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시설 부실로 안전산행 어려워[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단양군 편
  • ▲ 수리봉(右)과 신선봉(左).ⓒ진경수 山 애호가
    ▲ 수리봉(右)과 신선봉(左).ⓒ진경수 山 애호가
    수리봉(守理峯 1,019m)은 충북 대강면 방곡리 동쪽에 있는 소백산맥 능선의 한 봉우리이다. 등산과 함께 단양팔경의 절경인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과 사인암 등의 비경을 즐길 수 있어 좋다.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수리봉 산행은 방곡리 오목내 마을에서 출발해 윗점마을을 거쳐 수리봉 정상에 오른 후, 용아릉을 건너 신선봉과 노송군락을 지나 재잣거리로 내려오는 코스가 있다.

    산악회에서는 대개 윗점마을을 들머리로 수리봉 정상을 거쳐 용아릉을 건넌 후 신선봉을 지나 황정산과 영인봉으로 이어지는 종주 산행 코스를 즐긴다. 이번 산행은 윗점마을에서 출발해 수리봉을 지난 용아릉을 건너 신선봉을 다녀오는 왕복 약 4.3㎞이다.
  • ▲ 901번 지방도를 지나면서 바라본 주흘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901번 지방도를 지나면서 바라본 주흘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초행 산에는 늘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새로운 산길을 걷는 맛과 산세가 주는 멋을 경험한다는 설렘, 바쁜 일상과 세월 속에서 떨어지는 체력에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더불어 혼자서 생소한 산을 마주한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그런 두 마음을 안고 수리봉을 향해 자동차로 약 2시간을 달려간다. 차창 너머로 누렇게 익어 가는 벼를 보니 가을이 성큼 다가섰음을 실감한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짓궂던 무더위 때문에 기후위기를 실감한 올여름의 끝자락에서 짧아지는 가을을 마중한다.

    문경읍을 지나 901번 지방도를 지나면서 주흘산 능선에 시선을 빼앗긴다. 날카롭게 뾰족 튀어나온 주봉과 뭉툭한 관봉이 마치 줄다리기하는 모습을 보니, 오늘 마주하게 될 수리봉과 신선봉에 대한 기대감이 더 부풀어 오른다.
  • ▲ 첫 번째 조망처에서 바라본 수리봉 산세.ⓒ진경수 山 애호가
    ▲ 첫 번째 조망처에서 바라본 수리봉 산세.ⓒ진경수 山 애호가
    여우목고개(해발 620m)를 넘고 백두대간 벌재(해발 625m)를 넘어 선암계곡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도예로로 접어든다. 백두대간 저수령(해발 850m)을 향해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수리봉 등산로 입구를 만난다.

    등산로 입구에서 마주한 수리봉은 하얀 맨살을 온새미로 드러낸 모습이 마치 두 눈을 부릅뜬 사천왕상을 연상케 한다. 혹여 몸을 빌려 따라온 속세의 귀신을 퇴치하려는 듯하다. 예사롭지 않은 산세의 기운을 받고 계단을 오르자, 뜻밖에 흙길이 이어진다.

    그러나 이내 바위산답게 가파른 돌길이 이어지다가, 노송이 안내하는 인공계단을 오른다. 마사토와 돌길이 반복되어 이어지다가 밧줄은 행방불명이고 지지대만 박혀있는 가파른 암릉을 간신히 오른다. 암반으로 이어지는 바위 전시장이자 첫 번째 조망처에 이른다.
  • ▲ 벌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등성이.ⓒ진경수 山 애호가
    ▲ 벌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등성이.ⓒ진경수 山 애호가
    시원하게 탁 트인 전망은 답답한 마음의 티끌을 깨끗하게 씻어 준다. 백두대간의 산줄기를 비롯해 켜켜이 너울대는 산등성이에 덩달아 어깨가 덩실댄다. 너무 높지 않아서 좋고, 민둥산이 아니어서 좋고, 산 넘어 산이 있어서 좋은 우리의 산이다.

