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松과 어우러진 巖陵 산행의 묘미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제천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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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시 청풍면 학현리와 수산면 능강리의 경계를 이루는 신선봉(해발 845m)을 찾는다. 이 산은 금수산(해발 1015m)과 갑오고개 사이의 900봉(일명 단백봉)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산줄기의 최고봉이다. 신선봉은 저승봉(해발 596m)과 조가리봉(해발 562m)을 거쳐 도화리 취적대 부근에서 청풍호로 빠져든다.충청북도학생수련원 제천분원(마음쉼터) 입구의 울타리 옆으로 승용차 10여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에 도착한다. 학현소야로를 건너 학현식당 옆에 신선봉 등산로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이곳을 들머리로 삼으면 학봉을 거쳐 곧바로 신선봉에 오를 수 있으나, 암릉과 기암괴석을 만끽하기 위해 저승봉 방향으로 0.2㎞ 이동해 비채하우스 옆 산길을 들머리로 삼는다.이 상행 코스는 지난겨울에 저승봉을 다녀올 때 하행 코스를 삼았던 경험이 있다. 앙상한 나무가 파릇파릇하고 상큼한 살이 붙어 토실토실해진 숲길을 오르니 느낌이 그때와 사뭇 다르다. 산길 입구를 지키는 붉은병꽃나무의 환한 꽃 미소를 받으니 저절로 화안시(花顔施)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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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초입은 완만한 흙길이지만 0.5㎞ 지점을 지나면서부터 가파른 바윗길이 이어진다. 그로부터 얼마 오르지 않아 길 건너에 우뚝 솟은 성봉(해발 825m)과 중봉(해발 885.6m)의 산줄기를 조망할 수 있다. 올라온 거리와 고도에 비해 과분할 만큼 멋진 풍광이다.나무뿌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산길,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가파른 길을 올라 0.8㎞ 지점에 위치한 슬랩(slab)을 만난다. 이후 바위 틈새를 비집고 더 오르면 일명 ‘말 바위’를 만난다. 바위 옆으로 돌아가며 산을 오를 때는 나무뿌리를 발판 삼으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다. 그런가 하면 급하게 기울어진 바위가 느닷없이 나타나지만, 다행히 바위의 패인 골에 설치된 밧줄의 도움을 받아 오른다.가파른 산비탈에 밉지 않게 자리한 바위 옆으로 조심스럽게 휘돌아 오르고, 노송의 지혜를 받아 힘차게 산길을 오르면 일명 ‘물개 바위’를 만난다. 물개바위 밑으로 돌고래 머리를 닮은 바위가 청풍호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아쿠아리움 속에 있는 듯하지만, 물개 바위를 가만히 살펴보니 마치 참새를 닮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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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바윗길을 오르면 동산과 신선봉의 두 산줄기 사이를 지나는 학현소야로가 이루는 멋진 풍광을 한눈에 조망한다. 산을 오르는 동안 함께 따라온 우측의 암릉이 지척이고, 그 뒤로 희미하게 청풍호가 보인다.아침햇살을 안으며 연한 초록빛으로 물감을 풀어놓은 듯 암반 위의 숲길을 걷다가 밧줄을 붙잡고 바위를 기어오른다. 크기를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바위가 길을 막을 때는 물이 흐르듯이 아랫길로 휘돌아 바윗길을 오른다. 가파른 구간에는 어김없이 밧줄이 매어져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안전하게 오른다.잠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들 돌아보니, 한바탕 힘을 쏟으며 오른 조망 바위에서 시작해 아래로 뻗은 능선과 듬직한 성봉의 산줄기가 겹겹이 펼쳐진다. 이어지는 연초록의 숲바다 속을 헤엄치듯 빠져 오르면 일명 ‘못난이 바위’를 지난다. 그러나 필자는 못난 얼굴이 아니라 미소를 잔뜩 머금은 얼굴과 같아 ‘미소 바위’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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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바위를 지나 암릉 구간을 오르는데, 쉽사리 발길을 옮길 수가 없다. 사방으로 펼쳐진 푸른 산줄기들이 겹겹이 펼쳐지니 눈길이 닿는 곳마다 절경이 아닌 곳이 없다. 그러나 푸른 물줄기를 자랑하는 청풍호가 산자락 끝을 품고 있으나 미세먼지로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못내 아쉽다.