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릉 구간 풍광이 일품[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괴산군 편
  • ▲ 암릉 구간을 하행하면서 바라본 조항산.ⓒ진경수 山 애호가
    ▲ 암릉 구간을 하행하면서 바라본 조항산.ⓒ진경수 山 애호가
    조항산(鳥項山, 해발 954m)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경북 문경시 농암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북으로 대야산(大耶山, 해발 931m), 남으로 청화산(靑華山, 해발 984m)과 이어지는 백두대간(白頭大幹)에 위치한 암봉이다.

    이 산의 이름은 생김새가 날렵하고 높이 솟아 있는 모양이어서 마치 새의 목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번 산행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에 위치한 의상저수지를 기점으로 하여 ‘의상저주시 주차장~임도~등산로 입구~조항산 고스락~암릉 구간~갓바위재~계곡~임도~의상저수지 주차장’의 원점회귀 코스다.
  • ▲ 의상저수지에 드리워진 백악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의상저수지에 드리워진 백악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의상저주지 주차장을 출발하여 구불구불한 임도를 걸어 저수지 제방 입구에 도착한다.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이 저수지의 공식 명칭은 ‘송면저수지’이란다.

    인도 블록이 깔린 제방을 걸으며 주차장 방향으로 백악산 능선을 조망하고, 저수지 방향으로 아침 해를 등에 지고 저수지에 비친 조항산과 그 능선이 청화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조망한다.

    저수지의 생긴 모양에 따라 굽이돌아 잘 닦인 임도를 한동안 걷다가 저수지 제방을 바라보니 깊은 못에 백악산 능선이 드리워져 있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면서 좌측으로 등산 리본을 발견하는데, 이곳이 산행의 들머리이다. 자칫하면 그냥 지나칠 수 있으므로 이동 시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 ▲ 조항산 고스락 길목에서 바라본 상행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조항산 고스락 길목에서 바라본 상행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선행자들의 흔적을 따라 쭉쭉 뻗어 오른 소나무 군락지를 가르며 산길을 오른다. 아직 피톤치드가 왕성하게 내뿜는 시각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쾌한 기분이 든다.

    이어 가파른 오르막과 함께 참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걷다 보면 처음으로 의상저주지(1.4㎞)·왕송마을(4.6㎞)·조항산(2.9㎞) 갈림길의 이정표를 만난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등산로의 돌덩이는 서서히 큰 바위로 모습을 바꾸는가 싶더니 암릉으로 이어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대야산 능선이 보일 듯 말 듯 애간장을 녹인다.

    화살촉 모양의 입석과 돔형 지붕 모양의 바위를 지난다. 대야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정기가 뭉게구름을 불러 모으는 듯하다.
  • ▲ 조항산 고스락 길목에서 대야산까지 이어진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 조항산 고스락 길목에서 대야산까지 이어진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오름세가 잠시 주춤해지면서 산길 옆으로 구절초의 하얀 미소는 화안시(和顔施)와 다르지 않다. 바위 옆을 지나 가파른 길을 오르면 조항산(0.5㎞)·고모치(0.9㎞)·의상저수지(3.8㎞) 갈림길의 이정표를 만난다.

    얼마 남지 않은 조항산 고스락이 어떤 모습으로 반길지 자못 기대되고 가슴이 설렌다. 어떤 산이든 늘 그렇듯 고스락 직전의 몸부림이 거칠기 마련인데,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발걸음이 늦어지는데, 경사가 가팔라 힘들어서가 아니라 풍경의 마법에 걸려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올라온 산등성을 내려다보니 입산 초입의 청록이 불그스레한 가을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고모재와 밀재를 거쳐 대야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기상이 하늘에 닿을 듯하고, 그 옆으로 좀 떨어진 위치에 중대봉이 호젓하게 자리한다.
  • ▲ 조항산 고스락에서 바라본 하행할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 조항산 고스락에서 바라본 하행할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조항산 갤러리에서 여러 산수화를 감상하면서 흥분된 가슴을 진정시키고 발걸음을 옮겨 고스락에 도착한다. 바위 위에 올라앉은 작은 고스락 돌에는 ‘백두대간 조항산’이라 새겨있다.

    그 옆으로 괴산군과 문경시를 가로질러 상주시로 이어지는 조항산 백두대간 지도를 살펴보고, 하산 방향의 암릉 구간과 청화산, 그 뒤를 넘실대는 속리산 일대의 산등성을 조망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갓바위재로 하행을 시작하는데 하행 초입부터 경사도 매우 심한 암릉 구간이 이어진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하행 구간의 속살이 거친 외유내강 산길이다.

    고상하고 아름다운 품격을 자랑하듯 바위 틈새에 자리한 들꽃들이 풍성하다. 암벽을 타고 오른 후, 지나온 조항산 능선과 앞으로 나아갈 암릉 구간을 바라보니 초가을 풍광이 감성을 자극한다.
  • ▲ 암릉 구간에서 돌아본 지나온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 암릉 구간에서 돌아본 지나온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암릉 구간에서 이동하는 시간보다 머무는 시간이 훨씬 많다. 앞으로 몇 발자국 이동하면 다시 뒤돌아보게 하는 마력을 지난 곳이다. 마치 화려했던 인생을 돌아보는 것처럼 말이다.

