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산세·신원사의 봄 내음 만끽[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남 공주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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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 지정된 계룡산국립공원은 충남 공주시에 주로 위치하면서 일부가 대전시와 논산시, 계룡시에 걸쳐있는 충남 제일의 명산으로 꼽히는 곳이다.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上嶽),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下嶽),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中嶽)으로 하는 삼악(三嶽)을 봉(封)했다.이처럼 이미 역사에서 검증된 명산인 계룡산은 해발 847m의 천황봉을 중심으로 관음봉, 연천봉, 삼불봉 등 16개의 봉우리와 동학사계곡, 갑사계곡 등 10개소의 계곡으로 형성되어 있다.이번 산행의 목적지인 연천봉(連天峰, 해발 742.9m)은 충남 공주시 계룡면 하대리에 자리한 계룡산 연봉 중의 하나이다. 잇닿을 연(連), 하늘 천(天), 봉우리 봉(峰) 자(字)를 쓰는 이름처럼 하늘과 이어진 봉우리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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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국립공원 신원사탐방지원센터 주차장을 산행기점으로 삼는다. 연무의 장막에 가려진 계룡산 천황봉과 쌀개봉, 연천봉을 조망하며 신원사로 발길을 향한다.이번 산행은 ‘신원사탐방지원센터 주차장~신원사~보광원·고왕원 갈림길~보광원~연천봉~연천봉고개~고광원~주차장’ 원점 회귀의 약 8.3㎞이다.계룡산 신원사 일주문을 지나는 길섶에는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꽃들이 지기도 하고 다시 피어나기도 하면서 걷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오래 기다린 계절이기에 더 살갑게 다가온다.조잘대는 새소리와 함께 만물의 잠을 깨우는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니 도시의 망동과 욕심과 소음이 사라진 눈과 마음과 귓전이 평안해진다. 어느새 발길은 백제 의자왕 11년(651) 보덕화상에 의해 창건된 신원사 경내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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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들이 제자리에서 자신의 빛깔로, 자신의 모양으로 상춘객들을 기쁘게 하기에 분주하다. 그런 향기를 찾아다니는 신도나 방문객들도 분주하긴 마찬가지다.어찌 그뿐인가, 사찰에서는 부처님오신날 준비가 한창이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이미 오색찬란한 연등이 빼곡하게 달려 있고, 백매화, 홍매화, 연분홍 매화, 동백꽃, 목련, 수선화 등의 춘색(春色)들과 어우러져 천상의 화원에서 법회를 여는 듯하다.산사의 고즈넉함은 마침 사시기도 중인 스님의 목탁과 염불로 더한층 깊어진다. 계룡산에는 유명한 3대 사찰이 있다. 벚꽃으로 유명한 동학사,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갑사, 그리고 봄의 전령사인 매화로 잘 알려진 신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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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악 중 유일하게 남아있으며, 한국 제일의 산신 기도처로 알려진 중악단 앞에서 홍매화를 만난다. 이미 철 지나 시들어가고 있는 홍매화를 붙들고 아쉬워하다가 그나마 그때 그 모습을 온전히 간직한 하나의 꽃가지를 발견하곤 감사하다 여긴다.“時節因緣到來。自然觸著磕著。噴地醒去。(시절인연도래 자연촉저개저 분지성거)라, 시절 인연이 도래하면 자연히 부딪혀 깨쳐서 소리가 나듯 척척 들어맞으며 곧장 깨어나 나가게 된다.”(출처; 나답게 사는 행복, 진경수, 좋은땅 출판사)라는 말처럼 말이다.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모든 인연은 때가 되면 이루어지게 되어 있고, 인연의 시작과 끝도 모두 자연의 섭리대로 그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뜻이 아닌가? 