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재에서 오르는 산행 코스[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괴산군 편
  • ▲ 가을꽃 맞이 청화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가을꽃 맞이 청화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청화산(靑華山, 해발 984m)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경북 문경시 농암면, 그리고 경북 상주시 화북면 등 3개 시군의 경계를 이루며 그 중앙에 우뚝 솟아 있다.

    이번 산행은 백두대간의 마루금상에 위치한 늘재(해발 380m)를 기점으로 한다. 늘재는 고갯길이 가파르지 않고 평평하게 늘어진 고개라 뜻이다.

    늘재에는 도로 양쪽으로 승용차 6대 정도 주차할 공간이 있고, 입구에는 “백두산 큰 산맥이 동으로 뻗어와서”로 시작하는 ‘백두대간(白頭大幹)’ 표지석이 서 있다.

    성황당 옆에는 “백두대간의 정기 받은 영역 늘재에 당(堂)이 있으니 백두대간 성황당이다”라고 시작하는 ‘백두대간 성황당 유래비(白頭大幹 城隍堂 由來碑)가 세워져 있다.

    이번 산행은 늘재를 기점으로 백두대간 정국기원단, 암릉 구간, 헬기장을 거쳐 청화산 고스락을 다녀오는 왕복 코스이다.
  • ▲ 늘재 입구의 백두대간 표지석과 그 뒤의 성황당.ⓒ진경수 山 애호가
    ▲ 늘재 입구의 백두대간 표지석과 그 뒤의 성황당.ⓒ진경수 山 애호가
    백두대간 표지석에서 왼쪽으로 완만한 능선을 오르면 하늘을 향해 곧게 자란 울창한 잣나무 숲길을 걷는다. 마치 휴양림 산책길을 걷는 듯 편안한 걸음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0.4㎞ 정도까지 이어진다. 청화산이 2.2㎞ 남았다는 이정표와 함께 야자 매트가 깔린 제법 경사진 오르막을 오른다.

    평평한 바윗돌 서너 개가 박혀 인도 블록처럼 생긴 제1조망점에 이르지만, 웃자란 소나무 가지가 시샘하듯 속리산 산등성을 살짝 가린다.

    이어 완만한 길과 오르막길을 반복해 오르다 보면 선녀가 갖고 놀던 공기돌처럼 생긴 바윗돌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곳에서 시야를 왼쪽으로 돌려 올라야 할 능선을 조망한다.
  • ▲ 제1조망점에서 바라본 속리산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 제1조망점에서 바라본 속리산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조망 바위에서 하행한 후, 제법 산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기 시작하는 매우 가파른 바윗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밧줄 난간의 도움을 받아 오른다. 초입 분위기와 180도 얼굴을 바꾼 산길에 자못 당혹스럽다.

    바위 구간을 오르는 동안 장구한 세월을 함께한 바위와 노송들의 조화를 본다. 서로 다른 물성이면서도 서로 미워하지 않는데, 어찌 인간들은 이리도 갈등과 분열이 끊어지지 않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바위에 올라 속리산 자락 옆으로 백악산과 묘봉 산등성을 조망한다.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면 나라의 편안을 기원하기 위해 제를 지내는 제단인 ’정국기원단(靖國祈願壇)‘을 만난다.

    비석 우측 공간에는 우리의 백의민족이 중흥하는 기운을 솟게 하는 성스러운 터라는 뜻의 ’백의민족 민족중흥 성지(白衣民族 民族中興 聖地)‘와 민족의 뿌리가 끊기지 않도록 자손만대 영원히 이어져야 한다는 ’불실기조(不失其祖)‘ 그리고 이곳이 한강, 낙동강, 금강의 분수령인 곳이라는 ’삼파수(三巴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 ▲ 가파른 바위 구간을 오르면서 바라본 백악산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 가파른 바위 구간을 오르면서 바라본 백악산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비석 좌측 공간에 새겨진 ’백두대간 중원지(白頭大幹 中元地)‘라는 글씨는 이곳이 백두산에서 뻗어 나온 백두대간의 중간으로 기운과 경관이 으뜸임을 의미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을 상기하며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성난 멧돼지처럼 드세고 거칠고 가파른 바윗길을 숨 가쁘게 오르면 소나무 한 그루가 자리한 제3조망점에 이른다.

    이곳에서 청화산을 만나기 위해 넘어야 할 첫 번째 봉우리와 조항산을 조망한다. 그리고 올라온 능선 끝으로 속리산과 백악산 능선이 양쪽 팔을 펼치고 세상을 품은 모습에서 포용을 배운다.

    한동안 하늘의 기운을 본받는 산군들로부터 기운을 듬뿍 받은 후, 가을옷을 입기 시작한 숲속의 가파른 돌밭 길을 오른 후, 무심하게 늘어진 밧줄을 잡고 암벽을 오른다. 산행 코스가 짧다고 얕잡아 볼 산은 결코 아니다.
  • ▲ 제3조망점에서 바라본 넘어야 할 봉우리와 청화산.ⓒ진경수 山 애호가
    ▲ 제3조망점에서 바라본 넘어야 할 봉우리와 청화산.ⓒ진경수 山 애호가
    힘써서 고된 길을 오른 보상일까? 소나무 아래 네모나고 평평한 바위가 다소곳이 자리한 쉼터에 도착해 가쁜 호흡을 잠시 고른다. 그리고 형형색색 여러 꽃이 만발한 평탄한 산길을 걸으며 다음 오름을 준비한다.