    가던 길을 돌아보면 의상저수지에서 올라온 산등성, 그 뒤로 대야산과 증대봉이 조망된다. 앞으로 갈 방향에는 청화산와 그 뒤로 속리산 산등성이가 아련하게 넘실댄다.

    키보다 서너 배쯤 높은 암벽을 만나 기어오르면 사방으로 막힘이 없어 눈동자가 바삐 움직인다. 넘실대는 산등성의 물결을 뒤덮을 듯 낮게 깔린 구름이 천상이라 착각하게 한다.

    흐드러지게 핀 구절초 꽃의 인사룰 받으며 암릉 구간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느릿느릿 이동한다. 지나온 조항산을 무정하게 떠나기엔 못내 아쉽다.
  • ▲ 암릉 구간을 걷다가 뒤돌아본 조항산.ⓒ진경수 山 애호가
    ▲ 암릉 구간을 걷다가 뒤돌아본 조항산.ⓒ진경수 山 애호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금’이 세 개가 있는데, 그것은 ‘현금, 소금, 지금’이다. 그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지금’이란다. 지금 눈 앞에 펼쳐진 황홀한 풍경은 시간이 흐르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에 집중하여 나를 찾아 나답게 살고, 즐기면 된다. 자연은 이렇게 살라고 늘 이야기했건만 이제야 소중함을 알아차린다.

    만일 현금이 없으면 현금자동인출기를 이용하면 된다. 아니, 이것도 디지털 화폐가 판치는 요즘 세상에서는 불필요한 구시대 유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금이 부족하면 마트에서 사들이면 된다. 그러나 일본의 후쿠시바 방사능 오염수 바다 방류로 인해 자연생태계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예측 불가능하니 모를 일이다.
  • ▲ 바위 위에 아름답게 피어난 구절초 군락.ⓒ진경수 山 애호가
    ▲ 바위 위에 아름답게 피어난 구절초 군락.ⓒ진경수 山 애호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지구 열대화가 온 세계를 재앙에 시달리게 하는 것처럼, 소금도 훗날 서로 가지려고 아우성 되는 바람에 화학 반응으로 얻게 될지도 모른다.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인간의 욕심이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잠시 빌려 쓰고 있는 이 자연을 충분히 즐기고 보호하여 다시 후세에게 돌려줘야 한다.

    등산로 아래 바위 자락에 아름답게 피어난 구절초 군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잡념을 뿌리치고 오직 이 꽃에만 집중하라고 한다.

    지금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고, 오욕으로 가득한 공간을 벗어나 끝없이 펼쳐진 자연의 무한한 시공간을 온새미로 누린다.
  • ▲ 숲속의 능선을 하행하면서 바라본 조항산.ⓒ진경수 山 애호가
    ▲ 숲속의 능선을 하행하면서 바라본 조항산.ⓒ진경수 山 애호가
    바위를 말을 타듯 등줄기를 올라타기도 하고, 오를 수 없을 만큼 거칠고 거대한 바위를 만나면 우회하기도 하고, 넘을 수 있는 바위를 만나면 호기를 부리며 넘기도 하면서 암릉을 지난다.

    암릉 구간에 이어 숲속의 능선을 이동하면서 조망 점을 만나 조항산을 바라보니 바위가 흘러내리고 흩어져 이뤄진 모습을 제대로 감상한다.

    세상 모든 사람이, 세상 모든 일이 일구월심(日久月心) 스스로 그러함으로 돌아가 본성을 찾기를 바랄 뿐이다.

    수많은 선행자가 지나간 걷기 편한 숲속 길을 밟고 걷자니, 훗날 이 길은 다른 산객이 걷게 될 길이라 생각하니, 필자가 가는 길이 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동행이라는 사실을 안다.
  • ▲ 계곡을 하행하면서 만난 쌍거북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계곡을 하행하면서 만난 쌍거북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갓바위재(해발 769m)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능선을 따라 직진하면 청화산에 이르고, 우측으로 내려가면 의상저수지에 이른다. 

    의상저수지 방향으로 짙은 녹색의 숲길을 하행하다가 임도를 가로질러 하행하면서 의상저수지와 그 뒤로 백악산 줄기를 조망한다.

    다시 만난 임도에서 좌측으로 약간 돌아가 등산 리본이 붙은 곳으로 하행하다가 조잘대며 흐르는 심산계곡(深山溪谷)을 만난다. 이후 계곡을 건너 걷기를 반복하다 쌍거북 바위를 만난다.
     
    사방댐을 지나 임도를 따라 왔던 길을 되돌아 의상저수지 주차장에 도착하여 약 9.8㎞의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