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本性을 찾아가는 山行[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괴산군 편
  • ▲ 636봉에서 바라본 조봉산.ⓒ진경수 山 애호가
    ▲ 636봉에서 바라본 조봉산.ⓒ진경수 山 애호가
    괴산군 청천면 고성리에 자리 잡고 있는 조봉산(鳥鳳山, 해발 680m)을 찾는다. 산행의 들머리는 상신리 마을회관이다. 마을회관 앞의 용대천에는 거울같이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조봉산은 옛날 옛적에 홍수가 났을 때 산이 물에 모두 묻히고 새 머리만큼만 남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마을회관 옆 포장길을 따라 200m 정도 이동해 좌측 산길로 들어선다. 이어서 30m 정도 평지를 걷다가 우측 방향의 소나무 숲이 우거진 능선으로 접어든다.

    소나무 낙엽들로 뒤덮인 산길을 걷다가, 문득 발밑을 뒤적거리니 엄청나게 큰 바위 위를 걷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문득 본성(本性)을 가리고 있는 아주 작은 티끌마저 버려야 본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음을 문득 깨친다. 이러한 상황을 조금 과장하여 표현하자면  황연대오(恍然大悟)라 하겠다. 그래서 이 큰 바위를 ‘황연대오 바위’라 이름 붙인다.
  • ▲ 황연대오(恍然大悟)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황연대오(恍然大悟)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나지막한 소나무 터널을 지나 너른 바위의 조망바위에 이른다. 이곳에 올라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큰 숨으로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자연의 기운을 흠뻑 받는다. 몸과 마음이 온전히 자연에 동화되어 가는 느낌이다.

    ​조망바위에 서면 가덕산, 금단산, 백악산 등이 가까이 보이고, 멀리 속리산 능선이 조망된다. 이 순간 자연이 주는 선물을 사양하지 않고 온새미로 받으며 모든 시름을 잊고 소소한 행복의 시간을 보낸다.
  • ▲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속리산 능선들.ⓒ진경수 山 애호가
    ▲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속리산 능선들.ⓒ진경수 山 애호가
    발길을 재촉해 산돌과 바위들이 뒤엉켜 있는 약간 거친 길을 오르니, 자그마한 조망바위를 만난다. 뭐 바쁠 것이 없으니 자연이 만들어준 공간으로 올라선다. 저 멀리 풍광을 바라보니 이 세상에서 나라고 할 만하게 하나도 없더라.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제법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고 호흡이 거칠어진다. 낙엽은 바싹 말라있고 건조해 푸석푸석한 흙길은 발을 디딜 때마다 흙먼지가 바지 밑단에 날라 붙는다.

    참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능선을 오르는데, 한 그루의 참나무가 옆으로 몸을 눕혀서 힘든 이들에게 잠시 앉아 쉬어 가라고 기꺼이 자신의 몸을 의자로 내어준다. 이것이 진정한 몸보시란 말인가.
  • ▲ 가파른 산길에서 참나무가 내어준 쉼터 자리.ⓒ진경수 山 애호가
    ▲ 가파른 산길에서 참나무가 내어준 쉼터 자리.ⓒ진경수 山 애호가
    다시 산길을 오르다 앞을 올려다보니 쭉쭉 뻗은 참나무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인다. 이제 고스락이 얼마 남지 않았다. 높은 산이든 낮은 산이든 고스락을 쉽게 내어주는 경우는 드물다. 하기야 고스락을 쉽게 얻는다면 고스락을 오르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소중한 가치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조봉산 고스락 돌 주변에는 억새풀이 무성하다. 고스락은 사방으로 참나무들이 담장을 친 듯 울창하게 에워싸여 있어 조망이 거의 없다. 그래도 조봉산이 있어 고스락이라는 자리에 올랐고, 고스락을 내어준 조봉산에게 감사할 뿐이다.
  • ▲ 조봉산 정상.ⓒ진경수 山 애호가
    ▲ 조봉산 정상.ⓒ진경수 山 애호가
    고스락을 가로질러 울창한 참나무 숲을 지난 후 소나무 군락지와 바위지대로 하산한다. 바윗길을 내려오면서 보일 듯 말 듯 한 조망에 마음이 설렌다. 이제 밧줄을 잡고 바위를 내려갔다 올라가고 다시 내려가는 구간을 반복하는데, 마치 산악훈련을 방불케 한다.

