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진천의 자연 전망대[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진천군 편
  • ▲ 양천산 정상에서 바라본 진천 시가지.ⓒ진경수 山 애호가
    ▲ 양천산 정상에서 바라본 진천 시가지.ⓒ진경수 山 애호가
    양천산(凉泉山, 해발 350m)은 충북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은탄리·사양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명(山名)은 ‘찬물이 솟는 샘이 있는 산’이어서 양천이란 하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산 이름에 얽힌 여러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양천산은 야트막한 키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정상에서 펼쳐지는 파노라마 같은 전망이 좋아 인근 산꾼들에게 잘 알려진 산이다. 산행코스의 들머리로 그럭재 마을과 안능 마을이 있지만, 산행 거리가 짧고 풍광이 비교적 시원치 않다.

    산행코스를 길게 잡기 위해 옥산저수지 삼거리에서 진우아이엔씨 안내판이 세워진 곳을 들머리로 삼거나, 숲길이 좋은 양천길-은탄2길 갈림길 부근의 양천산 임도 입구 또는 진우아이엔씨 뒤편으로 오르는 능선을 들머리로 산행하기도 한다.
  • ▲ 산행 들머리인 양천산 임도 입구.ⓒ진경수 山 애호가
    ▲ 산행 들머리인 양천산 임도 입구.ⓒ진경수 山 애호가
    이번 산행은 양천길-은탄2길 갈림길 부근의 양천산 임도 입구를 들머리로 삼고, 진우아이엔씨 뒤편의 능선을 날머리로 삼는다. 총 산행 거리는 약 4㎞로 산행이라기보다 산보(散步)에 가까운 여정이다. 들머리에 세워진 양천산 등산안내도의 거리 표기는 오기(誤記)이므로 그냥 무시하면 된다.

    임도에 들어서니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그리 무덥지 않다. 한여름의 기세가 며칠 전보다는 한풀 수그러든 듯하다. 시간의 흐름에는 그 무엇도 배겨날 재간이 없는 것처럼 연일 기승을 부리던 불덩이 열대야도 서서히 물러날 채비를 차리는 모양이다.

    울창한 녹음 속으로 널찍하고 완만하지만 모나지 않고, 그저 산자락의 생김새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 정겹다. 간간이 숲이 열리면서 푸른 하늘에 높게 떠 있는 뭉게구름이 천연색 계절이 다가온다고 알리는 듯하다.
  • ▲ 짙은 녹음 사이로 다가오는 가을 하늘.ⓒ진경수 山 애호가
    ▲ 짙은 녹음 사이로 다가오는 가을 하늘.ⓒ진경수 山 애호가
    간밤에 새로움을 찾아 망망한 생각의 바다를 헤매다가 아침나절이 돼서야 그 실마리를 찾은 탓일까. 발걸음이 구름을 타고 흘러가듯 유연하고, 몸도 마음도 푸르름으로 물들어간다. 이 세상에서 새로움을 만나는 것보다 환희로운 아름다움이 또 있을까.

    그러한 아름다움을 즐기며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줄곧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오늘에 만족하고, 그렇게 끈이 이어진 인연에 감사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속세의 얘기를 속삭이며 녹음이 가득한 길을 걷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땐 눈이 부실만큼 시원하게 하늘이 열린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숲길, 호젓하게 걷는 길에서 드문드문 만나는 밤나무에는 밤톨이 토실토실하게 여물어간다. 그런가 하면 키 큰 활엽수 나뭇잎이 하나둘 색을 바꾸니 역시 계절의 변화는 산에서부터 오는가 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자연의 시이고 그림이다.
  • ▲ 길가에 떨어진 밤송이.ⓒ진경수 山 애호가
    ▲ 길가에 떨어진 밤송이.ⓒ진경수 山 애호가
    길가에 떨어진 밤송이, 가시 돋친 밤껍질이 열려 있다. 스스로 농익어 벌어졌을까? 누군가 벗기려고 했을까? 그냥 시절인연이 되어 씨앗으로 돌아가려 했겠지 여긴다. 밤송이는 밤알이 곧바로 씨앗이라 먹히면 안 되어 가시를 돋아냈다. 그런가 하면 다른 과일은 먹혀야 비로소 씨앗을 퍼뜨린다.

