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 휠체어와 함께한 24년, 남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학업 최씨, 학위과정 세 아이 양육하며 ‘암’ 연구 세계적 학술지에 논문 게재
  • ▲ KAIST 화제의 졸업생 박혜린 씨.ⓒKAIST
    ▲ KAIST 화제의 졸업생 박혜린 씨.ⓒKAIST
    18일 대전 본원에서 열린 KAIST 2022년도 학위수여식에서 장애를 극복하고 학사학위를 받은 박혜린 씨와 세 아이를 양육하며 ‘암’ 연구로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최새롬 씨(박사학위)가 화제의 주인공이었다.   

    이날 학위수여식에서 휠체어 위에서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온 박혜린 씨(24, 전산학부)가 학사모를 썼다.

    중증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박 씨는 “몸이 불편해서 하기 어려운 몇 가지 일들을 누군가 도와준다면 학업을 이어가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 진학했다. 친구들이나 학교에 배정된 ‘보조 선생님(특수교육보조원)’의 도움 속에서 어려움을 해결해나가며 공부할 수 있었다” 며 동안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수학자의 꿈을 키웠던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2017년 KAIST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자주 이동하는 것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다. 수업 시간마다 강의실이 바뀌었고 때로는 다른 건물을 찾아가야 했다. 엘리베이터는 늘 사람을 가득 태운 채 내려와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기회를 얻을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박 씨는 “때로는 겨우 두세 개의 계단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입구를 포기하고 멀리 돌아가는 진입로를 찾아야 했다. 어렵게 찾은 진입로가 자동문이 아닐 때는 혼자 힘으로 열고 들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이어갔지만, 첫 학기가 끝났을 때 몸무게가 10㎏이나 빠져있을 정도였다”고 힘겨웠던 대학생활을 회고했다. 

    힘든 적응기를 보내는 중에도 박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삶에는 언제나 장애물이 등장했기 때문에, 곤란한 점부터 헤아리기보다는 ‘나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을 찾아 후회가 남지 않게 최선을 다해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 후 박 씨는 KAIST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개선이 필요한 점들을 적극적으로 학교에 건의했고 KAIST는 그의 민원을 빠르게 처리했다. 매 학기 열리는 ‘장애학생 간담회’에서 만나는 보직 교수와 담당 직원도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학교에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그의 건의로 장애인 주차구역의 위치와 크기를 바로 잡혔고, 계단 몇 개 때문에 휠체어가 접근하지 못하는 구역에는 경사로를 설치됐다. 졸업 필수 요건에 포함됐던 체육 교과목 이수 항목에도 예외 규정이 만들졌다. 

    당시 학생생활처장을 맡았던 류석영 교수(현 전산학부장)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확충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 아는 것과 그 필요성을 실제로 체감하는 일이 정말 다르다는 것을 혜린이를 통해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박 씨는 KAIST에 입학한 최초의 중증 장애 학생이다. 학내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고는 있었지만, 내부 구성원이 일상적으로 사용한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미진한 부분을 누구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크고 작은 장애물들이 조금씩 사라져가면서 학교생활에 익숙해진 그는 2017년 12월 대통령 장학생으로 선발돼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장학증서를 받기도 했다. 

    수학자의 꿈을 찾아 수리과학과에 진학했지만, 학부 1학년 때 접했던 프로그래밍에 흥미를 느껴 전산학부 과목을 자유롭게 수강했던 2학년 가을학기에 학과 딘즈리스트(성적우수학생)에 이름을 올린 뒤 이듬해 전산학으로 과감하게 전공을 바꿨다. 

    장애인 편의시설의 유무가 아닌 전공 적합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결정을 내렸다는 박 씨는 올해 3월 KAIST 전산학부 석사 과정에 진학해 프로그래밍 언어를 연구할 계획이다. 

    “소수 중에서도 소수인 삶을 살다 보니 보편적인 학생들과는 다른 관점을 갖게 됐다”는 박 씨는 “다른 사람이 착안하지 못하는, 내 눈에만 보이는 무언가를 발견해 우리 사회에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연구를 해보고 싶다”며 포부를 다졌다. 

    그는 18일 열릴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을 대표연설을 했다. “제 앞길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겠지만, 저는 KAIST가 더 굳게 심어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꾸준하게 그 장애물들을 넘어설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학위과정 6년간 두 번의 출산을 포함해 세 아이를 양육하며, 암(癌)을 연구해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최새롬 씨(34, 바이오및뇌공학과)도 박사 졸업의 영예를 안았다. 

    어릴 때부터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키웠던 그는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가까운 친척들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암을 공부하고 싶다는 결심을 굳히고 빌게이츠 장학재단의 지원을 받으며 UC버클리에 입학해 분자생물학을 전공했다. 

    이후,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과학교육학 및 줄기세포학 석사학위를 각각 취득한 뒤 2016년 2월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에 입학했다. 

