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이 전국 시도단체장을 만난 자리에서 지방분권형 개헌을 약속과 함께 1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지방의회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법적인 제도 마련이 코앞인데도 충북도의회를 비롯한 도내 지방의회의 현실은 미래를 내다보기는 커녕 어제 만도 못한 오늘이 하루하루 지속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광역의회인 충북도의회는 지난 4월 28일 충북도의 숱한 경제 현안 실패에 대해 행정사무감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철저한 조사를 별렀으나 이시종 지사의 ‘재의’ 카드에 막혀 무산됐다.
충주에코폴리스 사업 포기를 계기로 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주축이 돼 특위가 가결됐지만 제대로 조사한번 못해보고 다음을 기약해야 만 했다.
도의회 31석중 20석이나 차지한 한국당이지만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한 ‘재의’ 규정에 단 1표가 모자라 좌절되고 말았다.
물론 특위 구성을 두고 조사범위가 광범위하다는 점과 산단 유치과정 전반에 대한 조사는 기업들이 충북투자를 꺼릴 수도 있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대의기관인 도의회가 구성한 특위가 집행부에 제동이 걸리는 모습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또한 특위 구성 첫 걸음부터 이시종 지사의 ‘재의’ 가능성까지 확인하고 문제점을 사전에 차단했어야 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좀 더 진지한 준비가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어찌됐든 집행부를 견제해야 할 도의회는 집행부의 일격에 체면을 구긴 꼴이 됐다.
더군다나 이시종 지사가 “도민의 손해를 덜 보게 하기 위해 포기했다”는 충주에코폴리스는 주민들이 5년 간 입은 막심한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계획도 제대로 수립되지 않는 등 많은 문제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사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물론 한국당 의원들은 “다시 특위를 구성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적절한 때를 맞추지 못했다는 비난은 피해가기 어렵게 됐다.
이처럼 도의회는 여야 간 갈등이 늘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치적 성향의 차이로 인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주요 사안마다 여야가 극한 대립을 벌이는 모습에 도민들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도의회가 여야 간 정쟁에 열중하는 동안 비교적 조용하게 지내오던 청주시의회도 ‘제2매립장’ 문제로 인해 ‘파장’이라는 단어가 등장 할 정도로 대립하고 있다.
그동안 시의회는 의원 개인적인 문제만 여론에 오르내릴 뿐 이렇다 할 정쟁은 벌어지지 않은 채 잘 운영돼 왔었다는 평을 받아왔다.
그러다가 지난해 청주시가 공모를 거처 선정한 ‘제2매립장’ 조성 방식을 지붕형에서 노지형으로 변경하면서 ‘일관성 없는 행정’이라는 이유로 본 예산을 삭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문제는 의회의 지적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은 청주시가 원안 그대로 추경에 다시 제출하며 시의 의견에 동조하는 한국당 의원들과 시의 변경사항에 반대하는 민주당 의원들 간의 논쟁이 시작됐다.
소관부서인 도시건설위원회는 한국당 4명과 민주당 4명으로 구성돼 있어 의결 정족수인 과반을 넘기가 쉽지 않은 상태다.
이 와중에 민주당 신언식 의원이 특혜의혹이 일고 있는 업체 관계자와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이 드러났으며 이를 빌미로 추경안 표결에서 한국당 의견에 손을 들어달라고 강요한 안성현 위원장과의 대립이 본격화 됐다.
도덕적으로 체면을 구긴 신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안 위원장과의 통화 녹음을 폭로하며 위원장 사퇴와 제2매립장 조사특위 구성을 강하게 요구했다. 신 의원과 뜻을 같이하는 민주당 의원 4명은 지난 임시회부터 최근 열리고 있는 정례회까지 상임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정례회는 시정 전반에 대한 행정사무감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요한 시기여서 모든 언론이 ‘시의회 파행’을 중점적으로 다루기 시작하자 15일 황영호 의장이 “등원하라”고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지경에 이르렀다.
황 의장은 민주당 의원들이 등원하지 않을 경우 ‘윤리특위’를 열겠다고 강경하게 나왔으나 민주당 의원들은 위원장 사퇴와 특위 구성 등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상태다.
문제가 된 ‘제2매립장’ 사태는 관련업체 특혜의혹, 조성방식 변경 등에 대해 경찰이 내사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시민단체는 주민감사를 청구하는 등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도의회와 시의회의 사태를 보면 사안은 다르지만 대립 양상은 같아 보인다.
어떠한 이슈가 발생했을 때마다 기자들이 양쪽 의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나온 의견이 “저들이 대화에 응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서로 대화에 응하지 않는다고 비판만 할 뿐 대화 시도 조차 하지 않은 채 평행선 만 달리는 모습이다.
지역의 한 정객은 “지방의회가 서서히 뿌리내려 가는 시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정쟁은 끝없는 분쟁만 야기한다”며 “지방의회가 국회의 나쁜 모습만 흉내 내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자중을 촉구했다.
이어 “내년에 지방분권형 개헌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는데 지방의원들이 계속 이 수준이면 이제는 주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며 “주민들이 내년 선거에서는 제대로 의정활동을 하는 사람을 의회로 보내기 위해 꼼꼼히 따져보고 매의 눈으로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