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대 암산, 영남 제1의 명승지[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경북 청송군 편
  • ▲ 주봉2전망대에서 바라본 연화봉, 병풍바위, 급수대.ⓒ진경수 山 애호가
    ▲ 주봉2전망대에서 바라본 연화봉, 병풍바위, 급수대.ⓒ진경수 山 애호가
    주왕산은 경북 청송군과 영덕군을 가르는 산으로, 1976년 3월 30일 우리나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주왕산국립공원 및 주변은 백악기 회류 응회암으로 특색있는 경관을 이루고 있어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암산(岩山)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산명(山名)은 주왕(周王)이라는 사람과 관련된 전설이 깃들어 붙어진 이름이다. 주봉(主峯. 해발 721m)의 북서부에는 태행산(해발 933m), 대둔산(해발 905m)이 솟아 있고, 동쪽으로 가메봉(해발 883)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번 산행은 기암이 병풍처럼 펼쳐진 절경을 조망하면서 오르고, 하행하면서 다양한 폭포와 협곡의 신비로움을 체험하는 코스로 정했다. 산행 거리는 총 11.5㎞이고, 「상의주차장~대전사~주왕산(주봉)~칼등고개~후리메기삼거리~용연폭포~절구폭포~용추협곡~원점회귀」의 루트다.
  • ▲ 대전사와 기암.ⓒ진경수 山 애호가
    ▲ 대전사와 기암.ⓒ진경수 山 애호가
    청주에서 출발해 상주를 지나 영덕으로 달려가는 고속도로, 의성을 지나면서 좌우로 진녹색의 산빛 속에서 가시처럼 뾰족뾰족하게 돋은 거무스레한 빛이 자리를 잡았다. 이는 지난 3월 의성발 초대형 경북산불로 인한 잔해들이다. 

    그 당시 수많은 자연과 문화재, 심지어 생명까지 빼앗아 가버린 산불의 참사는 안일한 생각이 빚어낸 인재였다. 생명을 잃은 자연은 수십 년이 걸리지만, 우리네 삶은 한번 가면 돌이킬 수 없다. 사소한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행동의 자제가 필요하다.

    ‘진경수의 山 이야기’에서도 수차례 언급한 것처럼, 산을 찾다 보면 아직도 등산객 중에는 버너로 음식을 끓여 먹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어찌 이뿐인가 음주, 흡연, 그리고 쓰레기 투기는 헤아릴 수 없이 비일비재하다. 
  • ▲ 주봉2전망대에서 바라본 연화봉, 병풍바위, 급수대.ⓒ진경수 山 애호가
    ▲ 주봉2전망대에서 바라본 연화봉, 병풍바위, 급수대.ⓒ진경수 山 애호가
    상의주차장에 도착해 주방천을 건널 때 웅장한 장군봉과 기암이 멀리서부터 반갑게 맞아준다. 초입부터 주왕산다운 풍경에 반하여 엔돌핀 분비가 촉진된 탓인지 출발 당시의 다리 저림 통증이 싹 가신다. 

    상가로를 걷는데, 극한 폭염으로 탐방객이 뜸한 탓인지 상점들도 한적하다 못해 쓸쓸함 마저 감돈다. 그 끝자락은 대전사 입구로 이어진다. 대전사는 약 1300년 전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기암이 마치 부처님의 광배를 이루면서 보광전을 중심으로 좌우로 관음전과 명부전을 수호하고 있는 모습이다. 마음을 한눈에 사로잡는 이 풍광 앞에 서니, 저절로 하심(下心)과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을 이룬다. 흐트러진 정신을 다잡고 산행의 무탈함을 기원한다.
  • ▲ 주봉3전망대를 지나면서 바라본 주봉.ⓒ진경수 山 애호가
    ▲ 주봉3전망대를 지나면서 바라본 주봉.ⓒ진경수 山 애호가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순백색 기암교에서 고즈넉하게 자리한 백련암을 바라본다. 이 암자는 주왕의 딸 백련공주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기암교 한가운데서니 기암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세월과 함께 사그라지던 삶의 희망과 기대가 되살아나는 듯하다. 

    계곡을 따라 평지를 조금 걸으니, 계곡과 주봉 마루길의 갈림길을 만난다. 주봉을 향해 오르고, 하산은 계곡길로 내려오기로 한다. 평평한 길은 산비탈을 지그재그로 오르는 완만한 계단으로 이어진다. 대전사를 출발해 0.8㎞ 지점을 지나자, 주봉1전망대에 도착한다.

