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新綠에 감춰진 굵직한 巖陵이 일품[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제천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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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한 금수산(錦繡山, 해발 1016m)은 충북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에 위치하면서 단양군 적성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산의 이름은 원래 백운산이었으나 조선 중기 단양군수를 지낸 퇴계 이황이 단풍 든 이 산의 모습을 보고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하여 이름을 '금수산'으로 바꾸었다고 전한다.금수산 산행은 상천주차장과 상학주차장 두 곳에서 오를 수 있다. 이번 산행은 ‘상천주차장~상천삼거리~금수산삼거리~금수산고스락~망덕봉삼거리~망덕봉갈림길~망덕봉~만덕봉갈림길~상천삼거리~상천주차장’로 자연이 수놓은 비단길을 다녀오는 코스다.상천주차장을 출발하여 상천리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길가에 핀 연분홍과 붉은 접시꽃이 아침 햇살을 받아 청순하고 맑은 자태로 반긴다. 갈림길에서 이정표에 따라 용담폭포로 이동한다. 갈림길마다 ‘금수산 탐방로’ 화살표가 세워져 있어 탐방로를 벗어날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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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정사 앞을 지나면서 금수산을 찾아보니 첩첩산중 속에 숨겨져 있어 쪼끔만 보인다. 온전한 모습이 기대된다. 상천삼거리에 도착하여 ‘금수산 숨은 비경 용담폭포’ 표지석을 만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망덕봉(용담폭포)이고, 우측으로 가면 금수산 고스락으로 바로 이어진다.우측으로 짙은 초록빛 숲속에 깔린 바위를 밟으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계단과 바윗길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산길이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자 심장 고동도 빨라지는가 싶더니 벌써 산언덕에 이른다. 이 능선이 금수산을 숨기고 있던 것이다.완만한 산비탈을 이동하다가 흙과 돌이 뒤섞인 침침하고 촉촉한 산길을 걷는다. 마치 원시림을 탐방하는 기분이다. 이끼가 잔뜩 피어난 바위가 사방으로 흩어진 구간을 지난다. 상천주차장으로부터 2.0㎞ 지점에 이르러 산이 허리를 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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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례 너덜지대를 지나자 거친 돌길로 변하면서 급경사의 계단이 무지막지하게 다가온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계단길이 언제 멈출 줄 모르지만, 오르는 내내 좌우로 펼쳐진 숲의 내음과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 새소리의 향연에 영혼은 온천지를 훨훨 날아다닌다.기암을 보면서 한참 계단을 오르고 나서 흙과 돌이 뒤섞인 산길을 오른다. 빗물에 씻게 흘러내린 탐방로는 나무뿌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계속되는 오르막에 다리가 뻐근해지고 천근만근이 되어간다. 청록의 숲에서 여름을 느끼며 계단을 오르면 어느덧 금수산삼거리에 이른다.이곳은 상학주차장에서 올라오는 탐방로와 합류되는 지점으로 금수산까지 0.5㎞만 이동하면 된다. 돌길을 걷다가 다시 계단을 오른다. 여태껏 시원한 조망은 거의 없었고 오르기만 하였다. 그러나 계단이 끝나자 조망 바위에서 푸른 청풍호반을 굽어보는 기쁨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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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탈로 이어지는 탐방로를 따라 이동하다가 능선으로 올라 삼각점이 있는 곳에서 단양군 적성면 일대를 조망한다. 마지막 짧은 계단을 올라 금수산 고스락(해발 1016m)에 도착하니 날카로운 암봉 꼭대기가 데크전망대를 뚫고 나와 멋진 소나무와 함께 한 폭의 그림을 만든다. 사방으로 탁 트인 전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망덕봉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 마치 금수산을 박차고 승천한 용(龍)의 등줄기 같다. 그 북쪽으로 신선봉, 학봉, 저승봉, 조가리봉으로 이어진 산등성이 청풍호반으로 미끄러져 내리고, 다시 그 뒤편으로 동산과 성봉의 산줄기가 나란히 눕는다. 청풍호반이 보이지만 시계가 희미하고, 남쪽으로 월악산과 백두대간을 지나는 황정산이 아련하다.