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산사와 경이로운 자연이 주는 明鏡止水[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제천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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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최강의 한파가 지속되고 있지만 2022년 12월 18일(일)에 이름이 정겨운 제천시 수산면에 있는 자드락길을 찾는다. 자드락길은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작은 오솔길을 말한다고 한다. 자드락길은 총 7개 코스 58㎞에 걸쳐 넓게 펼쳐져 있는데, 오늘은 그 중 제2코스 정방사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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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40분경 정방사길의 들머리인 능강교 주차장에 도착한다. 자동차 온도계는 외부 기온이 영하 11도라고 표시한다. 능강교에서 정방사까지 왕복 4.4㎞ 정도이지만 강추위에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출발한다.능강교를 건너자마자 곧바로 좌측으로 길을 내려선다. 근엄한 자태를 뽐내는 노송을 지나 100m 지점에서 능강계곡을 잇는 작은 다리를 만난다. 이 다리를 건너면 정방사길로 가고, 우측으로 올라가면 제3코스 얼음골생태길로 들어선다. 이 다리를 건너면서 계곡을 내려다보니 계곡물이 맑고 깨끗하며 고요하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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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 내린 눈을 치운 흔적이 있지만 여전히 잔설이 많은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다. 오르면서 만나는 맑은 깨끗한 계곡물과 세상을 공평하게 하는 백설(白雪)이 필자로 하여금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잡념과 허욕을 하나 둘 씻어내고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가파른 오르막길을 걷지만 강추위로 인해 몸이 좀처럼 열을 받지 않는다. 금수산 자락의 차고 신선한 공기가 코와 입으로 들어오면서 막힌 가슴을 활짝 열어젖힌다. 두 개의 주차장을 지나면 금수산과 청풍강의 맑은 물과 바람이 꽃향기와 어우러져 아름답게 펼쳐진 절, 정방사(淨芳寺, 해발 450m)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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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실어 나르는 삭도(索道)의 좌측으로 경사진 사면을 둘러가는 돌계단을 오른다. 일주문 역할을 하는 석문(石門)을 통과하면 곧바로 햐얀 눈으로 뒤덮인 해우소(解憂所)를 만난다. 이곳에서 근심과 걱정을 훌훌 털어버린 무심(無心)으로 경내로 접어들어 해탈을 이루는 삶을 기원한다.해우소를 지나면 바로 우측에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佛音)을 전파하는 범종각이 있다. 범종각 너머로 망덕봉((望德峰, 해발 926m)과 비단을 깔아놓은 듯이 아름다운 금수산(錦繡山, 해발 1016m)의 웅장하고 빼어난 산세가 절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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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구름이 머무르는 곳’이라는 유운당(留雲堂)과 바로 옆의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원통보전(圓通寶殿) 뒤편은 의상대라 불리는 거대한 바위가 위압적으로 솟구쳐 있다.원통보전 주련에는 ‘하늘보다 높은 것은 도리어 아래로 내려가고, 맑은 물은 깊어질수록 검어진다. 수행자가 불국정토에 있으니 작은 욕심도 없고, 나그네 신선세계 들어서니 늙음도 슬프지 않네’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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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보전 앞마당에 서면 시퍼런 청풍호를 둘러싼 겹겹의 산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선경을 방불케 한다. 수려하기 짝이 없는 금수산, 멀리 있어도 우뚝 솟아 위세를 드러내는 월악산 등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낀다.원통보전 옆으로 나한전이 있고, 해수관음상을 지나면 암벽에 맞대어 세운 지장전이 있다. 지장전으로 가는 길에 거침없이 휘어진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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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전 앞에서 푸른 물결의 청풍호와 백두대간의 능선에 우뚝 솟은 월악산, 그리고 잔설을 품고 있는 산줄기들을 조망한다. 이런 자연이 주는 기운과 고즈넉한 겨울 정방사의 원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응답을 얻는다는 유구필응(有求必應)의 위안에 필자의 모든 시름이 다 사라진다.경이로운 자연과 고즈넉한 산사가 주는 마음의 고요와 평안이 추위를 몰아낸다. 얼마 동안 풀지 못한 숙제가 한순간에 해결되니 십년 묵은 체증이 싹 가시는 듯하다. 이제 훨씬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하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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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행은 상행할 때의 포장길이 아닌 등산로를 선택한다. 눈 덮인 등산로의 한 구석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벤치는 백설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눈에 새겨진 발자국은 얼마가지 않아 녹아서 사라지거나 또 다른 눈으로 가려질 것이다. 고통도 인생도 이와 같아 잠시 왔다가 사라져 가는 것이다.능강교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직도 영하 6도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이곳에서 남제천 IC 방향으로 11㎞ 떨어진 금월봉을 찾는다. 금월봉은 바라만 보아도 소원이 이뤄진다는 신령스런 바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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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은 아세아시멘트주식회사 영월공장에서 시멘트 제조용 점토 채취장으로 사용되던 중, 1993년에 기암괴석군이 발견되어 작업을 멈추고 보존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이 산을 제천시가 명칭공모를 통해 금월봉이라 명명하고 개발을 시작하여 금월봉관광지로 조성했다.금월봉은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그대로 빼어 닮아 작은 금강산으로도 불린다. 이곳은 태조왕건, 명성황후, 이제마, 장길산 등 TV 및 영화촬영 장소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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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야산이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신령스런 바위산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것은 사소한 것이라도 소중한 자원으로 여기는 발상의 전환을 지닌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이 모두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 비롯된 것임을 알고 감사하며 오늘의 자드락길 트레일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