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의 삼등산(三登山) 중 하나[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충주시 편
  • ▲ 세 갈래 능선을 거느리는 천등산.ⓒ진경수 山 애호가
    ▲ 세 갈래 능선을 거느리는 천등산.ⓒ진경수 山 애호가
    천등산(天登山, 해발  807m)은 충북 충주시 산척면과 제천시 백운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명(山名)은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다고 하여 천등산이라 불리게 됐고, 천부경(天符經)에 유래된 것으로 전한다.

    이 산은 산척면 소재지에서도 잘 보일 만큼 체적이 큰 산으로, 남쪽의 인등산(人登山, 해발 667m) 및 지등산(地登山,  535m)과 함께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이루는 삼등산 중 하나다.

    1948년 가수 박재홍이 부른 ‘울고 넘는 박달재’가 인기를 끌면서 천등산의 박달재가 유명해졌다. 그러나 실제 박달재가 있는 산은 이미 ‘진경수의 山 이야기’에서 소개한 시랑산(侍郞山, 해발 691m)이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는 다릿재의 천등산 태성사 푯말이 세워진 곳에서 평택·제천간고속도로 방향으로 약 90m 떨어진 ‘천등산등산로’와 ‘천지인성당(0.4㎞)’ 이정표가 있는 곳이다. 천등산 다릿재 1코스로 원점회귀 하는 산행 거리는 약 6.2㎞이다.
  • ▲ 천지인성단.ⓒ진경수 山 애호가
    ▲ 천지인성단.ⓒ진경수 山 애호가
    이곳에서 임도를 따라 약 0.1㎞ 이동하면 다릿재 삼거리에 닿는다. 이정표는 ‘검은동골 삼거리(7.9㎞)·영덕 삼거리(4.7㎞)’를 안내하는데, ‘천지인성단(天地人聖壇)’을 다녀오기 위해 영덕 삼거리 방향으로 약 0.3㎞를 걷는다.

    송림이 우거진 임도의 산모퉁이에 조성된 천지인성단을 만난다. 그 우측에는 우리 민족 고유의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이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경은 총 81자로 구성됐으며 우주의 생성과 발전의 원리, 그 속에 깃든 사람과 자연의 도리를 밝히고 있다.

    천부경은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로 시작하여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로 끝맺는다. 즉 하나에서 비롯됨이니 비롯됨이 없는 하나이고, 하나에서 마침이니 마침이 없는 하나이라는 것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가 되고, 세상 모든 존재를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이 경의 홍익사상(弘益思想)과 합일사상(合一思想)의 바탕 위에 물질문명이 받아들여진다면 오늘날처럼 온갖 갈등과 분쟁, 불공정과 몰상식, 양극화와 차별화가 판치는 혼탁한 세상이 참으로 평화롭고 살기 좋은 시대로 바뀔 것이다. 
  • ▲ 천등산 등산로 다릿재 1코스 들머리.ⓒ진경수 山 애호가
    ▲ 천등산 등산로 다릿재 1코스 들머리.ⓒ진경수 山 애호가
    이러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다시 다릿재 삼거리로 돌아와 ‘검은동골 삼거리(7.9㎞)’ 방향으로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의 임도를 산책하듯 오른다. 우측으로 늘 푸르름을 간직한 상록침엽수 군락지를 바라보니 안약을 넣은 듯이 눈이 시원하고 마음은 평온해진다.

    산자락에 미끄러질 듯 걸쳐 있는 장어 모양의 바위를 지나, 다릿재 삼거리에서 약 0.6㎞의 거리를 이동하자 밧줄이 설치된 산모퉁이를 만난다. 이 등산코스를 오르면 하늘을 오르는 것 같은 힘든 과정과 신기함을 체감할 수 있는 등산코스다.

    이 산길로 오르면 송전탑, 천등산 119 신고안내 제4지점, 가파른 오르막길의 기암괴석이 즐비한 너덜지대와 통천문 바위, 그리고 깎아지른 바위군락지를 넘는다. 그러면 1코스 계단 구간과 합류된다.

