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눈물 몇 방울로 존엄·죽음 버무리기에는 섧디섧다
  • ▲ ⓒ자료 이재룡 칼럼니스트
    ▲ ⓒ자료 이재룡 칼럼니스트
    가시려거든 빛바랜 사진 한 장만 남겨 사위 놈 가슴팍에 얹어 놓길 바랐다. 사위 놈은 멀뚱거리니 혼자 지껄였다. 여리여리 곱고 단단한 흙 새를 찾아 장인어른 숨결 가르며 고이 덮어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사위와 장인의 연을 맺고 애증을 함께 한세월이 꼬박 37년이다.   

    ​장인어른 숨통이 멎었다. 부름을 받은 2023년 7월 19일부터 흙으로 돌아간 7월 26일까지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려 붓을 적신다. 염치나 체면 따위 겉치레는 버리고 그날그날 상중에서 보고 느낀 감정을 녹여 묵즙을 찍어 휘갈겼다. 부고를 띄우고 염을 하고 조문을 받고 하관 시간이 되어 널을 내리고 삼우제를 빌어 혼백을 보내고 나니 장인어른 가신 길을 따라 참글로 동여매 장인어른이 늘 어깨를 기댔던 큰 처남에게 안긴다. 훗날 큰 처남이 명을 다해 죽음의 목전에 다다랐을 때 다시 꺼내 읽노라면 눈시울이 붉어질 것을 알기에 실로 두렵다. 하기야 바르게 살면 두려울 것이 없으니 두려울 것도 없다. 

    ​◇‘죽음’

    ​구름이 두꺼운 아침은 밤보다 어둑하다. 사위(四圍)가 깜깜하다. 이른 새벽 댓바람을 가르며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566번지 하나병원 5층에 들어선다. 사람이 존엄을 유지하며 산다는 것은 무척 힘들다. 마지막 남으신 1세대 장인어른께서 ‘명(命)’을 다하셨다. 

    존엄마저 깡그리 빼앗아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며 버틴 날들이 나 자신에게 너무나 곱잖다. 장인어른의 삶을 고작 눈물 몇 방울로 존엄과 죽음을 버무리기에는 섧디섧다. 나는 바른가? 조기(弔旗)를 걸며 다시 묻는다. 나는 곧은가? 

    ​2023년 7월 19일 바르지도 곧지도 아니한 설익은 이예분의 남편 이재룡 삼가 고(告)합니다. 

    ​◇‘부고’ 

    ​퍽이나 편한 세상이 됐다. 근조 모바일 부고장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세수 86을 마지막으로 운명하셨다. 부족하되 부족하고 덜떨어진 나에게는 장인이라기보다는 빙부(聘父)에 가까웠지만, 아내에게는 아버지이고, 내 자식들에게는 외할아버지가 된다. 모바일 부고장을 누르기 전에 잠시 그 내용을 훑어본다. 내용이 탄탄하여 너무도 기쁜 나머지 표정 관리를 하며 씽끗 웃었다. 이유인즉슨 부고장에 계좌번호가 없다는 것이다. 제일로 싫어하는 한 문장이 흘깃 스친다. ‘give and take’ 옳지 않다. ‘give and do not take back’ 요것이 진정이다. 

    ​전화가 쉴 틈을 주지 않고 울린다. 계좌번호가 왜 없는지 묻는다. 내 맘이라고 했다. 한 땀 한 땀 글자를 새겨 메시지로 감동 주신 분, 꽃에 서러운 마음을 담아 보내주신 분, 전화기에 깨끗한 감성을 우려내 서글픔을 들려주신 분,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발길을 멈추고 고개를 조아려 주신 분을 생각하면 가슴이 멍하다. 아니 먹먹하다. 

    ​샛길에 서서 곁눈질로 보니 먼발치에서 덩치 큰 사내가 뚜벅뚜벅 이리로 온다. 점심나절에 먹었던 ‘보리굴비 정식’이 눈에 밟혀 온다고 했다. 예상치 않은 복병이다. 나에게 ‘여름 안부’를 잔뜩 풀어헤쳐 놓고는 망자에게 고개를 조아린다. 고맙고 감사하고 벅차다. 계좌번호에는 여름 안부가 가득하다. 

    2023년 7월 20일. 이재룡 조심스레 상문을 연다.

