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수의 山 이야기] 가을 단풍 매력에 퐁당 빠지는 ‘백화산’

주행봉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를 지나고 백화산 둘레길 안내도를 지나서 얼마 가지 않아 백화산 등산로 안내도를 만난다. 이곳에서 계단을 오르면 반야교에서 0.3㎞ 떨어진 지점에 세워진 한성봉(3.4㎞)과 부들재(2.3㎞)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를 만난다.

돌길을 조금만 이동하면 쉼터 정자 앞에 세워진 이정표를 지난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산길은 성급하게도 마치 솜이불로 겨울 채비를 서두르는 듯하다.

이어 계곡을 건너는데, 색동옷으로 갈아입으려는 나뭇잎들이 세월을 잡으려는 청록 잎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마치 변화와 혁신을 거부하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이겨내려는 듯이 말이다.

맑은 청록의 숲길을 지나면 노란 숲길이 이어지고, 우측 계곡 너머에는 원색의 단풍이 눈이 부실만큼 강렬한 색깔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고도는 점점 높아지지만 아름답고 황홀한 가을 숲길은 필자로 하여금 환희에 젖게 하고 순수한 감성을 불러내니 힘들 새가 없다. 그야말로 치유의 시간 여행을 누리는 셈이다.

계곡을 가로질러 반야교(1.8㎞)와 한성봉(1.2㎞)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 만추로 가는 길목에서 가을 단풍 매력에 퐁당 빠진다.

산길을 오르는 발걸음이 마치 진공청소기가 흡입하는 것처럼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이 자연의 신비를 형언할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산길 어디 한 곳도 명품이 아닌 곳이 없다.

계곡을 가로질러 오르자 한성봉 0.95㎞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고, 계곡을 옆에 끼고 걷는 동안 계곡의 숲이 빚어내는 갖가지 색깔의 찬란한 가을 정취에 흠뻑 젖는다.

경사가 제법 가파른 계곡을 오른다. 이정표가 세워진 계곡을 건너 참나무 숲에 가려있는 가파른 암벽을 밧줄을 잡고 넘으니, 가파른 능선 길이 호흡을 가쁘게 한다.

황금 속에 파묻혀 자칫 눈이 멀까 봐 간간이 아름다운 여인의 붉은 입술처럼 정열적인 단풍나무가 손짓하며 반긴다. 이어 황금빛 양탄자를 깔아 놓은 평탄한 비탈길을 걷는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아름다운 단풍은 쓸쓸한 낙엽으로 모습을 바꾸고, 가파르고 험준하면서 거칠고 까칠한 바윗길이 이어진다. 

다시 만난 풍요로운 단풍 산길이 고된 바윗길을 거뜬하게 오를 수 있게 에너지를 불어 넣어준다. 땅이 받쳐주고, 단풍이 밀어주고, 하늘이 끌어주니 이제 곧 본 능선에 이른 듯하다.

드디어 전망 데크로 둘러진 해발 933m의 백화산(한성봉) 고스락에 도착하지만, 조망은 없고 고스락 돌이 세 개 세워져 있다. 백화산(白華山)은 ‘티 없이 맑고 밝은 산’이라는 의미이다.

고스락에 설치된 이정표는 ‘주행봉(3.7㎞)‧봉화터(2.8㎞)‧대궐터(2.1㎞)‧금돌성(1.2㎞)’의 네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알린다. 주행봉으로 방향을 틀어 부들재로 하산을 시작한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돌길과 데크 계단을 통해 하행하는데 갈옷을 입은 암갈색 참나무 구간이 대부분이고 단풍은 보기가 드물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잎을 떨구지 않은 참나무 숲을 가르는 통나무 계단을 내려가면 해발 611m의 부들재에 닿는다.

벌써 나뭇잎을 거의 다 떨군 참나무 사이로 가파른 통나무 계단을 오른다. 하늘과 맞닿은 계단 끝자락은 평지이겠지 했더니 예상 밖에 무심하게 늘어진 밧줄이 있는 암반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앙상한 참나무 사이로 자유분방하게 자리한 바윗돌을 밟으며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가 잠시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한성봉이 어슴푸레하게 보인다. 이젠 능선을 따라 바윗길을 하행한다.

거대한 암봉을 만나 안전 난간이 설치된 암반 허리를 우회하여 하행하다가 다시 오르막길을 이동하면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우회해야 할 만큼 뾰족하게 우뚝 선 암봉이다.

앞으로 가야 할 칼날바위 능선이 펼쳐진다. 양옆으로는 낭떠러지기이지만 안전 난간 덕분에 안심하게 이동한다. 이동하는 시간보다 멈추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진다.

매력이 철철 넘치는 풍광에 몸과 마음이 쉽게 돌아서지 못하니 언제쯤 주행봉에 닿을 수 있을까? 칼날바위를 걷고 있자니 양옆 낭떠러지기로 미끄러질 것 같아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주행봉이 지척으로 보이지만 칼날바위 능선은 끝난 것이 끝난 게 아니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계속 이어진다. 한성봉(3.1㎞)‧주차장(2.6㎞)‧주행봉(0.1㎞) 세거리 이정표를 지나 통나무 계단을 올라가자 너른 터에 해발 874m 주행봉에 도착한다.

칼날바위를 걸으면서 지나온 능선의 모습이 참으로 아슬아슬하다. 이제 앞을 가로막는 암봉을 우회하기 위해 급경사를 내려오니 이정표가 주행봉과 전망대가 각각 0.26㎞ 거리에 있다고 알려준다.

다시 직벽에 가까운 험준한 암벽을 타고 오르는 도중에 뒤로 돌아보니 멋진 풍광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암벽을 다 오르면 주행봉(0.32㎞)과 전망대(0.2㎞) 이정표를 만난다. 

전망대로 이동해서 바라본 칼날바위 능선과 주행봉의 모습이 장엄하고 장엄하여 말문이 막힐 정도이다. 정말 혼자 보기가 너무 아깝고, 아쉬울 뿐이다.

암반 길을 내려오면서 칼날바위 능선과 주행봉, 한성봉이 일렬로 선 모습을 조망한다. 이어지는 산길에서 주차장 2.16㎞ 이정표를 만나 통나무 계단을 밟으며 하산한다.

노란 참나무 잎에 저녁노을이 비치니 더욱 진한 빛깔로 다가온다. 짧은 암반을 지나고 주차장 1.5㎞ 이정표를 지나면서 참나무 잎은 청록을 띠기 시작하고 급경사의 하산길은 계속된다.

나무계단과 돌계단을 한동안 내려와서 ​산림욕장 구역으로 들어선다. 이후 단풍이 한창인 포장도로를 따라 반야교 주차장에 도착해 약 10.2㎞의 산세가 뛰어난 한성봉과 주행봉 연계 산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