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출신의 수난
  • 세상이 얼마나 국정원을 미워하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말이 있다. 최백수의 귀에 그 말이 들려온다.
    “테러방지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국정원에 권한을 주는 일이라 통과시켜줄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은 아무것도 아니다.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하느니 차라리 테러를 당하고 말겠습니다.”
    이런 말까지 들려온다. 세상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은 국정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자랑하고 다녔으니 얼마나 순진한 건가? 얼마나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건가? 차라리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이 국정원 출신이라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외모가 그렇고, 말투도 그러하며, 행동 또한 마찬가지다. 오히려 부작용만 낳았을 수도 있다. 어떤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떳떳하게 국정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행동한 게 잘한 일이다.

    최백수의 귀에 자꾸 반복해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마이크 소리다. 그 소리가 방송을 타더니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한다.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하느니 차라리 테러를 당하고 말겠습니다.”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테러를 당하더라도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할 수는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대체 이렇게 감정적인 얘기를 하는 게 누구인가. 국회의원들이다. 국회의원이 누구인가?
    국민을 대변하는 사람이다. 국민이 싫어할 일을 하지 않는 특성도 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국민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국민이 생각하는 것은 민심이다. 민심은 누구도 거슬릴 수가 없는 것이다.
    “임금은 물에 배를 띄울 수 있지만 물은 배를 뒤집을 수 있다.”
    민심을 거스르면 정권도 타도할 수 있다는 경고다. 민심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소리다. 최백수는 한숨을 내쉰다.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이 근무할 때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선배들의 전설 같은 이야기는 간혹 들었어도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아무리 국정원이 역사의 죄인이라도 안보를 책임지는 기관이다. 세계 각국에서 테러가 발생해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모든 나라가 테러방지를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테러는 어떤 나라가 독자적으로 막을 수 없는 범죄다. 그런 특성 때문에 세계 각국이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정보공유다. 모든 나라가 정보를 공유해도 예방하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모든 나라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체제부터 구축하는 게 상식이다. 눈앞에서 테러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그 방지 업무를 국정원에서 하기 때문에 어떤 권한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집을 빨리 지으라고 다그치면서 연장을 주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망치 톱 대패 같은 연장을 주면 집은 짓지 않고 주인을 해칠 것이라고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국정원을 없애는 게 낫다.
    살려두고 일은 못하게 하면서 책임만 추궁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국가나 국민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안보를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 그 일을 하는 기관만큼 소중한 곳도 없다.
    그렇게 중요한 기관이 국민의 불신을 받는다면 어떤 조치든 취해야 한다. 목수를 믿지 못해서 연장을 못줄 정도라면 다른 일꾼으로 바꾸는 게 상식이다. 일꾼을 믿지 못해서 연장도 안주면서 왜 집은 빨리 짓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건가?

    이율배반적인 현상을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이건 국가적인 불행이다. 최백수는 업보(業報)란 말을 떠올린다. 전생의 업(業)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생의 업(業)이 무슨 뜻인가?”
    업보란 말은 많이 들었어도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른다. 최백수는 습관처럼 네이버를 검색한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지은 선(善)과 악(惡)이 쌓여서 결과로 나타나는데, 선이 많으면 선업(善業)이고, 악이 많으면 악업(惡業)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나타나서 삶에 영향을 주는 일체를 업보(業報)라고 한다. 업보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가장 큰 것이 수명이다. 그 다음으로 건강이고 복이다….”
    최백수는 여기까지 읽고 만다. 더 이상 알아 봐야 골치만 아프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선배들의 악행으로 악업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법(佛法)에서의 업보는 본인의 선악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악행을 못하도록 경계하려는 것이다. 그게 본래의 목적이다. 그런데 난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들의 악행으로 인해서 업보를 받고 있다. 그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억울하다.
    억울하다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뜻이다. 당연히 고쳐야 한다는 당위성을 발견한다. 다시 최백수의 귓전에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