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 폭포만큼 화장실·등산로 관리 절실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남 금산군 편
  • ▲ 거북폭포(제10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 거북폭포(제10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성치산(城峙山, 해발 670m)은 금남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가 충남 금산군 남이면과 전북 진안군 주천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이 산에서 건무리재를 넘어 이어지는 성봉(城峰, 해발 648m)과 신동봉(新洞峰, 해발 605m)은 자연미가 그대로 남아 있는 무자치골 하류에 형성된 12폭포를 담고 있다.

    층암절벽 사이를 누비며 내려오는 12폭포들은 제각기 수려한 경관이 으뜸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금산군의 평범한 봉우리들이 단박에 유명세를 타는데 톡톡하게 한몫했다.

    이번 산행 코스는 성치산 휴게소를 출발해 12폭포를 거쳐 성봉과 신동봉을 오른 후 다시 12폭포를 거쳐 성치산 휴게소로 돌아오는 원점회귀이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십이폭포교를 건너자마자 우측으로 50m 지점에 위치한 성치산 휴게소나 좌측으로 100m 지점에 위치한 공중화장실 부근의 빈터를 이용할 수 있다.
  • ▲ 가을을 채근하는 누런빛의 벼 이삭.ⓒ진경수 山 애호가
    ▲ 가을을 채근하는 누런빛의 벼 이삭.ⓒ진경수 山 애호가
    성치산 휴게소를 출발해 공중화장실 도착 직전에 설치된 해충기피제 자동분사기를 사용한다. 공중화장실은 빛바랜 ‘사용금지’ 종이쪽지가 발길을 돌리게 한다. 고장상태가 꽤 오래 방치된 것 같은데 관계기관의 세심한 행정조치와 배려가 절실하다.

    봉황천과 합류되는 무자치골 계류를 따라 개설된 콘크리트 길로 접어들자 누런빛으로 변한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며 가을을 채근한다. 알알이 맺힌 벼알만큼 지식이 아니라 지혜가 가득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계곡을 거슬러 점점 깊은 계곡으로 들어갈수록 풀숲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와 계곡에서 쪼르르 흐르는 물소리가 속세의 버거운 짐을 내려놓게 한다.

    돌다리를 건너면서 회백색의 콘크리트 세계는 찬란한 아침 햇살을 품고 희망으로 가득한 싱그러운 청록의 숲으로 모습을 바꾼다. 가뿐한 걸음으로 널찍한 산책길을 걷다가 목교 아래로 흘러내리는 십이폭포 중 제일폭포(제1폭포)를 만난다.
  • ▲ 삼단폭포(제4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 삼단폭포(제4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숲과 빛의 황홀한 향연에 이끌려 설레는 가슴을 안고 계곡 속으로 스며들면 쉼터 공간이 있는 십이폭포와 신동저수지 갈림길에서 다시 돌다리를 건너 십이폭포 방향으로 이동한다.

    돌다리를 건너자마자 물줄기가 장군의 고함소리처럼 거세고 힘차다고 붙여진 장군폭포(제2폭포)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듯 수줍은 새색시처럼 다소곳하다.

    장군폭포 바로 위에는 잔잔한 못 위에 바위 두 개가 양쪽으로 버티고 있어 속세에서 신선계(神仙界)로 들어가는 일주문처럼 자리하여 붙여진 일주문폭포(제3폭포)를 지난다.

    그리고 일주문폭포 상단에 계단처럼 자리하고 있는 삼단폭포(제4폭포)와 조우한다. 비록 수량은 적어 화려하지 않지만 오랜 세월 흐르는 물로 연마된 투명한 물빛은 거울처럼 반짝인다.
  • ▲ 죽포동천폭포(제5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 죽포동천폭포(제5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삼단폭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죽포동천폭포(제5폭포)를 만난다. 폭포 아래 새겨진, 마른하늘에 날벼락인 ‘청뢰(晴雷)’라는 글씨처럼 십이폭포를 대표하는 폭포이다.

    파란 대나무처럼 우거진 수목이 맑은 물에 비춰 마치 수면이 대나무처럼 보여 죽포(竹浦)이고, 맑은 골짜기 안에 따로 있는 별천지로 신선이 사는 동천(東天)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실제 그 이름처럼 못에 투영된 모습이 과히 신선이 머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곳에 세워진 이정표의 성치산 성봉(3.4㎞) 방향으로 계단을 올라 폭포 상단에 이르면 굽이치며 흘러내리는 계류 건너 하얀 속살을 드러난 암반에 새겨진 ‘죽포동천(竹浦東天)’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여러 소(沼)를 거쳐 흘러내리는 청류는 눈을 밝게 하고, 청량한 물소리는 마음을 열리게 한다. 느릿느릿한 발걸음이 사기소마을(1.3㎞)·벌넘어마을(2.7㎞)·성봉(3.3㎞) 갈림길의 이정표를 지나자 쉼터가 있는 구지소유천폭포(제6폭포)의 신선계로 들어간다.
  • ▲ 구지소유천폭포(제6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 구지소유천폭포(제6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구지소유천폭포 아래에는 장구한 세월의 탓인지 흐릿하게 새겨진 ‘噴雪林梢壁起煙(분설임초벽기연)/層層十二靈簾縣(층층십이영염현)/石門一點空間處(석문일점공간처)/認是仇池小有天(인시구지소유천)’이라는 한시(漢詩)가 풍취를 더한다.

