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태극(地太極)의 손때로 안타까워[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충주시 편
  • ▲ 충주호수로 전망대에서 바라본 지등산.ⓒ진경수 山 애호가
    ▲ 충주호수로 전망대에서 바라본 지등산.ⓒ진경수 山 애호가
    지등산(地登山,  535m)은 충북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에 있는 산으로, 북쪽의 천등산(天登山, 해발 807m)·인등산(人登山, 해발 667m)과 함께 천지인(天地人) 삼태극(三太極)를 이루는 삼등산(三登山) 중 하나다. 

    세상의 근원인 천지인 삼등산은 범민족적·범인류적 소망이 이루어지는 최상승의 명단이다. 천등산이 변치 않는 장구한 하늘의 마음으로 정성으로써 오르는 산이라면, 지등산은 모든 것을 살리고 키워 거두는 땅의 마음으로 오르는 산이다.

    천부경(天符經)에 이르기를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 지일이 인일삼)’이라 했다. 즉 하늘은 하나이면서 첫 번째요, 땅은 하나이면서 두 번째요, 사람은 하나이면서 세 번째라 했다. 지난번 천등산을 올랐고, 지금은 지등산을 오르며, 훗날 인등산을 오를 계획이다.

    해발 100m인 지등산주차장(충북 충주시 동량면 건지길 24)을 기점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주차장 입구에 인접하여 화장실이 있고, 주차장 안쪽 끝으로 ‘6·25참전기념비’와 ‘조동공원입구’ 푯말이 설치돼 있다. 
  • ▲ 힐링 명소 건지마을 풍경포인트.ⓒ진경수 山 애호가
    ▲ 힐링 명소 건지마을 풍경포인트.ⓒ진경수 山 애호가
    주차장을 출발하여 제법 가파른 콘크리트 포장길(건지길)을 약 50m를 오르자 지등산(2.45㎞) 이정표가 길을 따라 쭉 올라가라 안내한다. 이정표 맞은편에는 ‘조동근린공원 입구’인데 공사 중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포장길보다 흙길 걷기를 좋아하는 산객은 조동근린공원 입구 옆에 설치된 산책로 입구의 계단을 오르면 된다. 그러나 중고개 갈림길에서 건지마을로 이동하면 다시 포장길과 합류된다. 먼저 포장길을 걸어 지동산에 올랐다가 하산한 후에 산책길을 걷기로 한다.

    완연한 봄기운이 감도는 따뜻한 날씨와 구불구불하면서도 가파르게 치고 오르는 길은 산행 초입부터 온몸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겉옷을 벗긴다. 잔뜩 성난 길을 달래며 ‘풍경포인트’에 도착하니 조망이 탁 트이지만 흐릿한 날씨 탓에 풍경이 베일을 덮었다.

    주차장 기점 약 0.65㎞ 지점을 지나면서 중고개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되는 지점을 지난다. 이곳에서 지등산과 계명산 사이를 고요하고 잔잔하게 흐르는 남한강을 조망한다. 이어 포털 등산로에 표기된 대로 건지길 왼쪽으로 축대를 끼고 좁고 가파른 콘크리트 포장길을 오른다.
  • ▲ ‘지등산 등산로 안내’ 판이 세워진 세거리길.ⓒ진경수 山 애호가
    ▲ ‘지등산 등산로 안내’ 판이 세워진 세거리길.ⓒ진경수 山 애호가
    포장길 끝에 있는 밭을 지나 등산로가 없는 거친 숲속을 헤쳐가며 비탈을 오른다. 묘(墓)를 지나자 건지마을회관에서 올라오는 포장길과 만난다. 이 코스보다는 건지길을 따라서 건지마을회관까지 이동하여 지등산을 오르는 코스를 권장한다.

    계속해서 포장길을 약 0.1㎞ 오르자 ‘지등산 등산로 안내’ 판이 세워진 세거리길을 만난다. 여기 해발 300m까지 올라오면서 지등산 자락의 비탈은 과수나무 차지이고, 양지바른 곳곳은 무덤 차지이며 드물게 주택이 자리한다.

    지등산이 명당자리로 알려진 탓에 사람들의 손길을 제법 많이 탔다. 지태극(地太極)의 기운이 사람들에 의해 많이 쇠해진 듯하다. 마치 인간이 저지른 환경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지금 미세먼지가 뿌옇게 세상을 뒤덮은 것처럼…

    세거리길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서 약 0.15㎞를 이동하자 ‘등산로 입구’라고 붙어 있는 이정표 말뚝이 넘어져 있는 세거리길에 이른다. 충북에 소재한 산을 오를 때마다 느끼는 것은 등산로 정비나 이정표 등이 부실하다는 것을 느낀다.

  • ▲ 비탈길에서 이어지는 지등산의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비탈길에서 이어지는 지등산의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세거리길에서 흙길을 밟으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주차장을 출발해서 지금까지 계속 오르막길이 이어져 왔고, 다시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흙길을 걸어 급수탑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자마자 앙증맞은 돌탑이 정겹게 맞이한다.

