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섭 전 공주시장
  • ▲ 김정섭 전 공주시장.ⓒ김정섭 전 공주시장
    ▲ 김정섭 전 공주시장.ⓒ김정섭 전 공주시장
    선출직 정치인이 서 있을 수 있는 진짜 토대는 법적 권한이나 직함이 아니라 시민의 신뢰다. 이 신뢰가 무너지면 직위는 남아 있어도 실제로 행정을 이끌어 갈 힘은 급속도로 약해진다. 세계 정치사를 돌아보면 수없이 반복된 장면이다.

    미국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상대 정당 당사를 불법 도청한 사실을 감추고 변명으로 일관하다가 끝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관저와 사무실에서 연 ‘불법 파티’를 축소·은폐하려다 도덕성 논란이 폭발해 결국 보수당 내부 지지를 잃고 권좌에서 내려왔다. 우리 정치사에서도 사실을 말하는 대신 속임수와 위장을 택한 결과, 한순간에 시민의 지지가 꺼져버린 사례가 적지 않다. 결론은 분명하다. 선출직 정치인의 권위는 ‘저 사람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시민의 믿음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국립공주대–충남대 통합 문제를 둘러싸고 드러난 공주시장의 태도는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현 공주시장은 대학 통합을 전제로 한 ‘글로컬대학 30’ 사업 계획에 동의해 시비 3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이 사실을 몇 달 동안 시민과 언론, 시의회에 알리지 않았다. 공주대–충남대가 5월 예비 지정, 9월 최종 지정을 받는 동안, 대학 구성원들은 물론 시민사회가 생존권 위협을 호소하며 들끓을 때도 단 한 마디 공식 설명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 23일, ‘공주대–충남대 통합반대 범시민연대’ 출범식에 참석해서야 처음으로 이 사실을 인정했다. 그가 내놓은 설명은 “국비 사업을 위한 행정 절차를 밟았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오랜 기간 진실을 숨기고 뒤늦게 털어놓은 것만으로도 중대한 문제인데, 이 사안을 그저 절차 문제 정도로만 보는 인식 또한 심각하다. 시장이 공주대 통합이 공주의 교육기반, 지역 상권, 인구 구조에 미칠 부정적 파급효과를 정말 몰랐다는 말인가.

    이는 결국 시장 스스로 자기 책임과 권위를 내려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수장(首長)이 자기 역할을 포기하면 행정 실패는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공주대의 변화와 발전 방향은 공주의 미래를 좌우할 전략 과제다. 대학의 혁신 방향에 따라 교육도시로서 공주의 위상, 신관동 상권의 존폐, 젊은 인구의 유입 여부가 갈릴 수 있다. 그럼에도 사안의 무게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채 시의회를 우회하고 언론과 시민을 배제한 상태로 일을 처리하려 했다면, 이미 시정을 책임질 자격을 스스로 흔든 셈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하나로 귀결된다. 신뢰가 붕괴하면 시정은 즉시 추진력을 잃는다. 공직 내부에서는 정책 결정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고, 시민사회는 모든 사안을 의심의 눈으로 보며 갈등이 상수처럼 굳어진다. 그 대가는 고스란히 시민 모두에게 돌아갈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변명이 아니라 신뢰 회복이다. 그동안 어떤 경위로 결정이 이뤄졌는지, 어떤 협의와 판단을 했는지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시민들이 충분히 알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면 낱낱이 설명하고,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미련 없이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 위에서야 비로소 대학 통합 문제를 지역사회가 참여하는 공개적이고 투명한 절차로 다룰 수 있다. 전제는 분명하다. 시민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대학 통합 추진에 대해서는 시장이 더 이상 동참할 수 없음을 공개적으로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