신룡이 승천했던 금수산의 기운을 받고자 고스락에 잠시 머문다. 그리곤 계단 통해 고스락 아래로 뾰족하게 튀어 오른 작은 암봉을 오른다. 그곳에서 금수산을 바라보니 청록의 숲이 암봉을 감추고 있어 금수산은 영락없이 부드러운 곡선미를 지닌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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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암봉에 올라 사방으로 터진 풍광을 감상한 후 하행하여 해발 949m의 망덕삼거리에 이른다. 이곳에서 상학주차장으로 하산할 수 있다. 망덕봉을 향해 직진하면 참나무의 짙은 신록이 품은 난간과 계단, 흙길로 이어진다. 지난 억센 소나기의 등쌀을 견디지 못한 참나무 순(筍)들이 산길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다.다시 평탄한 돌길을 걸어 해발 854m의 움푹한 안부에 이른다. 망덕봉을 오르는 산길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계단을 오르면서 금수산의 보물 같은 풍경을 조망하는 행운을 얻는다. 이 구간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경치다.계단 끝자락에서 망덕봉갈림길을 만난다. 이곳에서 0.1㎞를 더 오르면 해발 926m의 망덕봉에 도착한다. 고스락은 넓은 공터 한가운데 고스락 돌이 세워져 있고, 사방으로 숲이 울창하여 조망은 없다. 푸른 잎을 떨군 겨울엔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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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릇한 생명력으로 가득한 망덕봉을 반환점으로 다시 망덕봉 갈림길로 하행한 후 상천주차장을 향해 2.7㎞ 하행을 시작한다. 경사진 나무계단과 잔돌 길을 내려가는 도중에 계단참처럼 빈터를 지난다. 우리네 삶도 계속 직진하기보다 한 박자 쉬어가는 삶의 빈터가 필요하다.생기 가득한 숲을 키운 산비탈은 잔돌이 깔려있고 경사도 가파르다. 망덕봉에서 0.5㎞을 하행하여 해발 777m 지점에서 이정표를 만난다. 이후 능선을 따라 돌길을 이동하다가 선돌이 있는 곳에서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 옆으로 얼굴을 내미는 바위들이 심상치 않다.계단을 내려와 성글어진 숲속으로 이어진 암반을 걷는다. 암반 끝자락에는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청풍호반의 배경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며 의젓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후 암릉이 시작되면서 숲에 감춰진 금수산의 비경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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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봉에서 1.0㎞를 하행하여 해발 639m 지점에 이르니 가파르고 굵직한 암반의 능선 위로 설치된 계단이 시작된다. 상천주차장을 출발하면 1.8㎞를 오른 지점이다. 청풍호반 너머로 뾰족하게 솟은 월악산 영봉이 보인다.계단 옆으로 암반을 뚫고 생명을 이어가는 노송과 애송에 시선을 빼앗기고, 앞으로 펼쳐지는 풍광에 홀려 발걸음을 뗄 수가 없다. 기가 막힌 풍광에 한겨울 찬 문고리에 손이 달라붙는 듯 그냥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버린다.서서히 한발 한발 계단을 내려서자 가는 선들의 풍광들이 굵어지기 시작하고, 암반과 소나무, 그리고 숲들이 이룬 자연 속에 설치된 인공계단이 아름다운 조화를 크게 깨트리지 않는다. 눈길 닿는 곳이 절경이 아닌 곳이 없고, 청량한 바람이 번잡한 마음과 생각을 흩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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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반의 가장자리에 마련된 데크전망대에 오르니 먹이를 찾는 매바위와 우아한 족두리바위가 눈앞에 다가선다. 애벌레처럼 청풍호반으로 꿈틀거리며 미끄러지는 가은산 산등성과 그 뒤로 말목산, 제비봉, 용두산, 황정산이 아련하다. 정말 비단에 수를 놓듯 아름다운 절경이다.멋진 풍광을 선물하는 계단이 끝나면 소나무와 바윗덩어리가 길을 인도한다. 암릉에 자란 나무들과 풀들이 이 비경을 감추려는 듯하다. 생김생김이 같은 것이 하나 없고 다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다고 서로 차별하지도 시기하지도 않는다.망덕봉에서 흘러내린 깎아지른 암벽과 그들 사이에 뿌리박은 소나무들에 가렸던 금수산 봉우리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이 절경도 막바지인가 싶더니 다시 계단이 이어지면서 산수의 신비로운 조화가 한 폭의 수채화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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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부봉을 거느린 금수산이 아우라 같은 흰 구름의 띠를 두르고 나투신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계단이 애간장을 녹인다. 