    길바닥에는 겨우내 숨죽이며 따스한 봄날을 기다리고 있던 풀들이 파릇파릇한 새싹을 내밀기 시작한다. 경사진 비탈길을 오르면 ‘조동공원(1.84㎞)·지등산(0.65㎞)’ 이정표와 돌탑이 세워진 능선에 닿는다.

    능선길은 널찍하고 푹신한 흙길이다. 길 왼쪽의 비탈에는 밤나무가 빼곡하게 심어졌다, 길 양쪽에 세워진 돌탑을 호위를 받으며 송전탑을 지나자마자 ‘지등산(0.5㎞)·임도(건지~장선, 2㎞)·건지마을(1㎞)’ 이정표를 만난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널찍한 흙길에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산비탈 밤나무밭 너머로 베일을 쓴 두알봉(442m)과 그 뒤로 인등산(667m)이 충주시 동량면 장선마을을 내려보고 있다. 어슴푸레하게 천등산(807m) 머리가 보일 듯 말 듯 하다.
  • ▲ 산비탈 밤나무밭 너머의 두알봉과 인등산.ⓒ진경수 山 애호가
    ▲ 산비탈 밤나무밭 너머의 두알봉과 인등산.ⓒ진경수 山 애호가
    밤나무 낙엽이 깔린 널찍한 오르막 능선길의 오른쪽으로는 산림이 우거져 있고, 왼쪽으로는 밤나무가 전지되어 있어 조망이 훤하게 트인다. 돌무더기로 세워진 귀여운 지등산 화살표를 지나면서 능선에서 약간 내려선 완만한 비탈길을 걷는다.

    이어 지등산 화살표와 국가지점번호판, 그리고 돌탑이 있는 곳에 닿는다. 이곳에서 지등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돌탑이 세워진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오르는 코스와 밤나무밭 사이의 비탈길을 올라 ‘관모봉과 지등산 갈림길’ 이정표에서 지등산 방향으로 능선을 오르는 두 가지 코스가 있다.

    이번 산행은 밤송이가 널려 있는 후자 코스로 상행하고, 전자 코스로 하행하기로 한다. 밑동만 남기고 전지된 밤나무밭은 민둥산처럼 변했다. 그 덕에 시원한 조망을 선물로 받았지만 포근한 날씨로 미세먼지가 시야를 흐릿하게 만든다.

    완만한 비탈길은 하염없이 길게 늘어진다. 그 길 위에서는 여느 산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을 감상한다. 마음을 빼앗기며 무심하게 걷다 보니 어느새 지등산 정상을 지나친다. ‘지등산(0.2㎞)·관모봉(1.5㎞)·송전탑(0.5㎞)’ 이정표를 만나 지등산으로 능선을 따라 다시 돌아간다.
  • ▲ 밤나무밭 사이의 비탈길로 지나쳐 온 지등산 봉우리.ⓒ진경수 山 애호가
    ▲ 밤나무밭 사이의 비탈길로 지나쳐 온 지등산 봉우리.ⓒ진경수 山 애호가
    갈림길에서 지척인 지등산을 향해 완만한 능선을 오른다. 이어 잠시 가파른 길을 치고 오르면 ‘지등산(해발 535m)’ 정상석과 ‘건지마을(1.5㎞)·관모봉(2㎞)’ 이정표가 세워진 지등산 정상에 닿는다.

    정상은 좁고 숲으로 둘러싸여 조망은 거의 없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충주댐을 빼꼼하게 내다볼 수는 있다. 그것도 오늘은 미세먼지가 말썽이라 시원치 않다. 산행 내내 등산객을 한 명도 만나지 않는 호젓하고 고즈넉한 산길, 잡념을 전부 쓸어버리고 나에게만 집중한다.

    천지인합일(天地人合一)이 되어야 비로소 분별없고 평화로운 세상이 된다. 그러나 인간은 이산화탄소 배출과 인공위성 발사로 하늘을 어지럽히고, 난개발과 핵개발로 지구를 병들게 하고 시한폭탄으로 만든다. 그러니 어찌 편안하고 행복할 날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싶다.

    산마루를 지나 건지마을로 하행하는데 정상 바로 아래부터 급경사가 이어진다. 이 산은 다른 산들처럼 풍광이 장쾌하지도, 기암괴석이 풍부하지도 숲과 계곡이 울창하고 시원시원하지도 않다. 그저 동네 뒷산처럼 평범하다.
  • ▲ 쌍 암반 위의 쌍 바위와 쌍 돌탑.ⓒ진경수 山 애호가
    ▲ 쌍 암반 위의 쌍 바위와 쌍 돌탑.ⓒ진경수 山 애호가
    등산로 곳곳에 돌탑을 정교하게 쌓아 무덤덤한 산행에 흥미를 주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지등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볼거리는 정상에서 약 0.15㎞ 아래에 떨어져 위치한 쌍 암반 위에 놓인 자연석 쌍 바위와 크고 작은 쌍 돌탑이다. 이른바 ‘탄생 바위’다.