    이처럼 모든 식물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생명을 이어간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니, 다름을 인정하고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걸림이 없는 바람처럼, 막힘이 없는 물처럼, 각자가 양심에 따라 거리낌이 없이 생각하고 행동할 때만이 가능할 게다.

    지난 5월 짙은 향기로 코끝을 자극했던 하얀 밤꽃이 어느새 갈색의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계절의 변곡점에서 그리도 원망스러웠던 열대야의 나날이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히고, 어느새 유려한 가을 풍경이 슬그머니 스며든다. 그래서 옛말에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 ▲ 임도에서 우측으로 양천산 정상 오르는 길.ⓒ진경수 山 애호가
    ▲ 임도에서 우측으로 양천산 정상 오르는 길.ⓒ진경수 山 애호가
    양천산 임도 들머리에서 1.7㎞를 걸으면, 우측으로 양천산 정상으로 오르는 이정표와 오르막길이 있다. 짧은 나무계단을 오르자마자 나타난 분묘를 지나면서 하늘이 열리고 탁 트인 전망이 펼쳐진다. 그런 대가로 따가운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길을 올라야 한다.

    길은 마사토로 약간 미끄럽고 그리 급하지도 완만하지도 않다. 오르는 도중에 만나는 나무탁자가 산꾼을 기다린다. 이후로 나지막한 키의 고만조만한 나무들이 그늘을 버리고 길 따라 늘어서 있다.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좌측으로 헬기장 나타날 때가 되었는데, 숲으로 가려져 보이질 않는다.

    임도에서 약 0.3㎞를 올랐을까. 일부러 심은 듯한 소나무 몇 그루를 지나자 산꼭대기에 주홍색 정자와 파란 산불감시초소가 정상임을 알린다. 좌측으로 양천산 정상석, 우측으로 통신중계탑을 지나 정상에 닿는다. 봉긋한 평원에 우뚝 솟아 잡초에 둘러싸인 정자에 오른다.
  • ▲ 양천산 정상.ⓒ진경수 山 애호가
    ▲ 양천산 정상.ⓒ진경수 山 애호가
    양천산은 달리는 말의 형상인 분마형(奔馬形) 산세를 지녔다고 한다. 정상부근에 길이 약 400m의 양천산성이 있다고 하는데 숲으로 덮여 있어 구별하기 어렵다. 임진왜란 때 양민들이 이곳으로 피신하여 왜병에게 저항하였다고 전한다.

    정자에 오르니 해발 고도는 400m가 채 되지 않는데도 전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저녁 무렵 석양이나 야경 감상에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북쪽으로 멀리 진천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충북혁신도시가 드넓은 벌판 끄트머리에 알을 품은 닭처럼 앉았다.

    동쪽으로 두타산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시야를 조금 더 남쪽으로 방향을 돌리자 미호천이 내려다보인다. 남서쪽으론 불당산을 비롯한 산등성이 너울거리며 켜켜이 멀어진다. 서쪽으론 웃자란 소나무 덕에 보고 싶지 않은 골프장이 조망에서 사라져 다행이다 싶다.
  • ▲ 양천산 정상에서 바라본 두타산.ⓒ진경수 山 애호가
    ▲ 양천산 정상에서 바라본 두타산.ⓒ진경수 山 애호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이 차지한 이 순간의 자연의 숲과 풍광,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모든 게 다 내 것이니 욕심낼 게 없다. 산은 마음을 넉넉하고 너그럽게 하는 마법을 지녔다. 그래서 내일 또 다시 찾아가는 곳이 있다면 그건 산이 아닐까.