    혼이 나갔다는 말이 바로 이런 풍경에 빠진 산객의 모습이 아닐까. 조망처에서 내려가 너덜길에 이어 또 밧줄이 없는 암릉을 오른다. 관리가 부실한 등산로, 혹여 마음 상한 산객의 마음을 달래듯 잘 다듬어진 자연석 계단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바위를 짊어진 소나무 줄기가 마치 버거운 삶의 무게에 찌든 우리네를 닮았다. 그러나 그는 괜찮다고 말을 건넨다. 스스로 살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중이란다. 그 모습에 삶의 위로를 받으니 힘찬 기운이 샘솟는다.
  • ▲ 살고 싶다고 애원하는 듯한 노송의 절규.ⓒ진경수 山 애호가
    ▲ 살고 싶다고 애원하는 듯한 노송의 절규.ⓒ진경수 山 애호가
    그런 세찬 기운을 시험하려는 듯 바위 슬랩이 다가선다. 그러나 안전시설이 설치된 바윗길과 슬랩을 오른다. 산에서 호기를 부리는 산객에게 산은 절대로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겸손해야 생명안전을 지킬 수 있다.

    바위 슬랩의 끝자락에서 벌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등성이와 첫 번째 조망처를 조망하고, 천 길 낭떠러지 암벽 위로 걸음을 조심스레 옮긴다. 여느 산과 달리 바위산인데도 신갈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바위산에 살기 위한 몸부림일까, 밑동이 흉물스러울 만큼 울퉁불퉁하다.

    한동안 이어지는 거칠고 가파른 너덜길이 심장을 터질 듯 압박하니 두어 번 쉬어 오른다. 너덜길에 이어 암릉을 오르자 작은 바위 능선을 만난다. 곧이어 펼쳐진 널찍한 암반 위에는 쉼터 바위들이 널려있다. 두 노송이 이 쉼터에 운치 있는 풍경을 더한다.
  • ▲ 신선봉(前)과 도락산(後).ⓒ진경수 山 애호가
    ▲ 신선봉(前)과 도락산(後).ⓒ진경수 山 애호가
    그러나 산객들이 노송의 나뭇가지에 얼마나 올랐었는지 반질반질하고 뿌리는 짓밟혀 썩어 문드러졌다. 살고 싶다고 애원하는 듯한 노송의 절규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인간의 욕심에 몸살을 앓는 자연, 산객들이여! 산을 아끼고 조용히 왔다가 아름다운 추억만 가져가시라.

    무거운 마음으로 쉼터를 떠나 커다란 바위 옆을 돌아 오르니, 신갈나무 숲길에 유순한 흙길이 이어진다. 마침내 능선 삼거리(수리봉-윗점마을-수학봉)에 닿는다. 이곳에서 왼쪽 수리봉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완만한 바윗길이 이어지다가 서너길 크기의 바위 아래 틈새에 세워진 작은 돌멩이가 간절한 소원을 듬뿍 담았다. 그런 마음으로 모든 산객들이 산을 아꼈으면 좋겠다. 드디어 신갈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바위 봉우리 수리봉 정상에 닿는다.
  • ▲ 올산 산등성이 저 멀리 보이는 소백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올산 산등성이 저 멀리 보이는 소백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힘겹게 올랐는데 기대했던 전망이 없으니 그저 바위에 앉아 잠시 거친 숨을 고른다.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는 신갈나무 잎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서는 햇살이 뜨겁기보다 외려 따사롭다. 숨죽이듯 고요한 풍경 속에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가 정적을 깨운다.

    땀이 식어 서늘함을 느낄 때쯤 430m 앞에 자리한 신선봉을 향해 길을 떠난다. 가파른 돌길을 내려서니 ‘이곳은 경사가 급한 암반 구간으로 추락위험이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라는 주의 경고판이 눈길을 끈다.

