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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길은 한번 밟을 때마다 깨어나고
가을 길은 한번 밟을 때마다 깊어진다.
…
꼭 어느 해 어디쯤이 아니어도 좋다.
그대에게 가는 길은’길을 떠난 어느 시인의 발걸음이 느껴지는 가을날 가고픈 곳이 충북 청주 상당산성 길이다.
청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상당산성은 이름이 주는 무거움과는 달리 도심에서 불과 십여 분을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청주시민의 안식처다.
백제시대 쌓은 토성을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개축하고 조선 숙종 때 석성으로 다시 지었다고 전해지는 상당산성은 동·서·남방에 성문이 있고 2개의 암문과 성내에 동·서장대가 있는 번듯한 산성이다.
원형이 대부분 보존된 성곽 둘레가 4.2km에 이르며 성내에 비교적 큰 저수지가 있어 그 옛날부터 수도 서울 방어의 요충지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산성의 첫 인상은 크고 웅대함 보다는 아늑하고 포근하다. 성곽의 밖이지만 성안처럼 느껴지는 남문 앞의 너른 잔디광장과 잘 가꿔진 숲은 시민들에게 최적의 휴식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남문의 공식명칭은 공남문(控南門)이다. 공남문 문루에서 너른 잔디광장과 낭성면 방향을 내려다보노라면 성을 지키던 장수의 기운이 서리는 듯하다.
남문에서 서문으로 향하는 첫걸음은 가파른 비탈길이다. 어른 키 높이의 성곽 담장 사이로 적을 내려다보는 창을 힐끔거리며 한 땀을 흘려야만 청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 닿는다.
잠시 쉬어가는 서쪽 능선에는 것대봉으로 향하는 남암문이 나 있다. 이 길은 약수터에서 산성으로 오르던 옛길 위의 출렁다리를 넘어 봉수대가 있는 것대봉으로 연결된다.
불을 피워 청주의 위급 상황을 알리던 봉수대 앞은 비행(飛行)을 꿈꾸는 사람들의 차지다. 이곳에서 이륙한 패러글라이딩은 바람을 타고 주변을 돌아 아랫마을인 이정골에 내려 앉는다.
것대봉을 더 지나면 천년고찰 보살사와 김수녕 양궁장을 품은 낙가산으로 이어진다.
산성은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조금만 가다보면 곳곳에 작은 의자 등 쉼터가 마련돼 있고 햇볕이 따가우면 숲에서 쉴 수도 있다.
남암문에서 서문 방향의 중간쯤에서는 명암약수터와 청주박물관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제법 경사도 있고 산행의 맛을 즐기려는 이들이 자주 찾는 코스다.
서쪽에서 북쪽방향으로 돌아가면 산성인 서문인 미호문(弭虎門)이 나온다. 멀리 원 오창과 과학단지, 옥산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드넓은 오창뜰이 주는 넉넉함 덕분이다.
산성의 서북쪽 산은 수직에 가깝다. 그 옛날 적들은 엄두도 못 낼 만큼 산세는 날카롭게 내리꽂혔으며 오창에서 내수까지 넓은 평야의 바람을 막아주듯 우뚝 섰다.
서문에서 동암문 가는 길은 한남금북정맥의 줄기답게 굵고 강하다. 중간지점에는 상당산성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이 있지만 험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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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인지 산성을 반바퀴쯤 걸은 이들은 서문에서 우측 길로 접어들어 산성 한옥마을로 내려가 식당촌으로 향한다. 성내에는 군사를 지휘하던 동장대와 서장대가 짝을 이루고 있다.
산성의 동북쪽 가장 높은 곳에 동암문이 있다. 유사시 비상구 역할을 했던 암문답게 험한 지형에 자리했지만 지금은 해마다 새해 첫날 일출을 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청주 인근에서 대청호 주변 문의문화재단지, 비하동 부모산 등과 함께 3대 해맞이 명소로 인기가 높다.
동쪽 성곽 비탈길을 다내려오면 동문인 진동문(鎭東門)이 나지막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산성마을로 곧바로 이어지며 사실상 여행의 종착지다. 편안한 걸음으로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기와집들이 즐비한 산성 한옥마을은 청국장과 두부요리, 백숙 등이 유명하며 산행을 마친 이들의 목을 축여줄 막걸리 맛도 일품이다.
상당산성이 청주시민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편리한 교통편을 꼽는다. 자가용 운전자들을 위한 대형 주차장도 잘 마련돼 있고 시내버스도 25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주변에 국립청주박물관과 우암어린이회관, 동물원 등이 인접해 있어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 무엇보다 쉴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남문광장 앞에는 휴게실과 안내실도 마련돼 있다.
도심에서 한숨만 돌리면 만날 수 있는 천년의 산성 길을 걸으며 옛 사람들의 숨결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상당산성은 청주의 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