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도리에 벗어난 정상석 바꿔야[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제천시 편
  • ▲ 암장으로 유명한 저승봉.ⓒ진경수 山 애호가
    ▲ 암장으로 유명한 저승봉.ⓒ진경수 山 애호가
    2022년 12월 11(일) 암장(巖浆)으로 유명한 저승봉(猪昇峰, 해발 596m)를 찾는다. 

    이 산은 충북 제천과 단양에 걸쳐 있는 금수산(1016m) 자락의 신선봉(845m)에서 조가리봉(해발 579m)을 거쳐 도화리로 뻗어 내리는 능선 위에 둥지를 틀고 있다.
  • ▲ 조가리봉을 병풍 삼아 암반에서 자라는 소나무.ⓒ진경수 山 애호가
    ▲ 조가리봉을 병풍 삼아 암반에서 자라는 소나무.ⓒ진경수 山 애호가
    오전 9시 30분경 솔이네펜션 뒤편 공터에 주차하고, 맞은편 등산로 입구로 가기 위해 도로를 건넌다. 등산로는 솜이불을 깔아놓은 것처럼 푹신거리는 낙엽이 수북하게 깔려있다. 처음부터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지만 조가리봉, 성봉, 작은동산의 능선을 감상할 수 있는 조망 바위에서 쉬어간다. 그러나 오늘은 안개와 미세먼지로 풍광이 산뜻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 ▲ 저승봉 암장.ⓒ진경수 山 애호가
    ▲ 저승봉 암장.ⓒ진경수 山 애호가
    두 개의 루프 구간과 나무뿌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등산로를 오르면 본 능선에 닿는다. 능선에 올라서면 암릉길이 이어지고 주변의 멋진 풍광을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 50m 더 진행한 후, 우측으로 조금만 하행하면 저승봉 암장을 만난다.  

    암장에서 다시 본 능선으로 올라와 암릉길을 따라 이어진 암벽을 루프에 의지해 오른다. 곧추선 바위를 몇 단계로 오르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힘든 것만큼 멋진 풍광으로 보상받는다.
  • ▲ 루프를 잡고 오르는 암벽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 루프를 잡고 오르는 암벽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암벽을 오른 후에 낙엽이 수북한 육산을 오르면 저승봉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서 맞은 편의 성봉, 중봉, 동산, 작은동산의 산줄기를 감상하고, 가물가물하게 남근와석(男根臥石)을 찾아 볼 수 있다. 

    정상석에는 멧돼지가 많다고 하여 부르게 된 저승봉(猪昇峰)이 아니라 미인봉(美人峰)이라고 적혀있다. 이 산의 바위 능선이 많아 그 모습이 미인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산객들이 붙인 이름으로 제천OO산악회에서 정상석을 세운 모양이다.
  • ▲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너른 암반.ⓒ진경수 山 애호가
    ▲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너른 암반.ⓒ진경수 山 애호가
    그러나 필자는 이 산의 이름이 탐탁하지 않다. 위대한 자연의 티끌에도 못 미치는 것이 인간이거늘, 어찌 자연을 인간, 그것도 미인에 비유한단 말인가? 미인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는 자연의 도리에 벗어난 것이다. 제천시 담당자에게 저승봉 정상석으로 바꿔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정상에서 조금만 하산하면 너른 암반이 마치 도마처럼 펼쳐진다. 잠시 선인처럼 신비하고 오묘한 자연의 풍광에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으니 발걸음이 훨씬 가뿐해지는 듯하다. 정상에서 육산의 등산로를 따라 약 400m을 내려갔다가 올라가면 아름마을 삼거리(해발 549m)에 도착한다.
  • ▲ 아름마을과 학현야영장 삼거리 사이의 암릉.ⓒ진경수 山 애호가
    ▲ 아름마을과 학현야영장 삼거리 사이의 암릉.ⓒ진경수 山 애호가
    이곳에서 저승봉의 모습을 보기 위해 약 200m 아래에 있는 전망대를 다녀온다. 미세 먼지에 더하여 역광이어서 그 모습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산세의 품격이 느껴진다. 

    학현야영장 삼거리(해발 693m) 방향으로 육산을 걷는데, 곳곳에 쓰레기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어 주섬주섬 주어 챙긴다. 산이 좋아 산을 찾지만, 산이 나를 좋아해서 받아주는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 ▲ 하산하면서 만나는 고드름 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 하산하면서 만나는 고드름 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저승봉에서 1.2㎞를 신선봉 방향으로 이동하면 학현야영장 삼거리에 이른다. 이곳에서 학현야영장 방향으로 1.4㎞ 하산한다. 이 코스의 등산로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고 정비가 덜 되어 있어 거칠고 험하여 깊은 주의가 필요하다.

    하산 등산로 방향이 거의 북향이어서 등산로의 흙과 낙엽이 뒤엉켜 얼어 붙어있고, 바위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그대로 얼어 고드름 폭포를 이루는 장면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 ▲ 못난이 바위가 있는 암릉길.ⓒ진경수 山 애호가
    ▲ 못난이 바위가 있는 암릉길.ⓒ진경수 山 애호가
    여러 형상의 기암괴석과 노송이 이루는 암릉길을 걸으면 마치 동양화 전시장을 둘러보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풍광이 아름답다. 인간이 접근하기 힘든 구간일수록 경이로운 모습을 보이는 자연에서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암릉길에서 멋스러운 기암괴석과 수묵화에 버금가는 경치에 눈과 마음이 끌러 잠시 길을 잃고 헤매다 정상 등산로를 찾는다. 그리고 곧이어 물개 바위를 만난다. 
  • ▲ 암릉길에서 만나는 물개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암릉길에서 만나는 물개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암릉길은 슬랩 구간을 내려오면서 마무리된다. 스랩 구간 옆에는 줄타기 경기의 심판관처럼 기암괴석 세 분이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다.

    암릉길이 끝나고 완만한 길을 내려오면서 바위의 이끼와 어우러진 고드름 폭포를 감상한다. 차디찬 얼음 속에서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는 모습이 어떤 환경에서도 인간의 본성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일깨워 주는 듯하다.
  • ▲ 암릉길 끝자락에 있는 슬랩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 암릉길 끝자락에 있는 슬랩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이후 넓고 평탄한 길을 한참 동안 걸으면 학현소야로와 만난다. 이 길의 우측에서 들리는 계곡 물소리의 리듬에 맞춰 1.2㎞을 걸어 원점 회귀한다.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