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삼성맨, 50년 만두를 타인 승계로 살려낸 ‘청주형 푸드테크’ 모델”50년 무말랭이 만두소 명맥… ‘대두단백 無·두부 無·당면 無’ ‘3NO’ 원칙초정 탄산수·청원생명쌀로 약수만두 개발…비건·제로슈가까지 20종 라인업, KTX·공항·휴게소·호주·미국으로 확장
  • ▲ 청주 육거리소문난만두 이지은 대표가 새로 개발한 제로슈거 만두를 소개하고 있다.ⓒ김정원 기자
    ▲ 청주 육거리소문난만두 이지은 대표가 새로 개발한 제로슈거 만두를 소개하고 있다.ⓒ김정원 기자
    충북 청주시 상당구 육거리 전통시장에서만 먹을 수 있던 동네 만두가 3040 젊은 부부의 손을 거치며 ‘시장 안 브랜드’에서 ‘찾아가는 K-만두’로 체급을 바꿨다. 

    폐업 직전이던 50년 만두집을 ‘타인 승계’로 이어받아 HACCP 공장, 수출 전용 레시피, 로컬 연계 R&D까지 붙이자, 오래된 가게는 곧장 ‘기술이 있는 로컬 푸드 스타트업’으로 재탄생했다. “없어지느니 우리가 세계로 내보내자”는 선택이 만든 반전이었다. 

    ◇ “사라질 브랜드를 보느니 내가 한다”… 코로나 시기 ‘타인 승계’ 결단

    청주 ‘육거리 소문난 만두’의 지금 대표는 외환은행원 출신 이지은 대표, 그리고 CELEBFOOD를 이끄는 삼성 공채 출신 김영준 대표다. 두 사람은 결혼을 계기로 청주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장사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손님이 끊기고, 3남매를 키우던 원점주가 “40년간 지켜온 가게를 접어야겠다, 그런데 애들이 안 받는다”고 토로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그때 제가 단골이었어요. ‘이 집 없어지면 안 되는데’ 그 마음이 컸어요. 제가 음식을 할 줄 모른다는 이유로 6개월을 망설였는데, 그래도 브랜드가 없어진 걸 보는 것보단 제가 책임지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이지은 대표)

    이 선택은 전국에서도 이례적인 사례로 기록됐다. 보통 ‘백년가게’는 당대 승계만 허용하는데, 두 번 떨어지고 나서 육거리 소문난만두는 타인 승계 후 오히려 월 매출을 1000만, 3000만으로 키우고 수출까지 시작하자 오히려 “신청해 보라”는 연락이 먼저 왔다. ‘살아 있는 브랜드’를 더 크게 만든 덕에 행정도 제도를 열어준 사례였다.

    ◇ 9평 손만두에서 HACCP 공장까지… “우리는 ‘3NO’로 간다”

    인수 당시 가게는 9평도 안 되는 시장형 손만두집이었다.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양도 적고, 겨울에만 손님이 몰리는 구조였다. 부부는 “맛있는 만두는 이미 많다. 우리는 다르게 해야 산다”는 진단부터 했다.

    우선 50년간 내려온 무말랭이 만두소는 유지하되 ‘대두단백 무(無)·두부 무(無)·당면 무(無)’라는 ‘3NO’ 원칙을 세웠다. 냉동 후 다시 찔 때 생기는 푸석함, 대두단백의 미묘한 쓴맛, 그리고 가장 값싼 재료인 당면으로 배만 부르게 만드는 관행을 아예 잘라낸 것이다. 이렇게 하니 만두 속 자체가 1.5배 살아났다.

    동시에 청원생명쌀을 넣어 튀겼을 때 바삭하게 남는 ‘골든 크런치 만두’, 매운맛을 0~3단계로 조절한 시그니처, 제로슈가·비건 라인까지 붙이면서 3종이던 품목은 14종, 다시 20종으로 늘었다. 2020년 3000만 원대에 그쳤던 연 매출은 2024년 17억, 2025년 30억, 2028년 85억까지로 목표를 세웠다. 5년 만에 100배 성장을 겨냥한 그림이다.

