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가파르며 위험 구간 많아[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옥천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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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산(環山, 해발 580m)’은 충북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항곡리·추소리·증약리·환평리‧이평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이 산에는 환산성터와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있다.환산의 산명을 두고 여러 해석이 있지만, 추소리의 부소담악과 연계하여 이 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차원에서 새롭게 스토리텔링 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아울러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상행 및 하행의 위험 구간 등산로 정비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이번 산행은 ‘황룡사 앞 주차장~260봉~565봉~부소담악 전망대~환산고스락(환산성제5보루)~삼각봉~환산성 제4보루~추소리 갈림길~좋은기도동산~부소담악 둘레길~황룡사 앞 주차장’으로 원점회귀 하는 코스로 약 7.9㎞이다.황룡사(충북 옥천군 군북면 환산로 513) 앞 주차장은 약 20여 대의 승용차를 주차할 수 있는 무료공영주차장이다. 이 주차장에서 나와 왼쪽으로 환산로를 따라 약 30m를 이동하여 등산로입구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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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멀겋게 빛바랜 ‘환산 등산로 안내도’가 세워진 등산로입구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 황룡사 북쪽 능선을 타기 시작한다. 곧추세운 산허리를 오르자니 코가 땅에 닿을 듯하다. 그나마 등산로에 설치된 밧줄이 산행을 도우니 한결 낫다.땅에 박힌 바위의 밑바닥을 쳐다보며 올라야 할 만큼 산길이 매우 가파르고 거칠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소나무 숲 아래의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바위들이 디딤돌 역할을 한다. 격렬하게 요동치는 심장과 헉헉거리는 가쁜 숨으로 바짝 마른입에게 휴식과 생명수를 주며 쉬어간다.뒤를 돌아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앙상한 나뭇가지 덕분에 대청호의 풍광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린다. 이렇듯 우리네 삶은 다 덕분이 아닌가 싶다. 다시 왼쪽과 오른쪽으로 환산의 산줄기를 이루는 우뚝한 봉우리들을 조망하며 힘차게 능선을 오르다보면 260봉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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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봉에서 내려가면서 하늘을 찌를 듯 높고 곧게 뻗은 참나무 숲 뒤로 허리를 곧게 세운 565봉을 바라보니 발걸음 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허리를 곧게 세운 능선을 오른 탓에 솥뚜껑보고 놀란 가슴 자라보고 놀란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늘 그랬던 것처럼 높은 산이든 낮은 산이든 녹록한 산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산행을 앞두고는 항상 두려움이 앞서지만, 막상 첫 발을 내 딛는 순간부터 두려움은 살아지고 도전 정신과 극복하려는 의지가 솟구친다.낙엽이 수북이 쌓인 가파른 흙길의 참나무 군락지를 차근차근 걸어 오른다. 바싹거리는 낙엽 밟은 소리와 발걸음에 집중하면 온갖 잡념이 사라지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른다. 밧줄을 도움을 받아 급경사를 간신히 오르자 굵직굵직한 바윗길의 소나무 숲 능선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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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봉 꼭대기에 닿을 쯤 능선이 돌연 허리를 바짝 세우고 있어 산비탈로 돌아간다. 처음으로 봉화대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은 올라온 방향으로 서낭당길(1.6㎞)과 우측 능선 방향에서 올라온 물아래길(2.0㎞)이 합류되는 지점이다. 