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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출신으로 대한민국 민주언론의 사표로 불리는 ‘청암 송건호 선생’ (1927~2001)의 흉상이 세워졌다.
21일 옥천군 송건호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군북면 증약리 소재 생가에서 청암 타개 17주기를 맞아 흉상 제막식과 함께 추모제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그의 장남인 청암언론문화재단 송준용 상임이사를 비롯해 송건호기념사업회 회원, 군·의회 관계자, 지역주민 등 70여명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청암은 현재 서울대 법과대학인 경성법학전문학교에 재학 중인 1953년 대한통신사 기자 공채에 응모해 외신부 기자로 활동하며 언론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조선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등 주요 신문사를 거치며 기자와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1980년대에는 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주언론시민연합) 의장,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등을 지내며 당시 제도권에 묶여 있던 언론이 보도하지 못하는 사회의 불의·부패·모순을 알려 저항언론의 불씨를 지폈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국민이 출자한 신문사를 만들어 국민의 참된 이익을 대변하는 정론지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일자, 대중적인 공신력이 컸던 청암은 ‘한겨레 신문’ 창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1987년 12월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대쪽 같은 기자정신으로 많은 언론인들로부터 추앙을 받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되면서 받은 고문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2001년 12월 타계했다.
2001년 11월 설립된 청암언론문화재단에서는 2002년부터 신문, 방송, 통신 등에서 언론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한 개인과 단체를 선정해 송건호언론상을 시상하며 그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고향인 옥천에서도 기념사업이 활발해져 2016년 11월에는 기념사업회(회장 이인석)가 발족되고, 그 해 12월에는 생가터 표지석을 건립했다.
군에서는 올 1월 그의 자녀들로부터 생가터를 기부채납 받아 낡은 건물을 허물고 수목을 식재하는 등 정비를 말끔히 마쳤다.
김연철 문화예술팀장은 “한국 언론사의 큰 족적을 남긴 송건호 선생이 옥천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낀다”며 “현재 생가에 청암 발자취를 찾는 언론인과 시민단체의 발길이 이어지는 만큼 선생과 선생의 뜻을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