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양산과 조령산으로 연결되는 산등성[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괴산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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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백화산(寶蓮山, 해발 1063m)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마성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이 산명(山名)은 겨울철 눈 덮인 산봉우리의 모습이 하얀 천을 씌운 듯이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백화산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황학산~조봉~이화령~조령산~신선암봉으로 연결되고, 서쪽으로 이만봉~희양산~구왕봉으로 연결되는 백두대간의 허리 역할을 하고 있다.이번 산행은 ‘분지만말~흰두뫼~떡갈매기~황학산~암릉 구간~백화산~평천지~분지안말’의 원점회귀 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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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안내도에서 마을 안쪽으로 5m 정도 이동하면 세거리에 이정표가 있는데, 좌측의 흰두뫼 방향을 들머리, 우측의 평천지 방향을 날머리로 삼고 산행을 시작한다.작은 계곡을 따라 콘크리트 포장길을 걷다가 우측으로 계곡을 연결하는 작은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들풀이 우거진 임도를 걸으면서 사방으로 널려 있는 들꽃들과 반갑게 인사를 한다. 잔돌이 깔린 임도를 오르다가 이정표를 만난다.이어 작은 골을 앞두고 세거리가 아닌 세거리를 만난다. 여기서 우측 숲속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백두대간을 배경으로 산비탈치고는 비교적 널찍한 초야(草野)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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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야를 지나서 빈집 옆으로 찔레꽃이 핀 산길을 오른다. 출발해서 찰나와 같은 시간에 이곳까지 오는 동안 날씨가 수시로 변덕을 부린다. 하늘도 이러하거늘 사람의 마음인들 오죽할까?한바탕 너덜지대를 지나고 낙엽송 군락지의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경사도가 커지고 마구 날뛰는 심장 소리가 귓가까지 들리는 듯하다. 오르는 등산로 옆으로 커다란 바위가 드문드문 스쳐 지나간다.신록을 비집고 나오는 부드럽고 맑은 햇살이 양지와 음지를 만든다. 이 장면처럼 우리네 삶도 밟음을 안고 어둠을 등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가끔은 밟음 추구를 멈추고 밟음을 등지고, 어둠을 되돌아보고 두 팔로 포옹할 줄도 알아야겠다.우공이산(愚公移山)처럼 한 발 한 발 딛는 발걸음에 급경사도 항복하고 드디어 백두대간의 산등성이 떡갈매기에 도착한다. 이곳은 안말 기점 2.8㎞ 지점이고, 이곳으로부터 백화산은 4.9㎞, 이화령은 5.1㎞ 거리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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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산등성의 완만한 흙길을 밟으며 산책하듯 길을 걷는다. 짙은 초록에 흰 줄을 긋듯 등산로를 비추는 햇살이 숲과 공기를 더욱 싱그럽고 상쾌하게 만든다.완만한 경사의 산등성을 오르니 자그마한 황학산(黃鶴山, 해발 912.8m) 고스락 돌이 등산로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비록 체구는 작지만 당당하게 백두대간의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황학산 고스락은 조망도 없고, 밋밋하여 고스락 돌이 없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이어 완만한 경사의 울창한 숲속을 하행한 후 수북이 쌓인 낙엽이 밟혀서 짓이겨져 있는 푹신한 길을 걷는다.한적한 자연을 혼자 독차지하고 걷자니 황송한 마음이다. 자연과 어울려 시간이 여여(如如)하다. 그러한 여여함을 느끼면서 자문(自問)한다. 내가 山을 좋아한다고, 山도 나를 좋아할까? 혹여 산이 싫어할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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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두뫼 삼거리를 지나면서 백화산까지는 1.1㎞가 남았다. 한참을 평탄한 숲길을 걷다가 길을 가로막는 바위를 빙 돌아 완만한 경사의 돌길을 오른다. 이어 산행의 제1조망점을 만난다.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운 자태를 뽐내는 백화산, 그 우측으로 곰틀봉에서 시작해 이만봉을 거쳐 하얀 속살을 드러낸 희양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의 산줄기를 조망한다.산 아래로 굽어 보이는 분지마을이 마을 이름 그대로 산골짜기 포대기에 싸여있는 분지 형태이다. 