    그러나 이 등산로를 오르지 않고, 이곳에서 약 0.4㎞를 더 이동하여 ‘천등산 숲길 및 임도 종합 안내판’이 있는 등산로를 이용한다. 임도와 연결되는 본격적인 산행 들머리에서 계단을 오르자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 ▲ 아지른 경사의 기암괴석 군락지.ⓒ진경수 山 애호가
    ▲ 아지른 경사의 기암괴석 군락지.ⓒ진경수 山 애호가
    온순하게 시작된 산길은 소나무 뿌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거칠고 가파른 길로 얼굴을 바꾼다. 이어 계단을 오르니 평탄한 길이 잠시 이어지다가 외줄이 설치된 가파른 활엽수 지대를 종아리가 뻐근할 정도로 오른다.

    골 깊은 산비탈 길을 지나 짧은 길이의 데크 계단을 오르고, 다시 외줄이 설치된 산길을 오른다. 다시 데크 계단을 오르면 기암괴석 군락지를 만나는데, 이곳이 이전의 등산코스와 합류되는 지점이다.

    얼음을 덮고 있는 낙엽을 밟으며 깊은 낭떠러지기의 비탈길을 오르자니 사람과의 관계를 맺든, 새로운 일을 만나든 간에 그 속을 알 수 없으니 이처럼 조심스럽다. 낭떠러지기 건너편의 능선은 거대한 바위가 능선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처럼 바위 능선을 피해 산비탈로 길을 낸다. 우리네 삶도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이라면 미련을 두지 말고 과감하게 방향을 전환하는 것도 지혜로운 삶이다. 능선에 닿으니 직각으로 방향을 바꾸는 ‘1코스 입구(0.6㎞)·천등산정상(1.2㎞)’의 이정표를 만난다.
  • ▲ 소봉에서 안부로 내려가면서 바라본 천등산 봉우리.ⓒ진경수 山 애호가
    ▲ 소봉에서 안부로 내려가면서 바라본 천등산 봉우리.ⓒ진경수 山 애호가
    천등산 119 신고안내 제1지점을 지나 잔잔한 파도처럼 얕게 흔들거리는 능선 바윗길을 이동하다가 처음으로 그다지 높지 않은 바위를 넘는 밧줄 구간을 오른다. 이어 찐빵처럼 둥그스름한 언덕에 이르는데, 이곳이 지도에 표기가 안 된 소봉(해발 621m) 정상이다.

    소봉에서 조금 내려가면 등산객의 엉덩이를 기다리고 있는 긴 의자 2개가 있다. 안부로 하행하면서 앙상한 나뭇가지 뒤로 우뚝 솟은 천등산 정상과 동쪽 석천 2코스로 늘어진 능선을 조망한다. 안부에 이르러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오른다.

    수령이 꽤 오래된 참나무 표피가 거무스레하고 거칠고 혹이 툭툭 튀어나와 울퉁불퉁한 모습을 바라보자니 머지않아 필자의 몸뚱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낀다. 세상에 태어나 피할 수 없이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번민과 고통으로부터 해탈하려는 듯 천등산에 오른 것 같다.
  • ▲ 데크 계단을 오르면서 내려다본 소봉.ⓒ진경수 山 애호가
    ▲ 데크 계단을 오르면서 내려다본 소봉.ⓒ진경수 山 애호가
    잠시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지다가 다시 코가 땅에 닿을 듯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다릿재 1코스 등산로는 북서 방향에서 오르는 까닭에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곳곳에 많이 쌓여있다. 묵직하게 내딛는 발걸음에 온몸이 후끈거리고, 차가운 골바람이 데워진 몸을 식힌다.

    이어 데크 계단을 오르면서 잠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길을 바라보니 소봉이 눈높이로 보인다. 이처럼 가끔은 살아온 뒤안길을 슬그머니 여미는 것도 앞으로 “나답게 사는 행복”을 꾸려가는 자양분이 될 듯하다.

    이어서 외줄이 설치된 가파른 눈길을 오른다. 이어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 능선길이 늘어지게 휘어지는 돌길로 다가온다. 우측으로 앙상한 나뭇가지 덕택에 산척면 일대를 조망하는 기회를 얻고, 장승처럼 등산로를 지키고 선 고사목을 지나 서서히 고도를 더 높인다.
  • ▲ 가파른 경사의 눈길.ⓒ진경수 山 애호가
    ▲ 가파른 경사의 눈길.ⓒ진경수 山 애호가
    ‘소봉(0.4㎞)·천등산정상(0.5㎞)’ 이정표를 지나 거친 용 비늘의 등을 타고 승천하는 것처럼 하늘을 향해 산길을 오른다. 천등산 119 신고안내 제2지점을 지나 외줄이 설치된 가파른 눈길을 오르자니 제법 서늘하게 불어오는 골바람에 손끝이 시리다.