    “만두가 맛있는 집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술’과 ‘우리 지역 이야기’가 없으면 프랜차이즈도, 수출도 안 됩니다. 그래서 R&D실을 따로 두고 레시피 공동특허, 저장공정 특허까지 넣은 겁니다.”(김영준 대표)
  • ▲ 청주 육거리소문난만두 이지은 대표가 백년가게의 역사를 사진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김정원 기자
    ▲ 청주 육거리소문난만두 이지은 대표가 백년가게의 역사를 사진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김정원 기자
    ◇ 초정 탄산수×청원생명쌀, ‘지역을 만두에 심는’ 레시피

    이들이 스스로를 ‘K-테크놀로지형 만두’라고 부를 수 있는 대목은 로컬을 기술로 엮어낸 데 있다. 청주 인근에는 전국에 3곳뿐이라는 광천 천연 탄산온천, 이른바 ‘초정 탄산수’가 있다. 조선시대 왕에게 진상됐다는 기록까지 있는 물이다.

    부부는 이 물을 반죽과 고기 숙성에 시험 적용해 보다가 “탄산이 고기 잡내를 잡아준다”는 걸 확인했다. 여기서 ‘약수만두’ 개념이 나왔다. “청주가 우리한테 줄 수 있는 게 뭐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결국 지역 약수와 지역 대표 쌀을 만두에 합치는 결론에 닿은 것이다.

    이지은 대표는 “초정 탄산수와 청원생명쌀을 만두에 같이 쓰니 관광자원, 농산물, 전통시장이 한 줄 서사로 묶였습니다. 이게 있으니까 리브랜딩도 훨씬 수월했어요”라고 말했다.

    매장도 시장형에서 카페형으로 바꿨다. 1층을 밝게 연출하고 포토존을 만들자 주말 하루 1500명, 평일 700명이 들어오는 구조가 됐다. 연 20만 명이 이 만두를 먹으러 온다. 청주 인구 80만 명이 4년에 한 번은 들르는 셈이다. 영업시간은 하루 8시간뿐인데도 일 매출 500만~1200만 원, 월 1억5000만~2억 원대가 가능해졌다. 비결은 홀·포장·배달을 동시에 돌리는 ‘3M 채널 시스템’이다.

    “셰프가 없어도 되게 시스템을 짰어요. 알바도 30분만 배우면 됩니다. 칼국수 3분 30초, 만두 2분, 만둣국 3분이면 나가게 한 거죠.”(김영준 대표)

    ◇ “시장 안에만 있으면 계절 장사밖에 안 된다”… 공항·KTX·휴게소로

    하지만 시장에서 손님이 찾아오기만 기다리는 구조로는 인력 고용도, 브랜드 확장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곧장 ‘찾아가는 브랜드’로 선회했다. 중부고속도로 오창휴게소, 청주공항, KTX 대전역, 천안 동남구 신방동, 인천 남동구 구월동 등 특수상권에 하나씩 입점하면서 “육거리 소문난 만두가 어디예요?”라는 질문이 “아, 그 만두!”로 바뀌기 시작했다.

    입점 경쟁도 녹록지 않았다. KTX 대전역 점포를 두고는 대전 향토기업 A사(社)와 프레젠테이션 경쟁을 벌였다. 정부 지원 사업에서도 수십 대 1 경쟁률을 통과해 3년째 연 2억 원 안팎의 지원을 확보, 설비·패키징·인플루언서 마케팅까지 끌어올렸다. 2025년에는 청주공항, KTX 대전역, 대전권 휴게소를 포함해 9곳 입점을 계획 중이다.

    이 과정에서 ‘직장인 DNA’가 빛을 봤다. “둘 다 회사 다닐 때 데드라인 안에 결과 내는 훈련이 돼 있었거든요. 그래서 욕심내서 한꺼번에 안 하고, ‘보이는 것부터’ ‘검증된 것부터’ 하는 바른 성장을 택했습니다.”(이지은 대표)
  • ▲ 청주 육거리소문난만두 이지은 대표, CELEBFOOD 김영준 대표가 사무실에서 하트를 손으로 만들어 보져주고 있다.ⓒ김정원 기자
    ▲ 청주 육거리소문난만두 이지은 대표, CELEBFOOD 김영준 대표가 사무실에서 하트를 손으로 만들어 보져주고 있다.ⓒ김정원 기자
    ◇ 호주·미국·태국으로… “수출은 속도가 아니라 구조”

    수출은 2024년 LA 1차 물량을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호주 시드니에서는 3차까지 리오더가 나갔다. 태국, 미국 샌프란시스코 메가마트 5개 점포 입점도 진행 중이다. 2024년 수출액은 5만~6만 달러 수준으로, 원래 10만 달러를 목표로 했으나 미국의 관세 변수로 하반기로 밀렸다. 2025년에도 비슷한 규모로 이어갈 계획이다.