조망점 아래로 이어지는 암릉 구간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와 산행의 즐거움을 줄지 기대된다.조망 바위를 한 단계 내려가서 안전 밧줄을 잡고 두 차례 침니 바위를 내려간다. 그리고 암벽 트래버스 후 바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암벽을 오르면 백두대간 산등성에 이른다.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린 들풀들이 분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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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등성에 깔린 암반이 마치 용의 비늘과 같고 그것을 밟고 지나가니 용을 부리는 신선(神仙)이나 다를 게 없다. 코앞에 다가온 백화산을 막아서는 바위를 휘돌아 오른다.비탈을 오르면서 고목들의 다양하고 기이한 모습으로 수령(樹齡)이 들었음을 표현하고, 그들 옆에서 다소곳이 핀 앵초가 마치 할아버지 앞에서 재롱떠는 앙증맞은 손녀와 같다.옥녀봉 갈림길을 지나 0.1㎞를 오르면 백화산 고스락에 이른다. 이곳의 전망은 남쪽으로 문경시 상내리, 뇌정산이 조망될 뿐이다. 이처럼 고스락의 조망이 별로 없으면 경험상 고스락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조망 좋은 장소가 있기 마련이다.고스락에서 돌길을 따라 약 0.2㎞ 하행한다. 좌측으로 키 높이 숲속에서 뾰족 튀어 오른 바위 머리 방향으로 들어가면 전망 좋은 백화산 제2조망점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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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광에 천지(天地)에 감사할 뿐이다. 이곳에서 부드러운 유선형의 백화산 고스락이 가깝게 조망되고, 문경시 성내리와 뇌정산도 보인다.그리고 앞으로 넘어야 할 평천지 방향의 봉우리들과 그 끝자락에 희양산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암릉 구간을 하행하면서 백화산 기점 0.4㎞ 지점인 만덕사 갈림길을 지난다.이후 돌길을 0.1㎞을 더 이동하면 성내리 갈림길을 지나서 바윗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하행을 계속한다.단풍나무 군락지를 지나면서 나무가 바위 군락에 포위를 당한 건지, 아니면 나무가 바위에 숨은 건지 애매모호(曖昧模糊)한 장면에서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삶의 지혜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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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을 걸으면서 작은 들풀에도 감사한 마음이 생기고, 이제까지 수많은 등산객을 지켜본 백두대간에 하나를 더할 수 있는 황홀함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이제 암봉(岩峰)을 안전하게 지나게 해 주는 첫 번째 데크로드를 걷는다. 이곳을 걸으면서 사방이 훤하게 조망된다.곧바로 지나갈 봉우리 뒤로 평천지, 그 뒤로 곰틀봉과 저 멀리 시루봉까지 조망되고, 뒤를 돌아보면 흰두뫼에서 백화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의 줄기, 그 뒤로 주흘산과 부봉을 조망하는 선물을 받는다.첫 번째 데크로드를 내려서서 산등성을 오르는가 싶더니, 암벽을 따라 설치된 두 번째 데크로드를 통해 봉우리를 우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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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로드를 걷다 보면 백화산 전망대에 이른다. 이곳에서 백화산의 멋진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평천지 갈림길에 도착하여 분지리로 하산한다.평천지 갈림길에서 지난번 다녀온 이만봉이 3.5㎞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하산 초입부는 비교적 가파른 길을 내려간다.이후 왔다 갔다 하는 이른바 지그재그로 하행하기 때문에 자칫 밋밋하고 지루할 수 있으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변화무쌍한 자연의 신비를 여여하게 관찰할 수 있다. 수시로 바뀌는 하산길과 함박꽃나무의 수줍은 하얀 미소를 비롯해 들꽃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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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지안말까지 2.9㎞, 백화산까지 3.0㎞라고 알려주는 이정표를 지나자 속리산둘레길 8구간 이정표를 만난다.들풀이 무성한 낙엽송 군락지를 지나자 해발 613m의 임도로 이어진다. 그리고 괴산에서 문경으로 넘어가는 구간이라는 속리산 둘레길 안내판을 만난다.급경사의 임도는 콘크리트 포장이 돼 있고, 완만한 임도는 비포장길이다. 울창한 숲속에서 들리는 새소리와 물소리가 무사 산행을 축하하는 듯하다.길가에 탐스럽게 열린 투명하게 빨간 산딸기의 유혹에 넘어간다. 이후 이정표를 만나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1.6㎞를 더 하행하면 주차한 곳에 도착한다. 이로써 총 12㎞의 백두대간 황학산·백화산 산행이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