한 시간 정도를 상춘객으로 보냈으니, 이제 중악단을 뒤로하고 오늘의 목적지인 연천봉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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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골짜기를 유유히 흐르는 청량한 물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송림이 울창한 포장길을 걷다 보면 금새 소림원을 지나 계룡산의 담(潭)에서 금빛의 용이 출현했다고 하여 붙여진 금룡암에 닿는다.금륭암을 둘러싸고 있는 푸른 대나무 숲을 지나자 신원사에서 0.65㎞ 떨어진 보광원과 고왕암 갈림길에 이른다. 어느 방향으로 가도 연천봉에 닿을 수 있으나 보광원 방향의 길은 능선 산행이고, 고왕암 방향의 길은 계곡 산행에 가깝다.우리는 보광원 방향으로 연천봉을 올랐다가 고왕암 방향으로 하행하기로 한다. 이정표를 지나자마자 가파른 길이 발길을 더디게 한다. 사람이든 만물이든 분주하기만 했던 신원사와 달리 보광원에 닿자 숨소리조차 사치스럽다는 듯 고요한 삼매의 극치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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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여래불께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쾌차하기를 기원하는 삼배를 하고, 산신각과 대웅전, 세심각·보광원을 지나 경내를 내려온다. 해우소 옆의 등산로 입구에는 등운암 1.8㎞를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능선으로 올라서자 온 공간에 맑고 상쾌한 공기, 그리고 은은한 솔향기가 퍼져 있어 온몸이 깨끗하게 정화된 듯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보광원에서 0.1㎞을 올라 이정표를 만난 곳, 햇살이 곱고 따스한 곳에는 수줍은 듯 진달래가 연분홍빛 얼굴을 살짝 내밀고 산들바람에 흐느적댄다.완만한 흙길을 산책하듯 걷던 편안하고 느슨한 마음은 곧이어 바윗길과 가파른 돌계단을 만나면서 긴장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오르자니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세월과 마주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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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나를 보고 이웃을 보는 것처럼, 산길을 둘러보니 활엽수와 소나무가 환상적인 조화로 등산로에 맑은 햇살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파른 데크 계단을 오르다가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계단참에서 잠시 머물며 가지런히 한다.이어 암반과 계단을 오르자 그 끝자리에서 계룡면 일대와 계룡저수지를 조망할 수 있는 첫 번째 조망점에 닿는다. 그 옆으로 소나무 숲 아래 평평한 바위에 앉아 자연의 숨결을 한껏 느낀다. 이어지는 능선길은 소나무 숲에 가려진 바윗길과 돌길이 반복되어 다가온다.울울창창한 송림을 가르는 돌길을 오르다 보면 지루함을 달래듯 오른쪽 소나무 가지 사이로 천황봉과 쌀개봉이 반갑다 손짓한다. 한동안 무심한 오름을 지속하다가 왼쪽 바위 앞으로 ‘탐방로 아님’ 푯말 앞에 선다.이곳에서 마른 입을 적시고 흐르는 땀을 식히며 발아래로 펼쳐진 풍경을 조망한다. 계룡저수지, 신원사 가람, 계룡면 일대의 전경이 시야에 들어찬다. 다시 오르는 나지막하고 신비스러운 자연적인 송림 터널길을 걷자니 하늘길을 걷듯 황홀감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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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왼쪽으로 돌탑 두 개가 소원을 비는 듯 연천봉을 바라보고 있다. 등운암을 0.5㎞ 남겨두고 오르는 길옆으로 천황봉, 쌀개봉, 머리봉 등이 모습을 빈번하게 드러내니 정상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칠고 가파른 돌길을 오르면 산은 잠깐의 휴식으로 심박 수를 낮추고 가라 한다.변함없이 이어지는 돌길은 허리를 곧게 세운 데크 계단을 만나면서 잠시 자신의 역할을 내어주는 여유를 부린다. 계단에 이어 기묘한 자연의 어울림을 연출한 송림 터널을 끝으로 등운암(騰雲庵)의 자태가 드러난다.계룡산의 여러 봉우리 중에서 하늘과 땅의 기운이 가장 활기차고 영험하다는 연천봉 아래에 자리한 등운암은 13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대웅전 앞에 서면 정면으로 천황봉과 쌀개봉과 마주하고, 왼쪽으로 지척에 문필봉과 그 뒤로 관음봉, 오른쪽 능선 끝자락으로 머리봉이 조망된다.등운암에서 산신각 방향으로 수령이 오래된 기품이 넘치는 소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가파른 암반을 오르면 곳곳이 조망점이 아닌 곳이 없다. 