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두루마리 화장지와 동색’
  •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한평생 먹고 싸야 한다. 이중 무엇을 먹느냐 하는 문제는 가진 자와 없는 자로 나뉘어 무척 불평등하지만 싸는 것만큼은 누가 얼마짜리를 먹든지 간에 한 사람당 하루에 220g의 똥을 싼다. 그러니 공평하다.

    ​먹을 때는 좋았지만 쌀 때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기 항문에 묻은 똥을 닦기 위해 별의별 짓거리를 다 한다. 그런데 자기 입으로 집어삼킨 음식이 똥이 되어 나오겠다는데 굳이 닦아내려는 이유가 뭘까? 냄새나고 더럽고 자칫 치질이나 변비에 걸릴 수 있다며 열나 발을 분다. 

    ​똥은 무엇으로 닦았을까? 처음에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나뭇잎, 풀, 지푸라기, 이끼, 양털, 과일 껍질 등 구하기 쉽고 부드러운 재료를 엄선하여 밑 닦는 데 사용해 왔다. 급하게 똥을 싸야 하는데 변소는 늘 대문 옆 제일 먼 곳에 있다. 항문에 힘을 바짝 주고 뛰는 둥 마는 둥 어기적어기적 걸음으로 다가가 마침내 변소 문을 열었을 때 안도의 한숨을 쉬고 싸는 기쁨으로 ‘열락’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곤 한다. 만사 부러울 게 없었다. 

    ​똥통에 모인 똥은 서로 뒤섞여 누가 싼 똥인지 분간할 수 없다. 그냥 똥이다. 

    ​시장에서 학교에서 길거리에서 때론 예식장에서 장례식장까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쫓아 구석구석 헤집고 다니며 악수를 청하고 고개를 숙이고 연신 허리를 굽실대며 구걸을 했다. 표가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집어먹었다. 건강한 음식인지 상한 음식인지 가릴 겨를도 없이 폭식했다. 설사가 나고 장염이 걸리고 토사곽란으로 죽을 고비도 넘겼다. 

    ​변소를 개조하여 투표소를 만든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선거권이 박탈되었거나 항문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고 창자에 하자가 없는 엄선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 들어가기 전에 손가락 지문을 찍고 호패도 확인했다. 항문에 힘을 주는 사람, 앉기가 무섭게 일어서는 사람, 엉뚱한 데 싸는 사람까지 그 모양새도 가지가지다. 

    ​투표함에 모인 표는 서로 뒤섞여 누가 찍은 표인지 분간할 수 없다. 그냥 표다. 

    ​똥은 무엇으로 닦았을까? 추수가 끝난 뒤 그늘에서 말린 볏짚 지푸라기가 양철통에 담겨 있고, 햅쌀 타작하고 남은 부드러운 지푸라기를 돌돌 말아 꼬아놓은 볏짚 새끼줄이 기둥에 걸려 있고, 담벼락에 주렁주렁 매달린 실한 호박 하나를 골라 호박잎을 싹둑 꺾어 들고 변소에 들어가 의기양양하게 콧노래를 불렀다. 기쁨에 취해 밑을 닦는다.

    ​할머니는 두껍고 뻣뻣한 회포대 종이를 가위로 네모반듯하게 자른 후 주름이 굵게 파인 손으로 싹싹 비벼 대청마루에 올려 두셨고, 어머니는 밀가루 포대 실을 푼 뒤 보들보들해질 때까지 비빈 후 부뚜막 위에 가지런히 두셨다. 아버지는 벽지로 붙이고 남은 조간신문 파지를 모아 변소 안쪽 문고리에 걸어 두셨다. 그중 으뜸은 기름 냄새가 풀풀 나는 조간신문이었다. 엉덩이에 까만 기름때가 묻어난다.