    이 풍요로운 자연, 아름다운 산을 가꾸고 보호해 세세손손 온전히 전해주고 싶다. 자연을 즐기려면 먼저 자연을 사랑해야 한다. 자연을 탐내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진다. 자연 속에서 가져갈 것은 아름다운 추억이고, 남기고 갈 것은 다녀간 발자국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올랐던 길을 따라 하산을 시작한다. 임도와 합류 지점에서 약 100m 이동하니 좌측으로 수령이 꽤 오래된 오동나무 뒤로 새로운 길의 들머리 흔적이 희미하게 보인다. 새로운 숲길을 체험하고픈 호기심이 그 길로 발을 저절로 옮겨 놓는다. 
  • ▲ 양천산에서 처음 만난 계곡물.ⓒ진경수 山 애호가
    ▲ 양천산에서 처음 만난 계곡물.ⓒ진경수 山 애호가
    높은 자리에 앉아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 눈으로 산꾼들의 흔적을 찾아 오른다. 사라진 길의 흔적은 감각에 의지해 찾아가는 길. 바짝 긴장하고 오른 것에 비해 쉽사리 산길을 만난다. 기쁨도 잠시 이정표가 없는 갈림길에서 선택해야 하는 기로(岐路)에 섰다. 우리의 삶처럼 말이다.

    우측 좁은 능선길로 가면 될 듯싶은데, 더 널찍한 하행길이 유혹한다. 후에 알게 된 것은 좁은 능선길이 안전하고 빠른 길이었다. 일단 널찍한 길로 하행해 분묘 2기를 지나자 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갈림길에서 얼마 오지 않았으니 다시 돌아가는 것이 산행의 기본이다.

    그러나, 늘 새로운 길을 걷고 고된 여정을 일부러 즐기려는 심사(心思)였을까. 오감을 일깨우며 가파르고 험난한 산비탈을 요리조리 수풀을 헤집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다가 양천산에서 처음으로 졸졸 흐르는 계곡물을 만나고 산다래와도 눈을 마주치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 ▲ 소나무 군락지.ⓒ진경수 山 애호가
    ▲ 소나무 군락지.ⓒ진경수 山 애호가
    산허리를 헤매고 다닌 지 얼마후 나뭇가지 사이로 마을이 보이는데 안능 마을인 듯하다. 만일 그곳으로 하산한다면 원점 회귀하는데 포장길을 많이 걸어야 한다. 그래서 산의 품이 그리 넓지 않고 키도 크지 않으니 산비탈에서 능선으로 다시 치고 오르기로 한다.

    긴장한 탓일까? 소나기를 흠뻑 맞은 듯 땀이 흥건하다. 그래도 기분이 좋고 두 다리도 행복하다. 임도를 편하게 걷는 것보다 오르락내리락 산길을 걷는 것이 살아 있음을 느끼니 말이다. 어쩜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능선에 닿으니 산꾼들이 지나다닌 희미한 흔적에 반가움이 밀려든다. 더구나 등산 리본까지 눈에 띄니 이젠 됐다 싶다. 활엽수가 대부분이고, 수풀이 우거진 능선길을 따라 하행한다. 얼마 되지 않아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쭉쭉 뻗어 올린 소나무 군락지를 통과한다.
  • ▲ 산행 날머리인 진우아이엔씨 정문.ⓒ진경수 山 애호가
    ▲ 산행 날머리인 진우아이엔씨 정문.ⓒ진경수 山 애호가
    능선길 옆으로 모듈러 유닛과 컨테이너 하우스들이 적재된 진우아이엔씨 건물이 보인다. 그 방향으로 비탈길을 내려선 후, 산사태 방지 둑을 따라 회사 내로 내려선다. 이곳엔 작업 중인 모듈러 유닛의 철골조와 많은 모듈러 주택이 보관되어 있다.

    내리막길 옆의 숲속에는 아담한 숙소가 고즈넉한 모습으로 담겨있다, 정문에는 잘 생긴 두 마리의 개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직하게 수행하고 있다. 정문 차단기 옆으로 돌아 나와 양천길로 내려선다. 이후 옥산저수지 방향으로 포장길을 걷는다.

    원점회귀 길은 싸리나무꽃과 칡꽃 등 다양한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어 한결 행복하다. 게다가 진천공예마을을 다녀오는데 배롱나무꽃이 오늘 산행을 더욱 빛나게 갈무리한다.

    그 꽃송이는 하나하나 꽃들이 오래도록 피고 져서 늘 만개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 삶의 굴곡도 배롱나무꽃처럼 화려한 핑크빛 행복으로 농익어 갈 지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