    ​◇‘발인’ 

    ​문턱이 깎이도록 수없이 많은 분께서 조상(弔喪)을 이어갔다. 이 고마움과 감사함을 어찌 돌려 베풀어야 할지 감당이 안 된다. 그저 돌봄과 사랑의 눈물(泣)로 참아낸다. 가슴팍을 땅에 맞대고 토(吐)했다.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을 담아 토했다. “사랑합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하나노인 병원장례식장, 영구(靈柩)가 2박 3일 동안 살았던 집(葬)에서 출발하여 망자가 생전 행복하게 지냈던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229-10 집(家)으로 간다. 장사 행렬에는 사자(死者)의 후손들을 비롯하여 내세의 시봉(侍奉)과 넋을 기리는 각종의 상징물이 앞뒤를 따랐다. 애증을 함께 했던 망자의 사위이자 이예분의 남편 이재룡은 말없이 만장의 끝을 따른다. 

    ◇‘조사’ 

    ​계묘년(癸卯年) 칠월 열아흐레 묘시(卯時)가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꼭 움켜쥐고 있던 외동딸 이예분의 손을 뿌리치며 뭐 그리도 바쁘셨는지 황망하게 이승을 버리셨다. 너무 섧다. 86년 동안 이승을 누리다 홀연히 저승을 택하신 망자는 이재룡의 빙부요 조강지처 이예분의 아비였다. 망자의 떠남을 슬퍼하고 생전의 행장을 기려 조상(弔喪)의 뜻을 표하고자 글을 빗어 숨죽여 읽는다. 본디 부끄럽기도 하거니와 낯이 뜨거워 망자가 품을 기댔던 큰 처남이 절절하게 읊는다. 

    ​망자는 하늘만 빼꼼하게 보이는 거친 땅 충청북도 보은군 회북면 묘암리에서 나와 언덕배기 산을 보며 자랐다. 어린 시절 망자는 비빌 언덕이 없어 등이 긁히고 찢겼다. 낯도 검게 그을려 볼품도 없었지만 야한 듯한 여자 박종연을 횡재하여 결혼도 하고 슬하에 1녀 3남을 뒀다. 그랬던 망자는 지금 자식들과 떨어져 여기 숨통이 끊긴 몸뚱이로 덩그러니 수의에 감겨 관속에 잠들어 있다. 누구든 대문을 지나야 들어갈 수 있다. 망자는 평생 그런 대문을 지키며 월급을 받아 자식들을 키웠다. 이제 와 생각해 보건대 그런 망자의 모습이 당당하고 존경스럽다. 눈물겹도록 사랑한다. 우스갯소리인지 모르나 망자는 사랑에 눈이 멀어 죽고 못 산다던 박종연 여사를 지지리도 들볶았다. 술고래였다. 불과 달포 전까지도 참이슬 한 병 정도는 가볍게 해치웠다. 박종연 여사는 엄연한 이예분의 어미이자 이재룡의 장모(丈母)다. 곱상했던 박종연 여사는 을유년(乙酉年) 이월 초사흗날 먼저 저승을 택했다. 추운 겨울날 많이도 가슴 아팠고 많이도 울었다. 박종연 여사가 편히 잠들고자 여기 묻혔을 때 곁에 허우대 멀쩡한 사내가 우두커니 곁에 서 있었다. 망자였다. 망자는 뭔 똥배짱인지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박종연 여사 의견은 묻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생떼를 부렸다. “나 죽으면 합장해 줘” 그랬던 망자가 거침없이 의연하게 정직한 인생을 살다 이제 흙으로 간다. 망자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무(無)다. 

    ​우리 아버지 거친 땅 묘암리에서 이곳 카스텔라처럼 부드러운 땅 월오동 목련공원까지 오시는 데 86년이나 걸렸다. 고이 가시라고 편히 가시라고 쉬 잠드시라고 사 남매가 모여 흙을 밟는다. 울 아버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2023년 7월 21일. 햇볕이 따가운 날에 눈물(泗)만 머문다. 이재룡 곡(哭)을 모아 글로 남긴다.

    ​◇‘삼우제’ 

    바람(風)을 갈무리하고 물(水)을 얻어야 제대로 된 명당(明堂)이라 했다. 

    ​숨이 끊겼다. 이제 자신의 몸을 버리고 염으로 한껏 치장하곤 깊게 파낸 땅속에 누워 잠을 청해야 하건만 광중에 닿기도 전에 이리저리 방향부터 잡는다. 인체는 죽은 조직이 분해되면서 인(P-燐)을 방출하고 천상으로 올라가며 작은 오로라(Aurora)인 양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한다. 바로 도깨비불(燐)이다.

