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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수의 山 이야기] 괴산 속리산의 갈은구곡·옥녀봉·아가봉 ‘트레킹’

仁者와 知者의 모습을 겸비하고픈 산객들이 찾는 곳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속리산국립공원 괴산(傀山)편

입력 2023-01-24 14:01 | 수정 2023-02-04 09:30

▲ 갈은계곡의 겨울 풍경.ⓒ진경수 山 애호가

2023 계묘년이 중후하고 지혜로운 삶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정월 초이틀에 트레킹을 한다.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하면서 충북 괴산군 칠성면에 위치한 갈은구곡(葛隱九曲)·옥녀봉(玉女峰)·아가봉(雅佳峰)을 연계하는 트레킹이다. 

‘갈론교’ 부근에 주차하고, 시멘트 포장길을 걷다가 겨울 계곡 맛을 가까이서 느껴보기 위해 계곡으로 선득 내려선다. 날씨가 포근한 탓에 계곡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옥처럼 맑은 계곡 물과 영롱한 물소리가 마음을 텅 비게 한다. 

▲ 구슬 같은 물방울이 맺힌다는 갈은구곡 제4곡 옥류벽.ⓒ진경수 山 애호가

갈론교에서 약 0.7㎞를 이동하면 길 우측으로 ‘갈은동문(葛隱洞門)’이 나온다. 이 문을 지나면 갈은구곡의 선계(仙界)로 들어선다. 갈은동문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커다란 바위를 만나는데 이것이 갈은구곡 제1곡 장암석실(場嵒石室)이다. 맞은편 계곡 건너서 제2곡 갈천정(葛天亭)을 만난다. 이후 계곡 합류점에서 왼쪽 계곡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신선이 내려와 놀던 곳이라는 제3곡 강선대(降僊臺)가 나온다.

갈림길에서 옥녀봉 가는 길을 따라 약 1㎞ 올라가면 구슬같은 물방울이 맺힌다는 제4곡 옥류벽(玉溜壁)을 만난다. 마치 시루떡을 층층이 쌓아놓은 듯한 절벽과 거울처럼 맑은 물과 청정한 하얀 얼음이 모든 시름을 잊게 한다. 계곡을 따라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계곡물이 마음을 유약하게 만드니 노자(老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떠오르게 한다.  

▲ 노자의 상선약수를 떠오르게 하는 계곡물.ⓒ진경수 山 애호가

이후 비단 병풍같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제5곡 금병(錦屛)을 지나면서 계곡을 벗어나 산길을 오른다. 잠시 후 바위가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부르게 된 제6곡 구암(龜嵒)을 만나다. 다시 산길을 오르다가 계곡으로 내려가면, 고송 아래로 흐르는 물가에 지은 집이라는 제7곡 고송유수재(古松流水齊)와 일곱 마리 학이 살던 곳이라는 제8곡 칠학동천(七鶴洞天)의 안내판을 만난다.

고송유수재 구곡시(九曲詩)에는 신선처럼 살고 싶어 했던 마음이 고스란히 묘사돼 있어 소개한다.

鶴觀何曾在此中(학관하증재차중) 학은 일찍이 이 아름다운 곳을 어떻게 알았을까?
但從趣味與之同(단종취미여지동) 다만 나의 취미도 학과 같다네.
一局紋楸一間屋(일국문추일간옥) 바둑판 하나 새기고 한 칸 집 지어
欣然相對兩衰翁(흔연상대양쇠옹) 기쁘게 두 늙은이 마주 앉았네.

▲ 신선처럼 살고픈 마음이 녹아든 제7곡 고송유수재.ⓒ진경수 山 애호가

계곡을 건너면 제일먼저 신선이 바둑을 두던 바위라는 제9곡 선국암(仙局嵒)이 보인다. 선국암 위에는 바둑판이 새겨져 있고, 바둑알이 놓여 있는데, 살포시 눈으로 덮여있다. 바둑판 네 귀퉁이에 음각된 ‘四老同庚(사노동경)’은 네 분의 동갑내기 노인들이 바둑을 즐겼다는 뜻이다. 

신선암의 구곡시를 음미해보니 세상을 떠난 늙은 친구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로 보인다. 이 시가 어찌 이리도 가슴을 시리게 하는지 눈시울이 붉어진다. 한 백년도 못사는 인생,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시간, 얼굴 붉히며 살지 말아야겠다는 새다짐을 해본다. 

▲ 살포시 눈으로 덮인 신선암의 바둑판.ⓒ진경수 山 애호가

玉女峰頭日欲斜(옥녀봉두일욕사) 옥녀봉 산마루에 해가 기울어
殘棋未了各歸家(잔기미료각귀가) 바둑을 끝내지 못하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네.
明朝有意重來見(명조유의중래견) 다음날 아침 생각나 다시 와보니
黑白都爲石上花(흑백도위석상화) 바둑알 알알이 돌 위에 꽃이 되었네.

