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번에 喜怒哀樂 체험한 ‘산행’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단양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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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산(黃庭山, 해발 959m)’은 충북 단양군 대강면 황정리에 위치한 산으로 도락산(道樂山, 해발 964m)과 마주보고 있다.대개 황정(黃庭)을 ‘옥황상제가 거니는 하늘 정원’으로 알고 있으나, 도교(道敎)에서는 인간의 성(性)과 명(命)의 근본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산의 이름은 이른바 마음과 몸을 동시에 닦는 성명쌍수(性命双修)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원통암 입구가 있는 황정산로 갓길 공간에 주차하고 시멘트 포장길을 오른다. 출발하여 0.6㎞를 이동하면 2021년에 창건한 황정산대흥사 미륵불전에 도착한다. 달마상을 지나 계곡 옆의 산길을 따라 0.8㎞을 오르면 해발 600m에 위치한 원통암에 도착한다.원통암(圓通庵)은 공민왕2년(1353년)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깎아지른 암벽을 배경으로 세워진 원통보전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나한전·산신각과 심검당(尋劍堂)이 자리하고 있다. 심검당과 원통보전 사이에는 약수터가 있는데, 이 물을 마시고 칠성암 앞에 있는 종을 치면 소원성취 된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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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보전 우측에는 관음전과 부처님 손바닥처럼 보이는 높이 7m의 대석(臺石) 위에 약 15m의 칠성암(七星岩)이 우뚝 서 있다. 단양 제2팔경의 1경으로 손꼽히는 칠성암은 바위 7개가 수직으로 배열되어 있다.관음전과 칠성암 사이에 있는 산길을 약 0.3㎞을 오르면 해발 650m에 위치한 허름한 도솔암 바로 옆에 나옹선사가 참선 수행한 석굴(石窟)이 위치해 있다. 그곳에 앉으니 대흥사와 올산천 너머 우뚝 솟은 산등성이가 조망된다. 잠시 속세의 모든 시름을 덜어내고 마음을 다스리며 나옹선사를 닮아보려 한다.석굴을 내려오면서 나옹선사의 청산가(靑山歌)를 읊어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聊無愛而無憎兮(료무애이무증혜),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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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암 약수터에서 물 한 통을 채우고 영인봉(해발 825m)으로 출발한다. 영인봉의 한자 명칭을 찾을 수 없어 도교에 바탕을 둔 황정산의 이름으로 짐작한다.당(唐)나라 두광정(杜光庭)의 용성집선록(墉城集仙錄)에는 인간세상에서 하늘에 올라가 신선이 되는 데는 9품이 있다고 한다. 그 중 마지막 단계인 선인(仙人)보다 두 단계 아래인 제7품 영인(靈人)에서 영인봉(靈人峰) 이름이 유래된 것이 아닌가 싶다.영인봉과 황정봉은 산명(山名)만큼 풍광이 뛰어나지만, 인간은 감히 근접할 수 없을 만큼 험난하여 신선(神仙)들만이 노닐 수 있는 산이라는 의미는 아닐까? 그곳을 찾는 인간들은 과히 신선이 되려나.해우소(解憂所)를 지나 가파른 산길을 0.3㎞ 정도 오르면 주능선에 이른다. 이 구간에서 미끄러지기 쉬운 바윗길과 급경사 구역에는 밧줄이 설치돼 있다. 주능선에 도착하여 우측 능선을 따라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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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능선을 오르면서 하얀색과 분홍색 철쭉꽃을 만난다. 같은 철쭉이지만 빛을 받은 상태에 따라 색깔을 달리할 뿐 철쭉꽃이라는 본질은 다름이 아니다. 만물여아동체(萬物與我同體), 즉 우주만물은 나와 더불어 한 몸인 것이다. 그래서 차별 없는 세상이 돼야 함을 느낀다.바위와 마사토가 뒤섞인 미끄러운 길과 나무뿌리와 바위가 뒤엉킨 가파른 산길을 올라 작은 봉우리를 오르니, 곧바로 올라야 하는 커다란 암봉이 유유자적하게 기다리고 있다. 좌측으로는 산세가 크고 당당한 황정산이 보인다.작은 봉우리를 잠시 내려섰다가 다시 산을 오르면 조망 바위를 만난다. 그곳에 올라 근경으로 금방 올라온 작은 봉우리와 중경으로 올산(兀山), 원경으로 소백산 연화봉(蓮花峰)을 조망한다. 준봉(峻峰)들이 겹겹이 늘어선 모습에 잠시 무아지경(無我之境)을 즐긴다.황정산의 가파른 산세는 그 품을 순순히 내어줄 것 같지 않고, 진행방향으로 크고 작은 두 암봉 사이로 오른다. 