그 끝이 아니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 집착일까. 쪼개진 바위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대단한 걸까, 그런 소나무를 키운 쪼개진 바위가 더 위대한 걸까.계단이 끝나고 부드러운 암반 위를 어슬렁어슬렁 걷는다. 자연의 풍광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넣고 가슴에 담고프다. 금수산 봉우리가 베일을 벗듯 점점 그 모습 점차로 드러난다. 다시 또 암벽의 산자락으로 가려질까 조바심이 난다.이제 암릉 길도 끝이 보이기 시작하고 흙길이 시작된다. 망덕봉에서 1.5㎞를 내려온 해발 392m를 지난다. 이곳은 상천주차장으로부터 1.3km 지점이다. 돌무더기를 지나자 다시 암반이 이어지고, 좌측으로 금수산 봉우리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다시 그 모습이 숨어버릴까 걱정되어 눈과 마음에 담는 것으로 부족해 카메라를 들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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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내려가자 ‘추락주의’ 표지판 넘어 매끈하게 미끄러지는 바위 아래로 굽어 보이는 선녀탕이 단추 구멍처럼 일렬로 선다. 그 옆으로는 바위가 금수산 산행의 백미로 손꼽히는 용담폭포의 모습을 감추려는 것인지 보호하려고 하는 것인지 우뚝 솟아 있다.주나라 황제의 세숫대야에 비친 금수산을 신하가 둘러보니 산의 정기가 빼어나 명당에 봉분을 만들자 남쪽의 용담(龍潭)에서 금수산을 수호하는 신룡(神龍)이 노하여 울부짖으며 승천할 때 남긴 발자국 3개가 상탕·중탕·하탕의 삼담(三潭)이라 전한다. 그 분노가 얼마나 컸던지 용트림도 무척 거셌던 모양이다.용담폭포를 남겨두고 암반을 내려가자 가은산 산등성과 청풍호반 너머로 월악산 영봉이 더 가까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커다란 바위를 돌아가니 용담폭포 전망대이다. 땅으로는 용담폭포의 30m 물줄기가 쉼 없이 감로수를 만들어 만물(萬物)에 생명을 주고 괴로움을 덜어준다. 하늘로는 금수산의 정기가 뻗쳐올라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 온 누리에 맑은 정신을 불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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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폭포를 떠나면서 신록의 숲으로 감춰질 금수산과 용담폭포를 한껏 담아 하행한다. 이 산을 오르지 않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숨은 비경이다. 이런 기쁨에 힘든 산행을 마다하지 않은 이유다. 비탈길을 내려와 용담폭포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건너는 목교를 지난다.이어 계곡을 따라 용담폭포를 만나러 간다. 징검다리를 걷듯 바위 위로 신선이 된 듯 사뿐한 걸음을 한다. 지금은 웅장한 몸매에 비해 높은 암반 위에서 가냘픈 물줄기를 내리고 있지만, 용담폭포는 엄청난 음이온을 쏟아내고 있다.그 아래 바위에 앉아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와 음이온, 그리고 폭포의 음이온을 온몸으로 마신다. 이곳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산수의 풍미를 온새미로 즐긴다. 그동안 적폐로 남아있던 온갖 잡념의 쓰레기들을 벗어내고 텅 비어 적정(寂靜)하게 만드니 나비가 날갯짓하며 날아가듯 나(我)라는 것이 날아간 듯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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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나와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산길을 걷는다. ‘녹색마을길’ 이정목이 우측으로 상천리 주차장을 알린다. 이곳에서 쭉 직진하면 용담폭포 표지석이 있는 상천삼거리로 이어진다. 상행 시와 다른 풍경을 즐기기 위해 우측으로 들어선다.계곡을 따라 하행하는 이 길은 제천의 명품인 ‘자드락길’이다. 너른 암반 위로 굽이굽이 흐르는 용담수에 시원하게 땀을 씻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지금 이 순간 이 시원함에 만족할 뿐이다. 더 가질 것도 버릴 것도 없다.계곡을 따라 이동하면서 몇 채의 민가를 지나 산수유로 유명한 상천리마을을 통과하여 상천주차장에 도착한다. 이 주차장 건너편에는 가은산탐방로 입구가 있다. 이로써 금수산의 숨겨진 보물을 찾는 약 10㎞의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