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산세[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괴산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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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양산(曦陽山, 해발 996.4m)은 경북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이루고 문경새재에서 속리산 쪽으로 흐르는 백두대간의 줄기에 우뚝 솟은 신령스러운 암봉이다.이 산은 백두대간에 있지만, 고스락은 대간에서 살짝 벗어나서 행정구역상 경북에 속해 있다. 그러나 산행이 충북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 주차장을 들머리로 주로 산행이 이루어지므로 괴산 명산으로 분류된다.희양산은 흙산과 암산의 풍경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아기자기한 감동과 세미클라이밍을 즐길 수 있는 산이다. 이번 산행은 ‘은티마을 주차장~은티마을입구~산행입구~지름티재~미로바위~직벽구간~성재세거리~병풍바위~산행입구~은티마을 주차장’의 원점회귀 코스다.은티마을 주차장에 도착하여 등산안내도를 살펴보고 은티마을로 향한다. 장구한 세월 동안 마을을 지켜온 노송과 장승, 은티마을 유래비, 동고제(洞告祭)를 지내는 제단을 지나는 포장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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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개울 다리를 지나 세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동하다가 다시 만나는 세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완만하게 경사진 길을 이동한다. 이어 만나는 은티펜션 푯말이 있는 세거리에서 왼쪽으로 이동한다.밭 사이로 난 포장길을 오르면 희양산과 구왕봉 세거리인 산행입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지름티재·희양산(3.6㎞)」 방향이고, 우측으로 가면 「호리골재·구왕봉(3.0㎞)’방향이다.백두대간 희양산의 표지석이 세워진 길로 들어서면 지름티재 방향으로 가게 된다. 너른 임도에 낙엽이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시간의 흐름을 실감한다. 등산로를 독차지한 낙엽을 밟으며 명상 산책한다. 주변에 아직 못다 떨군 단풍은 대부분 갈색으로 변했다.낙엽이 진 앙상한 나뭇가지는 내년에는 다시 새잎을 돋우겠지만, 우리네 삶은 한 번 떠나면 다시 못 올 것인데, 어찌 그리 부질없는 욕심에 마음 끓였는지 모르겠다. 낙엽을 이고 있는 조릿대 길을 지나고, 낙엽의 마법으로 거친 돌길이 아름다운 길로 바뀐 길을 지난다. 이내 다시 마지막 잎사귀를 붙들고 있는 앙상한 나무 아래에 펼쳐진 조릿대 숲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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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육산을 오르고, 바윗길을 통과하면 지름티재에 도착한다. 지름티재에서 우측은 구왕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이고, 좌측은 희양산으로 가는 등산로다.좌측으로 방향을 들어 암릉 구간을 오르는데, 산길 좌우로 각양각색의 바위들이 사열하듯 곳곳에서 인사를 한다. 경사진 암반에 무심하게 놓인 밧줄을 그냥 지나고 이어 바위 틈새를 비집고 빠져 넘는다.바위에 올라 뒤를 돌아보니 맞은편에 우뚝 솟은 구왕봉이 보인다. 지난번 구왕봉에서 이 희양산을 보았지만, 이제 그 반대가 됐다. 이렇듯 보이는 것이 남의 모습이요, 듣는 것이 남의 소리이니, 남을 아는 것보다 나 자신을 알기가 더 어렵다.거무스름한 참나무 숲과 회색의 바위 숲이 등산로를 온통 덮고 있고 날씨마저 흐리멍덩하니 더한층 을씨년스럽다. 커다란 바위 여러 개가 서로 뒤엉켜 미로를 형성한 미로바위를 마치 물이 장애물을 만나 틈새를 찾아 비집고 흐르듯이 요리조리 바위 틈바구니를 찾아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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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약수(上善若水)를 연상케 하는 미로바위를 통과해 가파른 등산로를 오르고 나면, ‘이곳은 긴 직벽구간으로 추락의 위험이 매우 높은 곳이므로 노약자나 체력이 약한 등산객은 안전을 위해 되돌아가시기 바랍니다.’라는 주의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이러한 ‘주의’에도 불구하고 평탄한 흙길이 이어지니 어리둥절하다. 그러나 조금만 오르면 희양산을 수호하는 웅장하고 위엄있는 석장군들을 지나 산비탈을 따라서 누운 거대한 바위 옆에 설치된 밧줄의 도움으로 산길을 오른다.고도를 높여가며 가파른 구간을 오르고 나면 잠시 완만한 비탈길이 이어진다. 산비탈을 돌아가니 을씨년스러운 날씨와 거무스레하고 칙칙한 바위, 그리고 여기저기 쓰러져 나뒹구는 고목들이 위험의 경고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곧이어 경사도가 대략 70도가 되는 바윗길을 밧줄에 의지해 오르는 세미클라이밍 구간이 시작된다. 팔뚝에 힘을 주고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며 가파른 경사의 바윗길을 오르고 나니, 설상가상으로 무지무지한 직벽구간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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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한 낭떠러지이다. 초긴장 상태에서 깎아지른 암벽을 밧줄 잡고 오른다. 자칫 미끄러지거나 발을 잘못 디디면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직벽구간을 오르고 나면 ‘시루봉(3.0㎞)·구왕봉(1.5㎞)·희양산(0.5㎞)’ 세거리를 만난다. 직벽 오름의 무사한 성공을 축하라도 하듯이 햇빛이 훤하게 비춘다. 마치 긴 어둠의 터널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다가 출구를 찾아 탈출할 때 펼쳐지는 광명과 같다. 자연이 준 경고와 찬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희양산 방향으로 약 100m의 참나무 숲을 지나고 나면 멋진 긴 암릉 구간이 펼쳐진다. 이 구간을 걸으면서 구왕봉과 그 뒤로 칠보산, 군자산을 조망한다. 