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이름 金佛이 나왔다는 寶蓋山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괴산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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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군 청천면 태성리에 위치한 보배산(寶賠山, 해발 750m)은 아직 등산객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아 발길이 뜸하여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만끽할 수 있는 산이다. 그만큼 험난한 산행이 따르게 된다.이번 산행은 ‘떡바위~보대산 분기점~칠보산-보배산 합류점~제1봉~제2봉~제3봉~보배산 고스락~서당말~내쌍곡교~떡바위’로 자연의 순수함과 시원한 쌍곡계곡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코스이다.칠보산 등산로 입구로 알려진 떡바위를 내려서자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이어진다. 초입부터 가파른 등산로가 시작된다. 얼마 오르지 않아 야자매트 깔린 곳에서 좌측으로 희미한 샛길로 접어든다. 이곳은 칠보산 산행의 들머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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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흔적을 따라 산을 오른다. 등산 초보는 방향감각을 잃기 쉽기에 등산 경험이 풍부한 사람과 동행하기를 권장한다. 산행 초입은 흙산이고 완만한 길이어서 걷기 편하다.신록으로 깊숙하게 들어가 보니 참나무 군락지 속에 단풍나무가 유달리 돋보인다. 나부끼는 빛바랜 등산 리본을 처음 만난다. 제대로 산길에 들어선 모양이라 좀 편안한 마음으로 능선을 오른다.마음속의 욕심이 사라지듯 하늘의 구름도 서서히 걷히고 맑은 햇살이 비추기 시작한다. 가파른 오르막은 숨을 턱까지 차오르게 하고 비가 내리듯 땀을 쏟게 한다. 그에 대한 보답일까? 소나무와 환상의 콤비를 이루고 있는 하트 바위를 만난다. 그들의 사랑을 안고 바로 위의 조망 바위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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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망 바위에서 올라온 능선과 저 멀리 남군자산을 조망한다. 고도를 서서히 높이자 숲속에 숨어 있던 바위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한참을 올라 갈림길을 만난다. 좌측으로 가면 보배산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 바위로 이어지고, 직진하면 보배산 등산로와 합류하는 길이다.일단 좌측으로 약 300m를 내려가 본다. 커다란 바위와 우람한 소나무를 지나 하행하니 너른 암반이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암봉을 암시하는 보배산 산줄기를 조망하고 다시 등산로로 돌아온다.산등성이 점점 허리를 세우기 시작하자 심장의 고동 소리는 더 커지고, 고사목이 나타나는 횟수가 제법 잦아진다. 더욱이 조망이 터지면서 멋진 풍광을 볼 수 있어 눈이 호사를 부린다.집채만 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아 옆으로 돌아가니 누군가 스카프로 표식을 달아놓았다. 등산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종종 찾았던 곳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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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지막한 바위들이 뒤죽박죽 뒤엉켜 산 오르기가 녹록지 않다. 요리조리 방향을 바꿔가며 안전하게 오른다. 나무에 매달린 낡은 밧줄이 있지만, 네발로 바위를 오른다. 좌측으로 보배산 능선을 바라보니 쉽게 그 고스락을 내줄 것 같지 않다.직벽의 바위를 만나자 더는 네발로 오를 수가 없다. 매달린 낡은 밧줄의 상태를 점검한 후 안전함을 확인하고 붙잡고 오른다. 승자에게 주어진 선물처럼 다가오는 고사목의 예술품에 동공이 확장한다.기가 막힌 자연의 예술 조각품이다. 사람은 도저히 흉낼 수 없는 자연이 빚어낸 고도의 예술작품이다. 어쩜 이리도 섬세하고도 추상적일까? 늙어서도 죽어서도 이 고사목처럼 멋진 인생의 예술작품을 남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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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릉 구간을 오르면서 몸은 힘들지만, 정신은 맑아지고 마음은 풍부해진다. 멈춤이 없이 끝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법칙을 바로 곁에서 체험할 수 있다. 완전하다 완벽하다 여기고 순환이 멈추는 그 날이 종말일 것이다.조망 바위를 만나서 그늘진 칠보산 능선과 그 뒤로 덕가산과 악휘봉 등 괴산 명산들을 함께 조망한다. 흐르는 땀을 바람에 흩어 보내고 생명수로 마른 입을 적시고 다시 능선을 오르면 칠보산과 보배산을 잇는 합류점에 이른다.이곳에서 등산 리본을 만나 좌측으로 이동하는데, 이 등산로는 칠보산과 보배산 연계 산행으로 등산객들이 많이 찾아서 그런지 흔적이 또렷하다. 흙길의 완만한 경사를 따라 하행하여 안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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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를 지나면서 커다란 바위가 시샘하듯 앞을 막으니 옆을 돌아가서 본격적으로 보배산을 오른다. 칼바위로 형성된 거칠고 가파른 오르막에는 밧줄이 없어 네발로 기어오른다. 칼산 지옥에 비유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그래서 적선(積善)하며 살아야 한다.