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노년의 품격이 가득[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괴산군 편
-
금단산(金丹山, 해발 746m)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보은군 산외면과 경계를 이루는 괴산군의 남단에 위치한 산으로 덕가산(德加山, 해발 693m)과 이웃하고 있다.금단산 산행의 기점은 청청면 신월리 ‘신월교’ 옆의 임도 입구이다. 승용차를 신월보건소(충북 괴산군 청천면 괴산로 신월3길 5) 부근에 주차할 경우 그곳부터 약 0.17㎞ 떨어져 있다.괴산로에서 임도로 진입하는 방향으로 ‘금단산 등산로 안내도’가 세워져 있고, 도로 건너 맞은편에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번 산행의 계획은 임도를 걸어 금단산고개에 도착하여 금단산 고스락을 오른 후 능선을 따라 원점회귀 하는 코스다.
-
괴산로에서 임도로 들어서서 얼마 되지 않아 속리산둘레길 이정표를 지난다. 조금 더 이동하면 날머리인 ‘금단산(3.6㎞)‧금단산고개(2.8㎞)‧오얏말(1.8㎞)’ 이정표를 만난다.우측에 세워진 이정표는 숲에 가려져 있을 수 있으므로 근처를 지날 때 유심히 관찰해야만 발견할 수 있다. 완만하게 오르는 길에서 자연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고고한 노년의 품격을 느낀다.맑고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와 사물이 제 빛깔을 맘껏 창출케 하는 투명한 햇살,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이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
-
구불구불한 길은 지금껏 살아온 굴곡진 아름다운 삶과 같고, 완만하게 고도를 높여가는 모양은 세월을 잊은 채 살아가다보면 어느새 흰머리, 잔주름이 늘어가는 것과 같다.일부러 진리를 깨닫겠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평상시 갖는 갖가지 마음에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알아차리고 그것에서 벗어나 순수한 본래 마음을 찾으려는 평범한 삶이 이 산길과 다르지 않다.발걸음과 동행하는 깊지만 깊다고 할 수 없는 사색이 마음을 행복으로 충만케 한다. 점점 깊어지는 숲길은 마치 온갖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의 짐을 홀가분하게 벗어던진 해탈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
이런 오묘하고 심오한 계절의 향기를 맡으며 대략 2.7㎞의 임도를 이동하니 전방으로 보은속리산둘레길4구간(금단산신선길)이 계속되는 임도와 우측으로 평단리로 이어지는 임도의 갈림길을 만난다.당초 금단산고개에서 금단산 고스락을 오르려는 계획을 수정해 우측의 평단리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이동하다가 금단산 주능선과 만나 그곳에서 고스락을 오르기로 한다.이곳에서 임도 우측 방향으로 한 번 이상은 다녀온 낙영산, 도명산, 가령산 등 명산들의 아름다운 능선을 나뭇가지 사이로 감상한다.
-
임도 갈림길에서 평단리 방향으로 약 0.3㎞을 더 진행하여 산모퉁이에서 통나무 계단을 발견한다. 이곳에서 약 0.4㎞ 전방에 아름다운 여인의 잘록한 허리처럼 산등성을 절개해 움푹 파인 곳이 보이는데, 그곳이 임도와 금단산 주능선과 합류되는 지점이다.조금만 더 빨리 주능선에 닿기 위해 절개지 좌측의 통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선다. 세상사가 이렇듯 처음 마음먹은 대로 풀리는 경우보다 변수가 더 많다고, 또 폭풍이나 소나기도 한나절이면 그치는 변덕을 부리는데 사람의 마음인들 오죽하겠느냐고 스스로 변명한다.처음엔 계단을 밝고 제대로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길인 듯 길이 아닌 듯 산길의 흔적이 희미하다. 그 동안 산행의 경험을 토대로 방향 감각에 의지해 주능선을 찾아 가파른 비탈을 오르면서 진땀을 빼지만, 그 대신에 때 묻지 않은 상큼하고 싱그러운 순수 그대로의 자연을 맛본다.