    이곳에 서면 기암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고, 장군봉과 혈암도 조망된다. 하지만 소나무 숲에 가려 절반 정도만 보이는 것이 아쉽다. 훗날 숲이 우거지면 이마저도 기회가 사라질 것이니 다행이라 여긴다.
  • ▲ 후리메기 삼거리로 하행하면서 바라본 가메봉.ⓒ진경수 山 애호가
    ▲ 후리메기 삼거리로 하행하면서 바라본 가메봉.ⓒ진경수 山 애호가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이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하니, 흘러간 세월을 탓하기보다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여겨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고 부단히 노력해 봐야겠다며, 다시 길을 오른다. 나지막한 계단과 깔끔한 평돌이 깔린 길과 흙길을 걸으며 대전사 시점 1.2㎞를 지난다.
      
    짧고 굵직한 오르막 계단을 비지땀 속에 올라서니 주봉2전망대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혈암, 장군봉, 기암. 연화봉, 병풍바위, 급수대를 한눈에 조망한다. 흘린 땀을 보상이라도 하는 듯, 눈부시게 아름다운 절경에 도파민이 팍팍 솟아나 아픔을 가시게 한다.

    기암에서 뿜어내는 비범한 기운이 능선을 타고 대전사로 흘러드는 형상이다. 고도를 높인 만큼 갖가지 생김새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처럼 서거나 앉거나 눕더라도 마음을 하나를 향해 높여가야만 현상을 관찰하고 본연의 진리를 파악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 ▲ 후리메기 삼거리로 이어지는 계곡길.ⓒ진경수 山 애호가
    ▲ 후리메기 삼거리로 이어지는 계곡길.ⓒ진경수 山 애호가
    숨죽이며 바라본 풍광에 흐르는 땀이 조금은 잠잠해지자, 다시 산비탈 길을 오른다. 주봉을 0.8㎞ 앞두고 바위 능선을 타기 시작한다. 소나무 숲길의 솔 향기조차 맥을 못 추고 불타는 듯한 열기에 뒤로 물러섰다. 주봉3전망대를 지나 주봉을 향해 잠시 길을 내려간다.

    이제 주봉 마루를 향해 하늘로 곧게 뻗은 울창한 소나무 숲을 가르는 막바지 가파른 계단과 바윗길을 오른다. 주왕산 발끝에 놓여있는 청송 읍내가 발아래로 보인다. 머리 위로는 간간이 재선충으로 말라 죽은 소나무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화두(話頭)를 던진다.

    계단 끝자락에 놓인 평상에 잠시 몸을 맡기고 거친 숨을 다독거린다. 흐린 땀만큼 수분을 보충하고 간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한다. 그 덕에 단숨에 해발 722m 주왕산 주봉 마루에 닿는다. 숲으로 둘러싸여 조망이 없으니, 아직 남은 체력으로 후리메기 삼거리로 향한다.
  • ▲ 용연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 용연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후리메기”라는 지명은 원래는 “훈련목”이라고 불리던 곳이란다. 주왕의 군사가 훈련했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신갈나무 숲길을 따라 걷는다. 산허리를 지나가는 길은 잠시 출렁거리다가 가메봉과 후리메기 삼거리로 갈라지는 칼등고개 갈림길에 이른다.

    해발 714m 높이의 칼등고개를 넘지 않고 산비탈 길로 걷는다. 이어 가파른 소나무 숲길을 가로질러 하행한다. 무더위 속 산행을 위로하듯 풀벌레와 새소리, 솔 향기와 바람 물결이 함께 연주하는 자연의 협주곡이 온몸에 스며든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면서 가메봉을 조망하고 나서도 한참을 더 내려오니 쉴새 없이 땀이 솟구치듯 흘러내린다. 마침 골바람을 만나지만 열기를 식히기엔 턱없이 미약할 뿐이다. 계곡을 만나서 0.5㎞ 남은 후리메기 삼거리로 좀 편안해진 계곡 길을 걷는다.
  • ▲ 절구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 절구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기상이변으로 찾아든 불청객 극한의 폭염이 계곡물마저 메마르게 한다. 깊은 계곡 밑을 졸졸대며 흐르는 물줄기가 더 목마르게 한다. 험난한 길을 이끌어준 두 발을 가는 물흐름에 담그니, 그래도 시원함은 최고다. 그것도 잠시 산모기의 극성에 길을 재촉한다.