기이하게 생긴 두 개의 바위를 지나 하얀 속살을 드러난 바위를 오르면 안부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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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에서 우측의 작은 암봉이 깔끔하게 마련해 준 조망 바위에 올라 멋진 풍광에 시간의 흐름을 잊는다. 안부에 세워진 이정표가 황정산 1.18㎞를 가리키는 방향으로, 좌측의 큰 암봉의 비탈을 내려갔다가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이제 단단하고 경사진 암릉이 시작된다. 암봉을 곧장 오를 수 없어 옆으로 휘돌아 가지만, 그 길도 호락호락하게 내어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파른 바윗길을 내려가 암벽을 트래버스한 후, 산비탈을 따라 밧줄을 붙잡고 경사진 암반을 오른다.부드럽게 울퉁불퉁한 암릉을 오르면 좌측으로 조망이 터지면서 옆으로 비켜 올라온 암봉이 내려다보인다. 평탄한 길을 조금 이동하자 ‘등산로 폐쇄 알림’ 판이 땅에 떨어져 있다. 이곳이 영인봉 고스락이다. 영인봉에서 황정산 고스락까지 위험구간으로 폐쇄한다고 알린다.영인봉을 지나 평탄한 능선을 이동하면 참나무와 소나무가 함께 어우러진 숲속 한가운데 자리한 너럭바위를 지난다. 이어 소나무 숲을 통과하면 험준한 암릉 구간이 시작된다. 조심스럽게 바위로 내려서자 지나야 할 황정산의 바윗길과 우측으로 도락산 신선봉이 보인다. 이어서 작은 침니 바위를 밧줄을 잡고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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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윗길이 경사가 심해서 추락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긴장하며 더디게 이동한다. 암릉 구간을 지나 작은 암봉의 비탈을 가로질러 오르면 장승처럼 생긴 바위가 길을 안내한다. 황정산이 520m 앞에 있다고 알리는 이정표를 만난다. 체감으로는 그 보다 훨씬 길게 느껴진다.전방으로 고사목과 함께 침니 바위가 있는 암봉과 황정산 고스락이 한눈에 들어오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영인봉과 작은 암봉들이 조망된다. 산길 한가운데 용트림하는 노송이 발길을 잠시 머물게 한다. 그 모습이 처절한 삶의 경쟁을 연출하는 듯하다.이어 철쭉이 핀 흙길을 걷다가 징검다리처럼 바윗길을 밟고 지난다. 조망이 터지면서 넘어야 할 침니 바위가 있는 암봉과 그 뒤로 황정산이 포근한 엄마 품처럼 부드럽게 보인다. 그러나 그 속으로 들어가면 거칠고 험한 산길이 이어진다.좌우로 훤히 조망되는 구간을 지나 다시 숲속의 암릉을 오른다. 가파른 암릉을 오르기 시작하면, 곧이어 연속해서 밧줄을 잡고 바위를 오른다. 이어서 2단 침니 바위를 밧줄을 붙잡은 팔뚝에 잔뜩 힘을 주어 오른다. 1단을 오른 후 잠시 멈춰서 풍광을 감상하니 몸과 마음이 저절로 수련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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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가 높아지면서 경치는 절경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다시 절벽을 이룬 두 번째 침니 바위를 오른다. 힘들게 오른 보상인 듯 사방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지만, 그 모양과 상황을 제대로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지나온 영인봉, 좌우로 도락산과 올산이 팔을 뻗으면 닿을 듯하다.침니 바위를 오른 후에 절벽의 좌측 방향으로 밧줄이 없이 바위를 끌어안고 조심스럽게 트래버스 한다. 다시 밧줄을 잡고 암봉 고스락에 오르면 너른 암봉 위에 커다란 바위가 놓여 있다. 이 암봉을 내려갔다가 다시 직벽 바위를 오른다.나무뿌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암반을 걷고, 철쭉이 만발한 참나무 숲길을 이동하면 소나무 숲이 우거진 암반이 성릉(城陵)처럼 이어진다. 대슬랩의 암릉을 건너자 적송(赤松)이 손을 내밀며 반기고, 그 뒤로 도(道)를 닦는 데는 길이 있어야 하며, 그 길에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한 폭의 산수화 속을 거니는 느낌으로 받고,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에서 철쭉꽃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산길을 오른다. 소나무 숲에서 참나무 숲으로 바뀌면서 해발 959m의 황정산 고스락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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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규모에 비해 작은 고스락 돌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고, 사방으로 숲이 둘러싸여 조망이 거의 없다. 