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감상하는 각호산·석기봉·삼도봉[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영동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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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지산(珉周之山, 해발 1242m)은 충북 영동군 용화면·상촌면과 전북 무주군 설천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산의 북쪽에는 각호산(角虎山, 해발 1202m), 남동쪽에는 석기봉(石奇峰, 해발 1239m)·삼도봉(三道峰, 해발 1177m)이 솟아 있다.민주지산은 원래 지역주민들이 민두름산이라 불렀는데, 이를 한자로 음차하면서 민두름이 민주지(珉週之)라 바꿔 불리게 되었다. 각호산은 옛날에 뿔 달린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이번 산행은 민주지산 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하여 민주지산과 각호산을 연계 산행 후 다시 휴양림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다.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매표소에서 입장료와 주차료를 내고, 족구장까지 올라오면 등산로 입구에 마련된 소형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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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지산과 각호산은 1000m가 넘는 고산이지만, 이번 산행의 등산로 입구 고도가 해발 600m 정도이어서 산행 초보자도 너끈하게 오를 수 있는 코스다.짙은 청록의 숲사이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안고 완만한 경사의 콘크리트 포장길을 오른다. 이정표가 잘 설치되어 있어 손쉽게 등산로를 찾을 수 있다.민주지산과 각호산으로 갈라지는 세거리에서 민주지산으로 상행하고, 각호산으로 하행하기로 한다. 세거리에서 가파른 콘크리트 길을 0.7㎞ 오르면 좌측 임도로 방향을 튼다.이제 잔뜩 힘을 줬던 장딴지에 긴장을 풀어주고, 숲속의 명상을 즐길 수 있는 평탄한 길을 걷는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임도길 옆에 우뚝 솟은 활엽수들이 서서히 가을을 맞이한다.저 나뭇잎이 무르익어 떨어지면 내년에 다시 돋겠지만, 우리네 삶은 익어서 사라지면 그만인 것을 왜 이리도 허둥지둥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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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를 출발하여 약 1.9㎞ 지점에 이르면, 임도 우측으로 민주지산 등산안내도가 세워진 곳, 그 옆으로 등산로가 열린다. 이곳에서 민주지산 꼭대기까지 1.4㎞를 오른다.반듯하게 쌓아 만든 자연석 계단을 오른 후, 자잘한 돌이 널려 있는 가파른 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경사도는 물론 발걸음의 무게도 점점 늘어나고, 자갈이 깔린 길에서 편평한 돌이 깔린 등산로로 바뀐다.등산로 옆으로 아침 햇살을 받은 연한 보랏빛 투구꽃이 마치 아기 속살처럼 부드럽고 앙증맞게 피어 있다. 덩달아 필자의 마음도 유연해지지만, 열기로 가득한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땀 배출을 그치지 않는다. 소리 없이 흐른 세월 탓인가, 이젠 제법 숲속에서 서늘한 공기를 느낄 수 있다.다시 돌계단을 오르다가 ‘용화천발원지(龍化川發源地)’ 표지석을 지나면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산길을 오른다. 이어 상수원보호구역 줄입금지 안내판을 지나 데크 계단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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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 계단에 이어 좁은 등산로로 접어든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조망이 터지기 시작한다. 민주지산 자연휴양림 방향을 조망한다. 이 산은 기암괴석이나 소나무가 거의 없지만, 산이 높아 주변 산군의 넘실대는 능선이 아름다운 물결을 이루며 파도처럼 밀려온다.민주지산 고스락을 0.3㎞를 남겨두고 주능선에 닿는다. 능선을 따라 들쭉날쭉한 바윗길이 이어지는 고스락 바로 아래에 이르러 우측 데크 전망대 방향으로 우회하면서 오른다.전망 데크에서 서쪽 방향으로 낮게 보이는 산군들을 감상하고, 데크 끝자리에서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억새 풀에서 피어난 하얀 솜털들이 흐느적대고 있는 고스락으로 오른다.사방으로 막힘없이 달려가는 시야가 가슴을 활짝 열게 하여 문을 없애니 바람이 걸림 없이 마실을 드나든다. 석기봉 방향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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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쪽으로는 부드러운 능선이 석기봉에 닿은 후 멀리 삼도봉까지 유연하게 이어가고, 북쪽으로는 앞으로 가야 할 최종 목적지인 각호산으로 눈길이 닿는다.