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명소이자 양수발전소 학습 장소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전북 무주군 편
  • ▲ 적상산 향로봉.ⓒ진경수 山 애호가
    ▲ 적상산 향로봉.ⓒ진경수 山 애호가
    적상산(赤裳山)은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에 자리한 산으로 덕유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사면이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여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면 마치 여인들의 치마와 같다고 하여 붉을 적(赤)과 치마 상(裳)자를 써서 이름 붙였다고 전한다.

    적상산 주봉(主峰, 해발 1034m)과 향로봉(香爐峰, 해발 1024m)이 마주 보고 있고, 정상부가 흙산이어서 나무숲이 매우 울창하다. 주봉에는 송신탑이 설치되어 향로봉이 정상 역할을 대신한다. 대표적인 들머리는 서창탐방로입구와 치목마을이다.

    이번 산행은 공중화장실이 설치된 해발 800m대의 대형주차장(적상면 북창리 산117-1)을 기점으로 적상전망대~안국사~안렴대~안국사 삼거리~주봉~향적봉 삼거리~향적봉~원점 회귀하는 총 거리 약 10㎞로 산행초보자라도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코스다.
  • ▲ 무주호 뒤로 깃대봉 허리를 감은 운해.ⓒ진경수 山 애호가
    ▲ 무주호 뒤로 깃대봉 허리를 감은 운해.ⓒ진경수 山 애호가
    무주 IC를 빠져나와 괴목로를 달리던 자동차는 산성로로 접어들면서부터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2차선 도로를 오른다. 비단에 화려한 수를 놓은 듯한 단풍길에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으니 황홀하기 그지없다.

    차량이 드문 탓에 유유자적(悠悠自適)한 마음으로 한참을 달려 주차장에 도착한다. 산정호수인 적상호(赤裳湖) 둘레길을 따라 적상전망대에 오른다. 적상호는 양수발전소에 필요한 물을 담아두기 위해 만든 인공호수다.

    전망대에 오르니, 발아래로 운해(雲海)가 춤추며 적상산을 감싸 돈다. 때마침 무주호 뒤편으로 우뚝 솟은 깃대봉(해발 1062.2m) 허리를 감은 운해를 보는 행운을 얻는다. 산허리 바위 절벽을 이룬 향적봉을 비롯해 적상호 뒤편으로 송신탑이 보이는 주봉을 조망한다.
  • ▲ 적상호 뒤편으로 송신탑이 세워진 적상산 주봉.ⓒ진경수 山 애호가
    ▲ 적상호 뒤편으로 송신탑이 세워진 적상산 주봉.ⓒ진경수 山 애호가
    기대하지 않았던 풍광 덕분에 감사한 마음이 충만하다. 어떤 일을 행하고도 행함을 잊고, 행했다는 마음마저 버린다면, 또는 행하고도 원하고 바라지 않는다면 행복이 벌떡 일어나 자연스레 감사한 일이 생기게 되는가 보다.

    전망대를 내려와 산정호수 둘레길을 따라 나라를 평안하게 해주는 사찰이라 하는 안국사(安國寺)로 길을 오른다. 안국사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으나, 단풍을 만끽하려면 걸어 오르는 것이 가을의 정취를 듬뿍 느낄 수 있다.

    적상산 안국사 일주문을 들어서자 산허리를 따라 석성이 아담하게 이어진다. 적상산의 정상부는 평탄하지만, 지면에서 산허리까지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세가 험준하여 천혜의 자연 요새이다. 이런 까닭에 고려말 최영 장군이 축조를 건의해 적상산성이 축성되었다고 전해진다.
  • ▲ 주차장에서 안국사로 이어지는 단풍길.ⓒ진경수 山 애호가
    ▲ 주차장에서 안국사로 이어지는 단풍길.ⓒ진경수 山 애호가
    안국사 청하루를 통과하여 계단을 오르면 정면으로 극락전, 우측으로 지장전, 좌측으로 삼성각을 마주한다. 전각들이 장엄한 꽃들로 장식한 것처럼 아름다운 단풍이 주변을 화사하게 품고 있다. 이 풍경을 즐기려는 신도는 물론 등산객들로 북적인다.

    경내를 내려오면서 멀리 큰 덕을 품은 듯 솟은 덕유산 향적봉(해발 1614.2m)을 조망한다. 안국사 주차장을 거쳐 차단기를 통과하면서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완만한 계단을 0.2㎞ 오르면 이정표를 만나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능선을 걷는다.

    오르막길을 0.3㎞ 오르자 층암절벽 위에 자리한 안렴대(按廉臺)에 이른다. 이곳은 고려 때 거란의 침입이 있었을 때 삼도 안렴사(三道 按廉使)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안렴대라고 전한다. 
  • ▲ 단풍이 무르익은 안국사 삼성각.ⓒ진경수 山 애호가
    ▲ 단풍이 무르익은 안국사 삼성각.ⓒ진경수 山 애호가
    안렴대는 병자호란 때 적상산 사고 실록을 이곳 바위 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했다는 유서 깊은 사적지이기도 하다. 적상산의 최고의 조망처이지만 운해로 인해 신통치 않다. 낭떠러지 절벽 보호 난간 밖으로 아슬아슬하게 고사목이 뿌리를 지탱하고 있다.