    마치 하늘이라는 하나에는 해와 달처럼 음양(陰陽)이 있고, 땅이라는 하나에는 흙과 바위처럼 강유(剛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어 가파른 산길을 내려오면서 만나는 자연석 위에 얌전히 앉은 돌탑을 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탄생 바위에서 다시 약 0.15㎞를 내려오면 등산로 합류 지점에 닿는다. 이어 임도를 내려가면서 밤나무밭 뒤로 보이는 두알봉·인등산·천등산을 조망한다. 편안한 발걸음 속에 “나답게 사는 행복”은 나에게 집중하며 사는 것이라 여긴다.

    그것은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요, 나를 사랑하는 것이지 나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나를 사랑할 줄 알면 남을 사랑할 줄 알고, 나와 남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 보람되지 않을까 싶다.
  • ▲ 건지마을로 내려가는 길에서 바라본 계명산.ⓒ진경수 山 애호가
    ▲ 건지마을로 내려가는 길에서 바라본 계명산.ⓒ진경수 山 애호가
    송전탑과 두 개의 돌탑을 지나 임도 끝자락에서 왼쪽으로 비탈길을 내려간다. 만물을 키우고 돌보는 땅을 밟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등산로 입구 세거리에 이른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건지마을을 내려다보이는 포장길로 이동한다.

    길옆으로 과수원과 무덤을 지나고 발아래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건지마을을 조망한다. 그리고 남한강 건너 우뚝 솟은 계명산이 미세먼지의 장막 속에서도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그리고 저 멀리 남한강과 동량대교, 그리고 용탄농공단지가 보인다.

    다시 ‘지등산 등산로 안내’ 판이 있는 세거리를 지나 건지마을을 향해 콘크리트 포장길을 내려간다. 지등산과 함께 남한강 물줄기를 만드는 계명산을 눈높이로 맞춘다. 머리 위로는 전선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자연을 즐기려는 산객에게 포장길과 함께 그다지 좋지 않은 풍경이다. ‘지등산(1.14㎞)·조동공원(1.41㎞)’ 이정표를 지나면서 마을 길로 접어든다. 이곳에서 지등산을 올려다본다. 9부 능선까지 사람의 손길이 닿아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봉우리뿐이다.
  • ▲ 건지마을에서 바라본 지등산.ⓒ진경수 山 애호가
    ▲ 건지마을에서 바라본 지등산.ⓒ진경수 山 애호가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노란 생강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이제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얼마 걷지 않아 건지마을회관에 도착한다. 부근에는 ‘지등산(1.4㎞)·조동공원(1.05㎞)’ 이정표와 광명사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약 0.2㎞ 떨어져 더 높은 산기슭에 자리 잡은 광명사를 둘러본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약사전과 산신각, 그리고 요사가 지등산을 배경으로 수수하게 자리한다. 적막이 흐르는 고요와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광명사에서 건지마을회관을 다시 내려오는 길에 매화나무를 만난다. 가지마다 수두룩하게 달린 붉게 물든 꽃망울 사이로 백매화가 성글게 피어있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청순하고 깨끗한 모습을 눈과 마음, 그리고 카메라에 담아 깊이 간직한다.

    ‘나답게 사는 행복’(진경수 지음/좋은땅 출판사)에 나오는 문장을 되새겨 본다. “나답게 사는 행복은 식물을 재배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행복의 씨앗을 뿌리고 행복을 키우는 환경을 만들어 행복의 꽃을 피우는 것은 오롯이 내 마음에 달려 있다.”
  • ▲ 건지마을회관 옆에 핀 매화꽃.ⓒ진경수 山 애호가
    ▲ 건지마을회관 옆에 핀 매화꽃.ⓒ진경수 山 애호가
    포근한 날씨에 쉼 없이 걸었으니 빠진 모공에서부터 땀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건지마을을 지나서 마을 어귀의 서낭당 나무에 이른다. 그 아래에 설치된 의자에 잠시 앉아 마음에 쉼표를 찍는다.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줄기에 땀과 시름을 흘려보낸다.

    다시 발걸음을 채근해 풍경포인트를 지나 주차장 바로 위에 자리한 조동공원입구에 닿는다. 이번 산행은 ‘지등산 주차장~등산로 입구~임도~송전탑~관모봉·지등산 갈림길~지등산 정상~탄생 바위~건지마을회관~광명사~지등산 주차장’의 약 5.45㎞이다.

    이제 조동근린공원 입구에 있는 산책로를 걷는다. ‘산책로 입구~중고개~정상~체육공원~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약 1.4㎞ 코스다. 흙길과 마사토길이며 산책로 곳곳에 돌탑이 세워져 있다. 체육공원의 삼등정(三登亭) 뒤편 계단을 통해 주차장으로 내려와 마무리한다.

    자연의 덕(德)을 보려면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 마치 후덕한 삶을 살려면 선행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한 오늘 스스로 그러함으로 내일을 준비한다. 다음에 찾게될 인등산은 어떠할지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