-
세월을 이기지 못해 고사목이 되어 썩어가는 나무들, 그 사이에서 피어난 각종 버섯들이 자연스럽게 자연의 순환을 이룬다. 소멸이 없으면 생김이 없고, 생김이 없으면 또한 소멸도 없음을 느낀다.앙상한 초목 덕택에 시야를 가리지 않아 그다지 어렵지 않게 금단산 주능선에 닿는다. 이어 만나는 등산리본이 제대로 길을 찾았음을 확인시켜 주고, 그 길을 따라 금단산 정상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낙엽이 마치 이불솜을 깔아 놓은 듯 푹신하다.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자신을 일깨운다. 내 발걸음이 소리를 내듯이 자신의 모든 주변 일은 자신으로부터 생겨남을 알고, 그 소리의 주인처럼 바른 길이 아닌 것에 유혹되지 않고 살라한다.
-
낡은 이정표가 금단산 고스락까지는 0.33㎞가 남았다고 알린다. 이 근방에는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서 울창한 송림구간을 이룬다. 고목의 소나무도 늘 푸른 잎을 지닌 것처럼 자신의 마음도 그렇게 생동감이 시들지 않고 사라지는 그날까지 지속되길 바란다.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자연경관이 금단산의 진면목이다. 잠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동시에 송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와 향긋한 내음을 온몸으로 마신다.이 산에는 계곡이 없으므로 식수를 구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산을 오를 때에는 충분한 양의 물을 준비해야 한다. 다시 금단산 고스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
금단산 고스락에 가까워질수록 경사가 점점 가팔라진다. 급경사가 이어지면서 호락호락 꼭대기를 내줄 것 같지 않다. 쿵덕대는 소리의 빈도가 높아지는 터질 것 같은 심장, 코로 호흡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여 입으로 헉헉거리며 들이마시고 내시는 거친 숨소리가 산을 진동시키는 듯하다.이마에 맺힌 땀줄기는 안경에 성에를 만들고, 등줄기에 흐르는 땀은 몸을 흥건하게 하지만 덥혀진 열기에 찬기를 느낄 새가 없다. 이렇게 산길을 오르다가 고스락 도착 직전에 나뭇가지 꼭대기에 보금자리를 튼 겨우살이를 만난다.드디어 금단산 고스락에 도착하니 드넓은 잔디 광장이 펼쳐지고, 한 가운데 헬기장이 마련돼 있으며, 한쪽 가에는 중계탑이 세워져 있다. 고스락 둘레로 시야를 가리는 초목이 없어 사방으로 조망이 탁 트인다. 그 덕택에 눈이 호사를 누린다.
-
이곳의 북쪽으로 낙영산과 가령산의 산줄기가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그 뒤로 도명산과 갈모봉이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낙영산 아래에 고즈넉하게 자리를 잡은 공림사가 보인다.동쪽으로는 남산과 멀리 백악산이 손이 닿을 듯 가깝게 조망되고, 동서 방향으로 켜켜이 층을 이룬 산등성 너머로 속리산 능선이 아득하게 가물거린다.이름이 있는 산과 이름이 없는 산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그것들을 일일이 구별하여 보고 안보기를 할 수 없으며, 또 구태여 그렇게 구별할 이유가 없다. 산은 그저 산이니 그들이 그려내는 자연스러운 모양을 말없이 바라보며 유위적인 것이 허된 것임을 알아차린 뿐이다.
-
상행했던 코스를 거꾸로 따라 내려가면 임도를 만난다. 이곳에서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공에 누군가 그려놓은 하나의 긴 띠구름을 감상한다. 저 ‘한 일(一)’자처럼 아바타로 사는 나와 본래 모습의 내가 둘이 아닌 하나였으면 좋겠다고 기원한다.임도에서 절개한 비탈을 올라가서 능선을 따라 하행한다. 수많은 등산객들의 흔적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다가 산불감시초소를 지난다. 금단산 고스락에서 2.8㎞를 내려오면 임도 방향으로 하산하라는 이정표를 만난다.이곳부터 임도까지는 잔돌이 많고 경사가 매우 가팔라 각별히 조심해서 하산해야 한다. 임도로 내려와 차량 회수를 위해 임도를 따라 원점회귀 한다. 약 8.3㎞에 걸친 금단산 산행에서 평상시 갖는 마음으로 진리를 알아가는 유의미한 시간과 공간의 여유로움을 함께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