    산행의 최종목적지 향로봉은 운해 속에 숨었고, 주봉은 송신탑으로 자신을 대신 드러낸다. 안전을 위해 절벽 접근을 막고 있고, 등산로는 산허리로 이어지는데 잔잔한 돌이 섞인 흙길이다. 그런 까닭에 나무숲이 무성하지만, 1000m대의 나무들이라 이미 잎을 다 떨궜다.

    안렴대에서 0.3㎞를 이동해 안국사 갈림길에 도착한다. 안국사에서 바로 올라온 등산객들과 합류되어 혼잡하다. 일부 산악회 등산객들은 너른 평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점심을 즐긴다. 이곳에서 능선을 따라 1.5㎞를 더 이동하면 오늘 산행 목적지인 향로봉이다.
  • ▲ 안렴대.ⓒ진경수 山 애호가
    ▲ 안렴대.ⓒ진경수 山 애호가
    안국사 삼거리에서 몇 걸음 옮기면 송신탑이 있는 봉우리, 해발 1034m 적상산 주봉의 허리를 돌아간다. 울울창창한 신갈나무숲 사이를 잔잔한 물결처럼 오르내리면서 이동한다. 쪼그라든 단풍잎을 붙들고 있는 단풍나무가 단조로움에 변화를 준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산을 찾는다면, 오늘 이 산의 모습처럼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담백하면서도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와 자신감이 생겨나리라. 그런가 하면 가끔은 홀로 산을 걸으면서 나를 알아가게 되리라.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산이 좋아지고, 산을 아끼게 되고, 세상을 포옹하려는 마음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산길에서 만난 기이한 모양의 나무들, 아마도 그건 그들의 아픔이었으리라. 우리도 이따금 돌아다 보면 아픈 삶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 ▲ 향로봉 정상.ⓒ진경수 山 애호가
    ▲ 향로봉 정상.ⓒ진경수 山 애호가
    어느새 해발 950m 향로봉 삼거리에 닿는다. 서창마을(2.8㎞)에서 올라오는 산길과 만나는 곳, 이제 향로봉 정상(0.7㎞)이 지척이다. 서서히 완만하게 기울기를 그려놓은 산길을 걷는다. 향로봉 정상이 반환점이기 때문에 오고 가는 등산객들로 좁은 산길이 번잡하다.

    정상을 향하는 도중 가끔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능선의 실루엣이 나무줄기들을 잇고 있다. 울창한 숲길에선 늦가을과 겨울에야만 맛볼 수 있는 풍광이다. 그래서 산은 찾을 때마다 다른 모습, 다른 느낌으로 늘 새로움을 안겨준다.

    드디어 해발 1024m 향로봉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서 유일한 조망은 북쪽이다. 적상산터널 바로 뒤로 시루봉을 비롯해 멀산, 구리골산, 마항산 등 산봉우리와 적상산 들머리 중 하나인 서창마을을 조망한다. 
  • ▲ 적상호 둘레길.ⓒ진경수 山 애호가
    ▲ 적상호 둘레길.ⓒ진경수 山 애호가
    정상 부근에서 따뜻한 컵라면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간다. 이전엔 향로봉 정상에서 바로 적상호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었는데 지금은 출입금지된 상태이다.

    안국사 갈림에서 계단을 통해 안국사(0.2㎞)로 곧장 내려선다. 하늘을 가득 채웠던 구름이 가을바람에 하나둘 사라지고 맑고 투명한 햇살이 비추기 시작한다. 

    흐릿하던 단풍색이 선명하게 드러나니, 그 빛이 사라질까 마음졸이며 잰걸음으로 하산을 재촉한다. 적상호 둘레길은 단풍놀이 나온 상추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 ▲ 적상전망대에서 바라본 덕유산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 적상전망대에서 바라본 덕유산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하느라 추상객들은 분주하고, 웃음 가득한 행복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이곳이야말로 진정 괴로움이 없는 행복한 세상, 극락세계가 아닐까 싶다.

    빛이 없을 때 단풍은 흐릿하고 투박하지만, 밝은 빛이 있을 때 단풍은 맑고 선명하게 존재를 드러낸다. 사람에게도 지혜의 빛이 없다면 무의미한 존재에 불과하지만, 지혜의 광명을 지닌다면 비록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무한한 가치를 발하리라.

    적상전망대에 올라 덕유산 향적봉(해발 1614m)을 비롯해 불영봉(해발 1491m), 칠봉·망봉(해발 1305m), 거칠봉(해발 1177m)을 조망한다. 또 적상산 주봉에서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북창리에서 전망대까지 구불구불 이어진 산성로, 무주 읍내까지 풍경을 감상한다.
  • ▲ 적상전망대에서 바라본 산성로와 무주읍.ⓒ진경수 山 애호가
    ▲ 적상전망대에서 바라본 산성로와 무주읍.ⓒ진경수 山 애호가
    가을 색에 풍덩 빠진 이번 산행으로 은근슬쩍 떠나는 단풍잎을 미련 없이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지긋지긋한 무더위와 사투를 벌이며 고생한 초목의 시간, 이젠 잠시 휴식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천일폭포를 만나려 굽이진 도로를 내려간다. 그러나 하늘 아래 하나뿐인 폭포는 어디 있는지 볼 수는 없고, 단풍으로 치장한 웅장한 두 개의 암봉이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다. 안내판의 폭포 사진을 보는 것으로 기대감을 대신한다.

    자연의 숲처럼,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며 후회 없이 살다 돌아가는 모습이 화사한 단풍보다 더 곱고 풍부한 미가 아닐까. 원래 자리로 돌아갈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의 지혜를 망각으로부터 되새기며 내일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