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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갑이 지난 동학혁명의 전야제인 보은취회를 기념하기 위해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충북 보은군 동학혁명기념공원과 인근 동학유적지 일대에서 ‘들살이’를 하며 옛사람들의 뜻을 기리고 있다.
보은취회 123주년 기념행사를 마련한 추진위원회는 지난달 28일부터 보은 동학공원에 모여들어 천막을 치고 노숙을 하며 지난 123년 전의 뜻과 기억을 공존하기 위해 마음을 모으고 몸을 움직인다.
본격적인 행사는 3일부터 5일까지지만 이들은 그 옛적 조상들처럼 움직이며 6월의 뜨거운 햇빛아래서도 맑고 선한 눈빛으로 서로 인사를 나눈다. 부모 손을 잡은 5살배기부터 80을 넘긴 노인까지 다양하다.
올해 주제는 ‘사람이 하늘이니, 거꾸로 가는 동학 123’이다.
두 갑을 지나며 세상은 급변 했지만 이념과 물질의 변화만큼 사람 사는 세상의 ‘순리’는 크게 변한 것이 없는 듯하다. 순리는 곧 사람의 본성이며 수운 최제우는 사람의 본성을 “하늘님의 마음을 내 안에 모시는 것”이라 했고 해월 최시형은 “사람이 곧 하늘이니 공경하고 존중하라”고 강조했다.
봉건주의 계급사회 속에서도 깨달음을 얻고 세상을 위해 사자후를 펼치던 그 분들의 ‘은혜’를 123년이 지나도록 받들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깊어,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하늘같은 사람의 참 본성을 찾기 위해 그들은 모였다.
이들의 모임은 초스피드로 질주하는 시대에 역류하면서라도 인간의 본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고자 올해 주제가 ‘거꾸로 가는 동학 123’이다. 어느 순간 잃어버린, 찾으려 했으나 구하지 못했던 ‘사람다운 사람’을 찾기 위한 진혼제다.
행사 첫날인 3일 서로서로 인사하는 맞이굿과 위령제, 장승 다비식으로 시작했다. 오래된 장승을 ‘다비식’으로 보내주고 새로운 장승을 깎아 다시 세워주는 프로그램이 시작과 끝을 알리는 북소리가 됐다.
원광대 박맹수 교수가 3일 보은군의 동학유적지 답사의 해설을 맡았다. 이날 답사에는 학생과 학부모 등 50여명과 서강대 대학원생도 참여해 보은취회지인 장내리 일대와 처참하게 마감된 북실 전투지 일대를 걸었다.
먼저 장내리 보은취회지에서 박 교수는 “조선시대 백성이 임금에게 억울함을 고하는 ‘신문고’와 비슷한 ‘신소제도’가 있었다”며 “당시 핍박받던 대부분 민중들의 마음을 보듬어준 동학이 신소제도를 빌어 합법적으로 치른 근대사 최고의 민중집회가 보은취회”라고 평가했다.
보은 장내리가 전국적인 집회인 ‘취회지’로 결정된 이유로 “당시 보은지역은 전국으로 통하는 교통의 중심지며 삼국시대에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큰 역할을 했다“며 ”거기다가 해월 최시형이 인근 수십 리에 동학도인 조직을 만들어 미리 준비했다는 설도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조선관군의 기록에는 ‘모인 사람들이 떡값 2만3000냥을 모두 갚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이들의 질서 정연한 생활상을 나타낸다. 평등한 세상을 열망하는 동학도인으로서의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치러낸 ‘취회’의 모습은 조선시대는 물론 세계사에도 보기 드문 형식의 민중 집회로 평가 받는다.
1냥은 지금 화폐가치로 약 5만원 정도로 환산할 수 있는 큰돈이다. 대부분이 헐벗고 굶주린 농민들이 이 돈을 마련할 수 있었는가의 궁금증은 동학의 ‘유무상자’ 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무상자’ 제도는 가진 자가 조금 더 내고 많이 배운 자는 가르치며 노래나 춤을 추는 자는 그것으로 자기 역할을 해내는 오늘날의 ‘재능기부형’과 닮았다. 억압된 봉건사회에서 민중의 힘을 이끌어내는 동학인 들의 열정은 이것 하나로도 이미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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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답사지는 보은 종곡리 북실마을이다. 취회 다음해 일어난 동학혁명의 마지막 전투지며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곳이다. 일본군 기록인 ‘토비사략’에는 약 2600명이 사망했다고 나와 있으며 구전으로 전해오는 마을 어른들은 “산이고 들이고 온통 붉은 피로 물들었다”고 전한다.
박 교수는 “당시 동학군은 사거리 30m의 화승총과 죽창을 사용했고 왜군은 사거리 250m의 최신식 스나이더 소총을 사용했다. 농민과 최정예특수부대간의 대결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동학군은 이길 수 없음을 알면서 싸웠다. 후세를 위한다는 마음 하나로 더 이상 살수 없는 세상에 목숨을 바쳤다”며 참석한 학생들에게 “그분들이 있어 오늘 우리가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런지 북실의 진달래는 억울한 영혼들의 울음이 배어나오듯 해마다 유난히 붉게 핀다고 한다. 좌우로 산을 품은 6월의 북실에 진달래는 지고 밤꽃이 한창이다.
마지막으로 당시 사망한 동학군과 마을 사람들의 매장지에서 술을 한잔 붙고 절을 올렸다. 100여년 전에 매장됐지만 뼛조각하나 남아 있지 않아 관련학자들이 토양에서 사람 뼈의 인 성분이 대량으로 확인되는 몇 곳에 솟대를 세워 기념하고 있다.
박 교수는 “삼한시대부터 내려오던 솟대는 누구나 품어주는 신성한 구역을 의미한다. 하늘과 통하는 새를 등장시켜 신성함을 존중하는 조상들의 높은 지혜”라고 말했다.
이제 솟대가 그분들을 지켜주고 후세들이 찾아 잔을 받치고 절을 올려 억울함을 달래고 위로하며 그 뜻을 받는다.
이날 저녁에는 정화수 의식을 시작으로 풍류마당이 펼쳐졌다. 깨끗한 물을 한 웅큼씩 받아 한곳에 모으고 한지에 소원을 써 소지하며 다 같이 손잡고 강강술래를 하며 축제의 장을 펼쳤다.
소원지에는 ‘사람이 하늘이다’를 비롯해 ‘남북통일’, ‘행복하소서’, ‘우리는 하나다’ 등 각자의 소원들을 써냈다. 세월호의 영령들을 추모하는 글귀도 있고 서울 지하철 사고로 숨진 청년을 애도하는 글도 보였다.
늦은 밤 열린 ‘청소년 락 페스티발’은 조용한 동학공원 골짜기 마다마다에 푸른 젊음을 심어줬다. 별빛보다 찬란한 그들의 소리와 춤들이 100여년 전의 울림과 함성에 닿았으리라 가늠해 본다.
5일에는 첫날 맞이굿에서 태운 장승을 뽑아낸 자리에 새로 깍은 장승을 세우며 또 다음 행사를 기약했다.
올해로 19년째 기념행사를 치르고 있는 ‘삶결두레 아사달’ 박달한 추진위원장은 “지난해 메르스가 한창인 때 행사를 치르면서 여러모로 힘든 점이 많았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 각지에서 보은취회를 기념하기 위해 찾아준 분들께 너무도 고맙다”고 말했다.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올해도 그들은 스스로 모여 즐기고 스스로 흩어진다. ‘하늘처럼 소중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위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