환산 고스락까지는 0.47㎞를 더 가야한다.곧이어 구부정하지만 고고한 멋을 지닌 소나무들이 뾰족하게 삐져나온 바위들과 함께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칼날 능선을 걷는다. 갖가지 신비한 돌을 깔아놓은 늘 푸른 하늘 정원을 걷는 기분은 신선이 부럽지 않다.왼쪽으로 옥천군 군북면, 오른쪽으로 대전시 동구 추동일 일대의 대청호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조망되니 그야말로 진경산수의 동양화 속을 거니는 듯하다. 능선 끝자락의 전망대에 이르러 산줄기가 대청호를 가로질러 떠있는 부소담악(赴召潭岳)을 감상할 수 있다.그러나 자옥하게 깔린 미세먼지가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경관을 흐리멍덩하게 만든다. 맑은 공기를 휘저어 먼지를 일으켜 놓고 깨끗하고 선명한 풍광을 바라는 것은 어쩜 욕심일지 모른다. 당대의 인간 욕심이 지구를 이미 치유 불가능한 상태로 훼손시켜 놓았으니 후세들에게 볼 낯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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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동구 추동일대의 대청호를 바라보니 그곳 역시 마찬가지다. 산을 찾을 때마다 필자가 늙어가는 시간보다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속도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낀다. 지구온난화를 넘어 지구열대화 시대를 살고 있는 나로부터 그 심각성에 눈을 떠야한다.전망대에서 진행 방향을 바라보니 환산 고스락이 고슴도치 머리를 하며 기다리고 있다. 그곳으로 발길을 딛는 순간, 안부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하는 산길이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그래도 환산의 꼭대기를 정복하는 환희와 기대로 하행을 시작한다.정성껏 쌓아올린 작은 돌탑을 뒤로하고 앙상한 참나무가 인도하는 가파른 길을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해서 내려간다. 안부에 닿으니 이평리 갈마당6코스(2.5㎞)‧이평리 갈마당5코스(임도, 2.6㎞)‧정상(헬기장, 0.2㎞) 이정표를 만난다.이어 바윗길을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565봉이 작별인사를 한다. 낙엽으로 뒤덮인 돌길을 오르고 나니 정면으로 고스락 돌과 헬기장, 우측으로 이정표, 좌측으로 알아보기 곤란할 정도로 빛바랜 환산 등산로 안내도가 세워진 해발 580m의 환산 고스락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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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산 고스락은 삼국시대 축성된 산봉형 석축산성인 환산성제5보루이다. 사방으로 초목으로 둘러싸여 있어 조망은 없다. 서서히 떨어져 가는 억새꽃 옆에 자리를 잡고 푸른 하늘을 식탁으로 삼고, 산속의 맑은 공기를 반찬으로 삼아 간단히 요기를 한다.이제 삼각봉으로 하산을 시작하는데 반대 방향에서 산악회 등산객들이 떼를 지어 올라온다. 일부 무리들이 끊어지지 않고 올라오니 한참 동안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무리들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번쯤은 양보를 기대했던 것이 속 좁은 생각일까?완만하게 이어지는 하행 길에서 키가 하늘에 닿을 듯 엄청나게 큰 참나무 군락지를 지난다. 가뿐한 발걸음으로 내려간 후 다시 부드러운 봉우리는 넘는다. 이어 짧게 내려갔다가 완만한 오르막과 산비탈과 바위 덩어리를 지나고서 한바탕 애쓰며 봉우리를 오르니 해발 562m의 삼각봉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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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봉에서 능선에 울퉁불퉁 솟아 있는 봉우리들을 조망하면서 두 다리의 엄청난 노고에 감사한다. 긴 의자에 앉아 애쓴 다리에게 에너지를 보충할 기회를 준다. 삼각봉에서 하행하면서 비야리 마을회관(1.59㎞)과 이백리(황골말) 갈림길 이정표를 만나 이백리 길로 향한다.잠시 참나무와 소나무 숲이 이어지는 평탄한 길을 걷다가 내려가는 듯 다시 오르면서 감노마을(1.6㎞)‧정상(1.14㎞)‧황골말 갈림길 이정표를 만나 황골말 방향으로 이동한다. 작은 봉우리를 넘지 않고 비탈길을 걷던 발걸음을 잠시 멈춰 뒤를 돌아 지나온 봉우리를 바라본다.겨울 산행이 어쩜 황망하고 삭막하고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오히려 그 덕택에 산세의 생김새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삶은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이 있는 셈이니 얻었다고 우쭐하고 잃었다고 상심할 필요가 없다.