    ​살아생전에 왕(王) 노릇이라도 했어야 땅 구덩이를 위(上)에서 아래(下)까지 열(十) 자 정도는 파낼 수 있으련만 고작 학생(學生)으로 살다 갔으니 대여섯 자에 족해야 했다. 그런데 도깨비불을 막으려면 일곱 자는 파야 한다. 

    ​망자는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받은 이름(命)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魂]을 받았다. 이제 혼(魂)이 이승과 이별하여 저승에서 방황하며 혼자 떠도는 것을 근심하기에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세 번째 제사(三虞祭)를 준비한다.

    ​천상이나 구천은 사방의 혼들이 뒤섞여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그곳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죽음도 기쁨으로 승화해야 한다. 그러니 삼우제를 볼모 삼아 혼백을 배웅했다.  

    ​2023년 7월 22일. 소서(小婿) 이재룡 사거(辭去)합니다. 사십구일 재(四十九日齋)를 기다리겠습니다. 

    ​◇‘덮음’ 

    ​비가 온다.
    ​삼우제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온다. 
    망자와 무던히도 싸웠다. 못나고 싹수없는 사위는 장례 내내 빙부라 불렀다. 퍽 어리석고 아둔하였으나 삼우제를 끝내고 나서야 삐딱한 마음이 돌아와 아버님이라, 장인어른이라 부른다.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 가고 눈물(淚)이 하염없이 흐른다.

    내 비록 권력 없는 범부로 살았을지언정 천상이나 구천에 사는 혼(魂)들 가운데 고수(高手) 염라대왕을 찾아가 ‘짜웅’을 했다. 혼백에게 매달려 울 아버님 편히 잠들 수 있기를 애원했다. 고수와 혼백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마음이 놓여 아버님을 홀로 남겨두고 술잔을 비운다. 기쁘다.

    ​이승의 끈은 속절없이 놓으시고 쉬 잠드시라며 이마를 땅에 박고 나니 현현(泫泫)하다. 죽음을 기쁨으로 바꾸려니 눈물(涕])이 옷섶을 적신다. 어떻게 숨길까 어떻게 숨길 수 있을까? 지금 내 마음은 대저 돛대도 없는 작은 배에 올라 온갖 풍랑을 헤치며 까마득한 망망대해를 항해하다 예서 멈춰 선다.

    ​지금은 가득 찬 눈물(目汁)을 조금씩 빼내고 있다.

    ​2023년 7월 23일. 질곡의 삶을 살아오신 아버님을 부르며 파체(破涕)한다. 지지리도 부족하고 못난 사위 이재룡 삼가 글을 덮는다.

    ​◇‘답례’ 
    조문하러 다녀가신 모든 분께 인사치레해야 하건대, 망자는 이미 떠나고 없으니 어이할까 고민을 하던 차 망자의 혼백이 내려와 귀엣말한다. “아 글쎄 내 딸 훔쳐 간 놈이 해야지”라며 역정을 내신다. 어쩌겠는가 싶어 장인어른이 남겨두신 편지를 답례 사로 대신한다. 

    ​참이슬, 참으로 익숙한 이름이다. 더운 여름날 저승 가는 길목에 서서 곱디고운 흙을 퍼담아 날랐다. 행여 날리는 흙에 염이 긁힐까 봐 ‘귀신의 귀에 떡 소리’를 뱉어 자신의 몸을 버리고 누워 계신 장인어른을 깨워본다. 취토 요. 취토 요. 대꾸가 없기에 참이슬 한 병을 잡고 도르륵 소주병 마개를 돌려 따는 소리와 쫄쫄 소주병 들고 술 따르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아무런 대꾸가 없어 파 헤쳐진 무덤을 열 손가락 사이로 내려다보니 조문객 제위께 전해 달라시며 달랑 편지 한 통을 남겨두곤 냅다 황천으로 가셨다. 봉투에 담긴 편지를 꺼내 펼친다. 달랑 한 문장만 남겨두셨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오셔서 망자 곁을 지켜주신 그 큰 사랑, 잊지 않겠습니다.” 

    ​2023년 7월 26일. 감사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아주 작은 답례품을 준비한다. 부디 내치지 마시고 받아주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망자의 딸을 훔쳐 간 이재룡 삼가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