    최 씨는 “다들 미국으로 나가서 배우려고 하는데 왜 한국에 다시 돌아왔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곳에 하고 싶은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KAIST의 선택한 동기를 설명했다. 
  • ▲ KAIST 화제의 졸업생 최새롬 씨.ⓒKAIST
    ▲ KAIST 화제의 졸업생 최새롬 씨.ⓒKAIST
    그가 진학한 ‘시스템생물학 및 바이오영감공학 연구실’은 복잡한 생명 현상의 본질적인 원리를 시스템 차원에서 규명하는 기초 연구와 이를 원하는 방향으로 제어하기 위해 수학모델링이나 컴퓨터시뮬레이션 분석, 생물학 실험 등의 방법과 융합하는 시스템생물학(Systems Biology) 연구가 창시된 곳이다. 

    박 씨는 “실험 논문을 보면 ‘이 유전자는 이러한 특성을 가진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실험 후보군으로 선정했다’라고만 나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도대체 왜 해당 유전자를 실험하게 됐는지 명확한 이유가 늘 궁금했다”며 “기초 연구로 암의 치료 방법을 알아가는 것과 동시에 수학적 모델링으로 그 방법의 메커니즘을 연구를 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KAIST 진학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그는 박사 과정에 진학할 무렵에 첫아이를 낳았다. 출산 후 열흘 만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건너와 입학 면접을 치렀다. 아내의 학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준 남편은 귀국 후 2년간 KAIST가 있는 대전에서 서울에 있는 직장으로 매일 출퇴근을 했다. 

    연구실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그는 9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했고, 밤 늦게까지 연구해도 모자란 박사 과정 학생이었지만 교내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최 씨는 등장은 연구실에도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연구실이 생긴 뒤 아이를 키우며 학위과정을 이수하는 첫 번째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연구와 육아를 병행하는 일에 익숙해져 갈 무렵 둘째 아이가 생겼다. 

    아이돌보미와 교내 KAIST어린이집의 도움을 받으며 연구를 이어갔다. 5시가 되면 어김없이 퇴근해 하원 한 큰 아이와 집으로 돌아갔다. 그 무렵 남편은 직장이 있는 서울로 거처를 옮겼고 평일에 아이를 돌보는 일은 그가 전담하게 됐다. 연구에 집중할 시간이 모자랄 때면, 아이를 집에 데려다 놓은 뒤 다시 연구실로 복귀하거나 아이들이 잠든 새벽 시간에 남은 일을 처리하기도 했다. 

    실험을 주로 하는 생물학 분야를 전공한 최 씨는 수학리모델링과 컴퓨터시뮬레이션 분야의 기초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박사 과정을 시작했지만, 네트워크 모델링과 시뮬레이션 분석을 해 논문을 완성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됐다. 일과 가정을 모두 돌봐야 하는 상황 속에서 계속 나아가게 해준 힘은 다름 아닌 성취감이었다. 

    최 씨는 “배우는 동안에는 힘들었지만, 그 과정을 넘어선 뒤부터는 제가 만들어낸 성과를 직접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었다”며 “마찬가지로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 모습을 확인하는 것도 큰 원동력으로 작용해서 하루하루를 더 열심히 살아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연구에 속도가 붙어 졸업을 준비할 즈음 세 번째 생명이 찾아왔다. 덕분에 논문의 초안은 산후조리원에서 작성됐다. 항암제 외에는 뚜렷한 치료 방법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악성 유방암 세포를 호르몬 치료가 가능할 정도의 완화된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규명해 낸 졸업 논문은 국제적 권위의 학술지인 ‘암연구(Cancer Research)’지에 게재됐다. 

    그는 “저는 이 연구실에서 출산과 연구를 병행한 첫 번째 학생이자 심지어 최초의 다산(多産) 학생이라는 기록까지 갖게 됐는데, 이 중요하고 커다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고 가는 것 같아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어 “평일에는 직장에서 주말에는 집에서 최선을 다해 가정을 떠받치는 남편과 엄마가 제일 멋있다며 항상 용기를 주는 아이들, 어린이집과 아이돌보미 선생님, 가까이는 교수님과 연구실 동료들까지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덕분에 연구에 집중하고 좋은 성과를 거두며 학업을 마칠 수 있게 됐다”고 감사 인사를 덧붙였다. 

    그는 졸업 후 창업을 할 계획이다. 기초 연구에서 얻은 소중한 결과를 활용해 환자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약물이나 치료법을 개발하는 바이오 테크놀로지 회사다. 스승인 조광현 교수가 공동 창업을 제안했다. 

    최 씨를 지도한 조 교수는 “출산과 육아의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도 완전히 새롭고 도전적인 연구 주제에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훌륭한 성과를 거둔 자랑스러운 졸업생”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한편 KAIST는 18일 대전 본원에서 2022년도 학위수여식을 개최하고 박사 663명, 석사 1383명, 학사 695명 등 총 2741명이 학위를,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과 장성환 삼성브러쉬 회장이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