하산은 차량 때문에 올라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 하지만, 등산지도에 표시된 계곡 길로 하산하기로 한다.하산은 고스락 돌 뒤편 등산 리본이 달린 산길로 내려간다. 가파른 참나무 숲길을 내려가자 슬랩 구간이 펼쳐지면서 멋진 풍광이 다가온다. 슬랩 구간 옆으로 바위 틈새를 비집고 하산하지만 육감적으로 등산로에서 벗어났음을 안다.불길한 느낌이 엄습하여 산길샘 지도를 켜고 확인하니 현재 위치가 등산로에서 많이 벗어났다. 황정산 고스락에서 많이 벗어나 다시 되돌아가기보다 능선 비탈을 따라 계곡을 찾기로 한다. 그러나 황정산은 호락호락하게 그 길을 내어주기 만무하다.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오로지 안전한 하산 길을 찾는데 전념한다. 해발 900m가 넘는 능선이라 비탈의 경사가 심하고, 곳곳에 바위 낭떠러지가 숨어 있다. 비탈에서 미끄러져 나무를 붙잡고 간신히 멈추기를 몇 차례 겪으면서 긴장감은 더욱 고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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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떠러지기 암벽을 피해 한곳에서 많은 시간을 배회하다가 겨우 하산 길을 찾는다. 살고자하는 간절함이 하늘과 통했을까 비등산로 1㎞ 넘게 1시간 이상을 헤매다가 계곡을 만난다. 험난한 바위 구간을 지나서 천만다행이라 여기지만 계곡 등산로도 만만치 않다.원시림 속을 걷자니 마치 우주 속에 홀로 남아 있는 듯하다. 세월이 흘려 낡은 등산 리본을 만나니 반갑기 짝이 없다. 근래에는 계곡 등산로를 이용하는 등산객이 거의 없는 듯하다. 그나마 행운은 계곡이 말라 있어 하산하는데 더 많은 장애가 없었다.고도가 높은 곳의 계곡은 경사가 급하고, 고도가 낮아질수록 완만하게 이어진다. 계곡 계단을 만나면 잠시 산비탈로 올라 돌아서 내려간다. 이번 산행에서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다 겪은 셈이다.자연에서 도의 깨달음을 얻는 기쁨, 부족한 준비로 무모한 도전을 감행한 자신에 대한 화남, 험준한 산속을 헤매다가 느끼는 세월에 장사 없음에 대한 슬픔, 그리고 황정산을 오르면서 멋진 풍광을 만끽하고 더불어 심신을 수련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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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계곡을 내려오니, 옆으로 등산로의 흔적이 희미하게 보인다. 어느 곳은 발을 디딜 때마다 낙엽이 무릎까지 빠지기도 한다. 계곡을 건너는 청련암 옛터로 이어지는 징검다리를 만나니 이젠 긴장이 풀리고 다시 산행의 즐거움으로 돌아온다.굽이굽이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니 원통암과 미륵전으로 이어지는 합류점과 만난다. 이곳에서 우측 목교를 지나서 대흥사 방향으로 산책길을 걷는다.잠시 후, 산책로 좌측으로 계단을 내려서서 완만한 길을 걷다가 목교를 지나면 ‘황정산 등산로 안내’가 세워진 황정산로와 만난다. 이 날머리의 안내판에는 등산로가 황정산 고스락과 연결되지 않는다고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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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쯤에 하산을 완료하니 검푸른 구름이 하늘을 뒤덮는다. 날머리 위에 위치한 황정산 미륵대흥사를 둘러보기로 한다. 대흥사는 신라 선덕여왕(646년) 때 자장이 통도사를 창건할 때 함께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건평 6000여 평에 500나한과 1000여 명의 승려가 있었던 대가람이었으나, 1876년 의병과 일본군의 교전으로 전소됐다.현재 단양 황정산을 품은 미륵대흥사는 2022년 8월 8일에 원적에 드신 미룡당 월탄 대종사의 마지막 원력의 산물이다. 2001년 사찰을 정비하는 불사를 진행해 2016년 대웅보전 낙성식으로 대흥사를 중창했다. 당우로는 대웅보전과 미륵불전이 있다.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사람들의 왕래가 보이고, 주지 스님께서 분주하게 작업하시다 반갑게 맞아 주신다. 천왕문 옆에는 사찰에서 쓰던 옛 맷돌과 계곡물을 끌어와서 분수를 만든 사물을 보여주신다. 이 부근에 연못을 조성해 이 계곡물을 담을 예정이란다.사찰을 뒤로하고 미륵불전입구 주차장에 도착하여 약 9㎞ 산행을 마무리한다. 황정산은 풍광이 뛰어나고 바위 모습이 비경에 가깝지만, 능선이 험하고 옛 등산로가 폐쇄되어 위험한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