미세먼지와 황사로 시달리는 봄철을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인간들이 그 알량한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정쟁을 일삼고, 국가 간 갈등과 전쟁을 벌이는 동안 지구는 병들어 그 고통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오늘이 4월 22일 ‘지구의 날’이다. 지구의 환경보호에 나로부터 시작돼야 한다.암릉 구간을 지나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보상이라도 받듯이 청풍호로 빠져드는 산자락들의 멋진 풍광이 다가온다. 우측의 암릉 자락 뒤편에 우뚝 솟은 저승봉 암장이 마치 청풍호를 바라보는 신선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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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오면서 미인의 속눈썹처럼 치켜세운 꽃술을 지닌 철쭉꽃들이 환한 미소로 반긴다. 다시 짧은 암릉 구간의 끝자락에 서니, 이어서 오르게 될 주능선 합류 봉우리와 그곳에서 암릉 구간으로 이어지는 774봉, 그 뒤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신선봉 능선이 조망된다.암릉에서 바위 틈새로 빠져 안부로 내려온다. 이제 주능선을 향해 긴 머리털이 뒤엉킨 것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난 소나무 뿌리의 덕택으로 가파른 길을 쉽게 오른다. 낭떠러지 비탈에 자리 잡은 거대한 바위 옆을 무사히 통과한 후 너덜지대를 거쳐 산길을 오른다.갈색 낙엽 위로 흩어진 철쭉 꽃잎이 무상함을 일깨운다. 겨울 내내 빙벽을 만들었던 바위에는 초록 색채를 띤 이끼가 움트고 있다. 마침내 주능선 합류지점에 도착한다. 이 세거리는 출발 기점에서 1.7㎞ 지점이고, 저승봉까지 2.1㎞, 신선봉까지 2.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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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리에서 신선봉으로 출발할 때는 흙길이지만 이내 완만한 경사의 너른 암반 위를 걷는다. 암반의 갈라진 틈새 사이로 줄지어 자라는 소나무가 길을 안내한다. 그 모습이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새가 수 만리 날 수 있는 기류를 탈 줄 아는 것과 같고, 물고기가 수 천리 거슬러 올라가는 물길을 가를 줄 아는 것과 같다.암릉 끝자락에 올라서면 톱니처럼 암봉으로 이어지는 774봉(학봉)이 조망된다. 가파른 암릉에서 밧줄을 붙잡고 안부로 내려온 후 다시 봉우리를 오른다. 참나무 숲으로 우거진 흙길과 암반 길을 오르다보면, 뾰족하게 솟아오른 손바닥 바위에 해가 걸려 시커멓게 다가오니 그 모습이 한층 웅장해 보인다.그 바위 옆으로 거대한 암봉 위에 설치된 손바닥 바위 전망대가 올려다 보인다. 큰 바위 사이로 늘어진 밧줄을 잡고 오르면 손바닥 바위가 위치한 바위군락을 지나 손바닥 바위 전망대에 이른다. 이곳에서 청풍호반과 그 주변 산들을 시원하게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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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가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 발걸음이 저절로 느린 걸음이 된다. 다양한 모양의 바위들이 노송, 애송, 고사목, 철쭉 등 어느 것과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 이것이 화광동진(和光同塵)이란 말인가.깎아질 듯 솟아오른 암벽 위를 지나가면 큰 바위를 넘고 또 넘는다. 적층 바위를 만나 넘어갈 수 없으니 바위 옆을 휘돌아 넘어간다. 밧줄이나 발판을 설치할 수 없는 구간은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계단을 내려서면 가파른 암벽구간을 곡예를 하듯 건너간다.이렇게 암릉 구간을 세미클라이밍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며 오르기를 반복한다. 손바닥 바위에서 774봉까지 0.8㎞ 암릉 구간이 신선봉 능선 중 가장 험한 구간이다. 초보자일 경우 경험 많은 사람과 동행하는 것이 좋겠고, 겨울철이나 눈이 오는 날씨에는 특히 주의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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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준한 암봉을 오르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을 바라보고 있자면 마치 신선이 된 듯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만나는 기암괴석이 수두룩하여 일일이 이름을 붙이는 것이 번거롭다. 암릉을 거닐면서 너울너울 춤추는 명산들의 능선과 청풍호반을 감상할 수 있는 이 구간이 신선봉 산행의 백미다.