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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계의 지원을 등에 업은 정우택 의원이 새누리당의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정우택 의원은 16일 치러진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62표를 획득해, 55표에 그친 나경원 의원을 눌렀다.
정진석 전 원내대표의 남은 임기인 내년 5월까지, 매우 중차대한 시기에 새누리당의 원내지도부를 이끌게 된 정우택 원내대표의 향후 행보에 큰 관심이 쏠린다.
당초 정우택 원내대표는 차기 대선이 당연히 내년 12월에 치러질 것으로 예상됐던 시기에, 대권을 염두에 두고 차근차근 준비해오고 있었다. 일부의 출마 요청에도 불구하고 8·9 전당대회에 불출마했다. 대권주자는 대선 1년 6개월 전까지 선출직 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당헌·당규 때문이었다.
지난 9월 7일에는 독자적 싱크탱크인 '더좋은나라전략연구소'를 창립했다. 의원회관에서 500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상영된 샌드아트는 의미심장했다. '2017 19th'라 씌여진 태양이 지평선 너머에서 떠오르면서 우편에는 정우택 원내대표의 사진이 함께 부각됐다. 하단에는 '컨텐츠 있는 지도자 탄생'이라는 글귀가 흘렀다.
서청원 의원은 축사에서 "정우택 의원은 장관했고, 도지사했고, 정무위원장도 한 4선의 스마트한 정치인"이라며 "샌드아트 심상찮더라, 큰 그림 그리는 거 아뇨"라고 물었다. 사회를 맡은 정용기 의원도 "중부권 대망론의 중심인 정우택 의원을 힘찬 박수로 맞이해달라"고 추어올렸다.
이처럼 대권을 준비하던 정우택 원내대표가 급선회했다. 친박계의 강력한 출마 종용이 있었다지만, 급작스러운 선회 결정의 배경에는 어떤 판단이 서 있는 것일까.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8·9 전당대회 때와 지금은 모든 정치적 여건이 판이해졌다"며 "원내대표를 발판삼아 보다 큰 정치를 하려는 계획을 구체화해나가는 것 아니겠느냐"고 내다봤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국회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하면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통령 감으로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당헌·당규에 '1년 6개월' 제한을 푸는 부칙을 넣을지도 모른다"며 "(나의 대권 행보는) 유동적"이라고 말했다.
출마에 난색을 표하던 정우택 원내대표를 설득하기 위해, 친박계가 비대위 체제 전환을 위해 조만간 소집될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에서 문제의 '1년 6개월' 당헌·당규를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설도 새누리당 안팎에 파다하다.
이렇게 보면, 당과 나라의 위기 시점에서 원내대표를 맡아 '구원투수'로 등판하는 것은 '큰 그림'을 그리는데 더할 나위 없이 호기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친박계 원내대표가 서면 대화 상대로 인정치 않고 협상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막상 정우택 원내대표가 선출된 이상 마냥 대화를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우택 원내대표도 16일 경선을 앞두고 "모 야당 원내대표의 (대화 않겠다는) 말씀은 정치공세"라며 "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여야 대화를 안할 수가 있으며, 이 자리에서 의원 여러분이 뽑아준 원내대표를 상대하지 않겠다는 게 용납될 수 있느냐"고 일축했다.
향후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이 본격화되면 개헌특위 등 원내 현안은 산적해 있다. 당대표보다 더 주목받을 수 있는 게 원내대표다. 현안을 잘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이면 정치적 주목도는 자연스레 급상승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큰 그림'을 그려나간다고 보면, 이날 비록 친박계의 지원을 받아 당선됐지만, 원내대표로서 정치적 행보를 하면서 친박계의 의중을 전혀 배려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1996년 자민련으로 충북 진천·음성에서 당선되면서 정치권에 입문했다. 2000년 재선된 뒤에는 DJP연립내각에서 해수부장관을 지냈다. 이후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겨 충북도지사도 하고 4선 의원이 됐지만, 정치를 시작하게 된 것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JP)로부터고 정치적 원류는 자민련이다.
충북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친박계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친박 핵심을 이루는 세력과는 결이 다르다. 친박 핵심은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친 세력이지만,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른바 '친박연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JP 사이의 정치적 색채도 많이 달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 감안하면 오히려 과감한 '자기정치'에 나서면서 친박계의 색깔을 걷어내고 인적 청산과 쇄신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도 엿보인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날 정견발표에서 "당선되면 친박 실세들에게 2선으로 물러날 것을 요청하겠다"며 "최근 조직된 (친박계 사조직인)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의 해체도 요구하고, 나 자신도 '혁통 모임'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른바 '친박 핵심'의 의도는 2선 후퇴를 하는 척 하면서, 새로운 비상대책위원장과 정우택 원내대표를 조종해 배후에서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는 것이지만, 정우택 원내대표가 뜻대로 움직일는지는 미지수라는 관측이다.
7개월 전에도 유사한 선례가 있었다. 정진석~나경원~유기준 의원이 맞붙었던 지난 5월의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박 핵심'은 유기준 의원을 외면하고 정진석 의원에게 표를 몰아 당선시켰지만, 이후 정진석 의원은 국민만 바라보고 갈 뿐 '친박 핵심'은 외면했다. '친박 핵심'은 이러한 정진석 의원의 친(親)국민 행보에 이를 갈았다는 후문이다.
원내대표가 되는 데에는 당심(黨心)이 필요하지만, 대권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민심을 얻어야 한다. 이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다.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자신 때문에 분당이 됐다고 하면 정치인으로서는 더없는 오명이기 때문에, 원내대표를 발판으로 대권 꿈을 꾸려면 당이 깨져서는 안 된다"며 "비박계의 탈당과 신당 창당의 명분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친박 핵심을 정조준한 강공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