    계곡을 몇 차례 넘나드는 목교를 지난 후에야 가메봉과 주봉 갈림길인 후리메기 삼거리에 도착한다. 열기에 몸은 지쳐가지만, 소곤대는 물소리에 마음은 편안해지는 길이다. 소량의 물줄기를 가득 채운 못은 숲과 구름을 담고, 하늘마저 품었다. 이것이 상선약수(上善若水)가 아닐까 싶다.

    길은 점점 계곡과 멀어지면서 산비탈을 급하게 치고 오른다. 정오가 넘어서자 기온이 더 오르면서 산길은 찜질방을 방불케 하고 온몸엔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그간 쌓였던 노폐물과 욕심을 다 쏟아내듯이 말이다. 오름은 내리막으로 이어져 후리메기 입구에 닿는다.
  • ▲ 용추협곡.ⓒ진경수 山 애호가
    ▲ 용추협곡.ⓒ진경수 山 애호가
    이곳에서 0.3㎞ 안으로 들어가 자리한 용연폭포를 다녀오기로 한다. 용연폭포에 도착하니, 2단이며 두 줄기 폭포수가 떨어지는 쌍폭이다. 유량이 풍부했다면 웅장함이 남달랐을 것 같다. 1단 폭포의 양쪽 벽면에는 침식작용으로 생겨난 하식동굴이 각각 3개씩 존재한다.

    하식동굴 수만큼 폭포는 점점 후퇴하게 된다. 세월에 장사(壯士) 없으니 삶이여, 마냥 그대로일 것처럼 으스대지 말라고 한다. 물은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이처럼 바위를 침식시키니 이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유덕(柔德)이 아니던가.

    용연폭포에서 0.4㎞를 내려오니, 탐방로에서 후미진 계곡을 따라 0.2㎞ 더 깊숙이 들어가면 절구폭포가 있다고 알려준다. 숨겨진 절경을 마다할 까닭이 없으니 길을 따라 발길을 옮긴다. 협곡에 버금가는 계곡 끝에 마치 절구처럼 생긴 절구폭포를 마주한다.
  • ▲ 시루봉.ⓒ진경수 山 애호가
    ▲ 시루봉.ⓒ진경수 山 애호가
    1단 폭포 아래에는 선녀탕이라 불리는 돌개구멍이 있고, 2단 폭포 아래에는 용소가 형성되어 있다. 자연이 빚은 신비롭고 오묘한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다시 탐방로로 되돌아 나간다. 이후 1㎞를 계곡물의 흐름과 동행하니 용이 하늘로 승천한 웅덩이, 용추폭포에 이른다.

    그리고 거대하고 신비로운 자태의 용추협곡이 시야를 꽉 채우니 감탄이 연거푸 나온다. 화산이 만들고 시간이 정성스럽게 빚은 위대한 작품에 매료된다. 한동안 발걸음이 꼼짝없이 그대로 머문다. 삶이란 작품도 긴 시간과 온갖 정성을 쏟을 때 비록 완전치는 않지만, 자족하는 끝맺음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협곡을 빠져나와 계곡을 건너면 우측으로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와 같은 모양의 시루봉을 만난다. 옆에서 보면 마치 사람의 옆모습과 비슷하다. 좌측으론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절벽 위에 한 쌍의 청학과 백학이 살았다는 학소대를 만난다. 
  • ▲ 급수대.ⓒ진경수 山 애호가
    ▲ 급수대.ⓒ진경수 山 애호가
    주왕이 숨었다가 숨졌다는 전설의 주왕굴, 그 주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주왕암을 다녀오고 싶지만, 체력을 안배해 미련 없이 지나친다. 이어 앞으로 넘어질 듯 솟아오른 급수대(汲水臺)가 기막힌 전설을 안은 채, 하부에 수직 기둥 형태의 주상절리를 형성하고 있다.

    병풍바위와 연꽃처럼 온화한 연화봉 밑을 지나 주왕이 쌓았다는 주왕산성터를 만난다. 이제부턴 온몸을 뙤약볕에 그대로 노출하며 주차장으로 걸어간다. 피부가 타들어 갈 듯 따갑다. 오늘 산행에서 편치않는 몸으로 올랐지만 외려 치유를 얻는 기상천외한 은덕(恩德)을 받았다,

    워낙 기승을 부린 무더위에 시원한 산바람도 잠자고, 기암계곡의 폭포수도 시원치는 않았지만, 자연이 만들고 시간이 빚은 수려한 절경을 만났다. 그것은 과거 악연(惡緣)의 때를 토해내고 미래 순연(順緣)의 끈을 이어가는 한여름의 시절인연(時節因緣)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