    천등산 정상이 다가올수록 경사는 점점 급해지고 눈의 두께는 점점 깊어진다. 엉금엉금 네발로 기어오르는 듯이 천천히 발길을 디딘다. 오르막길에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니 설원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하행하는 등산객과 마주치며 안전산행을 기원한다.

    한바탕 진땀을 빼며 눈길을 오르니 수많은 등산객의 정성과 손길로 쌓아 올린 돌탑을 만난다. 이제 천등산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시야를 가로막고 선 작은 구릉을 오르자 천등산 정상을 알리는 이정표를 만난다.
  • ▲ 천등산 정상.ⓒ진경수 山 애호가
    ▲ 천등산 정상.ⓒ진경수 山 애호가
    이정표는 ‘소봉(0.9㎞)·동봉(0.8㎞)·누릅재(3.2㎞)’를 안내한다. 나머지 구릉을 마저 오르자 드디어 천등산 정상에 닿는다. 평평한 원형 잔디밭에 천등산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정상 주변은 숲으로 둘러싸여 조망은 별로 없다.

    정상에 오르면서 받은 찬바람 때문일까, 정상에 닿으면 추울 것이라는 선입관을 완전히 무너진다. 따사로운 온기를 주는 햇빛을 받으며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정상은 평화로움과 안락함을 느끼게 모자람이 없다. 이곳이 바로 천상인 것 같다.

    늘 그랬던 것처럼 컵라면에 가져온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는 동안, 정상 주변을 여유롭게 돌아본다. 정상석 오른쪽 나무 사이로 물결을 이루면서 겹겹이 이어진 산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바다를 항해하는 배를 탄듯하다.

    시공간을 독차지한 풍부한 행복감을 느낄 때, 한 등산객이 정상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분의 천등산 정상 인증 사진을 찍어주고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피운다. 그러던 차에 동갑내기라는 사실이 대화의 공감대를 더한다.
  • ▲ 천등산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진경수 山 애호가
    ▲ 천등산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진경수 山 애호가
    함께 점심을 먹으며 화제가 다양해질 무렵 또 다른 한 등산객의 참여로 고요함은 왁자지껄한 사람 사는 동네로 변했다. 산을 찾는 사람들, 그것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단독산행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내 삶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오는 발길 막지 않고 가는 발길 잡지 않듯이 새로운 시절인연을 맺는다. 우리는 무언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제일 먼저 올라온 필자가 작별 인사를 하고 배낭을 메고 가장 먼저 하산을 시작한다.

    천지인 삼재의 최고봉인 천등산을 하행하면서 하늘에는 음과 양이 있고, 땅에는 강함과 유함이 있듯이, 사람에는 어짐과 의로움이 있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음을 깨닫는다. 온 세상에 자비와 공정이 자연스럽게 실천되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펼쳐지길 기원한다.

  • ▲ 다릿재 1코스와 이어지는 임도.ⓒ진경수 山 애호가
    ▲ 다릿재 1코스와 이어지는 임도.ⓒ진경수 山 애호가
    다릿재 1코스를 하행한 후 다릿재 입구로 이어지는 한적하고 여유로운 임도를 걷는다. 우거진 숲속을 뚫고 소봉의 봉우리가 얼굴을 내미는 임도, 간간이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소리가 알아차림을 일깨운다.

    치열한 삶의 현장 속에서 빠르게 지름길만을 추구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눈앞에 뻔히 보여도 가로질러 가지 않고, 그냥 묵묵히 생긴 모양을 따라 물길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한참을 돌아서 차근차근 걷는다.

    임도 산책은 바쁘고 성급한 마음에 무거운 추를 달아 느긋한 생각으로 마음의 여유와 평온을 갖게 한다. 또 금방 얻을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돌아보게 하여 아름다운 삶, 조화로운 삶으로 “나답게 사는 행복”을 더욱 깊어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