보배산 제1봉 도착 직전에 소나무를 보호하려고 쌓아 올린 석축을 만난다. 누군가의 그 공덕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감동하는 듯하다. 땅은 넓고 하늘은 광대해 엉성해 보이지만 천지의 순리를 어기면 그 드문 그물을 빠져나갈 수 없다.보배산 제1봉에는 고사목 몇 그루가 고스락임을 알린다. 앞으로 넘어야 할 봉우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보배산 제2봉을 향해 암릉 구간을 지난다. 징검다리, 붕어 비늘, 칼날 등과 같이 생긴 바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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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릉 구간을 지나 약간 하행한 후, 보배산 제2봉을 오른다. 이곳 역시 곧추선 칼바위가 고통을 맛보게 한다. 고통을 느끼니 살아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긴장감은 소나무와 바위가 펼치는 멋진 공연으로 조금이나마 해소한다.보배산 제2봉에 도착하니 소나무와 바위뿐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이 에너지 소비를 촉진한다. 다시 보배산 제3봉을 향해 완만한 길을 이동한다. 소나무에 가려진 제3봉 뒤로 웅장한 보배산 주봉이 보인다.가는 도중에 쓰러져 썩어가는 고사목이 돌을 삼키고 있는 모습을 본다. 인위적으로 연출할 수 없는 그 장면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그곳에서 보배산과 칠보산 능선이 이어져 부드러운 곡선미를 연출하는 풍광을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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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락내리락을 수차례 반복하고, 오로지 감각에 의지해 거리를 짐작하니 마치 광대한 우주 공간에 홀로 남겨진 듯하다. 이정표가 없는 깜깜이 산행 속에서도 바위 무더기가 있는 보배산 제3봉에 이른다.완만한 내리막을 하행하여 안부에 이르니 낡은 등산 리본이 반긴다. 이제부터 보배산 주봉을 오른다. 그러나 능선을 가로막고 있는 바위 슬랩으로 난관에 봉착한다. 안전 밧줄이 없이 바위를 오르기에는 경사가 너무 가파르다.바위 슬랩의 우측으로 암벽 트래버스를 한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안전하게 이동해야 한다. 바로 옆은 낭떠러지다. 이처럼 자신의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보배산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산을 오르지 않고는 그 답을 얻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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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물 터지듯이 쏟아지는 땀을 주체할 수 없다. 무더위에 지쳐가는 몸뚱이가 힘들다고 신호를 보내니 잠시 쉬어간다. 제1봉을 오르는 구간보다 몇 배는 더 험하다. 해발 750m에 불과한 산이라고 방심하면 큰코다친다. 난이도로 따지면 별 다섯 개 정도다.쉽사리 내줄 것 같지 않은 보배산 고스락을 향해 도전을 이어간다. 고스락을 바로 지척에 두고 가던 발길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그리고 지나온 보배산의 형제들을 비롯해 주변 명산들을 한꺼번에 조망한다.자연의 기운을 흠뻑 받아 가뿐하게 보배산 고스락에 도착한다. 암반 한곳에 자리 잡은 고스락 돌이 정겹다. 마치 손바닥 위에 구슬을 올려놓은 듯하다. 조망은 돌탑에서 바라보는 성불산 방향과 고스락 돌 앞에 놓인 바위에서 바라보는 남군자산 및 서당말 방향 두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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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락 돌 좌측으로 숲속에 숨겨진 가파른 경사의 등산로를 따라 하행한다. 하산길을 표리부동(表裏不同) 아니 이것보다 외유내강(外柔內剛)에 비유하면 좋을 듯하다. 겉으로는 완만하고 부드러울 것 같지만 속살은 이끼도 많고 미끄럽고 잔돌도 많아 부담스럽다.고사목이 새 생명을 키우는 모습에서 자연 순환의 도리를 배운다. 거친 돌길을 0.5㎞를 하산하면 원시림 같은 숲속을 걷는다. 햇볕은 거의 들지 않아 땅은 촉촉하게 젖어있고 사방천지가 이끼로 깔려있다.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날 때가 바로 이 기분일까?음산하여 느끼는 두려움과 더불어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을 순전히 맛볼 수 있다. 가파른 경사의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안부에 도착한다. 연노랑 색의 박쥐나무 꽃이 땅을 향해 수줍은 듯 피었다. 부귀를 누릴지라도 항상 겸손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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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에서 좌측으로 완만한 돌길을 하산한다. 그런데 등산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멧돼지들이 부지런히 밭을 일궈놓았다. 주변은 금방이라도 그놈들이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다.멧돼지 밭을 벗어나자 또 다시 등산로 흔적을 찾기 힘든 너덜지대를 지난다. 그래서 계곡을 따라서 조심스럽게 하산하기로 한다. 계곡 끝자락에 이르니 소규모 급수시설 배수지가 보인다.이제 서당말을 지나 내쌍곡교를 건너 쌍곡로1길을 걸어 떡바위로 향한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좌측으로 짙은 초록으로 속살을 감춘 보배산 능선을 조망한다. 떡바위에 도착하여 자연의 순수함을 만끽한 약 10㎞의 보배산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