연천봉 정상을 이루는 암봉을 몇 걸음 앞두고 평상이 마련된 소나무 쉼터에서 걸음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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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아래 이런 평지는 자연의 배려일터, 이런 평지에 놓인 평상은 누군가의 노고로 마련된 것이니, 편안한 뒤안길에는 누군가의 수고와 격무(激務)가 있음이다. 요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작업에 몰두한 탓인지 체력이 예전 같지 않고 종아리에 경련이 일어난다.대한민국 방방곡곡 아직도 다닐 산도 많고, 여생을 하루하루 삶의 페이지로 ‘나답게 사는 행복’의 책을 영글어 가고 싶은 육십 중반을 넘는 나그네의 여정, 조금만 더 이어지길 바라면서 몇 발자국 앞에 있는 가파른 영천봉을 오른다.연천봉에 올라 천지자연의 기운을 받아갔을 숱한 사람들, 그 기운을 누가 받아 어떻게 썼는지 알 수는 없다. 허나 그 신명(神命)이 마땅히 받을만한 그릇을 지니고 올곧게 썼기를, 또 앞으로 그러하기를 바랄 뿐이다. 생선을 담던 그릇에 담으면 비린내가 나고, 향을 담던 그릇에 담으면 향내가 나듯, 뱀이 물을 먹으면 독이 되고, 젖소가 물을 먹으면 우유가 되듯 말이다.연천봉 바위에는 음각으로 새겨진 방백마각 구혹화생(方百馬角 口或禾生)이란 글씨가 있다. 이는 조선은 개국 482년 만에 망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는 의미란다. 조선의 운명을 거의 정확하게 예언한 셈이다. 그래서 더 연천봉의 기운이 영험하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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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봉 정상에는 정상석은 없고, 석각(石刻)으로 대신한다. 이곳에서 머리봉에서 삼불봉까지 이어지는 산의 기운을 온새미로 받아 지니고 연천봉고개로 하행한다. 데크와 돌계단을 내려가는데, 곳곳에 자리한 오래된 소나무는 그 옆자리를 산객들에게 내어준다.헬기장을 지나 조금 내려가면 ‘갑사·문수봉·연천봉·신원사’로 통하는 연천봉고개에 이른다. 이곳에서 신원사까지 2.7㎞ 하행을 시작한다. 아름답고 멋진 풍광을 두고 가는 마음에 아쉬움이 남지만,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고 내일을 준비하며 하행을 시작한다.허리를 곧추세운 데크 계단을 내려서자 이어 잿빛 돌계단으로 그 기세를 대신한다. 산 아래에서는 봄의 생기로 분주하지만, 이곳은 아직 앙상한 나뭇가지를 그대로 지닌 스산한 겨울이 자리한다. 그러나 잿빛 돌계단 밑에서 홍자색을 띠며 봄소식을 전하는 현호색 꽃이 단호히 겨울 자리를 물리칠 각오다.연천봉고개로부터 그렇게 가파르고 메마른 잿빛 길을 0.7㎞ 내려와서 가느다란 하얀 물줄기를 내리고 있는 계곡을 잇는 목교를 건넌다. 산비탈을 따라 급하게 완만하게 내려서는 길, 이제 그 길에도 봄소식이 있다. 생강꽃 봉우리가 움트기 시작하고, 나지막한 푸른 구상나무 군락지를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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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잿빛 너덜지대를 지나 황망한 세상일지라도 푸른 마음을 잃지 말라는 듯 조릿대 구간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조용히 차근차근 오르는 산객과 스쳐 지나간다. 다시 목교를 건너 산비탈에 널리 분포된 조릿대와 함께 하행한다.또 다시 목교를 지나 암반을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산객들의 출입을 배려한 마음으로 담장을 끊어놓은 고왕암 뒤편에 이른다. 이 암자는 660년(백제 의자왕 20)에 창건되었으며, 고왕(古王)이란 명칭은 백제의 왕자 융이 이곳에 피난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이 암자는 바위 지붕 아래 산신각을 마련하고, 암벽에 약사불상이 새겨져 있으며,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 뒤편의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약수가 일품이다. 돌계단을 통해 경내를 내려오면 울창한 대나무 숲길이 이어진다.이제 계곡을 따라 청량한 물소리에 청정한 마음 실어 고도를 낮춘다. 극락교를 지나 산비탈을 걸어 보광암과 고왕암 갈림에 이른다. 오늘 잠시 번잡하고 시끄러운 속세를 벗어나 스스로 그러함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행복했다. 그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며 내일의 ‘나답게 사는 행복’으로 승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