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종이가 멀리 나간다. 참담하게 구겨졌다. 나름 철 지난 ‘크메르 제국’의 환상에서 허우적댄다고 해야 적확한 표현일까? 불과 수십 년 전 우리도 같은 길을 걸었다. 반듯한 신작로 하나 없이 흙먼지 옴팡(죄다) 뒤집어쓰며 발가락이 비집고 나온 검정 고무신 한 켤레
대양으로 나가는 꿈을 꾼다는 것은 엄청난 사치다. 캄보디아 해안선은 베트남의 윽박에 밀려 남부 작은 어촌마을 Prek Chak부터 시작하여 ‘태국이 하품하다’ 그어 놓은 Cham Yeam에서 멈춘다. 그마저도 수심이 낮아 근해에서 고기잡이하는 것 말고는 아무 쓸모가 없
프놈펜에서 가장 높다는 건물 Morgan 48층 제일 꼭대기 층 스카이바 ‘La Vida’에 가면 빤 지름 한 인도차이나 뱀이 우글댄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뒤도 안 돌아본 채 230m 올라와 로컬 뱀들을 유인하려는 흑심을 품고 ‘간지나게(멋지게)’ 와인 한 병을 주문했
“지금이라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할 것이다”(정약용 ‘경세유표’)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으되,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털려고 들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못 덮을 허물없으되, 누구의 눈에 들기는 힘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한평생 먹고 싸야 한다. 이중 무엇을 먹느냐 하는 문제는 가진 자와 없는 자로 나뉘어 무척 불평등하지만 싸는 것만큼은 누가 얼마짜리를 먹든지 간에 한 사람당 하루에 220g의 똥을 싼다. 그러니 공평하다.먹을 때는 좋았지만 쌀 때는 누가 알려주지
‘4‧10선거’가 끝났다. 구두닦이는 걸레를 빨지 않는다. 손톱 밑에 까만 때가 끼었다. 걸레를 손에 짠짠 하게 감고 구두에 물을 묻히거나 침을 뱉는다. 이마에 땀이 송글 맺히도록 문지르고 나면 반들반들 광이 난다. 속칭 물광을 낸다. 갈라진 손등에
행길에 서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이유는 곧 바뀔 거란 걸 알기 때문 아닐까?“얘야, 우체부가 와서 군대니 뭐니 하더니 이걸 놓고 갔다.” 병무청에서 보낸 입영통지서였다. 1982년 1월 10일 8시까지 내수국민학교 운동장으로 집결하라는 징집통지서였다. 일방적인 겁박이었
[이재룡의 솔깃한 이야기]
예비고사 보기 수일 전, 작은 불꽃이 바람 타고 날아와 쫄보 가슴에 달라붙었다. 불꽃은 이내 뜨거운 불이 되었다. 주성중학교 벤치 위에 파란색 손수건을 펴주던, 공단 오거리 가는 버스에 올라타던, ‘청원제과’에서 단팥빵과 소보로빵을 마주하던, 추운 겨울날 충북은행 앞에
[이재룡의 솔깃한 이야기] <4>
목에 힘을 주고 복학을 했다. 걸음걸이도 뒷짐을 지고 느릿하게 걸었다. 청평, 가평, 양수리, 영등포 일대를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술독 꽤 부숴버렸던 친구들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 젠장 모처럼 ‘도꼬다이’로 화신백화점 벽에 붙은 골목 끝 극장식 카바레 ‘초원의 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