병든 노송의 나뭇가지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는 등산객들의 모습을 목도한다. 아픈 노송이 인간의 무게를 감당하는 이중고를 겪는 셈이다. 그들을 대신하여 참회한다. 기념촬영도 좋지만 가능한 초목과 직접 접촉하지 말고 눈으로, 사진으로 담아갔으면 좋겠다. 산행할 때마다 느끼는 이 감정이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커다란 ‘킹콩 바위’를 지나 암릉 구간을 거니는데, 이 절경을 온새미로 보여주기 싫은지 하늘이 시샘하듯 구름이 드리운다. 킹콩 바위를 지나 뒤를 돌아보니, 킹콩 바위가 벼랑에 가까스로 붙어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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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길을 바라보면 불끈불끈 솟은 바위들이 일렬로 나열되어 있고, 하나의 암봉 너머에 774봉이 우뚝 솟아있다. 774봉의 암릉 자락은 학현마을로 가파르게 뻗쳐 내리고 있는 모습이다.암릉 옆의 슬랩에서 미세먼지로 인해 희미하게 보이는 금수산과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 월악산을 가늠해 본다. 이어 엉덩이처럼 생긴 바위를 넘어서면 금수산을 배경으로 ‘거북 바위’가 학봉을 향해 자리하고 있다.거북 바위 옆에는 예쁜 ‘엉덩이 바위’가 웃음을 자아낸다. 이어 암릉을 계속을 오르다가 암봉 고스락 도착 직전 금수산이 바라보이는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쉬어 간다. 다시 암봉 고스락을 넘어 안부로 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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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암봉에서 하행하는 중간쯤에 깎아지른 절벽을 2단 계단을 통해 안부로 내려온다. 그리고 774봉을 향해 허리를 곧추세운 계단을 오른다. 이 계단 끝이 곧바로 774봉 고스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계단이 끝나면 손은 밧줄을 붙잡고 발은 바위에 박힌 발판을 밟으며 직벽을 오른다. 곧이어 바위에 촘촘하게 박힌 고리에 끼워진 밧줄을 붙잡고 바위를 안고 돌아간다. 다시 밧줄을 잡고 경사진 암릉을 오른다. 이 구간의 밧줄들을 최근에 새것으로 교체한 듯하다.철쭉꽃의 축하를 받으며 774봉 전망대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근경으로 지나온 암릉 구간과 원경으로 굽이치는 청풍호반을 조망한다. 이곳에서 학현야영장까지는 2.5㎞, 저승봉까지는 3.4㎞이고 신선봉까지는 1.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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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4봉을 지나 신선봉으로 향한다. 출발하면서 철쭉꽃이 만발한 소나무 숲길을 내려가지만 이내 참나무 숲으로 바뀌어 이어지면서 높지 않은 구릉을 넘나든다. 숲이 우거져 주변 조망이 신통치 않다.신선봉 고스락까지는 순탄한 흙길이 계속되지만 멧돼지들이 파헤쳐서 울퉁불퉁해져 있다. 어찌나 심하게 뒤집어엎었는지 발 딛기가 불편한 곳이 적지 않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흙길이라 편하게 산행할 수 있다.신선봉 고스락(해발 845m)에는 누군가 쌓은 돌탑 옆으로 까만 고스락 돌이 놓여있다. 신선봉은 일명 ‘학바위봉’으로도 불린다. 774봉이 마치 날아오르려는 학을 닮았다고 해서 학봉이라 불린다고 전한다. 산 아래 마을 학현리의 이름도 이 바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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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봉 고스락에서 학생야영장까지 2.8㎞이고, 금수산까지 2.5㎞이다. 이곳에서 상학현마을로 하산한다. 하산 길은 흙길이지만 이곳 역시 멧돼지의 흔적이 요란하다. 완만한 산길을 0.8㎞를 하행하면 참나무 숲이 끝나고 임도를 만나다.이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서 야생화 축제를 만끽한다. 0.8㎞ 정도 내려가면 경사가 급해지면서 왼쪽 계곡에서 물소리가 크게 들린다. 숲을 헤치고 들여다보니 암반 위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다. 이 무명의 작은 폭포를 ‘학현 폭포’라 이름을 짓는다.한동안 하행하다가 만나는 치유센터 세거리에서 상학현마을로 향한다. 마을에 도착하여 학현소야로를 따라 제천경찰수련원, 철쭉꽃이 피기 시작하는 도깨비도로를 거쳐 1.5㎞ 정도를 내려오면 마음쉼터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다. 이로써 총 8.83㎞의 신선봉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