    곧이어 파란색 철제 계단 앞에 서니 비록 나뭇가지가 시샘하듯 풍경을 가리긴 했지만, 좌우로 탁 트인 조망이 심장을 요동치게 한다. 마치 밀당하듯 수리봉은 숨겨 놓은 절경을 하나둘 풀어 놓기 시작한다. 이래서 산행을 하는 게 아닐까.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 ▲ 신선봉에서 이어지는 황정산 산등성이.ⓒ진경수 山 애호가
    ▲ 신선봉에서 이어지는 황정산 산등성이.ⓒ진경수 山 애호가
    우뚝 솟은 신선봉 뒤로 도락산이 얼굴을 내밀어 인사한다. 그 산에 올랐을 때 느꼈던 환희가 다시 밀려오는 듯하다. 계단을 내려와 숲길을 통과하니 두 번째 자홍색 철제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먼저 바위 조망처로 걸음을 옮긴다.

    긴 산행의 고생스러움이 상기되는 올산의 산등성이, 그 너머 멀리 철쭉 향연에서 만난 소백산 능선이 조망된다. 그런가 하면, 신선봉에서 이어지는 황정산이 늠름하게 자락을 펼친다. 그곳에서 길을 잃고 구사일생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새롭다.

    도락산과 황정산 사이로 멀리 월악산을 조망하고 자홍색 철제 계단을 내려오면, 다시 파란색 철제 계단이 능선으로 내리꽂는다. 가론 용아릉이라는 암릉 구간이 시작된다. 그리 긴 구간은 아니지만, 가파르고 날카로운 능선에 트래버스도 있어 매우 위험하다.
  • ▲ 수리봉과 신선봉 사이에 있는 용아릉 구간의 일부.ⓒ진경수 山 애호가
    ▲ 수리봉과 신선봉 사이에 있는 용아릉 구간의 일부.ⓒ진경수 山 애호가
    바위 트래버스를 무사히 마치고 나도 암릉길은 계속된다. 기다리고 있는 철제 계단을 오르면 바위 슬랩의 암반을 네발로 기어오른다. 암반 한가운데 자라고 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가 마치 안전신호원처럼 서 있다. 직벽 바위를 휘돌아 올라 소나무 군락지를 지난다.

    직벽 암벽에 설치 쇠줄을 잡고 오르는데,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치는 기암괴석과 소나무의 멋진 공연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솟구친 바위의 막바지에 생긴 침니를 오른다. 팔다리에 힘주어 오른 바위 꼭대기에 서니 아는 것만큼 보이고, 모르는 것들이 알고 싶어진다.

    암반에 앉아 고요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용아릉을 거치느라 긴장한 몸과 마음을 이완시킨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신선봉으로 길을 나선다. 엷은 보라와 흰색 쑥부쟁이 꽃들이 초가을 바람에 살랑거리며 반갑다고 환영 인사를 한다.
  • ▲ 수리봉(右)와 수학봉(左).ⓒ진경수 山 애호가
    ▲ 수리봉(右)와 수학봉(左).ⓒ진경수 山 애호가
    신선봉(해발 992m) 푯말이 돌무더기 위에 올려져 있다. 이 봉우리를 통과해 계속 진행하면 황정산으로 이어진다. 이곳 역시 수리봉처럼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조망은 없다. 차량 회수 때문에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 하산키로 한다.

    오늘 산행은 산과 필자 둘만의 만남이었다. 사방천지를 다 누릴 수 있으니, 소유할 필요가 없고 훼손하지도 않는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공간일 뿐이다. 삶은 인연의 연속이라 내가 지은 업보에 따라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산다. 좋은 씨앗이 튼실한 싹을 내듯이.

    그런 삶의 시절인연은 시작이 나 홀로였고, 그 마지막도 나 혼자 떠나가야 한다. 두려움으로 시작해서 환희로 마치는 오늘 산행은 그것을 시나브로 준비하는 여정이었다. 풍요로운 가을엔 온새미로 자연을 만끽하고 공수래공수거이니 나누며 살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