    특징은 ‘고기 들어간 만두는 통관이 까다롭다’는 현실을 정면으로 풀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쓰는 레시피와 공정을 통째로 현지 파트너에게 넘기는 방식을 취해 “한국에서 만든 것과 똑같은 맛을 현지에서 찍어내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동시에 채식·제한식 위주로 구성한 비건 만두 라인을 수출용으로 별도 설계했다.

    김영준 대표는 “수출은 저희가 보기엔 ‘속도전’이 아니었다. 현지에서 우리 레시피를 그대로 만들 수 있게 시스템을 열어놨으니, 이제는 물량을 키우는 일만 남은 셈”이라고 말했다.

    ◇ 시장이 키운 ‘시장 스타트업’… 40명 고용, 청년 83명 몰린 비결

    이 부부가 들어온 뒤 바뀐 건 매출만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겨울 장사에 매달렸다가 여름이면 사람을 줄여야 했다. 지금은 법인 1개, 개인사업자 3개를 합쳐 상시 40명 안팎을 고용한다. 2층·3층으로 방치돼 있던 시장 건물을 사무·포장·R&D 공간으로 끌어올리면서 30~40대 경력단절 여성과 20대 청년을 단계적으로 채용했다.

    청년일자리도약, 내일채움공제 같은 정부 인력지원제도도 적극 활용해 인건비 부담을 낮췄다. 최근 한 번 올린 채용 공고에 83명이 몰린 것도 ‘이 브랜드는 크는 중’이라는 신호가 퍼졌기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이지은 대표는 시장 상인들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2020년 8월 27일 개업하던 날, 이 골목 상인들이 우리 만두를 다 사줘서 버틴 거예요. 젊은 부부가 시장에서 장사한다니까 다들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저희도 ‘우리가 커지면 시장도 같이 커지게 하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시장이 먼저 투자해 준 신뢰를 다시 시장으로 돌려보내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 ▲ 청주 육거리소문난만두 이지은 대표, CELEBFOOD 김영준 대표 부부가 익살스럽게 대나무 찜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김정원 기자
    ▲ 청주 육거리소문난만두 이지은 대표, CELEBFOOD 김영준 대표 부부가 익살스럽게 대나무 찜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김정원 기자
    ◇ “만두는 제게 셋째입니다”… 젊은 창업세대가 들을 메시지

    마지막 질문에 이지은 대표는 조금 생각하더니 “첫째가 딸, 둘째가 아들이고요. 만두가 셋째예요”라고 말했다. 코로나 한복판에서 초등 1학년 딸을 가게 한쪽에 앉혀놓고 만두를 싸던 날을 떠올리면서다.

    “딸이 ‘나도 커서 만둣가게 사장 할래’ 그러는데, 마음이 찢어졌어요. 이 아이가 볼 수 있는 세상이 여기뿐이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더 성장해서 ‘엄마 아빠는 여기까지 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면 이 아이가 꿈꾸는 높이도 같이 올라가니까요.”

    이 말은, 지금 막 시장에서 작은 가게를 시작하려는 2030·3040에게 곧바로 닿는다. 이들 부부처럼 △없어지는 지역 브랜드를 인수해 살리는 것도 창업이다 △로컬을 기술로 엮으면 전국이, 나아가 해외가 시장이 된다 △직장생활에서 배운 기획·재무 역량은 장사 현장에서 더 빛난다 △정부 지원사업은 ‘서류만 내는 일’이 아니라 ‘브랜드를 키우는 레버’가 될 수 있다…. 이 부부가 보여준 건 이런 실전형 교훈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속도’보다 ‘구조’를 먼저 세웠다는 점이다. 공정을 표준화해 아르바이트도 30분 안에 조리할 수 있게 만들고, 수출도 현지 생산이 가능한 형태로 열어놓았다. 이렇게 해두면 사람이 바뀌어도, 도시가 달라져도, 시장이 커져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 점에서 ‘소문난 만두’는 본보 ‘K-테크놀로지 세계를 넘다’가 포착해 온 ‘핵심역량으로 세계를 누비는’ 청주형 식품 스타트업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