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감성 자극하는 雪山의 속살 만끽[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보은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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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5일, 지난 주중에 내린 눈을 살포시 밟고 겨울 감성에 흠뻑 빠지고 싶어 충북 보은군 산외면 장갑리에 위치한 쌀개봉을 찾는다. 쌀개봉과 맞닿은 복덕정이 위치한 봉우리의 산줄기가 충북알프스 자연휴양림을 품고 있다.오전 9시경 충북알프스 자연휴양림 주차장에 도착한다. 아침 기온이 영하 12도로 코끝이 싸늘하다. 안전을 위해 겨울 산행의 필수품인 스패츠와 아이젠을 착용하고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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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자연휴양림 산책로를 따라 소복이 쌓인 눈을 뽀드득 뽀드득 밟으면 걷는다. 발목 깊이로 내린 눈을 걷자니 어릴 적에 치운 눈을 다져서 그곳에 굴을 파고 놀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눈 덮인 산책로에는 자연휴양림 투숙객들이 앞서 다녀간 흥겨운 발자국이 선명한다.완만한 경사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오른쪽 산의 능선으로 오르는 들머리가 몇 군데 있다. 그러나 오른쪽 산이 산나물 소득 작물지역으로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 등산로 진입을 위해 알프스 빌리지 부근까지 간다. 사람들이 밟지 않은 눈을 밟을 때마다 들리는 아름다운 멜로디에 시대를 거슬러 감성이 풍부한 소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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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빌리지 부근의 등산로 입구에서 오른쪽 산의 능선을 향해 길을 오른다. 소복이 쌓인 하얀 눈이 온새미로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니 쌀개봉 설산 등반이 필자가 처음인가 보다. 능선에서 만난 이정표에는 전망대까지 1.19㎞라고 적혀 있다.능선을 따라 설국의 길을 오르자 필자가 처음이 아닌 듯 지나간 흔적이 있다. 멧돼지의 발자국이 등산로를 따라 나타나면서 등산가이드 역할을 한다. 가파른 비탈길에 또 다른 가이드가 나타났으니 그것은 가느다란 희망의 빛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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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눈 덮인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발을 디딜 때마다 종아리까지 쌓인 눈 속으로 빠져든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처음 가는 것만큼 긴장되고 두려운 것은 없다. 그것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나 자신을 굳건히 믿는 것이다.가파른 경사를 오른 후, 산허리를 돌아 능선을 오르니 전망대까지 0.36㎞라고 적힌 이정표를 만난다. 이제부터 굴참나무 숲의 가파른 석산(石山)과 로프 구간을 오른다. 가을에 수복이 내려앉은 갈색의 낙엽을 발목 깊이의 백설로 하얗게 색칠을 한다. 오르막의 끝자락이 다가오면서 왼쪽으로 조망이 터지기 시작한다. 저 멀리 장갑마을, 산기슭의 자연휴양림, 넘어야 할 쌀개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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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광 속으로 젖어드는 사이에 전망대 복덕정(福德亭, 해발 676m)에 도착한다. 이 봉우리는 쌀개봉(해발 612.3m)보다 더 높다. 복덕정에 올라 사방으로 탁 트인 풍광을 감상하노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찬바람을 맞으며 서있으니 산을 오르면서 흘린 땀이 서서히 차갑게 느껴진다.잠시 더 머물고자 따뜻한 보이차 한 잔으로 몸을 덥히고 눈과 가슴에 닿는 자연에 동화된다. 미남봉에서 시작하여 묘봉으로 이어지는 절묘한 능선과 묘봉 뒤로 숨은 속리산 문장대와 천왕봉, 그리고 백악산 등이 눈앞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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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덕정에서 내려와 묘봉 삼거리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하행한다. 육산인 이 구간에 쌓인 눈이 종아리 반을 덮을 만큼 다른 구간보다 더 많다. 두텁게 쌓인 눈이 포근하고 황홀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발걸음을 가볍게 하여 마치 구름 위를 걷는 선인(仙人)이 된 듯하다.안부에 이르러 쌀개봉을 향해 석산의 오르막길을 오른다. 이제부터는 눈꽃송이를 잔득 피운 소나무 숲의 향연을 본다. 오른쪽 방향으로 소나무 가지 사이로 속리산 서북 능선이 간간이 눈을 유혹한다. 그러나가 만난 쌀개봉 정상이 정상석이 아닌 소나무에 매달린 코팅된 글자라는 것이 왠지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적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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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개’는 옛날 디딜방아의 축을 올려놓는 V자 홈이 파인 기둥을 말한다. 이곳의 쌀개봉의 명칭은 아마도 쌀개봉과 복덕정 봉우리가 이룬 안부의 모양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쌀개봉을 지나면서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눈길 속으로 하행한다. 소나무에 매어진 로프를 잡고 왼쪽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그러나 잠시 직진해보니 바위 벼랑이지만, 동양화를 보는 전시장 같아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전망 좋은 장소이다. 이곳에서 속리산 서북 능선 그리고 미남봉과 매봉 자락 기슭의 신정리 마을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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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바위에서 돌아 나오면서 묘봉을 배경으로 멋진 자태를 뽐내는 그림 같은 명품 소나무를 만난다. 우측으로 바위 길의 로프를 잡고 하행한 후 다시 상행한다. 살아서의 아름다운 모습은 죽어서도 그 품격이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고사목이 여전히 암반에 뿌리를 지탱하고 있다.살아서나 죽어서나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은 그 모습을 모습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서 본질을 잃지 않고 있었기에 죽어서도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이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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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행하면서 왼쪽으로 자연휴양림과 전망대로 오르는 능선이 내려다보인다. 이정표를 만나 오른쪽으로 대형주차장을 향해 하행한다. 이곳에서 대형주차장까지 3.42㎞, 산림문화휴양관까지 1.07㎞라고 한다.오른쪽으로 속리산 서북 능선을 잠깐 다시 만난다. 이후 가파른 석산에서 설치된 로프를 잡고 눈길을 헤치고 하행을 계속한다. 누군가 먼저 쌀개봉까지 다녀간 흔적이 있어 손쉽게 하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이 맨 처음 가는 것만큼 희열과 감동은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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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등산로를 하산하고 나면 산책로를 만난다. 이곳에서 알프스 빌리지를 향해 훨씬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설국의 길을 걷는다. 삼림욕장의 의자는 백설에게 자리를 온전히 내어주고, 출렁다리는 위험하다고 출입 금지하여 걸을 수 없었다.등산로의 들머리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주차장으로 원점 회귀한다. 오늘 안전하고 풍부하게 겨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산행이어서 자연에게, 나에게 감사하고, 독자들께도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