벽을 조망하고 개미등으로 하행을 시작한다. 계단을 내려가는 길마다 초록의 조릿대 위로 울긋불긋하게 물든 단풍이 눈길을 끈다.구름이 드리워진 날씨와 해가 기운 오후라서 단풍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가을 풍광을 즐기는데도 손색이 없다. 원시림 같이 울창한 숲을 내려와 탐라계곡의 목교를 지나면서부터 간간이 계곡과 만난다. 계곡은 물이 말라있지만 깊고 푸른 이끼를 잔뜩 머금어 세월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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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행할 때는 탐방로입구에서 탐라계곡 목교까지 어둠속에서 올랐다. 오로지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탐방로만 내려다보고 걷다보니 경사도를 느낄 틈이 없이 정신없이 올랐었다. 그러나 하행하면서 이 구간을 겪어보니, 그리 만만치 않은 경사도가 느껴지고 그 당시가 대견해진다.그래서 목표를 설정했으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앞만 보고 정진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런가 하면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도전기 전에는 두려움에 망설일 수 있지만, 막상 도전을 시작하면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몰입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도가 점점 낮아지면서 알록달록한 숲은 청록색이 짙어지고, 키 높이의 조릿대 숲도 허리 아래 정도로 낮아진다. 구린굴을 지나고 완만한 숲길을 지나면서 ‘한라산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고 적인 개선문을 통과한다. 그리고 ‘한라산 정상등정발급기’에서 인증서를 발급받고 약 18㎞, 10시간의 한라산 산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