암반 틈새에 뿌리를 박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소나무의 생명력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암릉 능선이 빚어 놓은 기기묘묘한 바위 끝에서 푸른 소나무와 아름다운 단풍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봉암사를 조망한다. 암릉 구간을 지나 참나무숲을 오르면 희양산 고스락에 이른다. 이곳은 숲으로 둘러싸여 조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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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양산 고스락에서 내려와 긴 암릉 구간의 중간쯤에 이르러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찬으로 삼고 맑은 공기를 향기로운 찬 내음으로 삼아 밥을 먹는다. 그리고 유유자적하게 커피 한 잔에 구름 한 모금으로 자연을 벗으로 삼는 시간을 즐긴다.지금이 이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다 감사한 마음뿐이다. 볼 수 있어서, 들을 수 있어서, 먹을 수 있어서 그리고 내가 존재할 수 있어서 말이다. 그러니 어찌 지족하지 않으며, 기쁘지 않겠는가.다시 가벼운 마음을 내어 나머지 암릉 길을 걷는다. 암릉 구간의 초입부에 있는 조망 바위에 이르러 겹겹이 층을 이루며 끊어질 듯 이어지며 너울대는 산등성을 조망한다. 한여름 싱그러운 청록으로 가득한 산야가 어느덧 어두운 녹갈색으로 잠들기 시작한다.암릉 구간에서 참나무숲을 거쳐 직벽구간 세거리에 도착하여, 시루봉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에서 성재 세거리까지는 0.5㎞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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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 숲의 산길은 녹색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나지막하게 조릿대가 길을 이끌고, 산비탈의 앙상한 참나무 숲 아래에는 조릿대가 초원을 방불케 할 만큼 풍성하게 서식하고 있다.조릿대 구간을 지나면 좌측으로 석축의 산성 흔적이 눈길을 끈다. 이곳은 해발 약988m 정도인데, 이곳에 석성(石城)을 쌓았다니 험준한 계곡의 지형을 이용하는 옛날 분들의 지혜와 노력이 참으로 대단하다.이곳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석성은 성벽의 높이가 1~3m, 폭은 4m이며, 길이가 약145m 정도이다. 이 성에 대한 자세한 고증이 없어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뿐이다.석성을 이리저리 관찰하여 보니, 그 정교함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성재 세거리, 즉 ‘시루봉(2.2㎞)·은티마을(3.2㎞)·희양산(1.0㎞)’ 갈림길에서 은티마을로 하산을 시작한다. 다음 시루봉 편에서는 이 하행코스로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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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 세거리에서 하산하는 초입 산길은 경사가 매우 가파르고 자갈이 낙엽에 덮여 있어 각별히 조심해서 하산한다. 자칫 낙상할 위험이 항시 도사리고 있는 구간이다.하행하는 산길은 온갖 기암괴석과 괴목, 그리고 채 떨구지 않은 단풍이 어우러져서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이티처럼 생긴 고사목의 밑동과 가지가지 형상으로 즐비한 커다란 바위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하행 길의 우측으로 대략 3m 높이의 범상치 않은 입석 바위가 서 있다. 마치 시 한 수 지어놓고 가란 듯이 평평하고 반듯하게 한지 발을 내려놓는다. 이어 길이가 약10m 정도에 걸쳐서 거대한 병풍을 펼쳐놓은 것 같은 장엄한 바위가 멋지게 펼쳐진다.한참 동안 병풍 바위에 정신을 빼앗긴다. 이처럼 자연의 힘이란 정말 대단하다. 이 불가사의한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연의 도(道) 뿐이다. 그런데 우매한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려 드니 엄청난 재앙에 직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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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 바위 구간을 나오면서 오목하게 들어간 바위 아래에 올망졸망한 산돌로 촘촘한 간격으로 아기자기하게 쌓은 앙증맞은 돌탑 무더기를 지난다.이어서 소나무와 바위가 서로 배타하지 않으면서 서로를 위하여 기기묘묘하게 어울리는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산세를 둘러보니 사방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하다. 계곡의 물은 메말라 희양폭포를 볼 수 없지만, 계곡의 형상은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아직 다 떨구지 못한 단풍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모습이 빈번하게 눈에 들어오니 이제 거의 경사진 산길을 다 내려온 듯하다. 메마른 계곡을 건너면 정성껏 쌓은 돌탑을 지나서 임도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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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는 온통 낙엽으로 치장하고, 절정으로 치닫던 단풍도 서서히 시들 해져 가는 깊은 가을날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이러한 자연의 순환을 생각하니 물극필반(物極必反)이 떠오른다. 모든 사물은 그 발전이 절정에 이르면 필연적으로 반대쪽으로 향해 간다.달도 차면 기울고, 과일도 익으면 떨어지듯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극에 달하면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을 어찌 지족할 줄 모르고 끊임없는 욕심을 부리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등산로입구로 나와 완만한 경사의 포장길을 따라 은티마을 주차장으로 돌아가면서 만추의 풍경화 속의 은티마을, 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무사처럼 당당한 희양산 줄기, 불타오르는 단풍 뒤편으로 뾰족 솟은 시루봉을 조망한다. 왕복 약 7㎞의 희양산 산행은 깊은 가을의 행복으로 찾아드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