    다시 가파른 암릉을 밧줄 난간의 도움을 받으며 한발 한발 디디며 오른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소나무 숲이 참나무 숲으로 모습을 바꾼다.

    가파른 경사의 암릉 구간 옆으로 살짝 비켜서 물러앉은 바위가 시원한 조망을 제공한 덕택에 잠시 쉬어간다. 같은 산을 바라보지만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른 것은 한 측면만 보지 말라고 일깨우는 듯하다.

    그것은 시공간과 더불어 내 마음이 시시각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다시 거대한 바위를 우회하여 끝날 듯하면서도 한량없이 이어지는 암릉 구간을 오른다.
  • ▲ 청화산을 오르는 가파른 암릉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 청화산을 오르는 가파른 암릉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한 봉우리를 넘어서니 창공을 배경으로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청록의 참나무와 붉어지는 단풍나무가 시공간을 초월해 모두가 다 공존해야 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지난번 다녀온 조항산으로 가는 산등성을 조망하고 완만한 경사의 숲길로 고요하게 걸어간다. 수천 근의 철근보다 무거운 삶의 무게가 너무 버거워 한쪽으로 기울어졌던 마음이 공허해진다.

    집채만 한 바위 옆으로 우회하여 오르다가 등산로 우측 옆으로 칼날 바위에 올라 청화산을 바라본다. 여기서부터는 지나온 길보다 훨씬 완만한 등산로이지만 오르막은 오르막이다.
  • ▲ 칼날 바위에 올라서 바라본 청화산.ⓒ진경수 山 애호가
    ▲ 칼날 바위에 올라서 바라본 청화산.ⓒ진경수 山 애호가
    고도가 높아질수록 상고머리를 깎은 듯 고르면서 나지막한 참나무 잎들이 점점 갈색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한다. 오르는 길 중간중간에는 잔돌이 깔려있다.

    현실 세상이 아무리 부산스럽고, 거친 막말로 서로를 자극하는 요지경 속이지만, 자연은 정적 속에서 스스로 그러하게 변화를 마다하지 않는다.

    요란하지 않은 변화의 흐름을 타고 초가을의 감성을 듬뿍 느끼며 헬기장에 도착한다. 막힘없이 내달리는 시야에 마음을 활짝 열고, 저 너울대는 능선의 파도를 타고 어디론가 내달린다.
  • ▲ 헬기장에서 바라본 연엽산(중앙)과 시루봉(우).ⓒ진경수 山 애호가
    ▲ 헬기장에서 바라본 연엽산(중앙)과 시루봉(우).ⓒ진경수 山 애호가
    헬기장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청화산 능선이 시루를 올려놓은 모양의 시루봉(해발 876m)으로 이어지고, 그 능선 가운데 뒤로 연엽산(해발 791m)이 우뚝 솟아 있다.

    헬기장을 출발해 짧게 굵게 가파른 오르막을 넘으면 푸른 하늘이 하얀 분칠을 한 채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곳, 그곳이 청화산 고스락이다.

    늘재(2.64㎞)와 조항산(4.21㎞)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의 우측에 위치한 암반에 오르면 파란색으로 ’백두대간 청화산(해발 970m)’이라 새겨진 얼룩얼룩한 고스락 돌이 아담하게 자리한다.

    나뭇가지에 달린 오색찬란한 등산 리본과 청록과 황적갈색으로 변하는 나무들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니 가을 속으로 깊이 들어온 느낌이다.
  • ▲ 청화산 고스락.ⓒ진경수 山 애호가
    ▲ 청화산 고스락.ⓒ진경수 山 애호가
    고스락은 사방이 숲으로 가려져 조망이 거의 없다. 고스락 돌 옆에 앉아 어디론가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니 가을 정취를 돋우어 줄 따뜻하고 그윽한 커피 한 잔이 그립다.

    이제 올랐던 길을 따라 다시 늘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노란빛을 많이 담고 있는 늦은 오후의 햇살을 안고 하행하다 보니 노랗고 갈색으로 변하는 풀들의 농도가 더욱 짙어진다.

    게다가 청록의 참나무 잎도 역광을 받아 더욱 투명하고 맑은 청록색을 발한다. 산속의 모든 것들이 다 제빛을 강하게 나타내면서도 조화로운 수채화를 그려낸다.

    그것은 아마도 말없이 제 역할을 다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네 삶도 자연처럼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지금처럼 혼란스럽고 요란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 ▲ 하산하면서 만난 초목이 빚어낸 빛깔의 조화.ⓒ진경수 山 애호가
    ▲ 하산하면서 만난 초목이 빚어낸 빛깔의 조화.ⓒ진경수 山 애호가
    다양한 빛깔을 품은 참나무 숲길이 훤히 내려다보며 감회에 적는다. 높은 산에 오르면 천하의 세상이 훤히 보이는데, 인간은 어찌 높은 곳에 오르거나 늙으면 시야가 오히려 좁아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선택적 자유와 세상이 내 것이라는 착각, 탐구하지 않고 책을 멀리한 나태가 빚어낸 결과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하행하다가 나뭇가지 틈새로 모습을 드러낸 청화산 능선을 바라본다. 백두대간의 정기로 대한민국이 도법자연(道法自然)의 나라가 되길 기원한다.

    잠시 빌려 쓴 우리의 자연을 잘 보호해 세세손손 이어지길 바라며 약 5.2㎞ 산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