활짝 웃고 있던 쑥부쟁이 꽃송이가 안내하여 올랐던 길로 다시 하행하면서, 편안하고 부드러운 화안시(和顔施)가 삶을 여유 있게 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민주지산에서 0.3㎞를 내려와 해발 1200m 지점의 세거리에서 각호산(2.9㎞) 방향으로 능선 산행을 계속한다. 고도가 높아 나지막하게 자란 활엽수들이 울창한 숲길을 이루고 비탈을 타고 오른 산바람이 서늘하게 몸을 스쳐간다.얼마 이동하지 않아 대피소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1998년 특전대원 200여 명이 천리행군 5일차 야간행군 도중에 폭설 및 강풍 등 기상악화로 6병의 장병이 순직한 곳이다. 추모비 앞에서 그들의 영면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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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키 높이를 웃도는 무성한 풀숲을 뚫고 지나간다. 잠시 각호산의 모습이 보였다가 다시 숲속으로 숨는다. 위험 요소를 최대한 줄이면서 잘 정돈된 등산로는 사색 코스로 손꼽히는 명품 숲길이다.각호산(1.5㎞)과 물한계곡주차장(3.6㎞)의 갈림길을 지나 울창한 청록 속에 붉은 기운이 감도는 참나무 숲을 가른다. 오르내리는 길에는 안전 밧줄이 설치돼 있고, 등산로에 깔려 있는 큰 바위에는 쪼아서 만든 발판이 새겨있다.평탄한 길을 걸으면서 가을 내음이 물씬 풍기는 쑥부쟁이 꽃을 바라보니 깊은 감동이 가슴속에서 울렁거린다. 아직 마음은 청춘인가 보다.이어 조망이 터지는 곳에서 지나온 민주지산을 바라본다. 목적지에 가깝게 다가갈수록 민주지산은 점점 작아지는 모습이다. 온순하게 이어지는 오르내리는 길을 걷다 보면 1000m 이상의 높은 산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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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호산(0.8㎞)·민주지산(2.2㎞)·민주지산자연휴양림(2.2㎞)·물한계곡주차장(3.0㎞)의 십자로 갈림길을 지난다.이곳에서 각호산 방향으로 완만하면서도 평탄한 길을 0.4㎞ 정도 걷다가 0.2㎞ 정도는 가파른 산길을 올라 작은 봉우리에 닿는다.이곳에서 우측으로 등산 리본이 매달려있는 곳으로 하행하다가 불쑥 앞을 가로막는 암봉을 만나 우회한다. 이 암봉이 각호산 고스락을 이룬 것임을 짐작하고도 남는다.이어 자연석 계단을 오르고 나서 좌측으로 각호산 고스락으로 발길을 잡는다. 우측으로는 도마령으로 가는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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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거리를 이동하니 창공을 배경으로 가을 조각을 품은 작은 목교가 보인다. 마치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오작교를 연상케 한다.목교를 건너자마자 뾰족하게 솟은 바위를 배경으로 각호산 고스락돌이 세워져 있다. 뾰족 바위로 다가가 각호산 꼭대기에서 민주지산, 석기봉,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조망한다.보이는 것은 온통 산들뿐이고, 사람이 살만한 평평한 땅 조각은 하나도 없는 듯하다. 그러나 산마루가 만든 깊은 골에서 물을 얻고, 막막하게 보이던 능선도 기슭에는 평지를 만들어 삶의 터전을 일구게 한다.이처럼 아무리 험난한 삶이라 할지라도 헤쳐나갈 길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단지 그 길을 간절한 마음으로 찾으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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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지산의 능선에 빼앗긴 눈길을 도마령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목교로 이어진 탐스러운 봉우리는 소주 한잔을 마시고 불그레해진 볼처럼 보인다.민주지산 자연휴양림이 있는 물당골도 아득하게 내려다보인다. 사방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광에 시공간을 잊고 천상에 머문다.‘산멍’하는 시간을 정처 없이 떠도는 구름처럼 정한바 없는 마음으로 풀어헤친다. 산은 언제나 도전하는 삶을 만들고 큰 돌, 작은 돌 가리지 않고 모두를 품는 마음을 일깨워 준다.잠시 빌려 쓴 아름다운 자연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조용히 떠나야 하는데, 어찌 그리 모질게 인간들은 극성을 피우고, 자연 무서운 걸 모르는지 참으로 어리석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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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호산에서 십자로 갈림길로 하행하고, 이곳에서 민주지산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2.2㎞를 하산한다. 고도가 서서히 낮아지면서 높게 자란 참나무가 이루는 청록의 숲이 싱그럽게 이어진다.무성하게 자란 풀숲을 헤쳐나가고, 조릿대 구간을 지나서 이번 산행에서 처음으로 만난 소나무 군락지에서 피톤치드 샤워를 한다.곳곳에 설치된 낡은 이정표를 지나 가파른 경사를 내려가고, 데크 계단을 내려와 임도를 걷는다.이내 또 만난 데크 계단에서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계단을 내려와 콘크리트 포장된 임도를 걸어 주차장에 도착해 약 8.5㎞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