갈은구곡 제9곡 선국암을 지나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논어에 이르기를 仁者樂山 知者樂水(인자요산 지자요수)라 하지 않았던가. 어진 사람은 의리에 밝고 산과 같이 중후하여 변하지 않아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여 물과 같이 막힘이 없어 물을 좋아한다고 말이다. 

▲ 옥녀봉 오르는 탐방로에 자라는 소나무.ⓒ진경수 山 애호가

갈은구곡을 걸으면서 ‘지자요수(知者樂水)’가 되고자 하였으니, 이제부터 옥녀봉과 아가봉 산행을 통해 ‘인자요산(仁者樂山)'의 맛을 즐긴다. 메마른 계곡을 끼고 완만하게 경사진 잔설의 석산을 오른다. 안전한 산행을 위해 속리산국립공원에서 매달은 노란 리본에 이끌려 어느덧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고갯마루에서 우측으로 옥녀봉이 보이는데, 그곳까지 약 300m이다. 처음엔 완만하지만 갈수록 경사가 가파르고 거칠다. 가쁜 숨을 내쉬며 오르다가 잠시 쉬어가라는 소나무를 만나니 반갑기 짝 없다. 한 모금의 물의 에너지를 받아 막바지 산길을 오르니 옥녀봉(해발 599m)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옥녀봉의 모습을 닮은 정상석이 놓여 있고,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조망은 거의 없다. 

▲ 고사목 뒤로 바위로 이뤄진 아가봉의 산세.ⓒ진경수 山 애호가

옥녀봉에서 아가봉으로 가는 길은 처음엔 완만하지만 곧이어 경사가 급해진다. 갈은구곡을 즐기다 다친 무릎으로 인해 걷기가 불편한 탓인지 경사 길에서 미끄러지는 불상사를 겪지만 무사히 첫 번째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산길을 오르면서 가끔 뒤를 돌아보면 매끄럽게 솟은 옥녀봉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고즈넉한 산세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바위돌과 소나무들이 어우러진 경치를 즐긴다. 고사목 한 그루 뒤편으로 바위로 이뤄진 아가봉이 괴산호를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다. 아가봉을 오르기 위해 잔설이 있는 탐방로를 조심스럽게 하행하여 두 번째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 옥녀봉에서 아가봉으로 가는 중에 만나는 절벽.ⓒ진경수 山 애호가

암릉 구간을 타고 오르면 허리를 곧추세운 암벽을 만난다. 안전로프를 잡고 절벽을 오르고 나서 다시 완만한 암릉 구간을 오른다. 뒤를 돌아보면 좌측의 옥녀봉을 시작으로 지나온 봉우리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그래서 지나간 과거는 아름답고, 다가올 미래는 두려운 것인가?

아가봉을 오르는 암릉 구간은 소나무들과 기암들이 주변 경치와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아가봉(해발 541m) 정상에 도착하니, 정상석 뒤 바위에 산객들의 소원을 담은 작은 돌이 잔뜩 쌓여있다. 그 소원들이 검은 토끼해에 모두 성취되길 기원한다.

▲ 아가봉을 오르는 암릉에서 바라본 옥녀봉.ⓒ진경수 山 애호가

아가봉에서 잔설이 있는 참나무 숲길을 내려오면 500m 떨어진 지점에서 매바위를 만난다. 그 모습이 금방이라도 날개를 펴고 비상할 듯하다. 매바위의 왼쪽으로 돌아 하행한다. 

매바위에서 약 100m 떨어진 작은 암봉에 오르면 물개모습을 하고 있는 바위를 만난다. 그 모습은 바라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 이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석문을 통과하고, 미끄럼틀 같은 암반을 내려가고, 커다란 바위를 휘돌아 하행을 계속한다.   

이후 다가오는 494봉의 허리를 타고 갈론마을로 하산한다. 길은 경사가 가파르지만, 다행히 남향이라 잔설이 없어 큰 장애가 없다. 산록부를 무사히 내려오면 갈론마을로 이어지는 계곡을 만난다.

▲ 금방이라도 날개를 펴고 비상할 듯한 모습의 매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하얀 속살이 드러난 암반의 골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피곤을 싹 씻어준다. 이 계곡을 따라 1.2㎞를 이동하면 갈론마을에 도착한다. 참나무와 잡풀이 우거진 숲길을 따라 물소리에 장단을 맞춰가며 발걸음을 옮긴다. 너덜지대를 지나 계곡을 건너면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에서 마을 쪽으로 한 번 더 계곡을 건너면 갈론계곡 캠핑장에 도착한다.   

포장도로로 올라서면 아가봉을 오르는 들머리와 만난다. 이어 갈론계곡 방향으로 늘어선 펜션과 식당과 갈론 경로당, 그리고 ‘골골이 새긴 명시 갈론구곡’ 표지석을 지나면서 그윽한 겨울 산수의 만남인 오늘의 트래킹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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