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 재무차장 역임…29세 순국독립기념관, 사진 등 10점 야외특별기획전
  • ▲ 일본 유학시설 윤현진 선생.ⓒ독립기념관
    ▲ 일본 유학시설 윤현진 선생.ⓒ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은 독립운동가 윤현진 선생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독립기념관은 1일 오는 30일까지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에서 윤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사진 등 10점을 전시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신학문 교육을 받기 위해 구포 구명학교에 입학한 윤 선생은 1909년 중국을 둘러보며 여러 독립지사들과 만나 체계적인 근대학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이어 1914년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과에 입학해 조선유학생학우회의 임원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반제국주의 비밀결사조직인 신아동맹당에 가입해 집회와 연설, 서적 배포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반일운동을 전개했다.

    윤 선생은 1916년 귀국해 약 3년 동안 대동청년단, 백산무역주식회사, 의춘상행(宜春商行), 기미육영회 등과 관계를 맺은 뒤 비밀결사운동, 경제적 자립운동, 교육운동에 앞장섰다.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 내무위원으로 선정된 윤 성생은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경상도위원으로 활동했다. 이어 국내의 항일세력과 연락을 위한 의용단을 조직하고 ‘독립신문’을 발간하기 위한 독립신문사 발기인 등을 맡았다.

    윤 선생은 1921년 2월 임시정부의 중책인 재무차장으로 선임돼 임시정부의 살림살이를 책임졌으며 의견이 대립해 분열하는 상황에도 임시정부의 혁신과 개조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1921년 9월 독립운동에 혼신을 다했던 윤 선생은 29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한편 대한민국 정부는 윤 선생은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