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순리에 역행하고 태만을 방관하는 죄악이다. 왜냐하면 자연은 태어나서 지금껏 한시도 멈춘 적이 없고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얼핏 보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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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탄한 산비탈 길을 사뿐사뿐 걷다가 숨이 턱까지 닿도록 힘겹게 봉우리를 오르자 환산성 제4보루에 도착한다. 그렇게 애쓴 덕분에 비록 미세먼지에 가려 화려함이 빛을 바랬지만, 그런대로 대청호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할 기회로 보답을 받는다.대청호가 발아래 펼쳐진 산야를 마치 도톰한 문어발처럼 신기한 형상을 빚어내고, 그들이 품은 모든 생명의 원천으로 다가가서 진 빚을 갚는 듯하다. 그들은 현상으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만, 언젠가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닐 수도 있겠다.다시 모낸 논처럼 온통 거무스레한 참나무를 꽂아 놓은 완만한 능선을 조금 이동하면 추소리안양골(1.5㎞)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에서 하산을 시작하는데 상행할 때의 경사도와 유사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산돌과 흙길을 반복해서 한동안 능선을 하행한다.이정표가 없어 등산 리본을 따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급경사의 흙길을 내려가는데 낙상할까봐 긴장감이 고조되고 진땀을 뺀다. 사투를 벌이고 난 후 만나는 평평한 바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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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긴장감은 오른쪽이 아찔한 계곡 낭떠러지인 비탈길을 걸으면서 최고조에 이른다. 이후 산비탈 길을 걷다가 추락 위험 표지판이 세워진 비탈길을 지나고 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정상(3.0㎞) 이정표가 세워진 좋은기도동산을 만난다.이곳에서 좌측 군도15번길(환산로)을 따라가다가 오른쪽 추소리마을광장 방향의 길로 들어선다. 마을을 관통하여 초소리마을광장(주차장)에 도착하여 고요하고 여유롭고 평화로운 낭만이 넘치는 대청호에 떠 있는 부소담악을 조망한다.부소담악은 물 위로 솟은 기암절벽이 700m 가량 병풍처럼 대청호에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조선시대 학자 송시열이 소금강이라 예찬한 추소팔경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절경이다.추소리마을광장에서 황룡사 앞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부소담악 둘레길을 걷는다. 대청호 수변을 따라 0.4㎞의 황토길을 걷다보면 배타는 곳을 지나고, 곧이어 데크길이 0.3㎞ 가량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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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락내리락 데크길을 지난 후 소나무 숲의 매트길을 걸어 추소정에 닿는다. 추소정에 오르니 용이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형상이 선명하게 보인다. 추소초등학교 뒷산인 문필봉도 조망한다.추소정에서 내려와 양쪽으로 시퍼런 물이 넘실대는 부소담악 능선을 걷는다. 용의 비늘처럼 비스듬히 차곡차곡 쌓인 바위가 앞을 막아 돌아선다. 추소정으로 돌아가는 길에 환산의 산등성을 한눈에 조망하며 한발 한발 족적을 남긴 지닌 시간들을 돌이키니 감회가 새롭다.추소정에서 매트길을 내려와 수변데크길을 걸으며 잔잔한 대청호의 수면처럼 마음을 고요하게 해본다. 환산의 산줄기가 다가오는 것인지 필자가 다가가는 것인지 구별하기조차 어렵지만 다시 환생한 청년처럼 우람한 체격을 자랑하는 환산처럼 살고자 한다.기울어진 오후 햇살이 환산의 입체감을 더하듯 노년이 그냥 시들어가는 노을빛이 아니라 광채를 잃지 않는 석양처럼 밝고 깨끗하고 청정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말없이 밝히는 광명으로 지내고 싶다. 마치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과 ‘무언지교(無言之敎)’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