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교체'를 내지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일성(一聲)에, 충청북도에서 여야의 경계가 무너졌다. 고향을 찾은 반기문 전 총장 앞에서, 서로 당적이 다른 정치인들도 한목소리를 냈다.
반기문 전 총장은 14일 귀국 이후 처음으로 고향인 충북 음성을 찾았다. 절정의 한파 속에서도 500여 명의 지역주민이 몰려 고향 방문을 열렬히 환영한 가운데, 충북의 유력 정치인인 경대수 의원(충북 증평·진천·음성)과 이시종 충북도지사, 이필용 음성군수도 자리했다.
특히 이시종 지사는 친문(친문재인) 정당인 더불어민주당 당적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기문 전 총장의 고향 방문 일정을 시종 극진히 예우해 주목을 받았다.
반기문 전 총장은 이날 고향인 충북 음성군 행치마을을 찾은 뒤, 가장 먼저 선친과 숙부 등 가까운 일가친척의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광주 반씨 대종회 관계자가 건네준 국화 다발을 부친의 묘역에 놓은 반기문 전 총장은 술 한 잔을 따라 바치며 재배(再拜)했다.
가장 먼저 선친 묘역 참배에 나선 의미에 대해 반기문 전 총장은 "선친이 내가 (유엔)사무총장이 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며 "(유엔사무총장이) 된 다음에 인사드렸고, 10년 (임기) 끝나고나서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다시 인사드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시종 지사는 이 모든 참배의 과정에서부터 반기문 전 총장을 수행했다.
이후에 열린 음성군민 환영회에서도 이시종 지사는 축사 순서를 호명받자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 연단으로 향하기에 앞서, 반기문 전 총장 내외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반기문 전 총장도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답례했다.
이시종 지사는 축사에서 "한국인으로 첫 유엔사무총장이 돼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크게 기여한 반기문 총장이 금의환향했다"며 "환영하고 축하하는 의미에서 반기문 총장 내외에게 뜨거운 박수를 부탁한다"고 좌중의 큰 박수를 이끌었다.
아울러 "반기문 총장은 우리 국민과 (충북)도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길을 내줬다"며 "오늘 내가 여러 준비를 했는데, 선거법 때문에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지적을 받아서 못한다"고 토로했다.
'선거법 때문에 안 된다'는 대목에서는 반기문 전 총장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축사를 듣던 반기문 전 총장은 이 대목에서 배우자 유순택 여사를 돌아보며 함께 크게 웃는 모습이 목격됐다.
-
새누리당 당적을 가진 경대수 의원과 이필용 음성군수도 이에 질세라 축사 경쟁에 나섰다.
앞서 지난달 22일 미국 뉴욕을 방문해 반기문 전 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총장이 정하는 길이라면, 공산당 (입당)만 아니라면 따라가겠다"고 맹세해 "고맙다"는 화답을 받았던 경대수 의원은 이날 축사에서 "미증유의 국정 위기가 계속되고 있고, 북의 핵미사일이나 주변 강국의 첨예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지금 우리는 반기문 총장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고 추어올렸다.
나아가 "통일조국에 영광을 이끌어내기 위해 반기문 총장이 지난 10년간 지구촌을 다니며 몸소 얻은 다양한 경험과 탁월한 식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반기문 총장의 위대한 자산이 조국에 쓰여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경대수 의원의 축사가 끝나자, 반기문 전 총장은 이날 행사 중 이례적으로 직접 중앙연단 근처까지 걸어나오며 먼저 악수를 청하는 등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필용 군수는 "반기문 총장은 특히 음성 아이들에게 기회를 줬다"며 "관내 아이들은 유엔본부를 다녀오면서 꿈과 희망을 키웠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고향에 금의환향한 반기문 총장과 사모 유순택 여사의 노고에 수많은 국민을 대신해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내외분이 더욱 건승하길 바란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처럼 지역의 유력 정치인들은 여야와 당적을 가리지 않고 다투어 반기문 전 총장의 공로를 열거하며 노고에 감사했다.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정치교체'를 역설한 반기문 전 총장발(發)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이미 쏘아올려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날 환영회에 참석한 지역주민들도 반기문 전 총장이 입국하면서 던진 '정치교체'의 화두에 크게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나아가 기존의 여야 경계를 넘어서는 정치의 큰 변화를 반기문 전 총장이 주도하기를 바라는 기대감이 역력했다.
음성군 원남면 주민 서모(65)씨는 이날 본지 취재진과 만나 "지금 여야가 어디에 있고, 당이 뭐가 중요하냐"며 "당이 없어서 나라가 이 꼴이 났느냐"고 비판했다.
서 씨는 "(반기문 전 총장은) 여야에 관계없는 인물이니, 흔들리지 않고 잘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여기에서는 벌써 대쪽나무 같은 사람이라고 소문이 자자한데, 반기문 총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대한민국이 발전할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