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등바위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일품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경북 문경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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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산(黃腸山, 해발 1077m)은 경북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와 명전리에 걸쳐 있는 백두대간이 지나는 산이다. 산명(山名)은 옛날 궁궐이나 배 등을 만들 때 쓰이는 속이 누런 소나무인 황장목(黃腸木)이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이 산은 월악산국립공원 동남단에 자리하고 있으며, 골짜기가 깊어 원시림이 잘 보존되어 있고 암벽 등이 빼어나다. 정상 북쪽으로 도락산과 문수봉, 서쪽으로 대미산, 남쪽으로는 공덕산이 자리하고 있다.이번 산행은 ‘황장산 안생달 공영주차장~와인동굴~작은차갓개~전망대~능선갈림길~맷등바위~황장산 정상~황장산 하단~계곡코스~원점 회귀’의 총 거리 약 7㎞이다. 작은차갓재부터 황장산 하단까지는 백두대간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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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을 출발해 완만한 경사의 도로를 따라 약 0.7㎞ 올라 황장산 공원지킴터에 도착한다. 관리원에게 탐방로예약 QR코드 입장권을 보여주니, 관리원께서 안내지도를 보면서 탐방로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한다.이후에도 도로 끝자락을 지나 임도를 따라 0.6㎞ 이동해 와인동굴에 도착한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메마른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사면을 가로지르는 완만한 돌길을 오른다. 바윗돌 사이사이에는 함박눈이 내린 것처럼 갈색 낙엽이 쌓여있다.소슬바람이 구름을 슬그머니 몰고 오는가 하면 침엽수 가지를 흔들어대니, 마치 싸라기눈을 뿌리듯 후드득 낙엽이 쏟아져 내린다. 갈색 함박눈과 싸라기눈이 뒤섞인 흙길을 올라 작은찻갓재에 도착한다. 이제부터 백두대간 마루금을 통과하는 탐방로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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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장을 지나자 황장목 숲길 대신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며 하늘로 곧게 뻗은 잣나무 숲길을 통과한다. 이어 넓죽한 바위들이 부드러운 오르막을 이루며 산객을 이끈다. 이어 가파른 나무 계단을 굵고 짧게 오르니 다시 완만한 돌길이 이어진다.짤막한 데크 길에 올라 세찬 골바람을 맞으며 맷등바위 능선을 올려다보고, 안생달 마을을 내려본 후 다시 바윗길을 올라 전망대에 닿는다. 대미산과 문수봉 사이로 뾰족한 월악산 영봉이 가물거린다. 어느새 하늘엔 구름이 한가득 이고 바람이 세차니 더욱 을씨년스럽다.이어 버려야 할 것을 모두 다 내려놓은 신갈나무 숲 사이로 회백색 바윗돌과 암반이 확연히 드러난 탐방로를 오른다. 홀가분하게 당당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자연을 마주하니 지난 슬픈 일에서 벗어났거니 했건만, 간혹 자신도 모르게 쓰라린 가슴을 매만지니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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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당히 길을 걸으리라 다짐하며 탐방로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다. 산을 오를 때마다 쓰레기를 줍는 것보다 더 훌륭한 건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이 아닐까. 종이인가 싶어 허리를 숙이니 땅속의 얼음조각이다. 겨울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한다.앞을 가로막는 커다란 돌산의 우측으로 돌아 능선을 걷는다. 이제 황장산이 0.6㎞로 지척이다. 능선을 후리며 지나가는 바람 탓에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부드러운 바윗돌을 지나 가파르게 올라채는 데크 계단을 오른다.계단참에서 만난 대미산과 문수봉, 그 사이로 월악산 영봉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달라지는 풍광에 좀처럼 발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수많은 이름과 사연을 안고 겹겹이 층을 이룬 산너울이 희뿌옇게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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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산 능선 뒤로 가물거리는 주흘산과 운달산을 기웃거리며 걷던 발걸음이 맷등바위에 이른다. 능선에 올라서니 사방으로 펼쳐지는 전경 덕분에 환희로 가득해 온갖 번뇌가 사라진다. 시선 닿는 곳마다 즐거움이요, 겨울바람 소리 또한 찬가이니 이것이 행복이구나 싶다.맷등바위 암릉이 0.2㎞로 짧은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 대신 오래 머물려 우리의 아름다운 산들이 펼치는 향연을 맘껏 즐긴다. 적막함마저 감도는 평일 산행, 발 딛는 이 산을 비롯해 보이는 산들이 모두 다 내 것이니 세상 부러울 것이 어디 있으리.하얀 속살을 드러낸 도락산이 손을 내밀면 닿을 듯 가깝게 보이고, 우측으로 황정산이 그리고 그 뒤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듯한 소백산 능선이 정겹다. 