    바위에 오를 때마다 조봉산과 쌀개봉의 풍광에 심취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문다. 그렇다고 마냥 지체할 수 없으니 감흥의 순간에서 하차하여 다시 하산을 시작한다. 세 번째 밧줄 구간인 직벽을 안전하게 내려와 바위와 소나무들이 연출하는 절묘한 풍광을 눈과 마음에 마구 담아본다. 
  • ▲ 세 번째 밧줄 구간인 직벽.ⓒ진경수 山 애호가
    ▲ 세 번째 밧줄 구간인 직벽.ⓒ진경수 山 애호가
    능선에 우뚝 솟은 암봉(636봉)이 너무 위험해 비탈길로 우회한다. 능선을 내려와 비탈길을 5~6m 정도 이동하면 ‘자연 석굴’을 만나게 된다. 자연 석굴이라는 것이 믿어지질 않을 만큼 정교하게 형성돼 있다.

    우회 등산로로 이동할 때 큰 관심을 두지 않으면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쉬우므로 주변을 잘 살펴야 볼 수 있다. 육안으로는 모든 사물을 다 비춰보지만 실제 보이는 것은 마음에 둔 것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가 보다.

    다시 직벽에 가까운 네 번째 밧줄 구간을 오른다. 이제 636m 봉우리를 우회해 하산하게 되지만 아쉬움이 남아 이 봉우리에 다시 올라 조봉산 고스락을 돌아본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를 아쉬움을 남기고 하산을 계속한다.
  • ▲ 자연 석굴.ⓒ진경수 山 애호가
    ▲ 자연 석굴.ⓒ진경수 山 애호가
    하행 길에 쪼개진 바위를 지나고, 지나온 길을 몇 번이고 돌아보아도 그때마다 경치는 늘 새롭다. 우리의 삶도 앞만 보고 가지 말고 가끔은 잠시 멈춰서 지나온 흔적을 돌아본다면, 잊고 살았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자신의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지혜로운 방편이 아닐까?

    고즈넉하게 조망바위에 앉아서 봄바람을 맞으며 산에 부는 봄 향기를 맡고, 산새들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봄바람과 새소리에 마음을 빼앗겨도 그저 행복하다. 곳곳에 즐비한 기암괴석과 괴목들이 함께 어우러져 연출하는 풍광이 일품이다.
  • ▲ 하산 시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쌀개봉.ⓒ진경수 山 애호가
    ▲ 하산 시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쌀개봉.ⓒ진경수 山 애호가
    글로 표현할 수 없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가슴 벅찬 자연의 향연을 맘껏 느끼며 조심해서 바위 구간을 하산한다. 갑자기 눈앞에서 길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낭떠러지기 절벽뿐이다. 두리번거리다가 왼쪽으로 밧줄이 매달린 바위 구멍을 발견한다. 일부 산객들은 이 구멍 바위를 ‘산부인과 바위’라고도 부른다.

    구멍 바위를 빠져 내려와 천천히 좌우로 고개를 돌리면 볼만한 만물상들이 많다. 바위 구간이 끝나고 다시 참나무 군락지를 거쳐 안부에 이른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쌀개봉과 코뿔소 바위로 이어지는데, 오늘 산행은 상신리 방향으로 하산한다.
  • ▲ 일명 ‘산부인과 바위’라고 불리는 구멍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일명 ‘산부인과 바위’라고 불리는 구멍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하행하면서 우측으로 조봉산과 636봉을 바라보며, 산행의 발길을 흔쾌히 받아줘서 행복했고 고마웠다고 전한다. 봄놀이하듯 유유자적하게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어느덧 날머리에 이른다.

    마을길로 들어선 후 포장길을 따라 마을을 빠져나온다. 이제 용대천을 따라 형성된 37번 지방로(괴산로)를 만난다. 여기서, 우측 방향으로 200m 정도 이동하면 상신리 마을회관에 도착하여 원점 회귀한다.
  • ▲ 상신리 방향으로 하산하면서 바라본 조봉산과 636봉.ⓒ진경수 山 애호가
    ▲ 상신리 방향으로 하산하면서 바라본 조봉산과 636봉.ⓒ진경수 山 애호가
    산행을 통한 자연과의 대화는 본성을 청정하게 한다. 티끌에 가리어진 본성을 찾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이는 뿌리가 튼튼하지 않은 나무는 가지와 잎이 왕성할 수 없고, 뿌리가 깊게 박히지 않으면 세월의 풍파를 견딜 수 없는 것과 같다.

    본성이라는 뿌리를 견고하게 하지 않으면서 풍성한 나뭇가지와 잎, 아름다운 꽃이 피기를 바란다면 신기루를 쫒는 허망한 욕심일 뿐이다. 이제 자연처럼 무욕하고 청정함을 간직한 참다운 나를 찾아보는 산행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