    ​농협에서 ‘월력(달력)’을 선물로 받았다. 날씨와 파종 시기 등 농사에 관한 각종 정보를 가득 담은 월력은 유권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선물이었다. 하루에 한 장씩 찢어 쓰는 월력은 항문과 궁합이 가장 잘 맞는 밑씻개였지만 귀했다. 조합장과 안면이라도 있으면 몰라도 늘 품귀였다. 가장 좋은 선물이 월력이었다. 월력은 똥 닦는 종이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똥 닦는 종이를 화장지라 불렀고, 아메리카 코쟁이는 파란 눈으로 조선의 새끼줄을 모방하여 두루마리 화장지를 선보였다. 고상해 보이지만 보들보들한 이 종이(화장지)는 부자들이나 쓰던 사치품이었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대중화되자 조선화장실연구소에서 남성은 93㎝, 여성은 118㎝의 화장지를 사용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우습잖다. 조선 중앙선거위에서는 그보다 짧은 51.7㎝ 두루마리 화장지를 투표소에 걸어 두었다. 상표 이름은 비례대표 용지라고 했다. 발상이 놀랍다. 
  • ▲ 22대 총선 투표용지.ⓒ중앙선거관리위원회
    ▲ 22대 총선 투표용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주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무심천이 흐른다. 상당구 쪽은 금빛 모래가 널브러진 백사장이었고 흥덕구 쪽은 깊고 짙푸른 물이 사시사철 흘렀다. 똥이 마려울 때면 엉덩이를 까고 백사장 고운 모래로 문지르거나 누가 볼세라 후다닥 무심천에 뛰어들어 짙푸른 물로 닦았다. 비록 가난하고 힘겹지만, 둑 아래 모여 사는 사람들만의 특권이었다. 상당구가 반으로 찢겨 청원구가 되었고 흥덕구가 절반으로 갈라져 서원구가 되었다. 청주 최초의 수세식 화장실은 무심천이었다. 인류 최초의 비데는 바로 내 몸에 착 달라붙어 있는 손이었다. 여태 그걸 모르고 살아온 것이 천추의 한이다. 

    ​두루마리 화장지는 필요한 만큼만 손으로 잘라 쓸 수 있다. 그 손으로 화장지를 잘라 똥을 닦을 수도 있고, 무심천에 뛰어들어 비데로 사용할 수도 있다. 비데 사용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비데를 사용하면서 화장지 사용이 줄어들 줄 알았지만, 오히려 더 증가하고 있다. 비데 사용 후 화장지로 한 번 더 닦아내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의심병이 도진 탓으로 표를 한 번 더 확인해야 한다고 야단법석이다. 똥 싸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아직도 많은 사람은 두루마리 화장지를 사용하고 있다.  

    ​두루마리 화장지 논쟁은 끝나지 않는다. 화장지를 어느 방향으로 걸을까? 푸는 방향이 벽과 떨어지게 거는 전면 파가 있고, 벽으로 향하게 거는 후면 파가 있다. 전면 파는 화장지가 벽에 닿아 세균에 오염되는 걸 걱정하고, 후면 파는 변기나 세면대의 물이 화장지에 튀는 걸 염려한다. 하릴없는 사람이 남의 집 변소를 들여다보면서 조사한 결과 전면 파는 66%이고 후면 파는 33%라고 하니 헛웃음만 난다. 하기야 물보다는 세균이 무섭다.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한평생 먹고 싸야 한다. 먹을 때는 좋았지만 쌀 때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기 항문에 묻은 똥을 닦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한다. 똥을 잘 닦아야 잔병치레를 안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럼 똥은 무엇으로 닦을까? 올곧이 싼 사람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남의 똥을 대신 닦아 줄 수는 없다. 나름 위생적인 화장지는 한 장씩 찢어서 사용하는 월력과 한 마디씩 잘라 쓸 수 있는 두루마리 화장지가 ‘따따봉’이다. 코로나 19로 몸살을 앓다 보니 세균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해댄다. 그도 그럴 것이다.

    ​낙선자는 투표소 앞을 떠나지 못한다. 똥을 싼 뒤 밑을 닦고 남은 두루마리 화장지를 주섬주섬 주머니에 넣고 맥없이 주저앉아 통곡한다. 눈물을 훔치며 정로환 세 알을 입에 털어 넣는다. 당선자는 똥을 눈 뒤 밑을 닦고 옷을 추스르며 나와 훼스탈 두 알을 입에 털어 넣고 팔자걸음으로 걷는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부족했다며 투덜댄다. 

    ​사람은 왜 똥을 누는 걸까? 사람은 왜 똥을 싸는 걸까? 누는 것과 싸는 것은 사뭇 다르다. 똥을 누면 동그랗게 쌓이고 똥을 싸면 똥이 튀겨 바짓단에 왕창 묻는다. 선거가 끝나고 나니 한 끗 차이로 천당과 극락을 오간다. 똥을 눈 자만 실실 웃는다. 

    ​그토록 찾아 헤맸던 두루마리 화장지가 똥통에 가득하다. 낙선자는 똥 묻은 두루마리 화장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똥 묻은 두루마리 화장지는 재생이 안 된다. 선거는 두루마리 화장지와 동색이다. 

    ​2024년 4월 15일, 선거가 끝났다. 동그랗게 눈 똥 위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덮는다. 이재룡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똥을 주워 글을 쓴다.