그곳에 남긴 내 발자국, 내 마음엔 그들과 나눈 추억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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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산 산줄기와 맥을 잇는 영인봉과 수리봉, 그 뒤편으로 올산이 이리 반가운 걸 보면 아는 만큼 보이는가 보다. 그래서 인생이 즐겁고 행복하려면 눈을 편안하게 감을 때까지 공부하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가 보다.그렇다고 다른 요만조만 산봉우리 이름을 다 알 수 없으니, 또 때가 되면 알아 지리라. 떠나기가 아쉬워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니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췄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 일기 예보에는 맑음이라 했는데 말이다.날씨도 이렇게 종잡을 수 없으니, 사람 마음인들 오죽하라. 한마음을 붙잡고 살기가 어찌 그리 쉽던가. 미혹에 유혹되어 잠시 길을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길 반복하며 살아가는 게 삶이거늘. 그러다가 언제 가는 안정상태에 머물겠거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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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암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짧은 잔도(棧道)를 걷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지만, 철제 난간이 보호하니 안전하게 이동한다. 전망 좋은 곳엔 계단참처럼 널찍한 전망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이곳에서 도예로를 따라 좌측으로 신선봉과 수리봉, 우측으로 문복대를 조망하고, 길 끝자락에 자리한 시루봉까지 시선이 닿는다. 그리고 남서 방향으로 켜켜이 층을 이루며 희뿌연 안무 속으로 사라지는 산등성 일부를 이루는 운달산이 어디 있나 찾아본다.그렇게 산들과 숨은그림찾기 하듯 느긋한 시간을 보냈건만, 어느새 이정표는 황장산 정상이 0.1㎞로 지척이라 알린다.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니 대미산 자락에 살포시 내려앉은 생달리 저수지가 고즈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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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정상을 앞두고 허리를 바짝 세우기 마련인데, 황장산은 유순하게 해발 1077m 정상을 대뜸 내어준다. 신갈나무로 둘러싸여 조망은 없지만, 주변으로 의자가 설치되어 있어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맷등바위에서 구경하라 허기진 배를 채운다.컵라면에 물을 붓고 기다리는 시간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쓰레기를 보이는 대로 주섬주섬 줍는다. 라면을 먹고 있는데 느닷없이 다가오는 산객이 막걸리 있느냐고 묻는다. 산에서는 절대로 음주해서는 안 되므로 술을 갖고 다녀서는 안 된다고 전한다.그렇다, 가끔 산을 오르다 보면 버려진 플라스틱 막걸리 용기를 볼 때가 있는데, 참으로 볼썽사납다. 산을 좋아서 찾는다면 산이 또한 자기를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행동했으면 좋겠다. 자기만 좋아서 산을 찾는다면 그건 스토커나 다름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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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지나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우뚝 솟은 봉우리를 향해 황장산 하단 방향으로 길을 내려선다. 암반을 잠시 내려서면 좌측으로 조망이 터지는 곳에서 멋진 형상의 황장산 정상부의 암벽을 감상할 수 있다.이어 계단을 내려와 황장산 하단에 이른다.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직진 방향 능선에는 철망이 세워져 있다. 안전상의 문제로 관리공단에서 통제하고 있는 구간이다. 그런데도 감투봉까지 다녀와서 버젓이 후기를 올리는 산객이 있다고 한다.안내판에도 백두대간 마루금인 이 지역은 한반도의 핵심 생태축이자 자연생태계의 보고인 국립공원자연보존지구로 개방할 수 없다고 전하고 있다. 진정한 산사람은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자연을 사랑할 줄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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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으로 곧추선 계단을 한동안 내려선다. 경사가 꽤나 급해서 이쪽으로 오르면 힘들었겠다 싶다. 이어 나무 계단이 바통을 잇는가 싶더니 이 탐방로의 특징인 너덜길이 쭉 이어진다. 좌측에 메마른 계곡을 끼고 두더지처럼 낙엽을 뚫고 나온 바윗돌을 밟으며 하행한다.상행 탐방로에 비하면 탐방로가 매우 거칠고 험한 편이다. 자칫 방심했다간 낙상할 우려가 있으므로 극히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다. 일부 구간은 통신도 터지지 않으니 더욱 그렇다. 둥글넓적하게 경사를 이루는 계곡에서 고드름을 만나니 오늘 꽤 추웠던 모양이다.탐방로에 깔린 갈잎을 밟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오감이 깨어나는 듯하다. 한 달 보름 정도 남은 한 해가 또 이렇게 흘러간다. 언제까지 산과 만남을 계속할 수 있을까 싶다. 이제 건강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산을 만나기 위해 건강을 지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