    ‘눈을 뿜어 숲 나무 끝과 벽에 푸른 안개 피어오르고, 층층이 열두 개의 신령스러운 발이 걸려 있으니, 석문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네, 이것이 구지봉과 소유천이라는 것을 알겠네’라며 산속 층암절벽에서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폭포를 신선계에 비유하여 읊었다.

    이 시에서 구지봉은 중국 감숙성(甘肅城)에 있는 산 이름이고, 소유천은 하남성(河南城)에 있는 골짜기로 도교(道敎)에서는 신선이 살고 있다고 여기는 곳이다.

    이 폭포 상단에는 ‘시원한 바람을 차고 있다’라는 ‘풍패(風珮)’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수려한 계곡과 더불어 태고의 정적을 느낄 수 있는 글귀들이 한결 운치를 더하고 감성을 자극한다. 
  • ▲ 운옥폭포(제9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 운옥폭포(제9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구지소유천폭포 바로 위에 고래폭포(제7폭포)를 지나면 곧바로 ‘명설(鳴雪)’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명설폭포(제8폭포)를 만난다. 폭포수가 바닥에 떨어지며 내는 소리가 ‘명(鳴)’이고, 폭포수의 하얀 물보라가 ‘눈(雪)’과 같이 희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잔잔한 못에 비춘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그리고 청록의 숲과 하얀 바위가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 놓은 듯하고, 눈을 지그시 감고 뒤로 돌아서면 슬그머니 선녀가 내려와 목욕할 것 같다.

    바로 위로 연결되는 운옥폭포(제9폭포)에 눈과 마음을 준다. ‘운옥(雲玉)’이라는 글씨가 암반에 새겨져 있다. 운옥(雲玉)은 폭포수의 물방울이 은하수와 같아 마치 구름 위로 은하수가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이 폭포는 6개의 못을 거느리고 있어 넓이는 12폭포 중에서 제일 크다. 폭포 상단에서 하류를 내려다보며 자연의 소리에 귀를 열고, 향긋한 숲 내음에 숨구멍을 열며, 푸른 하늘에 마음을 활짝 열어 온몸에 순수함으로 채운다.
  • ▲ 금룡폭포(제11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 금룡폭포(제11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줄지어 이동하는 산악회 등산객 뒤를 따라 참나무 숲이 우거진 산길을 오르다가, 바위와 못이 하나로 합쳐져 거북이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거북폭포(제10폭포)에서 용왕을 접견하고 등산객들의 장수를 기원한다.

    이어 금룡폭포(제11폭포)를 오르다가 그 모습에 유혹되어 잠시 계곡으로 내려가 바라보니 폭포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모습이다. 폭포 상단으로 오르니 긴 비단을 펼쳐 놓은 듯 황갈색 용이 땅으로 흘러내리는 듯하다. 그래서 ‘금룡(錦龍)’이란 이름을 얻은 모양이다.

    머무는 시간이 이동 시간보다 길었던 폭포들과 다시 만나기로 하고, 울창한 숲길의 계곡 산행을 즐기며 오르다가 성봉(2.9㎞) 방향의 이정표를 지난다.

    한동안 이어진 계곡 산행 후, 십이폭포 중 마지막 폭포인 산학폭포를 만난다. 이 폭포 왼편에 ‘산학(山鶴)’이란 글씨가 새겨있어 산학폭포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 ▲ 보수가 필요한 신동봉 방향 날개를 잃은 이정표.ⓒ진경수 山 애호가
    ▲ 보수가 필요한 신동봉 방향 날개를 잃은 이정표.ⓒ진경수 山 애호가
    산학폭포 상단에 놓인 비스듬한 암반을 학(鶴)처럼 신선처럼 느릿느릿한 발걸음을 옮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곡에는 12폭포에 버금가는 무명폭포들이 관심을 받지 않았지만 제 나름대로 제멋을 즐긴다.

    이어 만나는 이정표는 신동봉 방향의 날개를 잃고 등산객의 혼란을 초래한다. 12폭포의 유명세에 걸맞게 관계기관의 긴급한 대응이 요구된다. 이곳에서 좌측 계곡을 건너면 신동봉 방향으로 오를 수 있고, 계속 직진하면 성봉(2.9㎞)으로 오르게 된다.

    이곳부터 완만하게 바윗길을 잠깐 걷지만 이내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진다. 좌측으로 계곡과 햇살을 안고 산책하듯 사뿐사뿐 걷는다. 마치 신선이 아침나절 풍류를 즐기듯이 말이다.

    돌계단을 오를 때는 계곡 물소리가 들리고 그곳엔 어김없이 무명폭포가 자리하고 있다. 고요한 산속에서 크지 않은 폭폭수의 소리는 발길을 이끌기에 충분하다. 성봉(1.5㎞)·구설리(3.4㎞)의 이정표를 지나서 계곡 산행이 계속 이어진다.
  • ▲ 신동봉을 오르면서 만난 조망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신동봉을 오르면서 만난 조망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하늘을 가린 청록의 숲속에 높게 치솟은 소나무가 하늘 지붕을 지탱한다. 노자가 말한 ‘사람은 땅의 이치를 본받고, 땅은 하늘의 이치를 본받으며, 하늘은 도의 이치를 본받고, 도는 자연의 이치를 본받는다’라는 글귀가 저절로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부러진 한쪽 날개만 지닌 이정표를 지나고, 이정표가 없이 흔적만 존재하는 성봉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감각에 의지해 우측으로 방향을 잡는다.

    산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기 시작하는 비탈은 계곡을 따라 이어지고, 고도가 높아지면서 메마른 계곡을 안고 간다. 한껏 치켜세운 산길은 거친 숨소리로 고요를 깨치고, 종아리 근육이 뻐근해 질 무렵 이정표가 없는 성치산과 성봉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튼다.

    잠시 하행하는 듯하다가 다시 가파르게 치닫는 산길을 오른다. 한동안 제법 땀내며 오르다가 산비탈을 지나 성봉(0.3㎞)·구설리와 십이폭포(4.6㎞) 갈림길의 이정표를 지난다.
  • ▲ 성봉에서 신동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성봉에서 신동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마사가 깔린 가파른 길은 험상궂은 얼굴로 바뀌면서 성봉은 자신의 모습을 쉽게 내어줄 것 같지 않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한 걸음 한 걸음을 이길 재간이 없으니 곧이어 완만한 오르막 끝자락에 마당처럼 너른 빈터의 성봉 고스락(해발 648m)이 마중한다.

    고스락에는 구석리(4.9㎞)와 거리 표시가 없는 신동봉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조망은 없다. 거리 표시가 없는 길, 더구나 가보지 않은 산길이라 두려움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으로 신동봉을 향해 가파른 마사길을 하행한다.

    무영봉에 올라 감질나는 풍광을 조망하고 이내 가파른 마사길을 하행한 후 다시 소나무 숲길을 오른다. 완만하게 이어진 오솔길에는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 가지들이 산발한 채 일렬로 선다.

    우측으로 신동저수지가 입맛을 다시고, 나뭇가지 사이로 신동봉이 수줍은 듯 숨어서 목적지임을 알린다.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바위들이 박혀 있는 암릉을 오르다가 좌측에 놓인 조망 바위에 걸터앉아 넘실대는 산군의 산등성이를 감상한다. 
  • ▲ 신동봉에서 12폭포 계곡으로 하행하는 소나무 군락지.ⓒ진경수 山 애호가
    ▲ 신동봉에서 12폭포 계곡으로 하행하는 소나무 군락지.ⓒ진경수 山 애호가
    다시 바윗길을 오르다가 성봉에서부터 신동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조망한다. 미륵바위를 지나서 해발 605m의 신동봉에 도착한다. 낡은 나무 이정표와 신동봉 푯말이 전부다. 그 흔한 고스락 돌도 없다.

    평편한 공간에 들어선 소나무 가지에 매달린 등산 리본이 호화스럽다. 그 리본 아래로 가파른 길을 하행하는데, 자갈길, 마사길, 바윗길이 연이어 나타나고, 하행할수록 소나무 밀도가 높아진다. 

    이어 완만한 길을 하산하면서 거리 표식이 있는 이정표를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보이는 건 그나마 다행스럽게 국가지점번호판이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마사길은 부드러워지고 계곡의 흔적은 짙어진다.

    남은 거리를 모른 채 낌새로 짐작하며 산행한 느낌이 우리네 삶과 닮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천년만년 살 것처럼 욕심내고, 그저 늙고 병들고 나서야 비로소 알아차리니 말이다. 무자치골과 합류한 후 12폭포를 거쳐 주차장에 돌아와 약 11.5㎞의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